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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랜드
지곡
시용 202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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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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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동화]

요약된 유월
축제
기념사진
기념품
교환일기
잡화
입장
플라랜드(Flaland)
격자형 명단
마포대교
알람
슈퍼스윙라이드

[2부 꽃]

우리는 한없이 길고 아무 데도 없다
내가 없는 병원
약속
열린 방
구조
행복주택
복도
직할시
예전
황금의 강
명단
독자
틀린 말
군집
조화

[3부 미로]

오너먼트
부끄럽게 자꾸 길어지는 시
허락받은 노래
환호성
성탄 전야
애니메이션
비가환 폐곡선
내적 외적 괜찮은 사람
관습형 미로
화자
미미 미나 쎄니 리카 세실리아의 회담
제일 예쁠 나이에
완벽한 속죄
인간공주
생일파티
전단
유리온실

시인의 말
발문

저자 소개 1

止哭

1989년생.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를, 서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했다. 독립문예지 『베개 8호』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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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2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193쪽 | 209g | 125*190*20mm
ISBN13
9791197926259

책 속으로

(...)
먼지 쌓인 조화 꽃 덩굴 아래에서 신입생이던 시절의 얼굴을 그대로 한 신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에서 산 촌스러운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발볼이 너무 좁아서 불편한 메리제인 구두를 신은 채 어색하고 서툰 색조 화장을 한 신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신은 세상에서 가장 천진한 얼굴로 그에게 달려와 안긴다. 그는 신에게 하려던 말을 모두 잊고 신을 안는다. 신은 그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다. 그는 신이 그에게 할 말을 이미 알고 있다. 신은 곰돌이 비누 꽃 선물에 실망할 것이다. 쓸모없고 바보 같은 선물이라고 말하며 그를 질책할 것이다. 결국 신과 그는 새로운 선물을 사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나갈 것이다. 종일 걷고도 3만 원으로는 적절한 선물을 고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엉엉 울면서 말할 것이다. 미안해.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

--- 「플라랜드」 중에서

출판사 리뷰

나는 언제나 스스로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이 사라짐은 추상적인 비유나 과장이 아니다. 나는 청소년기부터 자아가 하나로 고정되지 못하고 스위칭 되는 현상을 반복적으로 겪어왔다. 이 현상은 아주 복잡한 양상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기에 설명이 쉽지 않다. 나는 주기적으로 이전과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 변화는 단순한 패션·스타일의 변화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패션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 지향점, 목소리, 말투, 눈빛, 취향까지 모든 것이 통째로 바뀌기 때문에 격변기 때마다 당사자인 나는 매우 큰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주변 사람들도 내가 다른 쪽으로 전환이 될 때마다 자신이 잘 알던 누군가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과 같은 기묘한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바뀌어버린 나를 아예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배신감에 휩싸여 나를 떠나 버린 사람도 있었다.

나 또한 서로 다른 쪽의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스위칭 된 후에는 그전에 가지고 있던 옷과 물건들을 다 버리거나 나누어줘 버리고 새것으로 집안을 가득 채우곤 했다. 분명히 내가 산 물건인데도 그 물건을 샀을 때의 감정과 느낌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서 당장 눈앞에서 없애 버리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게 늘 고통스러웠고 금전적으로도 손실이 컸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내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가끔 전환기에 거울을 보고 있으면 거울 속이 텅 빈 느낌이 든다. 매 순간 어떤 자아를 연기하는 기분이 든다. 진짜 나는 없고 내 흉내를 내는 인형을 매분 매초 대신 세우고 조종하느라 진이 빠지는 기분이 든다. 내가 만든 자아들은 보통 통합이 되지 않고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나는 제대로 된 견해라는 것을 가진 적이 없다. 내 견해는 손바닥 뒤집듯 바뀔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극심한 멀미와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많아서 하나로 보이는 것들에 대해 아주 긴 시간 동안 생각해 왔다. 시를 쓸 때 나는 여러 명의 목소리를 수집하여 하나로 이어붙인다. 그러다 보면 여러 명의 자아가 하나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시 속의 나는 너무 여러 명이어서 선명한 하나로 수렴된다. 한 편의 시를 완성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총체적이고 예술적인 통일감은 불안정한 나에게 큰 위안을 준다.

요약하자면 이 시들은 여러 명의 내가 함께 쓴 것들이다. 우리는 각자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합의되지 못한 목소리들이 각각 이견이 있는 상태 그대로 조합되어 하나의 새로운 무언가가 발생하게 되었다. (2025년 겨울, 지곡)

추천평

지곡 시인의 이 시집에서 시인은 애도하는 사람이고, 애도에 깃든 죄책감과 그 불가능성으로 인해 시를 만드는 시인이며, 시인은 걷고 헤매지만 도착하지 않는 사람, 사라지는 사람이지만 사라짐의 순간을 통해 선명해지는 시인이며, 시인은 상실하고 기다리며, 기다리는 이가 오지 않기에 기다림의 명수가 되어 내내 사랑하는 시인이며, 시인은 여러 명인 사람이고 여럿이기에 비로소 한 명이 되는 시인이다. 이로써 새롭고 독창적인 이미지와 어법을 통해서 시인은, 부재가 사랑의 조건이 된다는 유구한 전설에 몸을 던진다.

시인 지곡의 글들을 3년 전부터 보아왔지만, 편집자는 이 자리에서 그의 세계를 포괄할 수 없음을 말하고 싶다. 주제와 시적 명제들을 열거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을, 매 시편이 가닿는 ‘극단적인 것’의 질적 속성 때문에 그러하다. 간절히 그리운 대상에 닿을 수 없음에, 그런 마음에 매번 아득히 가닿는다. 이러할 때 다양한 공간들의 목록, 시적이고 키치적인 사물들의 목록, 그 목록들 가운데서 추상과 구체의 병치(parataxis)와 모든 반복과 은유들의 도해는 강 건넌 뒤의 나룻배처럼 덜 중요하게 생각된다.

이 독창적이고 간절한 언어적 창조물인 시집을 독립문예지 『베개』에서 출간하는 일이 기쁘면서도 애석하다. 이 시집은 더 크게 주목받을 만한, 문예적 가치의 측면에서 분명히 중요한 시집이다. - 조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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