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문장들에 켜켜이 섞여 있는 빛은, 점차 이울고 있는 이 세계의 것이다. 그 빛을 알아챌 수 있는 건 때때로 시린 마음을 감추지 못하면서 나선 여정에서다. 이 여정을 비추는 건, 어두워져 가더라도 아직 남아 있는 빛, 그리고 시차를 두고 늘 조금 후에야 내게 도착하는 빛의 이야기들이다. 이 책이 주는 힘은 부드럽고 강하다. 저녁의 빛과 흐르는 강물과 염습지의 땅이 그렇듯이. 오랜 지구의 시간이 앞서 이울었다. 그 긴 시간의 끝자락에 놓인 우리를 이 책과 함께 멈춰서 보게 된다. 그리고 알아채게 된다. 상실을, 존재의 머묾을 동시에 발견하는 이 여정은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 잇대어 저마다의 늦은 빛을 가만히 읊조릴 수 있으면 좋겠다. 희망은, 세계가 온전하다고 믿는 데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배운다. 언제나 조금 늦게 배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