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이었다. 유용주 시인 몸에 고장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던 때였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벼락을 거느린 천둥으로 다가갔었을 ‘젊은 날의 유용주 다큐멘터리’가 문득 떠올랐다. 그날, 나는 골방에서 새벽까지 홀로 소주잔을 비워내며 유용주 문장에 취했었다. 그가 통과해 나온 격랑의 청춘은 얼마나 빛나는 문장이었던가. 아버지 술빚에 팔려서 떠난 태 자리, 구불텅구불텅 휘감겼을 내리막길 팽팽 백 리일 것만 같은 고향 장수로 홀로 돌아간 유용주가 이윽고 갑년을 맞았다. 생긴 모습이 고릴라라고 하지만 뜯어보면 그 표정이 꽤나 다양해서 울림이 넓고 깊다. 때론 이른 아침에 뜯은 쑥이거나 캔 달래며 냉이였다가, 다시 보면 야산에서 따온 어수리였으며, 어느 때는 첩첩산중에서 훑은 다래순이었다가, 돌아보면 꺾은 두릅이나 고사리 같은 표정들이 여전히 이채롭다. 유장한 가락으로 빚은 문장으로 자신만의 성채(城砦)를 쌓아온 유용주 시인은 여전히 우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