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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譯註叢書를 발간하면서
凡 例 明淸八大家의 생애와 문학 -張裕釗?吳汝綸- / 11 제7권 張濂亭文? 01. 〈元后傳〉 뒤에 쓰다 書元后傳後 / 21 02. 〈藝文志〉의 뒤에 쓰다 書藝文志後 / 27 03. 〈魏其武安傳〉 뒤에 쓰다 書魏其武安傳後 / 29 04. 〈外戚世家〉의 뒤에 쓰다 書外戚世家後 / 31 05. ≪歸震川評點史記≫의 後序 歸震川評點史記後序 / 34 06. 중간본 ≪毛詩古音考≫에 대한 序 重刊毛詩古音考序 / 37 07. ≪鍾祥縣志≫의 後序 鍾祥縣志後序 / 42 08. ≪高淳縣志≫의 序 高淳縣志序 / 44 09. ≪翊翊齋遺書≫의 序 翊翊齋遺書序 / 49 10. ≪退學軒同懷遺藁≫의 序 退學軒同懷遺藁序 / 52 11. 明나라 三原 焦公의 家書에 대한 跋 跋明三原焦公家書 / 54 12. 明나라 周忠毅公의 手蹟에 대한 跋 跋明周忠毅公手蹟 / 57 13. 梅中丞을 보내는 序 送梅中丞序 / 61 14. 영국으로 사신 가는 黎?齋를 보내는 序 送黎?齋使英吉利序 / 68 15. 査生 燕緖에게 주는 序 贈査生燕緖序 / 73 16. 黃蒙九를 보내는 序 送黃蒙九序 / 75 17. 直隷總督으로 부임하는 湘鄕 相國 曾公을 보내는 序 送湘鄕相國曾公之任直隷總督序 / 78 18. 吳?軒 軍門을 보내는 序 送吳?軒軍門序 / 82 19. 吳淸卿 庶常에게 주는 序 贈吳淸卿庶常序 / 86 20. 李佛笙을 보내는 序 送李佛笙序 / 90 21. 湘鄕縣 相國 曾公의 58세에 祝壽하는 序 湘鄕相國曾公五十有八壽序 / 94 22. 吳育泉 先生과 馬太宜人의 60세에 祝壽하는 序 吳育泉先生?馬太宜人六十壽序 / 97 23. 范鶴生의 60세에 祝壽하는 序 范鶴生六十壽序 / 100 24. 黎?齋에게 보낸 편지 與黎?齋書 / 103 25. 吳至甫에게 답한 편지 答吳至甫書 / 107 26. 劉生에게 답한 편지 答劉生書 / 111 27. 李佛笙 太守에게 답한 편지 答李佛笙太守書 / 113 28. 藜?齋에게 답한 편지 答藜?齋書 / 116 29. 張煦堂 大令에게 보낸 편지 與張煦堂大令書 / 119 30. 贈道銜 湖北升用知府 ?門直?州知州 李剛介公 殉難碑의 記 贈道銜湖北升用知府?門直?州知州李剛介公殉難碑記 / 122 31. 誥贈奉政大夫 山東 長山縣知縣 黎府君의 墓表 誥贈奉政大夫山東長山縣知縣黎府君墓表 / 129 32. 唐端甫의 墓誌銘 唐端甫墓誌銘 / 136 33. 莫子?의 墓誌銘 莫子?墓誌銘 / 142 34. 吳氏의 모친 馬太淑人의 ?葬誌 吳母馬太淑人?葬誌 / 149 35. 丈人 黃君의 墓表 外舅黃君墓表 / 153 36. 黃孺人의 墓誌銘 黃孺人墓誌銘 / 156 37. 先府君과 先?의 事略 先府君?先?事略 / 159 38. 蟲單의 傳 蟲單傳 / 165 39. 狼山을 유람한 記 游狼山記 / 170 40. 虞山을 유람한 記 游虞山記 / 173 41. 〈愚園雅集圖〉의 記 愚園雅集圖記 / 177 42. 北山을 홀로 유람하고 쓴 記 北山獨游記 / 181 제8권 吳摯甫文? 01. 廣西 ?州府知府 薛君의 墓碑 廣西?州府知府薛君墓碑 / 185 02. 필사본 ≪尙書≫의 뒤에 쓰다 記寫本尙書後 / 189 03. 필사본 ≪尙書≫의 뒤에 다시 쓰다 再記寫本尙書後 / 193 04. 孔敍仲 문집의 序 孔敍仲文集序 / 197 05. 부모님의 60壽에 詩文을 청하며 쓴 事略 家嚴慈六十雙壽徵言略 / 200 06. 廣昌縣의 城隍神을 모신 祠堂의 碑文 廣昌縣城隍神廟碑 / 206 07. 張廉卿을 보내는 序 送張廉卿序 / 210 08. ?越을 정벌하는 일에 대하여 淮南王이 간언한 상소를 읽고 뒤에 쓰다 讀淮南王諫伐?越疏書後 / 214 09. 玉露禪院에 題하다 題玉露禪院 / 220 10. 姚公의 〈談藝圖〉에 대한 記 姚公談藝圖記 / 222 11. 賀蘇生 선생의 七旬에 祝壽하는 序 賀蘇生先生七十壽序 / 226 12. 范肯堂의 〈大橋遺照〉에 題하다 題范肯堂大橋遺照 / 231 13. 合肥 淮軍昭忠祠에 대한 記 合肥淮軍昭忠祠記 / 234 14. 贈光祿大夫 記名御史 刑部郞中 合肥 李公의 廟碑 贈光祿大夫記名御史刑部郞中合肥李公廟碑 / 242 15. 程忠烈公의 神道碑 程忠烈公神道碑 / 250 16. 黃來庭의 墓表 黃來庭墓表 / 262 17. 左文襄公의 神道碑 左文襄公神道碑 / 266 18. 誥封太夫人인 陳氏의 어머니 熊太夫人의 墓誌銘 誥封太夫人陳母熊太夫人墓誌銘 / 281 19. 光祿大夫 刑部左侍郞 袁文誠公의 神道碑 光祿大夫刑部左侍[郞]袁文誠公神道碑 / 286 20. 江安 傅君의 墓表 江安傅君墓表 / 296 21. 李勤恪公의 墓誌銘 李勤恪公墓銘 / 302 22. 李文忠公에 대한 祭文 祭李文忠公文 / 306 23. 蔣湘帆 尺牘의 跋 跋蔣湘帆尺牘 / 311 24. 李文忠公의 神道碑銘 李文忠公神道碑銘 / 313 25. 附 ≪深州風土記≫ 4편 초록 附深州風土記四篇 / 327 25-1. 〈明以來孝義〉에 대한 序 明以來孝義序 / 328 25-2. 유우 流寓 / 331 25-3. 〈物産〉의 後敍 物産後敍 / 335 25-4. 歷代의 兵事 歷代兵事 / 341 25-5. ≪深州風土記≫의 敍錄 深州風土記敍錄 / 426 [附錄 1] - 索引 1. 索引凡例 / 439 2. 索引 제1권 歸震川文? / 443 제2권 方望溪文? / 457 제3권 劉海峰文? / 470 제4권 姚姬傳文? / 482 제5권 梅伯言文? / 499 제6권 曾滌生文? / 517 제7권 張濂亭文? / 536 제8권 吳摯甫文? / 547 [附錄 2] - 參考資料 1. ≪明淸八大家文? 4≫ 參考書目 / 574 2. ≪明淸八大家文? 4≫ 參考圖版 目錄 / 579 3. ≪明淸八大家文? 4≫ 板本 見本 / 581 4. ≪明淸八大家文?≫ 總目次(QR) / 585 5. ≪明淸八大家文?≫ 解題(QR) / 5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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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세동점西勢東漸
태서泰西(서양)는 예로부터 중국과 왕래가 없었는데, 명나라 중엽에 이르러 이마두利瑪竇(마테오 리치)와 애유략艾儒略(줄리오 알레니) 같은 이들이 처음으로 기술을 가지고 중국 땅에 왔다. 본조本朝(청나라)가 열리고 우리 성조聖祖 인황제仁皇帝께서 서양 역산曆算의 정밀한 점을 좋다고 여겨 특별히 장려하셨다. 이에 오는 서양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 민??월?의 바닷가 지역에 상선들이 점점 모여들었는데, 백여 년이 지나 도광道光 연간에 이르러 해안 국경에서 처음으로 전쟁이 일어났다. 그 후 국가가 수복綏服을 회유하여 아울러 포용하는 데 오로지 힘써 먼 지역까지 위무함에 위덕威德이 먼 이역까지 미쳤다. 이런 까닭에 외국에서 몰려와서 통상 교역하고 맹약을 맺은 것이 50여 나라에 이르렀다. ---「『장염정문초張濂亭文?』 〈송여순재사영길리서送黎?齋使英吉利序〉」중에서 이홍장李鴻章에 대한 제문祭文 공(이홍장)의 외교에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이 있었으니, 오대주五大洲에서 훌륭함을 인정하여 한두 손가락에 꼽았네. 옛날의 세 현인賢人(증국번, 호임익, 좌종당)은 국내에서 군대를 다스렸으되, 교린交隣으로 말하면 모두 미치지 못한 바였네. 공은 공적이 그들과 나란한 데다 외국까지 제어하였으니, 먼 곳까지 위무하여 다녀온 것은 유독 공이 으뜸이었네. 저들은 어리석어 깨닫지 못해 성공을 뒤흔들어 실패하게 하고, 실패하고 나면 손을 움츠리고 공이 구제해주리라 믿었네. 지금의 강화는 존망이 달린 바이거늘 일을 저지하려는 논의가 오히려 더욱 분분하게 일어났는데, 칭찬도 비방도 내맡겨두고 일을 이루고 일을 구제하니, 공에게 충忠이라는 시호를 내림은 공론이 여기 있었던 것이네. ---「『오지보문초吳摯甫文?』 〈제이문충공문祭李文忠公文〉」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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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세기 동아시아 문학의 주류 『명청팔대가문초』의 최초 번역
우리나라에서 동성파 문장의 번역은 일부만을 선역選譯하여 소개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전통문화연구회의 『역주 명청팔대가문초』는 동성파의 대표적 선집選集인 왕문유의 『명청팔대가문초』를 최초로 완역하고 역주한 것으로 총 4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역주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와 더불어 16~19세기 동아시아 문화지형도 파악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증국번曾國藩의 제자, 중국 근대화시기를 살다간 문인 장유소(1823~1894)과 오여륜(1840~1902)은 여서창黎庶昌·설복성薛福成과 함께 증국번의 4대 제자로 꼽힌다. 증국번이 “내 문인 중에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이는 장생張生과 오생吳生 두 사람뿐이다.”라고 말했을 만큼, 장유소와 오여륜은 증국번을 계승한 적통이라고 할 수 있다. 장유소는 태평천국운동과 서구의 침입을 겪으면서 과거제를 폐지하고 서양의 학문을 적극 수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서원의 전통적인 고문古文을 교육하는 한편, 신식 교육 체계를 수립하는 데 일조하였다. 오여륜은 동성桐城 출신으로 동향의 방포方苞, 유대괴劉大?, 요내姚?의 문장에 큰 영향을 받았다. 증국번과 이홍장의 막료로 있었다. 신식 교육을 시행하는 데 힘쓰면서도 동성파의 고문을 교육하여 전통 학문의 명맥을 이어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