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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 『검은 소』 황모과, 『마지막 숨』 정주하 『파라-다이스』 2. 정주하, 『미나미소마 일기』 3. 서경식×정주하, 『재난의 표상 (불)가능성』 편집 후기 작업 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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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못 해 본 사람 있어요? 둘이서 못 하면 혼자서라도 하는 게 연애죠.” 게이코 씨는 머그잔에 커피믹스 한 봉을 따 넣으며 말했다. “한 번에 셋 이상이라면 골치 아플 수도 있겠지만.”
“인간은 욕정의 동물이니까요.” 내가 말했다. “인간은 사랑의 동물이죠.” --- p.41 “여기는 병자투성이지만 병원도 의사도 없어요.” 게이코 씨는 나뭇가지를 들어 바닥에 찍 기다란 선 하나를 그었다. “이걸 상궤라고 해봐요. 이 금을 따라서 격식이니, 질서니, 예의니, 상식이니 하는 것이 만들어지고 지켜지는 거겠지. 그러면 이 금을 누가 긋고 유지하는 걸까요?” 나는 게이코 씨가 좋아할 만한 대답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국가요?” “그거일 수도 있겠네. 하지만 나도 몰라, 난 내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지금 내가 이 금을 벗어나서 상궤 너머에서 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죠.” --- pp.50-51 나도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이런 버려진 땅에 사람이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못 했다. “여긴 일본 안에 있는 일본의 외부야, 하!” 게이코 씨가 흙더미를 넘느라 기합을 넣으며 말했다. “일본이 없는 일본의 내부이기도 하고, 하!” --- p.56 이 상상을 말했을 때 와와 누님은 먼 나라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맞아, 어떤 나라에서는 소를 신으로 모신대. 일찍 죽었던 소들도 그 나라에선 신이었지. 그러니 인간들에게 우리 목장의 소들이 얼마나 특별하고 위대해 보이겠니?” 다른 곳에서도 소를 신으로 모신 인간이 있다니, 재밌는 말이었다. 인간들의 종교란 뭘까. 인간은 쉽게 추앙하기도 하고 또 쉽게 추앙받기도 하는 모양이다. 우리를 추앙하는 인간들이 있다. 자신의 목장도 아니면서 이곳에서 목자 노릇을 자처하는 인간들이 그렇다. --- p.104 탐욕은 애초에 우리에게 있지 않다. 우리를 둘러싼 이 목장과 목장 주변에 있다. 아무리 노려봐도 인간이 만든 흐름이 전혀 감지되지 않는 저 전선들 속에 있다. 전선을 통해 흐르는 고도의 기술 속에 있다. 갇힌 우리에게는 욕심이랄 게 있을 수가 없다. 나는 영생을 저주라고, 이곳을 지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죽음이 사라진 게 아니다. 인간에 의해 집행되었던 도살이 지금은 조금 다르게 거행되고 있을 뿐이다. 시간을 두고 더욱 고통스럽게. --- p.110 한국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실수를 저지르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게으름을 깨닫는다는 뜻일 것이다. 지금 후쿠시마는 온통 태양광 패널로 가득하다. 이는 화석연료와 핵에너지의 대안을 제시하는 현상이자 에너지 전환에 가장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원자력발전소 폭발이라는 인류 차원의 재앙을 맞이하고서야 비로소 생각해 낸 것, 그리고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단순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태양광 패널이 햇빛을 반사하며 내 눈을 찌른다. 다른 것은 보지 말라는 뜻인가? --- p.160 자세히 보니 수영이 아니라 윈드서핑을 하고 있다.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이럴 수가 있나. 이곳은 사고가 난 원전에서 그리 멀지 않다. 한국에서 오염수 방류에 걱정하고 분노하는 목소리를 가슴에 잔뜩 품고 온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야릇한 풍경은 나의 신경을 깊숙이 자극하면서 온몸을 뒤흔들었다. 뛰었다. 뛰면서 카메라를 꺼내 들고 일단 한 컷을 찍었다. 바다를 향해 그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고체화하기 위해! 그리고 숨을 내쉬며 찬찬히 모래사장과 발전소 굴뚝과 서프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바다로 향하는 몇 명의 젊은이를 확인했다. 심장이 멈출 듯 아득한 전율이 인다. 저 무심한 행동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국가(일본)가 쉼 없이 ‘조작’하고 ‘조롱’한 결과인가? 혹은 그에 대한 반항인가? 혹은 도취인가? 결국 그들 중 몇 사람을 발전소 굴뚝을 배경으로 세워 놓고 촬영했다. 물론 웃으면서, 그리고 “너는 아주 멋지다.”라는 다이앤 아버스Diane Arbus식 감동의 언어와 눈빛을 보내면서. --- p.161 “이 시계, 아직 움직여요. 전지가 남아 있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가 태엽을 감아놓은 건지…….” 그러면서 그는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의 노인 요양 시설 벽에 걸린 시계가 찍혀 있었다. 벽에는 바닥에서 1.5미터쯤 위로 선이 그어져 있고 선 아래는 검게 변색되어 있다. 지진해일이 덮친 흔적이다. 나는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3개월 뒤인 지난해 6월 처음으로 그곳을 찾았다. 그 장면은 NHK의 〈마음의 시대 - 후쿠시마를 걸으며〉라는 프로그램으로 방영됐다. 사고 발생 뒤 10개월, 내가 처음 방문한 뒤 7개월. 많은 목숨을 빼앗긴 그곳은 그때의 폐허 그대로였고 벽의 시계는 변함없이 시간을 재고 있었다. --- p.192 '부재의 표상'이라는 개념이 있다. 20세기 후반 제2차 세계대전에 의한 파괴와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거친 뒤에 예술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물음, 다시 말하면 “아우슈비츠 뒤의 예술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답하고자 하는 개념이다. 파괴와 학살의 참혹한 현장을 아무리 리얼하게 표상하고자 해도, 그것이 그대로 보는 자의 마음을 반드시 흔든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참혹하면 할수록, 혹독하면 할수록 많은 사람들은 눈을 돌리든가 아니면 본 척만을 하고 지나치려 한다. 그리고 근거 없는 낙관론에 매달리려 한다. 후쿠시마 이후 넓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 경향에 저항하고자 할 때 표상에 관여하는 자에게 가능한 방법은 무엇인가? 그 하나의 답변이 ‘부재의 표상’이다. --- p.193 이 시가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상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일본의 일’, ‘도쿄의 일’ 혹은 ‘과거의 일과 무관한 지금의 일’이라는 한정된 상상력이야말로 우리 자신을 작게 만들고 ‘은밀하고 사악한 관리인들'을 더욱 만연케 합니다. 그 상상력을 함양하기 위한 중요한 근본 수단은 예술이고, 또한 타자와의 대화입니다. 자신들과는 다른 문맥에서 다른 감수성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함으로써, 위축된 상상력이 자극을 받고 열려가는 것입니다. --- p.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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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인 낙원, 파라-다이스
정주하는 드넓은 평원 위에 한가로이 쉬거나 걷는 소들을 사진에 담았다.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쓰나미가 일본 도호쿠 지방을 덮친 다음 날, 후쿠시마의 도쿄전력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십수 만 명이 집을 버리고 떠났다. 사고 지점 반경 20km 이내는 출입 금지 구역이 되었다. 동물들 역시 방사능에 노출되었다. 국가의 명령을 거부하여 소를 죽이지 않고 먹이를 주는 목부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이제 ‘희망 목장’이라고 부른다. 소들을 찍은 연작에 작가가 붙인 제목은 ‘파라-다이스’. ‘거부’ 혹은 ‘확장(~을 넘어)’이라는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 접두사 ‘파라(para-)’에 ‘죽음(dies)’을 결합했다. 인간의 과오로 고기가 될 운명에서는 벗어났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거부(추방)당한 아이러니. 정주하가 포착한 ‘파라-다이스’는 방사능 누출로 십 수만 명이 집을 버리고 떠나야 했던 인간이 잃어버린 낙원과도 겹쳐 보인다. 사진 소설, 서로를 비추기 우리는 이 ‘역설적 낙원’의 이미지가 텍스트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소설이라는 장르를 택했다.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언어와 이미지)를 절취하여 또 다른 세계를 구성한다는, 소설과 사진의 공통점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초대받은 소설가는, 여전히 “분노자본을 간직한 몇 되지 않는 현직 작가”로 평가받는 백민석과, SF라는 장르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돌이켜 보는 황모과다. 사진 [파라-다이스]와 소설「검은 소」, 「마지막 숨」은 마주 보며 서로를 비춘다. 사진 속 검은 소는 유령처럼 배회하는 모습으로 불안함을 안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따사로운 햇볕을 쬐는 모습으로 여유로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비현실적인 상황을 보여 주는 사진처럼 소설 역시 실재와 환상, 현실과 미래를 오가며 전개된다. 살처분을 모면한 소가 불로불사의 존재가 되어 말을 하거나(황모과,「마지막 숨」), 2023년 제2원자력발전소마저 녹아내렸다는 설정으로 더욱 가혹해진 환경 속에 내던져진 소수자의 삶을 보여준다. (백민석,「검은 소」). 독자는 소설 속 재난과 디스토피아적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불사신처럼 떠도는 검은 소의 사진과 함께 각자의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황모과, 「마지막 숨」 배경은 2810년. 2011년 동일본대지진 후 죽음이 유예된 곳이 된 목장의 소들은 2023년 오염수 방류로 죽은 인어 고기를 먹고 불로불사하게 된다는 설정의 소설. 전설과 신화가 되기를 거부하며 금식을 시작하는 소들이 망각을 통해 역사를 지우고 싶어 하는 인간들에게 대항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백민석, 「검은 소」 배경은 2023년. 제2원자력발전소까지 녹아내린 상황, ‘방사능 벨트’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 원고를 준비하는 ‘나’를 화자로, 무국적자처럼 살아온 재일조선인 출신 게이코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쳐 죽음의 땅으로 온 게이코가 화상통신 단말기를 통해 보내오는 스산한 풍경이 강렬하다. 정주하의 에세이와 다큐멘터리 사진 1부의 소설 속 잿빛 세상과 흑백사진을 지나면 ‘컬러’로 바뀌면서 [파라-다이스] 연작의 작업 노트인 「미나미소마 일기」가 시작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정주하가 쓰고 찍은 글과 사진,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의 큰 낙차다. 컬러 사진을 넘기다보면 화창한 날씨의 바닷가에서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 목장 직영의 소프트아이스크림 가게와 같은 한가로운 일상이 펼쳐진다. 하지만 텍스트로 돌아와 그곳이 후쿠시마 원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이라는 정보가 들어오면 균열이 일어난다. 과거의 비극이나 재난을 망각하고자 하는 국가 정책은 완전하게 성공한 것인가. 방사능으로 오염된 바다에서 서핑을 즐기며 웃는 사람들은 망각을 통해 쉽게 행복을 얻은 것인가. 수많은 질문과 의문 속에서 우리는 갑자기 현실을 능가하는 초현실의 세계로 끌려간다. 조금 전까지도 평범해 보이던 사진이 일순 일그러져 보이거나, 무색무취의 방사능이 역한 냄새를 뿜어내는 듯 느껴진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을 찍고 기록하려는 사진가의 도전은 성공한 것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