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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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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빅토르 박사의 제삼의 팔
시인의 말

〈태동 편〉
글램핑
도이칠란트의 비밀
takethedive
게으름으로 포장된
라깡(La Gang)
좋은 말 양파 vs 나쁜 말 양파
액체 괴물
욕망과 겸허의 항아리
땅콩 선배의 건배사
미세미세
눈×0
난 항상 혼자 있어요(Feat : 신명진)

〈하늘과 인간과 인간 같은 것 편〉
스탈린
고도로 발달한 인간은 기계와 구분할 수 없다
진조
힙스터 칼럼니스트 오윤석
숨길 수 없어요
백인의 원탁회의
세카이계
새의 울음소리를 흉내 낼 것
Under water
인터미션

〈후세계 편〉

빠르게 읽습니다
Just for laugh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 살상 레이저
오세요 핀란드
교수의 심경
그날의 생존자들 향우회
당신이 쓴 시
우리만 아는 슬픔들

예언의 때마침
미래 세계에 대한 공상적 체험이 담겨 있는
여덟 편의 수기

〈종결 편〉

바람은 화염으로 얼음은 검으로
(Feat : 강혜빈, 김복희, 나하늘, 안태운, 조시현)
집으로부터 아주 멀리
몰래 뻐큐를 하는 사람
유령놀이(feat. 나혜, 배시은)
오래된 자전거 경연대회
건너편의 슬픔
초융합 실험의 타당성에 대한 판결
악마는 산양의 뿔이 자라나는가
당신이 말한 것과 당신이 말하려던 것

해설
〈확장판 편. QR코드〉

저자 소개 1

1991년에 태어났다. 2014년까지 김보섭으로 활동하다가, 2014년부터 김누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19년 독립문예지 [베개] 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팀 '유후'의 공동 시작(詩作) 공동시집 첫 번째 프로젝트 “같은 제목으로 시 쓰기”로 공동시집을 펴낸 후 두 번째 프로젝트 “빈칸 채워 시 쓰기”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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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4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20쪽 | 300g | 125*190*20mm
ISBN13
9788996370895

책 속으로

빅토르 박사의 제삼의 팔

두 팔로 안으면 팔이 없어지니까 빅토르 박사는 오른쪽
어깨에 팔을 하나 더 달았다
이제 너를 안고도 책을 넘길 수 있어
그것도 어느새 사십 년 전이다

빅토르 박사의 제삼의 팔에는 눈이 달려 있다
눈에서는 일직선의 레이저가 나간다 일곱 번째에게서
얻어 왔다

애인을 끌어안고 애인의 머리를 만진다 제삼의 팔에 달
려 있는 눈을 통해 애인의 정수리를 본다
사랑해
그는 기계음이 섞인 선명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

빅토르 박사는 얼마 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금은 소파에 앉아 있다
그는 이제 너무나 늙었고 그의 눈은 총기를 잃은 지 오래다

기계 팔은 늙지 않고
녹이 슨다
그는 그것으로 안심한다

빅토르 박사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애인 또한 그 사실을 안다 애인이 두 손을 얼굴에 묻는다
빅토르 박사는 착잡한 표정으로 애인을 끈다

빅토르 박사의 제삼의 팔은 삼백육십 도로 돌아가므로
그에게는 사각이 없다
눈이 닿는 모든 것을 본다

빠짐없이
전부 다

그는 소파에서 일어나
방문을 연다 겨우 몸만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아주 조금만
연다
오래되어 낡은 나무문이 삐걱거리고
경첩에 걸린 문은 한차례 세게 눌러야 비로소 닫힌다

다 끝이 났구나
빅토르 박사는 그렇게 생각하며 두 눈을 감고 제삼의 팔
을 돌려 창밖을 봤다
제삼의 팔에 달린 눈은 감기지 않는다
그는 쪼그려 앉은 채로 선잠이 들었다 눈을 감은 채로 아
무것도 사라지지 않은 풍경과

불이 꺼진 채 굳은 그의 애인
그것이 이 모든 것의 마지막 장면이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해설) 폐허에서 계속 생겨나는 시
진송(비평가)

『일요일은 쉽니다』에서는 모든 것이 끝나가는 세계, 이미 모든 것이 끝난 후에도 뭔가가 잔여물처럼 남아 있는 세계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엿보인다. “이야기가 끝나도 주인공이 죽지 않고 방파제 위를 위험하게 걸으며 삶을 이어가는 영화”가 등장하고, 미세 기생충에게 “내장이 죄다 갉아먹힌” “몸속이 텅 빈” 사람들이 그 텅 빈 몸을 가지고 계속해서 살아가는 모습이 발견된다. 전 세계적인 폭설이 내려 세상의 모든 것이 파묻힌 이후에도 “죽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 기묘한 재앙이 이어지기도 한다. 재앙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재앙도 그 재앙 속에서 살아가는 삶도, 둘 중 어느 것도 쉽게 끝나주지 않는다는 사실일 테다. 어떤 상황이 와도 “사실은 아무것도 끝나지 않고/당신은 한참을 울다가도/내일 아침이면 또 출근을 해야”하며, 잔인하게도 “우리는 모두 죽기 직전까지 살아 있을 것이다.” 끝났거나 끝나가는 세계에서 살아 있는 모든 이들은 불가피하게 생존자가 된다.
(...)
지속되는 세계 속에서 계속 만들어지는 시와 관련하여, 김동진 평론가가 김누누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착각물』을 다룬 평론에서 짚었던 “종국에는 작품들이 생산한 의미를 없던 것으로 되돌리”는 김누누 시의 특징을 돌이켜 보아도 좋겠다. 『착각물』에 이어 『일요일은 쉽니다』에서도 이와 같은 “‘무화(無化)’에의 시도”가 종종 드러난다.
나는 이러한 시의 구조가 ?작품들이 생산한 의미를 없던 것으로 되돌”리는, 즉 이미 만들어진 세계를 없애는 기능을 하기보다 우리가 여태껏 이미 만들어졌다고 믿었던 세계가 누군가에 의해 황급히 창조된-창조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읽혔다. (아직) 없는 것을 파괴할 수는 없다. 시는 세상을 파괴하지 않고 그저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화자의 읊조림으로 가득 차기 이전의 헐벗은 세상을 드러내어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허상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진 이 세계를, 모든 것이 거짓 또는 착각으로 밝혀진 후에 당혹감만이 남은 세계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
모든 것이 망해버렸다고 믿어지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마지막을 선언한 장면에서 시작되는 시가 있다. 나에게는 이 두 문장이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죽지 못해서 생존자가 되어버린 존재처럼, 살아남아서 거짓말이 된 유서처럼, 딱 그 정도의 유쾌함으로 이 시들을 계속해서 읽고 싶다. 한차례 세게 눌러야 비로소 닫히는 나무문과 녹슬어 제대로 감기지 않는 기계 눈이 종말의 장면을 지연시켰듯이, 오래된 사물들의 힘이 그 마지막 장면에서 언제까지고 생동하며 영원하듯이, 『일요일은 쉽니다』를 읽을 때마다 폐허에서도 계속되는 삶과 세계를 이야기하는 시가 머뭇거리며, 부정하며, 엉뚱한 얘기를 늘어놓으며 하염없이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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