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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후쿠 7
삐 11 가시철조망 울타리 18 지평선 22 삿쿠 24 다다미 한 장 29 귀리죽 37 돌림노래 43 군표 50 군인을 데리고 자는 공장 58 위생 검사 66 땅 80 요코 85 요코네 94 나를 잊어버리는 병 100 1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105 만주의 바늘 장수 111 몸 116 이름 126 군인 목소리 130 새로운 돌림노래 135 조센삐 엄마 140 널뛰기 놀이 146 뻐꾸기 152 검은 보름달 156 담요 159 죗값 165 트럭 171 노란 공단 원피스 184 닫힌 입 188 군표 한 장으로 살 수 있는 것 193 흰 보따리 205 위문 출장 215 스미마센 237 흰 상여 243 귀가 251 나나코 되기 놀이 254 나쁜 말 259 배냇저고리 264 사요나라 269 열린 입 274 아타라시 여자애 276 답장 283 작가의 말 289 추천의 글_박소란(시인) 2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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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에는 내가 입은 것과 똑같은 간단후쿠를 입고 똑같은 간단후쿠가 된다. 나오미도 내가 입은 것과 똑같은 간단후쿠를 입고 똑같은 간단후쿠가 된다. 다른 여자애들도. 그리고 군인들을 데리고 잔다.
군인들을 데리고 자는 동안 내 몸은 간단후쿠 안에서 휘어지고, 뒤집히고, 눌리고, 부서지고, 쪼개진다. --- pp.9-10 「간단후쿠」 중에서 나는 보따리가 갓난아기라도 되는 듯 가슴에 품어 안고 누워 있곤 한다. 그럼 내가 보따리에 매달려 어딘가를 향해 마냥 걸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보따리를 풀었다 다시 꾸리곤 한다. 풀어 헤친 보따리를 다시 싸고 풀어지지 않게 꼭 묶다 보면 이곳을 곧 떠날 채비를 하는 것 같다. --- pp.32-33 「다다미 한 장」 중에서 우리가 남긴 무장아찌 한 조각이 동쪽 하늘에 떠 있다. 허수아비처럼 두 팔을 벌리고 가시철조망 울타리에 매달려 있던 간단후쿠가 시큰둥히 중얼거린다. ‘북쪽에서 군인들이 오네.’ 그 옆 간단후쿠가 팔을 건성건성 흔들며 말한다. ‘어제도 북쪽에서 군인들이 왔는데.’ 그 옆 간단후쿠가 목 구멍을 부풀리고 중얼거린다. ‘북쪽에서 오는 군인들한테는 그냥 ‘나 잡아 잡수.’ 해야 해.’ (……) 군인들은 서쪽에서도, 동쪽에서도 온다. 군인들은 어디에서나 온다. --- pp.41-42 「귀리죽」 중에서 간단후쿠를 입고 나무 의자에 어정쩡히 누워 두 다리를 벌리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간호사다. 간호사복을 입고, 조각배 모자를 쓰고, 백설기 신발을 신고, 양철 오리 주둥이를 손에 들고 나무 의자 옆에 서 있는 건 나다. 나는 간호사를 나무 의자에 앉혀 두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막사를 걸어 나간다. 막사 앞에 줄을 서 있는 여자애들을 뒤로하고 망루를 지나, 들판을 걸어간다. 또각또각 또각또각. 나는 혼자 집까지 걸어서 갈 것이다. --- p.78 「위생검사」 중에서 나는 보따리를 풀고 군표를 꺼내 세어 본다. 한 장, 두 장, 세 장, 네 장, 다섯 장, 여섯 장. 몇 장을 모아야 송아지를 살 수 있을까. 군표를 한 장이라도 더 모으려면 군인을 한 명이라도 더 받아야 한다. 그래야 군표를 몰래 빼돌려도 오토상이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 레이코 언니도 군표를 몰래 모으고 있다. 군표 한 장으로는 뭘 살 수 있을까. 쌀 한 되는 살 수 있을까. 군인들은 군표 한 장으로 스즈랑의 여자애를 산다. --- pp.201-202 「군표 한 장으로 살 수 있는 것」 중에서 불길에서 걸어 나오는 죽은 군인의 모습이 떠지지 않는 눈 속에 보인다. 그는 불에 타다 말아 부지깽이 같은 다리로 걸어온다. 내 막사 앞에 줄을 선 군인들 뒤에 선다. 머리카락과 살이 전부 타 버리고 해골만 남은 얼굴을 까딱까딱 흔들며 소리 지른다. ‘삿사토 삿사토!’ 해골에서 아지랑이 같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묻어 있던 재가 날린다. 오그라들어 쥐눈이콩 같아진 눈동자가 눈구멍에 매달려 흔들린다. 그의 오장육부는 아직도 불타고 있다. 나는 어서 죽은 군인의 차례가 되길 기다린다. 그래야 돌림노래가 마침내 끝나고 날이 밝을 테니까. 아무리 죽은 군인이어도 군표는 내야 한다. 갖고 있던 군표가 전부 타 버리고 없어도 군표를 내야 한다. 살아 있는 군인의 것을 훔쳐서라도. --- pp.234-235 「위문 출장」 중에서 나는 아기가 죽기를 바라면서 각반을 모은다. 아기가 태어나면 기저귀로 쓰려고. 나는 아기가 죽기를 바라면서 보따리 속 저고리가 배냇저고리처럼 작아지기를 바란다. 아기가 태어나면 입히려고. 나는 아이가 죽기를 바라면서 레이코 언니에게 무쇠 가위를 빌리려 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탯줄을 자르려고. --- p.264 「배냇저고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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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후쿠’라는 몸 - 여성의 몸으로 말하는 전쟁
‘간단후쿠’는 위안소에서 ‘위안부’들이 입고 생활한 원피스식의 옷을 부르던 말이다. 또한 “간단후쿠를 입고, 나는 간단후쿠가 된다.”라는 소설의 첫 문장처럼, 그 옷을 입은 이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간단후쿠’를 입고 한 번 ‘간단후쿠’가 된 여자애들은 그 옷을 입어도, 벗어도 ‘간단후쿠’다. ‘간단후쿠’는 여자애들의 ‘몸’이 되기 때문이다. 『간단후쿠』는 머나먼 만주 땅, 위안소 ‘스즈랑’에 있는 15세 소녀의 ‘몸’을 보여 준다. 이곳에 온 지 2년이 된 소녀는 원래 이름 ‘개나리’ 대신 ‘요코’라고 불린다. 소설은 소녀가 임신한 사실을 스스로 깨달은 이후부터 만삭이 되어 가는 봄, 여름, 가을의 시간을 그린다. 전쟁은 한 벌의 옷처럼 인간의 가장 사적인 영역인 ‘몸’을 옭아매고,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몸 안팎의 투쟁을 치른다. 몸 안에서 속절없이 자라나는 또 하나의 ‘입’처럼, 몸 밖에서 끈질기게 들러붙는 군인들처럼. 그러나 ‘간단후쿠’는 벗겨지지 않는다. 벗겨지지 않을 뿐 아니라 점점 더 두꺼워지며 확장된다. 옷에서 위안소 ‘스즈랑’으로, 스즈랑을 둘러싼 벌판으로, 벌판 너머 전쟁터로. ‘간단후쿠’들의 생존 방식 - 한 사람의 내면 주인공 ‘요코’의 생존 방식은 혼자 하는 상상이다. 하늘을 보며 고향을 떠올리고, ‘간단후쿠’와 전혀 다른 삶인 ‘간호사’ 복장을 입어 보기도 한다. 때로는 ‘군복’을 입는 상상도 한다. ‘요코’는 군복을 입는 게 나을지 간단후쿠를 입는 게 나을지 고민한다. 군복을 입으면 사람을 죽여야 하는데, 사람을 죽이면 사람이 아니게 된다. 그런데 간단후쿠를 입으면 ‘사람 같지 않은’ 군인을 데리고 자야 한다. 간단후쿠, 군복, 간단후쿠, 군복…… 우열을 가릴 수 없어 마음속 꽃점을 치던 ‘요코’는 위문 출장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는 스즈랑에서도 상상할 수 없던 지옥, 전쟁을 목격한다. 스즈랑에 붙들린 열 명의 소녀들에게는 각자의 생존 방식이 있다. 땅에 편지를 쓰는 ‘나오미’, 서로를 돌보며 의지하는 ‘나나코’와 ‘하나코’, 고향에 돌아가 할 일을 생각하는 ‘아유미’, 능숙한 일본어로 처세하는 ‘에이코’, 아편에 빠진 ‘사쿠라코’, 아무에게 아무 말 하지 않는 ‘미치코’, 나이를 잊은 ‘요시에’, 죽을 때까지 저항하는 ‘레이코’, 곧 죽어도 ‘스미마센’ 하지 않는 자존심으로 버티는 ‘고토코’까지. 극한에 달하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두려움에 떠는 ‘피해자’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극에 달하는 순간마다 이들이 가진 각자의 성격, 생각, 기억, 의지는 더욱 선명히 빛난다. 전쟁도, ‘간단후쿠’라는 옷도 휩쓸어 가지 못한 ‘한 사람’의 내면이다. 상처 깊숙한 곳의 진실 - ‘군표’ 같은 희망 김숨 작가가 증언을 문학으로 옮기며 끊임없이 의심하고 다시 쓴 것은 다름 아닌 ‘말’이다. 말은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을 포괄한 내면을 드러내는 가장 선명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김숨은 단어, 어휘, 어순을 넘어 머뭇거림과 침묵을 표현하는 기호 하나조차 발화자의 말이 맞는지 의심하며 소설을 써 왔다. 이처럼 오랜 시간 조심스럽고도 세밀한 소설 쓰기 끝에 김숨이 발견한 것은 ‘침묵’이다. 거대한 벽에 말문이 막힌 듯한 ‘침묵’, 그 두꺼운 벽 아래서 들끓는 ‘고통’이다. 김숨은 그 침묵, 굳게 닫힌 상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간단후쿠』를 썼다. 『간단후쿠』의 모든 단어와 문장은 일제강점기 만주 위안소에 있는 15세 소녀의 말로 쓰였다. ‘위안부’가 아닌 ‘간단후쿠’라 스스로를 칭하듯이, 낯선 사물이나 병명 같은 일본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고, 그래도 배우지 못한 말은 과거의 기억에서 비슷한 것을 찾아와 붙여 부른다. 이 ‘말’들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통을 증언하는 동시에 과거의 기억을 붙든다. 그렇게 『간단후쿠』의 문장들 하나하나는 이들이 몰래 간직한 ‘보따리’처럼 우리 앞에 놓인다. 기만당해 사라진 꿈, 멀어질수록 또렷해지는 기억, 몰래 모으는 ‘군표’처럼 차곡차곡 비밀스럽게 차오르는 삶에 대한 애착과 희망이 뒤섞여 그 속에 고스란히 있다. ‘작가의 말’에서 반복되는 전쟁과 폭력과 학살, 간단후쿠를 입고 간단후쿠가 된 소녀들은 여전히 곳곳에 있다. 우리가 보고 있지 못하거나 보려고 하지 않을 뿐. 존엄을 회복하고 숭고한 모습으로 그 소녀들의, 그리고 우리의 미래가 되어 찾아오실 할머니들께 이 소설을 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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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단후쿠를 모르지만 간단후쿠를 입은 것 같다. 전쟁도 군인도 만주도 모르지만, ‘스즈랑’은 더더욱 모르지만, 뭣도 모른 채 지금껏 살았지만, 이 글을 읽자마자 나는 감히 그곳 여자애가 되었다. 간단후쿠를 입고 널빤지 방에 죽은 듯 누운 여자애의 몸이 되었다. (……)
이것이 정말 역사란 말인가. 이토록 아픈 것이. 자문하곤 했다. 인간이란. 인간과 인간이란. 인간에게 인간이란. 결국 삶이란. 수시로 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인 채로, 헤아려보았다. 어떤 마음이 이런 글을 쓰게 했을까. 계속해서, 이처럼 각별한 ‘답장’을 부치게 했을까. - 박소란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