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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
처음 잡초 강굽이에서 거친 숲 세월의 사랑 나르시스 눈길 1 눈길 2 시선 저녁 여행 대화 흔적 1 흔적 2 흔적 3 (이하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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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축한 밤 안개가 남겨준 시편들이다.
꿈같은 침묵 속에 십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즐비한 밤나무들 무성해 어둑하였던 거리와 마당의 열두 그루 미루나무 그 꼭대기를 올려다보면 가슴 철렁하게 파란 하늘이 펼쳐지던 집. 그 집의 발코니, 먼 불빛들을 바라보면 저절로 윽, 하고 몸이 숙여지던 밤, 적막한 밤들을 되돌아보며 이 글을 쓴다. 어떤 시선도 내 곁에 없는 것 같았지만 동시에 가장 커다란 시선이 나를 지켜주었던 그 시절을 아직도 누군가 저 안개 속에서 살아내고 있는 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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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떡, 술
그런 말들이 너의 수첩엔 적혀 있고 펼쳐진 그 너머 유리창 너머 푸른 겨울이 간다 외로운 줄도 모르고 네가 썼을 저 말들을 나는 네게 외워주리라 잠든 너의 따뜻한 머리에선 침침한 안심의 내음 외로운 줄도 모르고 네가 썼을 그리고 나는 그 말들을 -<아내>전문 --- p.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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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하여 첫 시집『이상한 바다』(1987) 등을 펴낸 시인의 네번째 시집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오랜 유학 생활에서 돌아와 한층 더 깊고 단아해진 시인의 시는 무엇보다 고요하다. 그 고요함이란 정지와 부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낯선 땅에서 수많은 밤낮을 돌아다니면서 방황을 체득한 한 외로운 영혼이 풍기는 여운과도 같다. 그것은 언어라기보다 차라리 침묵에 가깝다. 1 여백이 주는 의미 축축한 밤안개가 남겨준 시편들이다. 꿈 같은 침묵 속에 십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즐비한 밤나무들 무성해 어둑하였던 거리와 마당의 열두 그루 미루나무 그 꼭대기를 올려다보면 가슴 철렁하게 파란 하늘이 펼쳐지던 집, 그 집의 발코니, 먼 불빛들을 바라보면 저절로 윽, 하고 몸이 숙여지던 밤, 적막한 밤들을 되돌아보며 이 글을 쓴다. --시집 「자서」에서 시인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외로운 국경 지대”에서 시인을 덮친 적막감이다. 수많은 거리와 도시와 나라를, 그리고 사람을 헤매고 있지만 정작 찾아 헤매던 무엇은 점점 더 행방이 묘연해지고 왜 헤매는지도 모른 채 헤매는 행위를 되풀이하는 자신을 스치듯 인식하는 순간 시인은 “윽, 하고 몸을 숙”인다. 그 외마디 비명이 뚫고 지나간 후 존재에게 남겨진 깊은 정적이 이번 시집을 가득 채운 여백의 의미이다. 2 이방인 랩소디 외로운 국경 지대 사전이 없으면 두려운 듯 아픈 듯 뜨고 지는 해와 달 사이로 가로지를 삶 사전이 없으면 입을 굳게 다물고 명멸하는, 그대 아픈가 묻는 소리 하나도 없는 -「사전」중에서 시인을 둘러싼 정적 속에서 그를 다시 존재롭게 하는 것이 언어이다. 그러나 그 언어란 것도 결코 그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이국의 언어이다. 한번도 모국어를 가져본 적이 없다는 듯 시인은 사전이 없으면 굳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하이데거가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명명한 데에서 보듯 언어를 잃어버린 존재는 집도 없이 부유하는 존재이며 그에게 정착민의 삶이란 부질없는 기대이다. 그래서 시인은 경계 내의 삶을 버리고 “뜨고 지는 해와 달/ 사이로 가로지”를 수 있는 삶을 선택한다. 그와 같은 삶의 환경에서는 상처란 단순히 치유되고 밀봉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으로 다가가는 거름으로 작용한다. 열린 상처에서 푸른 하늘이 흘러나오고 그 하늘엔 새들, 흰 새들이 유영한다 이마를 숙이면 나 쏜살같은 음성이 되어 어두운 우주를 꿰뚫는데, 겨우 몇 초가 흘렀을 뿐 -「잠시」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