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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부 도보고행승 묵언정진 모기향과 모기장 고리끼와 도끼 감꽃과 해인스님 포도 서리와 단발머리 소녀 ‘묵언정진’ 끝나다 2부 백구두 스님과의 여행 새벽예불 울력, 무노동 무공양 3부 눈부처 여자 수도원 메뚜기처럼 얼굴 긴 농부 사미승의 자살 상사화 에베레스트 위에도 구름은 있다. 4부 오대산 적멸보궁 왜 양철북을 두드리는가 달걀은 어떻게 깨어지는가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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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북아, 세상 만만한 거 하나도 없데이. 모든 게 내 생각과 내 뜻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노. 그라고 우리가 다 안다고 나불대지만 실제론 모르는 것뚜성이라. 지금가지 니 머리로 배운 것도 지식의 전부가 아니고, 니 눈으로 본 것도 세상의 전부가 아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가끔씩 세상 구석구석 떠돌며 두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해봐야 세상 뒤꿈치라도 알 수 있단 말이다. 가만히 있다가 가만히 죽기 싫으면 따라온나. 허수아비처럼 빈껍데기로 살고 싶으면 안 따라와도 되고.”
“그럼 스님 따라가면 껍데기가 알맹이 됩니꺼?” “지랄, 그건 니 하기 나름이고.” --- p.19 “니 성경을 한 줄로 줄일 수 있겠나?” --- p.중략) “그 긴 걸 한 줄로? 택도 없심더!” “있느니라.” “그라머 해보소.” “다~ 지나가노니…….” --- p.중략) “이번엔 불경을 한 줄로 줄여봐라.” 갈수록 태산이었다. --- p.중략) “내가 또 해보까?” “그게 좋겠심더.” “헛되고 헛되도다!” “…….” “다~ 지나가노니, 헛되고 헛되도다. 어떻노?” “기똥차긴 한데…… 좀 기네예.” “뭐, 이게 길다고? 그라머 니가 해봐.” --- p.중략) “인생은 나가리!” --- p.198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강구 선생님의 얼굴이 깨진 달걀로 노랗게 변했다. 달걀이 깨졌다. 하나의 세계가 파괴되었다. 단지 손 안에서 밖으로 나왔을 뿐인데, 조금 전까지의 완전했던 형태가 전혀 다르게 바뀌었다. 변화는 순식간에 왔다. 선생님 얼굴에 묻은 달걀 껍데기의 파편들을 보자 철북이는 첫 동정을 잃었을 때처럼 슬펐다. 철북이가 알을 깬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철북이는 짐승으로 변한 강구 선생님한테 그 알보다 더 깨졌다. 하나의 세계를 깨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더 깨질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달걀은 완전한 세계가 아니라 언제나 파괴될 수 있는 것이다. 변화는 항상 파괴 뒤에 오는 것이다. 철북이는 이날 흘린 눈물의 양만큼 깨달았다. --- p.236 우리들의 삶이란 높고자 하는 산과 낮고자 하는 물이 서로 인연으로 만나 세상으로 흘러드는 강물처럼 그렇게 덧없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겠느냐. 너와 나의 인연 또한 그런 것이 아니더냐. 500년마다 한 번씩 스스로 향나무를 쌓아 불을 피운 다음 그 불 속에 뛰어들어 타 죽고 그 잿더미 속에서 다시 어린 새로 거듭 태어나는 신비로운 향나무새가 있다. 나는 지금 그 향나무새와 같은 심정으로 혈사경을 쓰고자 한다. 멀고 험한 길이니 깨달음 또한 많을 것이다. 끝을 뾰족하게 깍으면 정의로운 창이 되고 구부리면 밭을 일구는 호미가 되고 구멍을 뚫으면 아름다운 피리가 되고 지난 세월 붙잡아 나이테를 남기지 않고 안을 비워 더욱 단단해지는 대나무처럼 네 몸과 마음을 항상 걸림이 없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네가 어디에 있든 작고 낮고 가볍고 그리고 느린 것들의 두 손을 번쩍 들어주며 그들의 이름을 크게 불러주는 사람이 되거라. 절대고독의 중심에 우뚝 선 자 그가 곧 수도자요, 작가가 아니겠느냐. 너를 보고 싶어 하는 갈증을 적시기라도 하듯 지금 선방 밖으로 비가 내린다. 떠도는 구름이 쉴 곳을 찾아 땅으로 내려오면 비는 깨달음의 법수가 된다. 깨달음은 마치 산에서 내린 빗방울들이 골짜기에 모여 개울이 되고 다시 강으로 합류해 바다로 가는 것과 같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내리는 이 비를 맞는 자는 빗방울 속의 바다를 찾아 멀고 험한 길을 고행하고 그러다 마침내 문득 자신이 깨달음의 바다에 도달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네가 네 스스로를 버리지 않는 한 아무도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 네가 시인으로 살아가게 될 것을 믿는다. 무릇 시인은 시를 쓸 때마다 언제나 최후의 한 사람이므로 항상 백척간두에서 한발 내딛는 마음으로 쓰게 될 것도 믿는다. 너에 대한 한결같은 그리움으로 이 편지를 쓴다. --- p.237~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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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년 철북이와 청년 법운스님의 ‘자기 이름 찾기’
양철북은 책의 주인공 이름이다. 열아홉 살, 고3의 문학소년이다. 철북이는 방학 때마다 부산을 떠나 경산의 깊은 산속에 있는 수구암에 들어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곤 했다. 이 절의 주지스님이 외할머니였기 때문이다. 1978년 여름방학에 이곳에서 철북이는 서른 살 중반의 법운스님을 처음 만난다. 도보고행 중에 수구암에 스며든 법운스님은 묵언정진을 마친 뒤 생면부지의 철북이와 만행 비슷한 여행을 떠난다. 청도 운문사―법정스님의 불일암―오대산 적멸보궁 등으로 이어지는 여행은 한 달 반 동안 계속된다. 소설《양철북》은 이 여행 이야기다. 영화로 치면 ‘로드무비’라고 할 수 있다.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시인 이산하가 고교시절에 직접 겪은 것이다. 곧, 이산하가 양철북인 셈이다(법운스님도 실존인물이다). 평범할 수 있는 여행기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짧은 기간에 두 사람이 커다란 성장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드러나는 법운스님의 여행 목적은 뚜렷하다. 기어이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그는 수구암에 오기 전에 이미 도보고행승이었고, 철북이와 여행 끝에 도달한 것도 ‘혈사경(화엄경을 혈서로 쓰는 것)’이라는 수행이었다. 여행을 통해 그 몸부림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 반면 철북이의 여행은 ‘멋모르고 따라가기’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평범한 문학소년이었던 철북이는 여행이 끝난 뒤 “펜으로 힘껏 북을 치는” 시인이 되고자 한다. 이전과 다른 차원의 변태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몇 달 뒤 두 사람은 나름의 고행을 보탠 뒤 “절대고독의 중심에 우뚝 선 자, 그가 수도자요 작가”라는 공통의 깨달음에 이른다. 이문재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양철북》이 말하려고 하는 바를 한마디로 정돈하자면, 바로 ‘자기 이름 찾기’이다. 예컨대 법운(法雲)이라는 법명은 얼마나 엄청난가. 구름처럼 자유로운 진리! 자기 밖에서 제 이름과 하나가 되려던 법운은 자기 몸을 통해(혈사경!) 깨달음을 이루고자 한다. 양철북도 다르지 않다. 이미 귄터 그라스라는 ‘가짜 아버지(혹은 스승)’을 버린 철북이는 어느새 법운스님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찾는다. 오대산에서 법운과 헤어지는 장면은, 곧 귄터 그라스로 대표되는 기왕의 권위로부터 벗어나는 순간이다. 그 순간이야말로 모든 아버지를 떠나 스스로 하나의 아버지가 되려는 성년식이다.” “이 책 속에 나오는 모든 것들은 내가 넓은 세상에 나오도록 밖에서 껍질을 쪼아준 나의 어미들이다.” 소설에서 철북이는 법운스님 말고도 많은 사람을 만나다. 외할머니 견성스님을 비롯한 수구암 식구들, 청도 운문사의 비구니들, 출가 전 법운스님과 연인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루시아 수녀님, 법정스님과 무불스님, 포도밭 소녀 채송화와 아버지, 그리고《오적》의 시인 김지하와 황세용 점원……. 외할머니는 철북이에게 “앞으로 세상을 착하게 살아갈라면 먼저 독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준다. 철북이는 운문사 어린 비구니들의 새벽예불을 보며 비장함에 눈물 흘리고, 법정스님의 여울 얘기를 들으며 역사와 현실을 생각한다. 그리고 아버지, 김지하 시인, 황세용 점원에 대한 기억은 철북이의 지금을 만든 자양분으로 곳곳에서 호출된다. 사람뿐만 아니다. 어릴 적 배고플 때 먹던 감꽃, 법운스님이 그것처럼 화두를 훌쩍 뛰어넘고 싶다던 메뚜기, 죽은 사미승이 애절한 사연을 담은 상사화, 그리고 철북이가 읽었던 수많은 책들도 있다. 이것들 모두가 ‘알 밖에서 알 속의 새끼를 도와 껍질을 깨는 어미들’이다. 한 생명의 성장은 결코 홀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사람뿐만 아니라 온 생명이 성장의 어미가 될 수 있다는 통찰인 것이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줄탁’의 뜻처럼 부화하기 위해서는 알 속에서 새끼가 껍질을 쪼고 알 밖에서 어미가 껍질을 쪼아야 한다. 생명은 그렇게 안팎으로 쪼아야 죽음도 외롭지 않다. 이 책 속에 나오는 모든 것들은 내가 넓은 세상에 나오도록 밖에서 껍질을 쪼아준 나의 어미들이다.”(4쪽) 경상도 사투리의 맑고 순결한 울림 이처럼 평범하지 않은 ‘깨달음’과 ‘성장’ 서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경상도 사투리’다. 주인공 철북이도 부산 사람이고 법운스님도 경상도 사람이며, 둘의 여행지도 주로 지리산 주변이다 보니 소설이 경상도 사투리투성이다. 이런 식이다. “니 성경을 한 줄로 줄일 수 있겠나?” (중략) “그 긴 걸 한 줄로? 택도 없심더!” “있느니라.” “그라머 해보소.” “다~ 지나가노니…….” (중략) “이번엔 불경을 한 줄로 줄여봐라.” 갈수록 태산이었다. (중략) “내가 또 해보까?” “그게 좋겠심더.” “헛되고 헛되도다!” “…….” “다~ 지나가노니, 헛되고 헛되도다. 어떻노?” “기똥차긴 한데…… 좀 기네예.” “뭐, 이게 길다고? 그라머 니가 해봐.” (중략) “인생은 나가리!” 《순이삼촌》을 쓴 현기영은 이를 두고 “경상도 사투리가 그렇게 맑고 순결한 울림을 들려줄 수 있다니 놀랍다”고 말한다. 이 말의 뜻이 단순히 사투리라는 표현 방식에 있지 않음은 분명하다. 위에서 보듯이 경상도 사투리로 이루어지는 대화에 익살과 의뭉스러움 그리고 선문답이 없었다면 그 울림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소년이 만나는 스님들과 나누는 대화들은 자주 선문답 비슷한 격조 높은 담론이 되곤 했는데, 그때마다 소년은 재치 있고 익살맞게 응수”(현기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만만찮은 성장 담론과 불교적 선문답으로 잘 짜인 이 소설이 경쾌하고 재밌게 읽히는 까닭이다. 장편서사시 [한라산]의 이산하가 쓴 자전적 성장소설 이산하는 1987년 제주 4?3항쟁에 대한 장편서사시 [한라산]으로 필화사건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이 사건은 김지하의 [오적] 이후 최대의 필화사건으로 불렸으며, 당시 세계펜클럽회장이었던 수전 손택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구명운동을 벌일 정도로 유명한 사건이었다.《양철북》은 시인 이산하가 석방된 뒤 10여 년의 절필을 끝내고 쓴 첫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소설의 후기에 소설 속 주인공 양철북, 곧 이산하가 법운스님과 여행을 마치고 대학에 가고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구속되기까지의 과정이 소개되어 있다. 철북이의 이어지는 성장담이면서 아픈 현대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산하가 오래도록 치열하게 꿈꾸어왔던 문학적 화두가 무엇이었으며 그 싹이 어디에서 어떻게 돋았는지, 그 비밀의 한 자락을 이 책으로 엿볼 수 있다. 《양철북》은 2003년에 출판된 뒤 작가의 사정으로 이내 절판되었다. 책은 당시 화제였던 독서예능프로그램 MBC의 ‘책, 책, 책을 읽읍시다’의 최종 후보작으로 올랐다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선정되지 못한 일도 있다. 12년 만에 다시 펴내는《양철북》은 이전 작품을 전면 개작한 것이다. 청소년부터 읽을 수 있는 성장소설에 초점을 맞춰 서사적 재미를 대폭 보강했다. 답답한 일상을 반복하는 청소년을 비롯한 요즘 사람들에게 색다른 낭만과 야성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