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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이 굴레와 족쇄를 기꺼이 감내하려는 당신들에게
1장. 차리고 나서야 해보는 질문들: 아프니까 출판인가 왜 굳이 출판사를 차렸나? 그냥 기존 출판사에서 일하면 되는 게 아닌가? 출판사 해서 먹고살 수 있는 것인가? 법인으로 시작하면 뭐가 다른가? 멀리깊이는 연간 얼마를 지출하는 회사인가? 사무실이 꼭 필요한가? 초기에 어떤 비용이 들어가는가? 2장. 기획, 작은 출판사의 유일한 무기: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베스트셀러를 만들 수 있다 출판사를 창업했다는 말은 곧 출판기획자가 되었다는 말 다섯 가지 원고 유형과 두 개의 원칙 종이책의 필요와 기획의 연관성 저자에게도 유용한 기획인가 잘 쓴 기획안, 몇백 선인세 안 부럽다 나의 필요와 시장의 필요가 맞아떨어질 때 좋은 기획이 탄생한다 외서 판권은 신중하게 사들일 것 3장. 건강한 출판인이 되기 위하여: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는 믿음 최전선에서 저자를 감싸안는 편집을 하자 보도자료에도 기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저자에게 판매대행사가 아니라 동반자가 되자 최고의 마케팅은 최고의 책에서 출발한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자 잔고를 수시로 확인하자 잘 버티고 잘 해낼 수 있는 출판인이 되자 창업 선배와의 대화: 현명하게 선택하기보다 멍청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필로그: 나의 꿈을 사랑해준 당신들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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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단 시작했다 하면 그지(왠지 너무 분명해서 ‘거지’라고 적고 싶지가 않다)가 될 확률이 높은 대표적 사양산업에 뛰어들어 1년을 버텨낸 기록이다. 힘들었고, 힘들었고, 음…… 힘들었다. 얼핏 봐도 힘들겠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왜 이렇게 힘든지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찬 족쇄 덕분에 말도 안 되는 자부심과 행복감을 느낀 것도 분명하다. 살면서 이 이상의 의미를 구현해낸 적이 있었던가. 남편 만나고 아이들 낳은 것을 제외하면 이토록 행복감 넘치는 일을 해본 기억이 없다.
--- 「프롤로그」 중에서 돈 말고 다른 가치, 대학 말고 다른 방법, 공무원이 아닌 다른 꿈, 인간이 스트레스가 아닌 위로가 될 수 있는 다른 차원의 문제 제기, 외로움이라는 허기를 달랠 다른 인생의 가치를 제시해줄 수는 없는 걸까? 나는 이 욕망에 대한 대안이 책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독자 하나하나의 가슴에 이 길 말고 다른 길도 있으리라는 소박한 제안. 그 제안에 수긍하는 독자 1만. 그 1만이 책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할이다. 그것보다 잘된다면 진짜 땡큐인 거고, 안 된다고 해서 실망할 것도 없다. 다만 계속 그 제안과 대안에 골몰하는 과정이 출판의 시작과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내가 출판사를 차린 이유다. --- 「왜 굳이 출판사를 차렸나?」 중에서 “그게 자영업자가 짊어지는 고통의 무게예요. 직장인은 똥을 싸도 월급을 받지만, 자영업자는 잠자는 시간에도 임대료가 나가잖아요.” 그렇다고 어쩔 것이냐. 사무실에 대자로 누워서 누가 “이 돈 좀 써볼래?” 하고 가져다주길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은 돈도 얼른 써서 그걸로 책을 만들어 매출을 내야 했다.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창업하고 나서야 깨닫고 말았다. 어쩔 것인가. 나는 부지런히 저자를 만나고, 에이전시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 「초기에 어떤 비용이 들어가는가?」 중에서 독자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저자를 물색해, 그를 잘 연구하고 관찰해서 그의 인생 현재 지점에 꼭 필요한 책을 기획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책이 완성되는 전 과정에서 그의 가장 열렬한 독자가 되어 진심으로 원고에 대한 의견을 전하고 보완해나간다면, 그 책이 나왔을 때 의미가 없을 수 있을까? --- 「저자에게도 유용한 기획인가」 중에서 나는 저작권 문제가 없는 디자인 툴을 찾아서 해당 기획안에 가장 잘 맞는 디자인 포맷을 찾았다. 프레젠테이션의 표지를 꾸미고 차례를 구성하고, 그것에 맞게 저자의 약력과 책의 목표와 우리 목표에 맞는 본문 구성 요소를 정리했다. 또한 이 책을 볼 독자들의 면면과 경쟁서의 분포 형태, 그 안에서 위치할 이 책의 좌표를 이미지로 나타냈다. 포맷이 새로워지니, 전에는 굳이 하지 않았던 영역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고, 프레젠테이션을 시뮬레이션하는 동안에 책이 좀더 생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놀라운 건 정말로 이 책을 만들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진짜 이 기획안을 오케이 하시면, 그래서 내가 이 책을 만들어내면 얼마나 행복할까. 아 진짜 멋진 책이 될 것 같아!’ 하고 흥분되기 시작했다. --- 「잘 쓴 기획안, 몇백 선인세 안 부럽다」 중에서 혼자 일하는 회사에서 우울감에 빠지게 되면, 회사의 모든 업무가 정지된다. 사무실에 나와 일하는 대신 집에서 웅크려 맥주나 홀짝이면서 처지를 비관하게 된다. 돈을 못 벌어서 우울해지는 바람에 더 돈을 벌기 어려운 상황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이다. 동시에 거래처 대금을 지급하기로 한 날짜에 이를 지급하지 못하게 되면, 안정적인 동반자 관계도 훼손된다. 일한 값을 약속한 날짜에 주지 않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믿을 수 있는 협력사 명단에서 제외되는 일도 장기적으로 좋을 리가 없다. 또한 이제껏 준비하던 아이템 대신, 팔리는 다른 책들은 뭐가 있나 기웃거리면서 나도 저런 책을 한번 내볼까 남의 아류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된다. 단기에 빨리 만들 수 있는 걸 찾으려고 혈안이 된다. 이런 책을 내게 되면 가장 먼저 훼손되는 것이 관계성이다. 독자가 생각하는 멀리깊이, 저자가 믿어도 좋은 회사라고 생각하고 원고를 준 멀리깊이, 실제 시장에서 책을 팔아야 하는 마케터가 지향하는 멀리깊이의 정체성이 흔들린다. --- 「잔고를 수시로 확인하자」 중에서 “출판업은 진입장벽이 낮다. 초기 비용도 많이 들어가지 않고, 처음에는 사무실도 구하지 않고 집에서 해도 된다. 하지만 출판사 경영은 생각보다 힘들다. 책을 낸다고 바로 수익이 나지도 않고, 수익이 나지 않은 책들이 쌓이게 되면 어느새 1~2억 적자를 보기도 한다. 다른 업종의 창업이라고 해서 쉬운 건 아니겠지만, 출판사 창업은 생각보다 알고 있어야 할 것이 많다. 글만 잘 다룬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기획과 마케팅, 그리고 돈의 흐름에 대한 감각도 있어야 한다. 시장이 흘러가는 방향도 볼 수 있어야 하고, 사람을 컨트롤하는 능력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 「창업 선배와의 대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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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책 만드는 재미에만 집중해보자
인구가 5,200만인데 전국 서점 수가 2,000개가 안 되는 나라에 출판사가 6만 8,443개가 있다(〈2019한국출판연감〉). 1인당 독서량은 꾸준히 줄어 2017년에는 9.4권을 읽던 사람들이 2019년에는 전자책과 종이책을 통틀어 7.5권을 읽었다(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국민독서 실태조사’). 매년 출판사는 3,000개씩 늘어나는데, 불과 2년 사이에 독서량은 20%가 줄었다. 수치만 놓고 보면 출판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서사시 〈마하바라타〉에 등장한 비슈누신과 아수라들의 전투에서 유래된 말인 ‘아수라장’은, 시체가 산처럼 높이 쌓여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 한다. 출판계 아수라장에는 현재 높다랗게 시체가 쌓여 있다. 이런 와중에 남의 돈을 투자받아 호기롭게 출판사를 창업했다면 그가 믿는 구석은 무엇인가? 엄청난 저자가 쓴 신간을 준비중인가? 매년 팔리지 않을 수 없는 트렌드 리포트 같은 것을 낼 작정인가? 아니라면 내년 대선 결과라도 예측하고 있는 것인가? 놀랍지만, 모두 아니다. 14년 경력의 편집자 출신인 저자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출판사 하나 먹고살려고 책 만드는 구조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난립하는 출판사들이 몇 안 되는 서점에 책을 밀어내어 창고에 쌓아놓다가 파쇄하고 마는, 저자도 편집자도 마케터도 팔릴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이 하루살이 출판 인생을 좀 끝내고 싶다는 각성. 책 안 읽는 독자 탓도 하지 말고, 미디어 매체가 늘어 더는 책이 소비되지 않는 시장 탓도 하지 말고 오롯이 책 만드는 재미에만 집중해보자고 결심한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그는 결국 굶어 죽고 말았을까? 파워 유튜버 말고, 독자의 선구안에 기대어 책을 만들어보자는 결심 이 책 『날마다, 출판』(2021. 싱긋 刊)은 대박 내서 건물을 올려보자는 정량적 목표 말고, 저자·독자·출판사 모두에게 의미 있는 책을 만들어보자는 정성적 목표를 가지고 출사표를 던진 한 출판사 대표의 1년 생존기다. ‘편집, 디자인, 마케팅 전 과정에서 저자의 의견을 배제하고, 출간 후 독자 반응이 어떤지를 궁금해하지 않으며, 책이 팔리도록 마케팅하는 것이 아니라 팔리는 책에만 마케팅비를 쏟아붓는 이 기형적인 구조에서 탈출해보자!’ 그는 한 중견 출판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투자를 요청하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한가운데에 출판사를 차린다. 그는 몇십만 유튜버의 책을 내는 데만 목을 매는 폐쇄적인 출판 구조는 팔로워가 없는 저자들의 책은 기획안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다양성의 위축으로 이어진다고 판단했다. 이에 살 사람 정해져 있는 책 말고, 사지 않을 수 없는 책을 만들자고 결심한다. 분명 시장이 있는데 아직 책이 되지 않은 기획을 고민하고, 팔로워에 상관없이 해당 주제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을 섭외한다. 일단 이런 책이 나오면 소름 돋게 팔리지는 않겠지만 아예 안 팔릴 수도 없다고, 독자의 선구안을 믿어보기로 했다. 출간종수 7종 중 6종 재쇄, 재쇄율 85%의 작은 출판사 탄생 그 결과는 절반의 성공. 창업 후 1년 6개월 동안 7종이 출간되어 6종의 재쇄를 진행했다. 종합 100위 안에 두 권의 도서가 진입했으며, 저자의 대부분이 SNS 활동조차 하지 않는 신인 저자다. 그의 출판사에선 저자에게 한 페이지짜리 기획안을 내밀지 않는다. 십여 장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 우리가 왜 이 책을 만들어야 하는지, 만든다면 저자에게 무슨 의미가 되는지, 독자는 이를 통해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는지, 출판사는 이 시장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전달한다. 저자에게 출간 하루이틀 전에 마지막 교정지를 넘겨 수정하라는 무리한 요구도 하지 않는다. 어디를 어떻게 왜 고쳤는지, 저자에게 수정 내용을 모두 고지한 후에 디자인 작업을 진행한다. 따라서 이 출판사는 외주교정도 진행하지 않는다. 저자와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저자의 원고를 손본다는 원칙 때문이다. SNS에 독자를 대상으로 올리는 안내사항도 모두 스토리를 가진 카드뉴스로 제작해 올린다. 출판은 결국 독자와 소통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좋은 콘텐츠는 독자가 먼저 알아본다’는 모토로 기획한 책들은, 기적처럼 재쇄를 거듭했다. 2020년 초중고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면 대체된 시기에 출간한 『초등 노트 필기의 기술』은 출간 5개월 만에 1만 부를 팔았다. 공동집필한 네 명의 저자 모두 현직 초등 교사로, 네 명 중 세 명이 신인 저자였다. 올해 4월 출간한 『판교의 젊은 기획자들』 역시 출간 4개월 만에 4쇄를 찍었다. 우리 시장에 대한 언급이 없는 해외 경영 구루들의 책 말고, 시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이들의 생생한 시장 분석기를 내보자는 판단에서였다. 광고비 지출 없이, 판교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한 매체와 언론에 소개되었다. 독자는 현명했던 것이다. 매출까지 공개한 솔직한 리포트, 망상 없이 쓰인 정확한 창업 분석서 책은 수시로 작은 출판사가 당면하는 문제들에 대해 경고한다. 책의 말미에는 매출 수치도 가감 없이 공개한다. 또한 창업 선배를 만나 진행한 인터뷰를 실어 창업을 시작하면 겪어야 하는 모든 과정을 꼼꼼하게 안내한다. 모든 과정이 정말로 쉽지 않다는 고백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말도 안 되게 보람된 과정이라고도 말한다. 독자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는 기획 의도, 편집자와 저자가 긴밀하게 협의해 완성한 차례, 이미 정해진 독자가 아니라 책의 필요에 반응한 독자들이 안기는 매출이 자아내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은 출판사를 꾸리면서 정말로 먹고살 수 있는 것인가? 저자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기쁘게, 기꺼이, 작은 출판사에도 미래는 있다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