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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형식들

이 상품의 태그

목차

배시은: 다른 나라

여의나루 _ 11
피아彼我 _ 12
다른 나라 _ 13
나지裸地 _ 14
불 _ 15
교각 _ 16
채수 _ 17
식사 _ 18
캐릭터 _ 19
인형 _ 20
괘지 _ 21
회복 _ 22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_ 23
혜망 _ 24
투시도 _ 25
다가오는 것들 _ 26
강아지 _ 27
돌담 _ 28
호텔 국도 _ 29
버섯꿔바로우 _ 30
국어 시간에 소설 읽기 _ 31
하농 _ 32
카메라 _ 33
암순응 _ 34
화롄 _ 35

지곡止哭: 축제

축제 _ 39
약속 _ 41
기념품 _ 44
선풍기 _ 47
꽃 _ 48
그런 나라 _ 50
군집 _ 52
종이로 만든 집 _ 54
왕송호수 _ 56
물건들 _ 57
쓰레기장에서 _ 58
병원 _ 59
안양천 _ 60
모텔 _ 61
아름다운 시절 _ 62
착한 여자 _ 63
사람이 너무 많이 사는 집 _ 64
래미안 아파트에서 _ 66
가슴 _ 67
파란 이불 _ 68
유월 _ 69
세계의 비밀 _ 70
평일 _ 71
희미한 축제 _ 72

조원규: 한밤의 식물원

절 _ 75
나무 _ 76
명절에 _ 77
새김 _ 78
이상한 집 _ 79
각주구검 _ 82
눈부심 _ 83
한밤의 식물원 _ 84
환삼덩굴 _ 86
고양이 _ 89
숨 _ 90
꿈 _ 92
아버지 _ 93
겨울 성당 _ 96
밤의 정원 _ 97
캄캄한 밤에 _ 99
목련 _ 101
기척 _ 102
얼굴들 _ 104
산책길 _ 105
벌개미취 _ 107
붙이는 글 _ 108

저자 소개 3

2017년 독립문예지 『베개』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소공포』(2022, 민음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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止哭

1989년생.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를, 서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했다. 독립문예지 『베개 8호』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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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번역가이며, 독문학자이다.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교에서 독문학과 철학을 공부했으며,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쳤다. 1985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이상한 바다』, 『기둥만의 다리 위에서』, 『그리고 또 무엇을 할까』,『아담, 다른 얼굴』, 『밤의 바다를 건너』, 『난간』 등을 냈으며, 번역서로는 안겔루스 질레지우스의 『방랑하는 천사』, 구스타프 마이링크의 『나펠루스 추기경』,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 탱고』 『호수와 바다 이야기』, 『달빛을 쫓는 사람』, 『소박한 삶』, 『노박
시인이자 번역가이며, 독문학자이다.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교에서 독문학과 철학을 공부했으며,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쳤다. 1985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이상한 바다』, 『기둥만의 다리 위에서』, 『그리고 또 무엇을 할까』,『아담, 다른 얼굴』, 『밤의 바다를 건너』, 『난간』 등을 냈으며, 번역서로는 안겔루스 질레지우스의 『방랑하는 천사』, 구스타프 마이링크의 『나펠루스 추기경』,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 탱고』 『호수와 바다 이야기』, 『달빛을 쫓는 사람』, 『소박한 삶』, 『노박씨 이야기』, 『성경 이야기』, 『유럽의 신비주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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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128*188*20mm
ISBN13
9791197926211

책 속으로

친구들은 바위를 타고 내려가 밤바다 가까이로 다가갔다. 칠흙이 친구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파도가 반복해서 덮쳐 올수록 검은 바다는 점점 더 검게 변하고 있었다. 나는 바다를 멀찌감치 두고 연석에 앉아 등을 돌렸다. 바다를 보고 싶지 않았다. 어둠이 또렷하다는 것이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친구들 목소리가 한참 동안 멀리서 웅웅 울렸다. 친구들이 다시 바위를 타고 올라와 몸에 묻은 흙을 털면서 다가올 때 비로소 나는 혼자가 된 것 같았다.
---「배시은, 화롄」중에서

아이를 맡았다. 맑은 날, 지저분한 도시에서였다. 그는 자신을 다른 나라에서 왔다고 소개하곤 이 아이를 잠시 맡긴다고 했다. 유아차 손잡이는 따뜻했다. 유아차 안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뗐다. 유아차는 희디희고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걷다 보니 강가에 다다랐다. 물과 빛은 물과 빛이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하나가 되어 있었다. 물결이 그날의 온 빛을 꼼꼼히 빨아들인 듯했다. 너무 아름다워 아이에게도 그 광경을 알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찬 바람이 들어가 아이의 잠을 깨우지 않도록 아이에게 담요를 덮어 줄 뿐이었다. 그와 약속한 시간이 다가왔다. 유아차를 밀고 처음 그와 만났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곳은 전과 같고 조용했다. 그가 돌아올 것 같지 않았다. 철제 계단 앞 햇빛을 받으며 정연히 서 있을 뿐이었다. 다른 나라, 라는 말을 발음해 보았다. 곤히 자고 있는 아이 뒤통수를 한 번쯤 만져 보고 싶었다.
---「배시은, 다른 나라」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계절의 공기가 바뀐다. 여름에서 가을로 겨울에서 봄으로. 나는 바뀐 공기 속을 걷다가 이 투명한 구체를 영원히 가질 수 없다는 것에 관하여 생각했다. 이것은 가질 수 없는 것이고 어쩌면 영원히 잃어버린 것이며 우리가 모두 사라진 후에도 반복되는 것이라는 아주 평범한 진실에 대해 생각했다. 음식을 파는 트럭들이 도로에 늘어서 있다. 축제 전처럼 들뜨는 거리 위로, 무방비한 사람들의 말간 얼굴 위로 봄이 내린다. 봄이 내린 얼굴은 얼마간은 덥고 또 얼마간은 추운 것이라 아리송한 얼굴일 수밖에 없다. 봄이란 아리송한 것이고 알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계속 오는 중인 것이다.
---「지곡, 희미한 축제」중에서

나는 이곳의 주민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잠깐만 살다가 갈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어김없이 걷고 있습니다. 하천 건너에서 축제를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양손에는 짐이 가득했습니다. 가장 힘이 약한 사람도 종이로 된 장식물 정도는 들고 걸어가야 했습니다. 축제를 기다리는 사람보다 어떻게든 대충 때우거나 그냥 넘어가고 싶은 사람이 더 많았지만 축제는 매년 열려왔고, 특별히 취소할 사유 또한 명확하지 않았기에 축체가 취소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축제는 언제나 하천 너머 공터에서 열려 왔는데 공터까지 건너가는 다리가 무척 부실하였습니다. 커다란 짐을 들고 하천을 건너는 일은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다리에는 구멍이 너무 많아서 애들 다리가 자주 빠졌습니다. 하천 너머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천사가 서 있습니다. 천사는 멀뚱히 서서 늘 안쓰러운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으나, 천사의 눈부시게 새하얀 손가락은 영원히 구부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
---「지곡, 축제」중에서

꿈을 꾸었다. 배를 타고 있었다. 달빛이 출렁이는 바다 위였다. 나는 뱃전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다가왔을 때 나는 슬퍼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다정한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내 이야기를 했다. 오래전에 여기서 칼을 잃어버렸다고. 바다에 떨어뜨린 칼을 되찾으려고 여기에 있다고 했다. “어리석지요?” 내가 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금방이라도 자리를 뜰 것 같았다. “그런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어요.” 그가 말했다. “저는 뱃전에 서 있는 사람이 되고 말았어요.” 내가 말했다. 그가 귀 기울여 들어주는 동안 나는 왠지 칼을 잃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는 넓고 높이 뜬 달은 휘영청 밝았다. 우리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각자 한 손으로 뱃전을 붙들고 묵묵히 마주한 채로.
---「조원규, 각주구검」중에서

“어느 면으로는 선이 무너졌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내가 어디서 보고 언제부터 기억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한 번씩 그리운 듯 떠올리는 문장이다.

사그라드는 얼굴, 이라고 생각하자, 남쪽 절들을 보러 다녔던 여름이 기억난다. 선암사, 선운사, 내소사, 송광사, 화엄사. 배롱나무를 많이 보았다. 백 일 동안 꽃이 피고 또 핀다는 목백일홍.

백 일로는 부족해서 사람의 얼굴은 사그라든다. 얼굴을 돌려 다른 데로 향하면서, 다른 길은 없겠는가 하다가 결국은 사그라든다.

공원에서 문득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는 나와 같은 사람들.

---「조원규, 얼굴들」중에서

출판사 리뷰

스케치 - 여운을 남기는 짧은 산문 양식.
― 조원규(베개 편집인)


배시은 시인은 첫 시집 『소공포』(민음사)로 새롭기 그지없는 미학과 감수성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25편의 스케치들 역시 시집과 유사한 정조를 자아내지만, 조금은 다르게, 다소 산문적으로 그의 세계를 탐색할 수 있게 해줍니다.

난해한 문장은 단 하나도 없는데 익숙한 현실로 환원할 수 없는 묘한 낯섦이, 어쩌면 꿈의 질감이 배 시인의 글에는 깃들어 있습니다. 잘 아는 상황을 나의 얘기를 듣고 곧 이해할 상대방에게 설명하는 사람의 말투가 아닙니다. 마치 꿈에서 종종 그런 것처럼 상황을 경험하는 동시에 그 경험에서 소외되어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가 서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 고요한 격리감이 꿈 같은 낯섦을, 묘한 낯익음을 만들어내는 듯합니다. 그런 것을 지닌 사람을 개인이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인 경험으로 환원할 수 없으므로 파악하고 해소할 수 없는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개인 예술가입니다. 낯섦을 포기하지 않는 시인 배시은의 고집스러움과 스케치의 만남을 기쁘게 여깁니다.

처음 접한 지곡(止哭, 김현진) 시인의 산문(「축제」)에서 그는 말합니다. “나는 이곳의 주민이 아닙니다.” 그는 꿈속인 듯 저 말을 하였지만 어쩐지 현실 세계에서도 똑같이 말할 것 같았습니다. 무려 15년에 걸쳐 그가 써온 글을 받아들고 편집자는 이해보다는 감각에 의지해 분류작업을 했습니다. 서술의 밀도, 내러티브의 짜임새, 집중감 있는 사물 이미지 - 그런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간절함, 다정함, 순정적인 것, 연민, 막막한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지극(至極)하여 무서움에 가까울 때 편집자는 그것을 일단 제쳐두었습니다. 왠지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지곡(止哭)이란 필명을 열여덟 살 때부터 써왔다고 듣고 편집자는 그가 글에서 내내 통곡과 비통함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편수를 제외하였기에 여기 실린 24편의 스케치는 다시금 작가의 ‘이보다 더한’ 세계에 대한 설핏한 스케치라 하겠습니다. 수수께끼를 품은 모던 파라벨, 환상이 섞이는 미묘하게 현실감이 제거된 고요한 풍경과 장면들의 스케치, 모두가 비감(悲感)이 바탕에 깔린 아름다운 산문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조원규의 글은 스케치와 짧은 산문들입니다. 20년 전에 쓴 일기로 시작해 긴 시간 가운데서 ‘나의 시간들’이었다고 새기고픈 장면들 몇 개를 골랐습니다.

〈작은 형식들〉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을 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독립문예지 『베개』는 지속적으로 ‘스케치’와 ‘모던 파라벨(Parabel, 비유담)’을 위시한 작은 형식들로 창작을 하고 서로 나누자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베개』 작품공모나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서 목표를 유지해왔습니다. 문예(文藝)의 밀도와 정교함을 갖추면서도 파편적인 단계인 채로 ‘와중’의 삶을 표현하고 돌아볼 수 있는 작은 형식들 - 그런 것을 원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구체적인 결실로서 첫 앤솔로지 『희미한 축제』를 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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