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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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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
물러남의 길, 퇴계의 발자취를 따라 _ 김병일

퇴계를 배우는 길
즐거운 마을 도산으로 돌아가다 _ 이광호

참 좋은 사람을 따라 걷다
광화문에서 동호 몽뢰정을 거쳐 봉은사까지 _ 이기봉

나의 진휴眞休를 막지 마시오
봉은사에서 미음나루까지 _ 권진호

퇴계의 학맥을 이은 성호와 다산
미음나루에서 한여울까지 _ 이한방

사상을 초월한 퇴계의 폭넓은 우정
한여울에서 배개나루까지 _ 정순우

풀려나간 마음을 찾아서
배개나루에서 흔바위나루까지 _ 박경환

이곳에 와보지 않은 사람은 한국사람이 아니다
흔바위나루에서 가흥창까지 _ 김언종

높은 산 우러르며 큰길을 간다
가흥창에서 충청감영까지 _ 이갑규

한벽루에 올라 청풍호를 바라보니
충청감영에서 청풍관아까지 _ 안병걸

퇴계는 뭍길로 우리는 물길로
청풍관아에서 단양향교까지 _ 권갑현

두려운 벼슬길 정녕 넘기 어려웠네
단양향교에서 죽령을 넘어 풍기관아까지 _ 강구율

퇴계의 공감 능력과 여성 존중
풍기관아에서 영주 두월리까지 _ 황상희

드디어 도산이다
두월리에서 삽골재까지 _ 이치억

도산에서 마주한 장엄한 낙조
삽골재에서 도산서원까지 _ 이치억

저자 소개 14

李光虎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서양과 동양의 철학을 익혔다. 민족문화추진회 부설 국역연수원과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문과 유학의 경전을 익혔다. 한림대학교와 연세대학교 철학과에서 유학과 동양철학을 가르쳤다. 고전을 익히며 인격을 완성하는 가운데 진리를 체험하는 유학을,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문학으로 정립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근사록집해』, 『국역 심경 주해 총람』, 『성학십도』, 『이자수어』 등을 번역하고,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를 편역하여 출간했다. 한국동양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2008년 주자학상과 2013년 퇴계학 학술상을 수상했다. 현재 국제퇴계학회 회장을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서양과 동양의 철학을 익혔다. 민족문화추진회 부설 국역연수원과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문과 유학의 경전을 익혔다. 한림대학교와 연세대학교 철학과에서 유학과 동양철학을 가르쳤다. 고전을 익히며 인격을 완성하는 가운데 진리를 체험하는 유학을,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문학으로 정립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근사록집해』, 『국역 심경 주해 총람』, 『성학십도』, 『이자수어』 등을 번역하고,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를 편역하여 출간했다. 한국동양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2008년 주자학상과 2013년 퇴계학 학술상을 수상했다. 현재 국제퇴계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광호의 다른 상품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 안동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국국학진흥원 국학기반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조선 후기 지식인의 문학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역서로는 『19세기 영남학파의 종장, 정재 류치명의 삶과 학문』(저서), 『국역 상변통고(10권)』(공역), 『국역 가례증해(6권)』(공역)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한강 정구의 정주학 수용양상」, 「영남학파의 주자가례 수용양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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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퇴계학연구원 사무국장이다.

丁淳佑

1953년 경북 영천생. 1976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한국교육사, 지성사이며,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명예교수이다. 대표 저서로는 《공부의 발견》, 《서당의 사회사》, 《서원의 사회사》, 《조선후기의 성인담론과 교육》 등이 있다. 공저로는 《퇴계학과 남명학》, 《도산서원과 지식의 탄생》, 《조선 전문가의 일생》 《남명 조식―칼을 찬 유학자》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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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璟煥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 국학진흥원의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박사학위 논문 「장재의 기론적 천인합일 사상 연구」 외에 「현세적 가치와 출세적 가치의 대립」, 「동학과 유학」 등이 있다. 함께 글을 쓴 저서로 《강좌 한국철학》이 있고, 함께 옮긴 책으로 《중국철학과 인성의 문제》와 《양명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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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원장,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명예교수, 문학박사 1952년 안동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대만 국립사범대학 국문연구소에서 문학석사 및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경희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조교수ㆍ부교수를 거쳐 고려대학교 한문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 소장을 역임하였다. 국제퇴계학회 부회장, 한국고전번역학회 회장, 한국경학학회 회장, 한국실학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다산학과 퇴계학을 중심으로 한국경학 연구에 매진하였다. 저서로 『丁茶山論語古今注原義總括考徵』(1987), 『한자의 뿌리 1-2』(2001), 『밀암 이재 연
한국고전번역원 원장,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명예교수, 문학박사
1952년 안동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대만 국립사범대학 국문연구소에서 문학석사 및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경희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조교수ㆍ부교수를 거쳐 고려대학교 한문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 소장을 역임하였다. 국제퇴계학회 부회장, 한국고전번역학회 회장, 한국경학학회 회장, 한국실학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다산학과 퇴계학을 중심으로 한국경학 연구에 매진하였다. 저서로 『丁茶山論語古今注原義總括考徵』(1987), 『한자의 뿌리 1-2』(2001), 『밀암 이재 연구』(공저, 2001), 『인문학 명강: 동양 고전』(공저, 2013), 『정산 이병휴의 시와 철학』(공저, 2013), 『창구객일 연구』(공저, 2014) 등이 있다. 역서로 『정체전중변』(공역, 1995), 『다산과 문산의 인성논쟁』(공역, 1996), 『다산과 석천의 경학논쟁』 (공역, 2000), 『다산과 대산, 연천의 경학논쟁』(공역, 2000), 『다산의 경학세계』(공역, 2002), 『역주 자학』(공역, 2008), 『역주 시경강의 1-5』(공역, 2008), 『혼돈록』(2014), 『상서고훈 1-5』(공역, 2022) 등이 있다. 정본여유당전서 사업에 참여하여 『시경강의』, 『상서고훈』, 『여유당전서보유』를 책임 연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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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교수이다.
안동대학교 명예교수이다.
경북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동양대학교 컴퓨터학부 교수를 역임하였다. 한학자 東溪 李震宰, 東厓 權憲祖 선생을 師事하고, 한국국학진흥원 고전국역자양성과정 및 안동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고전국역전공을 이수하였다. 현재 안동 陶山書院 講讀有司를 맡고 있다. 컴퓨터 관련 저·역서 《컴퓨터시스템구조》, 《디지털공학》, 《어셈블리어》, 《C프로그래밍》, 《마이크로프로세서》, 《전기전자공학개론》 등 다수 한문 서적 공저역 《秘書漢字 공저》, 《?念無? 공역》 한문 문집 교열 및 교정 《東溪文集》, 《東厓文集》, 《국역榮州三邑誌》, 《국역炊沙集》, 《국역
경북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동양대학교 컴퓨터학부 교수를 역임하였다.
한학자 東溪 李震宰, 東厓 權憲祖 선생을 師事하고, 한국국학진흥원 고전국역자양성과정 및 안동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고전국역전공을 이수하였다.
현재 안동 陶山書院 講讀有司를 맡고 있다.

컴퓨터 관련 저·역서
《컴퓨터시스템구조》, 《디지털공학》, 《어셈블리어》, 《C프로그래밍》, 《마이크로프로세서》, 《전기전자공학개론》 등 다수

한문 서적 공저역
《秘書漢字 공저》, 《?念無? 공역》

한문 문집 교열 및 교정
《東溪文集》, 《東厓文集》, 《국역榮州三邑誌》, 《국역炊沙集》, 《국역南川集》, 《국역文巖集》, 《가사체 명심보감》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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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도 안양시에 소재하는 성결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강의전담교수를 거쳐 현재 동양대학교 현암교양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문적 주요 관심 분야는 한국 한시와 중국 한시 방면이다. 『퇴계선생』을 비롯한 몇 권의 저서와 공저가 있고 『단곡선생문집』 외 다수의 역서가 있으며 「적암適菴 조신曺伸 한시의 ‘작비昨非·금시今是’의 시 세계」를 비롯한 수십 편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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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에서 ‘퇴계의 종교성’ 연구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로 있다. 공저로 『21세기 보편영성으로서의 성과 효』, 『효경과 인성』이 있고, 논문으로 「퇴계의 천관」, 「퇴계의 태극관」, 「퇴계의 종교성」, 「퇴계의 상제관과 리도설」, 감수로는 『퇴계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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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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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쌍학2리의 아끔말에서 태어나 수원 수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고문헌과의 학예연구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문명이란 무엇인가?’란 보편 역사의 질문을 던지며 우리나라 역사의 다양한 주제를 새롭게 해석해 나가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말 지명의 재밌는 역사 이야기』, 『산을 품은 왕들의 도시』 1·2(서울편)·3(신라편), 『우리 고을 명당이라오』, 『(지리학자, 미술사학자와 함께) 육백리 퇴계길을 걷다』(공저), 『조선 최고의 개발자 김정호』, 『하늘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쌍학2리의 아끔말에서 태어나 수원 수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고문헌과의 학예연구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문명이란 무엇인가?’란 보편 역사의 질문을 던지며 우리나라 역사의 다양한 주제를 새롭게 해석해 나가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말 지명의 재밌는 역사 이야기』, 『산을 품은 왕들의 도시』 1·2(서울편)·3(신라편), 『우리 고을 명당이라오』, 『(지리학자, 미술사학자와 함께) 육백리 퇴계길을 걷다』(공저), 『조선 최고의 개발자 김정호』, 『하늘의 나라 신화의 나라』, 『잃어버린 우리말 땅이름』, 『우산도는 왜 독도인가』, 『독도는 환상의 섬인가?』(공저), 『난 고3 아빠고 파이팅을 맡고 있어』(공저), 『조선의 지도 천재들』, 『근대를 들어올린 거인 김정호』, 『평민 김정호의 꿈』, 『지리학교실』, 『고대도시 경주의 탄생』 외 다수가 있다. 문화일보(주1회), 머니투데이(월1회)에서 칼럼을 연재한 바 있고, 현재는 경기신문(월1회)에서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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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도산서원 참공부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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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참공부모임은 2015년 퇴계의 정신을 참답게 공부하고 세상에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조직되었다. 문사철 분야의 학자들과 전통문화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퇴계 선생이 남긴 글을 강독하며 그 정신의 실체를 연구 실천하고 있다. 몇 년에 걸쳐 《잠명제훈》과 《도학연원록》을 읽었으며 《퇴계선생언행록》을 공부하는 중이다. 2018년 《마음에 새긴 선현의 가르침, 箴銘諸訓》을 펴냈다. 2019년 4월에 선생의 마지막 귀향 450주년을 맞이하여 서울에서 안동 도산까지 13일 동안 걷는 재현행사를 진행하고, 이 원고를 집필했다. 2020년 11월에는 퇴계의 삶과 정
도산서원 참공부모임은 2015년 퇴계의 정신을 참답게 공부하고 세상에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조직되었다. 문사철 분야의 학자들과 전통문화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퇴계 선생이 남긴 글을 강독하며 그 정신의 실체를 연구 실천하고 있다. 몇 년에 걸쳐 《잠명제훈》과 《도학연원록》을 읽었으며 《퇴계선생언행록》을 공부하는 중이다. 2018년 《마음에 새긴 선현의 가르침, 箴銘諸訓》을 펴냈다. 2019년 4월에 선생의 마지막 귀향 450주년을 맞이하여 서울에서 안동 도산까지 13일 동안 걷는 재현행사를 진행하고, 이 원고를 집필했다. 2020년 11월에는 퇴계의 삶과 정신을 기리는 학술행사를 개최하였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3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546g | 152*224*17mm
ISBN13
9791156121909

책 속으로

퇴계는 자신을 ‘천석고황泉石膏?’, 즉 자연을 사랑하는 고질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하며 도산의 산수와 자연에 대하여 수많은 시를 지었다.
--- p.21

퇴계는 칠십 평생을 살며 한양과 안동 사이를 열아홉 차례 왕복했다. 34세에 대과大科를 치르기까지 오르내린 것이 일곱 차례이며, 벼슬에 나아가 오간 것이 열두 차례이다.
--- p.31

길 떠나는 퇴계에게 선조는 마지막으로 해 줄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퇴계는 태평한 세상일수록 교만하고 사치한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더욱 걱정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자신의 능력이 밝고 뛰어나다 생각될수록 독단을 피하고, 일을 처리할 때 신하들과 의논하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유지하면 좋은 임금이 될 것이라고 부탁하였다.
--- p.37

퇴계는 34세인 1534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들어섰고, 좀 늦은 나이인 41세에 인재로 선발되어 동호독서당에서 독서와 학문에 전념하였다. 독서당에 있을 때 퇴계가 어찌나 꼼짝도 않고 글 읽기에 집중하는지 동료들이 ‘담장 모퉁이에 선 나무’라고 놀렸다 한다.
--- p.41

동호독서당과 동호몽뢰정, 그리고 동호대교. 다 ‘동’자가 들어간다. 그 옛날 두뭇개 앞에는 저자도楮子島라는 이름의 큰 모래섬이 있었고, 저자도와 두뭇개 사이의 한강물은 호수같이 깊고 잔잔했다. 그래서 그곳을 ‘서울 동쪽에 있는 호수’란 뜻의 동호東湖라고 불렀다.
--- p.43

퇴계는 무리지어 상소하는 것은 유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말렸다. 퇴계 또한 조선 성리학의 대가답게 불교를 배척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퇴계는 유자들의 집단행동에 동조하지 않고 어짊[仁]을 숭상하는 선비가 취해야 하는 금도襟度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라고 타일렀다.
--- p.47

선생이 서울에 올라가서 한양성 서편에 잠시 살고 있을 때, 지금의 좌의정 권철이 와서 뵈었다. 선생이 식사를 대접했는데 권철은 맛이 없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선생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듯 조금도 어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권철은 결국 젓가락을 대지 못하고 물러나와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입맛을 잘못 들여 이렇게 되었으니 참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하였다.
--- p.69

퇴계는 무슨 생각으로 임금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귀향을 결심했을까? 이는 벼슬보다 진실한 가치가 바로 학문의 완성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학문은 이론도 아니고 시의에 따르는 편의성도 아니고, 가장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찾기 위함이었다. 한마디로 퇴계의 위대한 경敬 사상은 ‘실학’의 열매를 맺기 위한 후학들의 굳건한 디딤돌이 되었고, 나아가 오늘날 ‘섬김의 리더십’으로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 p.70

칡미나루, 혹은 양근나루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여지도〉에도 실려 있는 양평의 명소였다. 이 주위의 풍광은 양평팔경 중 하나인 갈산승경葛山勝景으로 불린다. 우리가 지나가는 청명한 봄날, 갈산공원에서는 벚꽃이 눈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 p.94

큰 변화 없는 풍경 속 먼 길을 힘들게 걸어야 하는 몸의 괴로움은 평소 늘 밖으로만 치닫던 시선과 마음을 안으로 향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그 힘들고 긴 여정이 오롯이 자신을 대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될 수 있다. 퇴계가 평생에 걸쳐 추구했던 성인되는 공부로서의 도학道學은 외물에 유혹되어 밖으로 치달아 나가는 마음을 안으로 거두어들이는 것에서 출발한다.
--- p.109

배개나루는 남한강을 사이에 두고 금사면 이포리와 대신면 천서리를 오가는 여주의 대표적인 나루였다. 1991년 이포대교가 건립되기 전까지 이포 지역에서 이천과 서울 쪽으로 사람과 물자를 나르는 교통의 요충이었다. 이포梨浦는 ‘배개’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배개나루가 있던 천서리는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막국수 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는 만큼 막국수 전문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 p.110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이다. 큰 변화 없는 풍경 속 먼 길을 힘들게 걸어야 하는 몸의 괴로움은 평소 늘 밖으로만 치닫던 시선과 마음을 안으로 향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그 힘들고 긴 여정이 오롯이 자신을 대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될 수 있다.
--- p.111

퇴계의 출처出處를 화제로 의견을 나누었다. ‘출’은 나가서 벼슬살이를 하는 등 현실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고, ‘처’는 물러나 스스로의 덕을 수련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 관심의 90퍼센트는 ‘출’에 있는데 퇴계의 관심은 90퍼센트가 ‘퇴’에 있었다. 그래서 호도 ‘퇴계退溪’가 아닌가. 퇴계의 이 염퇴恬退 사상, 즉 물러나는 것을 편하게 여기며 옳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출세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울리는 큰 경종이다.
--- p.140

퇴계는 46세였던 1546년에 도산의 토계兎溪를 퇴계退溪로 고치고 자신의 아호로 삼았는데, 이 시기부터 염퇴 지향을 내면에 정초定礎하였다고 하겠다. 그 전해에 을사사화가 있기도 하였다. 이후 퇴계는 외직으로 나아갔으며, 내직 임명과 사퇴를 반복하였다. 1560년에는 도산서당을 지어 학문 연찬과 제자 육성을 본격화하였다.
--- p.141

이름난 산을 오르는 자가 누군들 그 마음을 씻지 않겠으며, 누군들 소인이란 말 듣기를 즐거워하겠는가마는 끝내 군자는 군자가 되고 소인은 소인이 된다. 그러니 명산에 올라 하루의 햇볕을 쬐는 정도로는 군자가 되는 데 아무런 유익함이 없을 것이다. 사람이 선을 행하여 위를 향해 가느냐, 악을 행하여 아래로 향해 가느냐, 이것은 단지 걷는 이 발을 한번 들어 움직이는 사이에 있다(173

탁오濯吾는 ‘나를 씻는다’는 뜻으로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굴원의 〈어부사〉에서 따온 글귀이다. 퇴계가 자연암석에 손수 글씨를 새기고, 매일 그곳에 가서 손발을 씻으며 피로를 풀고 자신을 돌아보았다고 한다.
--- p.205

여울을 지났으니 다음에는 당연히 담을 만나게 된다. 바로 도토담都土潭이다.
흰 구름 푸른 산에 가득하고 / 붉은 해 맑은 물에 비치누나. / 위는 밝고 아래는 맑은 곳에 / 한 척의 작은 배 아득하구나
--- p.208

단양에 도착해 민정을 살피니 전해에 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림과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퇴계는 백성 구휼에 온 힘을 쏟았다. 워낙 업무 처리가 간결하고 투명해서 아전이나 백성들 모두 의지하고 따랐다. 부임한 지 한 달여 지난 2월에 둘째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으나 슬픔에 빠질 겨를도 없었다. 퇴계는 앉아서 일하는 행정가가 아니었다. 고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눈으로 확인하고 대책을 강구했다.
--- p.213

퇴계가 죽령에 이르렀을 때 단양의 관원들이 삼麻다발을 가지고 달려와서 이것은 관가 밭에서 기른 것이라 관례상 드리는 것이니 노자로 쓰시라고 했지만 퇴계는 물리치고 초연히 길을 떠났다. 이때 퇴계의 이삿짐은 책상자 2개와 옷보따리 1개, 그리고 단양에서 구한 수석 2개뿐이었다. 그로부터 한 해 뒤 풍기 군수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온 퇴계는 책을 담아 왔던 상자를 관아에 반납하였다.
--- p.215

선생은 스물한 살 때 허씨 부인에게 장가를 드셨는데 서로 손님같이 경대를 했다. 평소 거처할 때와 서로 대화를 주고받을 때 보면 사이가 좋지 않은 것같이 보였다. 처음에는 누가 보든지 금슬이 좋지 않은 듯 의심을 하지만 오래 지내보면 부부의 두터운 정을 알게 된다. 경대란 ‘공경하여 대우한다’는 말이다.
--- p.253

권씨 부인이 제사상에 올려놓은 배를 치마 속에 감추어 손윗동서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지만 퇴계는 나무라지 않고 부인에게 배를 깎아 주었다. 그러고는 제사에 참석한 친지들에게 할아버지도 손자며느리가 먹은 걸 기뻐하지 않겠느냐며 부인을 감쌌다.
--- p.255

부부란 인륜의 시작이고 만복의 근원이므로 비록 지극히 친밀한 사이이기는 하지만 또한 지극히 바르게 하고 지극히 조심해야 할 처지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군자의 도는 부부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부부간에 서로 예를 갖추어 공경해야 함을 싹 잊어버리고 곧바로 너무 가깝게만 지내다가 마침내는 서로 깔보고 업신여기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만다. 이 모두 부부간에 서로 예를 갖추어 공경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 p.257

노송정은 퇴계가 나고 자란 곳이다. 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퇴계의 향취가 묻어 있는 곳, 모친이 퇴계를 잉태하며 꿈에서 공자를 만났다는 성림문聖臨門과 퇴계의 태실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퇴계는 생애 중 가장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 p.278

퇴계 생전에는 도산서원이라는 명칭이 없었다.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하고직사, 그리고 그 앞의 역락서재가 있었는데 이곳을 통칭 ‘도산陶山’이라고 불렀다. 1914년 ‘예안현’이라는 지명이 폐지되고 ‘도산면’이라는 지명으로 불리고 있지만, 당시에는 도산서당을 품고 있던 그 산의 이름이었다.
--- p.287

퇴계는 60세 때 도산서당을 완공하고, ‘도산의 늙은이’라는 의미로 ‘도옹陶翁’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 완공하기 전에도 “산수가 맑고 기이하여 구하던 바에 꼭 맞는다. 몽매간에도 항상 여기에 와 있다”라고 할 정도로 도산에 대한 기대가 컸다. 나지막한 산과 앞을 가로지르는 낙천洛川, 그 물을 내려다볼 수 있는 천연대와 천광운영대, 뱃놀이가 가능한 탁영담이 있던 도산은 퇴계가 학문과 풍류를 즐기며 노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 p.288

국솥에 간 맞춤이 그대의 존재 이유 아니라오. / 맑은 향 사랑스러워 절로 떠오르며 생각나서이지. / 이제라도 나 달려와 약속 지킬 수 있었으니 / 좋은 시절 저버렸다 미워하지 말기를.
--- p.291

퇴계 선생의 서거는 장엄한 낙조落照입니다. 낙조는 끝이 아니라 내일의 찬란한 아침을 담보하는, 한 단락의 완성이자 새로운 시작인 것입니다.

--- p.294

출판사 리뷰

700리 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역사와 문화
흐드러지게 핀 봄날 꽃들과 그 곁에 반짝이며 이어지는 남한강, 혹자들은 오랜만에 밟았을 흙길의 아름다움까지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렇게 5개의 광역시, 열 곳이 훨씬 넘는 지방자치단체를 지나치는 동안 마주한 각 지역의 역사 유적과 문화 덕에 열흘이 넘는 여정 이야기가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진다. 길을 걸었을 뿐인데 자연스레 따라온 신체의 활력과 마음의 힐링, 인문 역사 공부가 필진들의 산 경험에서 전해진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에 이어 새로운 걷기 문화의 장이 책을 넘길 때마다 가까이 다가온다.

누구나 갈 수 있는 퇴계의 길
임금의 만류에도 끝내 고향으로 물러난 퇴계가 그토록 추구하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퇴계 생애 마지막이 된 이 귀향길에 오롯이 녹아든 그의 소망과 가르침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가 걸었던 때로부터 450년이 지나 그 의미를 되살리고자 떠난 이 재현 행사(2019)는 생각지 못한 큰 관심을 받았다. 참가자들은 매년 개최를 원했고, 지켜봤던 이들도 함께 걷길 원했다. 언론에서는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로 소개하기도 했다. 도움을 주었던 각 기관과 지역에서도 격려가 이어졌다. 모든 마음이 더해져 2020년 제2회 재현 행사를 준비했지만 코로나19로 연기되었다. 이윽고 올봄 조용한 분위기 속에 작은 걸음으로 4월 15일부터 28일까지 다시 떠나려 한다. 앞으로도 해마다 한 차례씩 재현 행사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행사가 아니더라도 이 책을 길잡이 삼아 누구나 삶을 돌아보고 싶을 때 언제든 찾아갈 수 있도록 여정을 자세히 담아냈다.

퇴계의 사상을 풀어주는 ‘인문 나침반’
퇴계의 유학세계를 보통사람이 이해하기는 힘들다. 이 책의 으뜸 미덕은 퇴계의 생애를 짚으며 퇴계 사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퇴계가 추구했던 것은 높은 벼슬과 그에 따른 명예나 이록이 아니었고, 내면으로 침잠해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찾고 회복하는 군자의 길이었다. 그것을 퇴계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했고”(127쪽) “경敬은 귀부인이 주인이나 임금을 만나러 가기 전에 몸단장하는 모습을 그린 글자로, 그 의미는 ‘공경’이 본질이다. …… 본뜻보다는 하늘 공경의 의미로 널리 쓰이다가 주나라 중엽부터 다시 인간 공경의 의미로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139쪽) 같은 대목이 그렇다.

손에 잡히는 거유巨儒의 인간적 풍모
이제 이기론이니 사단칠정론이니 하는 어려운 유학은 잊어도 좋다. 퇴계의 인간적 풍모를 접하면 자연 그리 될 것이다. 퇴계는 홍인우처럼 사상적 결을 달리 하는 인물과도 사귐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열려 있었고(104쪽), 두 번째 맞은 권씨 부인이 자신이 만들었다며 흉하게 생긴 버선을 내밀어도 태연히 신고 입궐할 도량이 있었다(25쪽). 퇴계의 이런 면모는 우리가 상상하던 전형적인 유학자의 틀을 훌쩍 넘어선다.

오늘의 현실에 되새겨 볼 만한 조언
1569년 퇴계가 선조에게 하직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충언을 한다. 자신이 신하들보다 똑똑하다는 오만과 구중궁궐에서 태평성대라고 착각하여 안일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라고(27쪽). 문자에 매몰되지 않은 정치가의 경륜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런가하면 책에는 “왕이 지혜롭지 못한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 내가 물러난 뒤에 임금의 마음을 차갑게 하는 자들이 계속 이르니 왕에게 선한 양심의 싹이 있다 한들 내가 어찌 자라도록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맹자의 말도 인용되어 있다(175쪽). 이 책이 단순히 문학 또는 에세이집으로 분류하기 아까운 이유다.

길에서 길어낸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퇴계에 관한 이야기이니 자연스레 옛 이야기도 풍성하게 실렸다. 여주 흔바위나루의 유래를 설명(128쪽)이 지나는 곳에 얽힌 고사라면, 천 원권 지폐에 담긴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가 퇴계가 고향 계상에서 《주자서절요》를 집필하는 모습을 상상해 그린 것이란 숨은 일화도 전한다(104쪽). 그런가하면 조선왕실의 골칫거리였던 ‘종계변무’ 문제가 고려 말 명나라로 망명한 윤이와 이초의 농간 탓이었다는 뜻밖의 사실(161쪽)도 접할 수 있다.

삶의 교훈이 살아 숨쉬다
유학은 도학이라고도 한다. 당연히 퇴계는 올곧은 삶을 살았다. 1548년 넷째 형 온계가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자 단양 군수로 있던 퇴계는 같은 관할 구역에 있지 않으려 풍기 군수로 옮겼다. 이른바 상피제를 적용한 것이다(165쪽).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제자에게는 “부부 사이에 금슬이 고르지 못함을 탄식하는데 …… 성질이 악해서 변화시키기 어려운 부인이 스스로 소박당할 만한 죄를 저지른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경우는 모두 남편에게 책임이 있다”며 남편이 스스로 반성하여 후하게 대하고 선하게 처신하여 부부의 도리를 잃지 않는다면 인륜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충고한다(256쪽). 이처럼 귀담아 들을 만한 대목이 곳곳에 있다.

책에는 “필하무완인筆下無完人”이란 구절이 나온다(149쪽). ‘붓 끝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는 뜻인데 이 책에서 만나는 퇴계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지 싶다. 고매하면서도 유현한 퇴계의 삶이 “뛰면서 보는 풍경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다. 자전거를 타거나 자동차를 운전하며 보는 풍경은 휙 돌아서는 풍경이다. 걸으며 보는 풍경은 서서히 다가와서 멈추는, 그래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는 그런 풍경이다” 같은 구절과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모처럼 만난, 읽는 재미에 뜻깊은 의미를 담은 책이다. 아무쪼록 이 책이 퇴계의 정신과 그가 추구한 길[道]을, 다시 오늘날에 되살리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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