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인생의 목격자
수면 위로 조금 뒤의 세계 눈 내리는 삼일포 용인에서 보낸 편지 신들은 토끼산을 떠났다 동풍이 어디로 흩어지는지 그리고 밤과 가을이 신의 마음 아래에서 |
金衍洙
김연수의 다른 상품
|
내 인생의 목격자는 너희가 아니라 바로 나라고. 그때 나는 열두 살이었지. 그뒤에 일어난 모든 일들은 아직 가능성의 구름 속에서 떠다니고 있었고. 구름 속 수증기 중에서 어떤 것이 빗방울이 되고 어떤 것이 눈송이가 되는지,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건 무엇이며 영영 허공 속을 떠돌아다니는 건 무엇인지. 나는 보고 싶고 알고 싶었어. 떨어지는 것과 흩어지는 것, 남는 것과 사라지는 것의 운명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켜보고 싶었어.
---「우리 인생의 목격자」중에서 우리는 멀리,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었다. 어두운 밤하늘에 하나둘 별빛이 밝혀지는 듯, 피아노 음들이 하나씩 울렸다. ---「수면 위로」중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하면서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빠져들 때는 그의 이야기에 빠져든다는 걸 차츰 깨닫게 됐다. ---「조금 뒤의 세계」중에서 “보이는 대로 보지 말라는 건 나를 보라는 것이었지. 그림을 벗어나면 그림의 바깥에 있는 우리가 확연하고 그림 속 세상은 오히려 미미해지는 것처럼, 세상을 떠나면 모든 게 제대로 보인다는 말이었어. 그게 바로 진경을 보는 원리라네. 세상이라는 그림 속에 갇혀 스스로 만든 지옥 속에서 살지 말게나. 그림 바깥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자네 자신이니까.” ---「눈 내리는 삼일포」중에서 존재는 이 세계에서 오직 한 곳, 그 존재가 머무는 곳만을 채우지만 부재는 모든 곳을 다 채운다. ---「동풍이 어디로 흩어지는지」중에서 “그냥 정원이랑 아름다운 정원은 완전히 다르다는 말. 알고 보니 책에 답이 다 있었더라고. 그냥 정원은 엘라가 보고 있지 않은 정원이고, 아름다운 정원은 엘라가 보고 있는 정원이라고. 왜냐하면 엘라는……” “끔찍한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소녀니까.” ---「그리고 밤과 가을이」중에서 ‘희망은 두려움과 함께 가는 법이야. 희망 없는 두려움도, 두려움 없는 희망도 무용지물이지. 우리의 존재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자아를 포기했을 때 더 많이 연결될 수 있어. 육신에 슬픔이 닥쳤을 때, 영혼은 기쁨을 발견하듯이.’ ---「신의 마음 아래에서」중에서 |
|
이 책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유리컵 몇 개를 떨어뜨렸다. 컵들은 서로 부딪히며 산산조각이 났다. 그 순간 나는 중심을 잃고 오른발로 깨진 유릿조각을 밟았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피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 상처를 꿰맸다. 이틀에 한 번꼴로 병원을 다니며 검진과 소독을 받았다. 그러는 동안 세상을 불태울 것처럼 뜨겁던 여름의 열기는 조금씩 누그러졌다. 가뭄을 걱정하던 남부 지방의 메마른 땅으로 국지성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나는 자주 뭔가를 영영 잃어버린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는 동안 상처는 조금씩 회복했다. 병원을 다닌 지 이 주가 되자 의사는 내게 그만 와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내게서 뭔가를 뺏어가고 또 뭔가를 주는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시간이 내게서 뭔가를 빼앗아갈 때는 얼마나 잔인했는지. 그러나 뭔가를 줄 때는 또 얼마나 다정했는지.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울고 또 웃으리라. 살아 있는 한, 나는 시간의 여행자니까. _‘작가의 말’에서 |
|
어지럽다
내가 걸어가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소설들 사이를 헤매인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문득문득 온통 새하얀 어느 자연인지 정신의 속인지 알 수 없는 공간인지 시간인지의 한가운데 덩그러니, 말 그대로 참 쓸쓸하게 덩그러니 서 있게 될 것 같은 이야기들이 거미줄처럼 서로를 겨우겨우 잇고 있다 겨우겨우 줄을 잇고 있는 점들, 그 점들의 아슬아슬한 소중함이 너무 애틋하다 그래, 참으로 애틋한 이야기들이다 죽었다, 죽였다, 죽는다, 죽이자는 이야기가 쉬이 지면에 올라오는 이 종말의 시대 속에서 무겁고 애틋한 마음을 안고 시간을 가로지르느라 애쓰는 우리의 지친 마음 그 옆으로 가만가만 다가와 앉아 앞다투어 나오느라 두서없이 넘어질 말들을 지그시 기다려주는 아홉 개의 이야기들이다 이 이야기들 옆에 앉아 여러 갈래의 이명 같은 침묵 속에서 새로운 종류의 안도감을 얻었다 - 이자람 (공연창작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