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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을 발간하며
凡 例 解 說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23권 상 晉 安帝 隆安 3년(399)~晉 安帝 元興 3년(404) / 11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23권 하 晉 安帝 元興 3년(404)~晉 安帝 義熙 6년(410) / 99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24권 상 晉 安帝 義熙 7년(411)~晉 恭帝 元熙 원년(419) / 184 [附 錄] 1.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16≫ 年表 / 281 2.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16≫ 地圖 / 301 3. 東晉 世系表 / 308 4. 後燕 世系表 / 308 5. 北燕 世系表 / 309 6. 後秦 世系表 / 309 7. 夏나라 世系表 / 309 8. 北魏 世系表 / 310 9. 後? 世系表 / 311 10. 南? 世系表 / 311 11. 北? 世系表 / 311 12. 西? 世系表 / 312 13. 西秦 世系表 / 312 14. 南燕 世系表 / 312 15.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16≫ 參考書目 / 313 16.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16≫ 圖版目錄 / 317 17.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總目次(QR) / 318 18.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解題(QR) / 318 |
朱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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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 속에도 영걸은 있다
독발욕단禿髮?檀이 위종韋宗과 당세의 큰 지략을 논하였는데, 종횡으로 무궁무진하였다. 위종이 물러나와 감탄하기를 “기이한 재주와 걸출한 기국器局은 반드시 화하華夏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현명하고 지혜로우며 민첩하고 식견이 있음은 반드시 책을 읽어서가 아니니, 나는 이제야 구주九州의 밖과 오경五經 이외에 다시 따로 훌륭한 사람이 있는 줄을 알았다.” 하였다. ---「제23권 하 의희義熙 4년(408)」중에서 최호崔浩의 안목 탁발사拓拔嗣가 말하기를 “유유劉裕의 재주가 모용수慕容?에 비하여 어떠한가?” 하자, 최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모용수는 부형父兄의 힘을 빌려서 옛 기업基業을 닦고 회복하니, 나라 사람들이 그에게 귀의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공功을 세우기가 쉬웠습니다. 그러나 유유는 가난하고 미천한 출신에서 떨치고 일어나 의지할 만한 한 자의 땅도 없었으나, 여러 도적들을 토벌하여 멸망시켜 향하는 곳마다 앞을 가로막는 자가 없었으니, 그 재주가 월등합니다.” ---「제24권 상 의희義熙 13년(417)」중에서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 통만성統萬城 혁련발발赫連勃勃이 질간아리叱干阿利를 임명하여 장작대장將作大匠을 겸하게 해서 오랑캐와 중화의 10만 명을 징발하여 삭방朔方의 흑수黑水 남쪽에 도성을 축조하고 말하기를 “짐朕이 막 천하를 통일하여 만방에 군림하려 하니, 새로 축조한 성城을 마땅히 통만統萬으로 이름하겠다.” 하였다. 질간아리는 재주가 정교하고 잔인하였다. 진흙을 쪄서 벽돌을 만들어 성을 쌓았는데, 송곳이 한 치 깊이가 들어가면 즉시 그 벽돌을 만든 자를 죽여서 그 시체를 성을 쌓는 데 집어넣으니, 혁련발발은 그가 충성한다 하여 그에게 위임하였다. 무릇 병기를 만들어서 질간아리에게 바치면 공인工人 중에 반드시 죽임을 당하는 자가 있으니, 갑옷을 화살로 쏘아 뚫리지 않으면 활 만든 사람을 참수하고, 갑옷이 뚫리면 갑옷을 만든 장인을 참수하였다. 이 때문에 기물이 모두 정교하고 예리하였다. ---「제24권 상 의희義熙 9년(413)」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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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완역
본서는 ≪자치통감강목≫과 그 주석을 국내 최초로 번역하였다. 더불어 한중일韓中日에서 나온 ≪자치통감≫ 연구서 등을 참조하여 고사故事와 인물人物, 역사적 사실과 제도까지 역주譯註로 밝혀 독자들의 내용 이해를 도왔다. 또한 역사 사건과 관련된 역사 연표와 지도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들의 세계표世系表까지 부록하였다. ≪자치통감≫은 현재 중국, 일본, 한국에서 번역되었으나 주석까지 완역完譯되지는 못하였다. 이번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주석서인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의 완역을 통해 세종 시기의 동양학 연구 성과를 알리는 동시에 한국학 연구에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16≫의 구성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16≫은 제23권 상?하와 제24권 상에 해당하며, 시기적으로 동진東晉 안제安帝 융안隆安 3년(399)년에서 동진 공제恭帝 원희元熙 원년(419)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는 중국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한다. 당시 중국은 남북으로 분열되어 호족胡族과 한인漢人이 세운 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혼란의 시기였다. 화남華南 지역에는 한족漢族 국가인 동진東晉이 있었으며, 화북 지역에는 강족羌族이 세운 후진後秦을 비롯하여, 선비족鮮卑族 탁발씨拓拔氏의 북위北魏, 같은 선비족 모용씨慕容氏의 남연南燕?독발씨禿髮氏의 남량南?, 고구려高句麗 출신 고운高雲이 세운 북연北燕, 흉노족匈奴族의 하夏나라?북량北?, 저족?族의 후량後? 등 다양한 나라와 민족들이 등장하였다. 당시 대사건으로는 동진東晉 안제安帝 때에 일어난 손은孫恩의 난을 들 수 있다. 동진에서는 화려한 귀족 문화가 꽃피웠으나 오히려 정치적 혼란이 가속화 되면서 민심을 잃게 된다. 이에 오두미교五斗米敎 출신인 손은이 민란을 일으키면서 동진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내부적 갈등과 북쪽 국가들의 위협 속에서 성장한 이들이 바로 군인들이다. 이들은 점차 군벌로 성장하게 되는데 대표적 인물이 유유劉裕이다. 빈천한 출신이었던 유유는 군공軍功을 통해 황제가 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북벌을 시도하여 남연과 후진을 멸망시키고 고도古都 낙양洛陽과 장안長安을 수복하여 역성혁명易姓革命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본서에서는 원전 본연의 모습을 통해 생생한 역사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하여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