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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리 피가 도는 이야기
황모과 몽유인들 연여름 바람의 말 얽힘 코멘터리 기획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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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리 「피가 도는 이야기」
“네, 제가 정말 안 아프게 해드릴게요.” 한공선 씨의 딸도 살짝 놀랄 만큼 지효의 말투가 단호했다. 그저 환자를 달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었다. “믿을게요.” 한공선 씨가 힘주어 말했다. 그때 한공선 씨의 눈빛이 방금 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p.16 저자는 신부전이 ‘반려질병’이라며, 평생 곁에 두고 잘 보살펴야 하는 병이라고 적었다. 너무 의식하거나 스트레스받지 말고 일상적으로 관리하라는 뜻일 텐데, 그 부분을 엄마에게 읽어주자 엄마는 코웃음을 쳤다. “반려(伴侶)같은 소리한다, 반려(返戾)해버리고 싶구먼.” ---p.23 “제가 마침 남는 기계가 있어서 빌려드렸어요. 저는 이제 안 쓰는 거라 집에 가져가셔도 된다고요.” 간호사가 빌려준 스마트폰은 공기계로, 웹소설 플랫폼 앱이 로그인되어 있다고 했다. 유료 결제를 해둔 소설이 마침 엄마가 좋아할 이야기일 것 같아서 추천했다고. “그리고 그 주인공이 어머니랑 이름이 같아요. 한공선.” ---p.31 엄마의 귀에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흘러들고 있었고, 어쩌면 엄마는 두 세계를 오가며 살고 있는 중인지도 몰랐다. 민영은 가만히 속삭였다. “엄마, 그래도 아직 완전히 저쪽으로 가버리진 마. 여기도 엄마가 필요해.” ---p.53 황모과 「몽유인들」 나는 아무렇게나 폐허를 걸었다. 바닥은 험했고 매 걸음 삐끗했지만 사실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이곳이 꿈속임을 떠올리며 나는 안도했다. 전쟁은 내가 사는 곳의 일이 아니니까. 이런 곳에 살지 않아 다행이다. 여길 악몽에서나 지켜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매일 밤 나는 왜 같은 곳에 오는 걸까. 왜 이런 꿈을 꾸는 걸까. ---p.58 내 앞을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천천히 인정했다. 여기도 전쟁터와 다를 바 없다. 천천히 사람을 말려 죽이는 여기도 우리의 악몽이다. 다만 이게 모두의 악몽은 아니라는 게 씁쓸할 따름이다. ---p.63 “이 종이비누는요, 지면에 닿으면 녹아서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요. 종이에 새긴 글귀가 웅덩이에 떠오르는데 한나절 정도 지나면 자연 산화해서 사라져요. 처음엔 사랑 고백하는 아이템으로 팔렸는데 이젠 완전히 시위 아이템으로 정착했어요.” ---p.79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얽히게 되었을까. 악몽을 꿈꾸도록 기획된 세계에서조차 우리는 새로운 꿈을 꾸었나보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반드시 가까이에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라 그런가보다. 자기 꿈을 그려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사람들이라 그런가보다. ---p.93 연여름 「바람의 말」 “우리 방학 애도식 할래?” 급식을 거의 다 먹어갈 무렵, 권수미가 그런 말을 꺼냈다. “방학 애도식?” 나는 습관처럼 반문했다. 권수미는 종종 생소한 단어를 툭 말하곤 했는데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내가 되짚어 물으면 들뜬 목소리로 차근차근 설명해주기를 좋아했다. “솔직히 이번이 인생 마지막 방학일지도 모르잖아. 앞으로 방학이 없는 삶이라니 얼마나 끔찍해.” ---p.111 “티베트에 가면 기도 깃발이라는 게 있대. 이렇게 천에다가 소원을 적어서 매달아놓으면, 펄럭펄럭 바람을 타고 그 소원이 부처님한테까지 가는데, 그걸 바람의 말[風馬]이라고 부른다나.” ---p.116 “찾아오는 불안을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지요. 우리는 늘 흔들리는 존재니까요. 하지만 어느 위치에 있든지 온전한 자기 자신일 수 있다는 것만은 좋지 않아요?” 포춘 텔러는 나와 수미를 번갈아 보며 이렇게 덧붙였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몰라도 바람은 바람인 것처럼요.” ---p.124 “안 괜찮으면 어때.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말했다. 수미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괜찮아’보다 ‘괜찮지 않아도 돼’라는 말을 들을 때 마음이 더 편해지곤 했다. ---p.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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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지 못한 다른 세계의 내가
지금의 우리를 살리고 있다면 “우리가 이어져 있음에 오늘은 조금 안도해” 앤솔러지 '얽힘' 다섯 번째 프로젝트. 연여름, 조우리, 황모과가 함께 만들어 낸 다른 세계의 나와 이어지는 세 가지 이야기 새로운 형식의 한국문학 앤솔러지 시리즈 ‘얽힘’의 다섯 번째 이야기 『다른 세계의 나에게』가 출간되었다. 얽힘(Entanglement) 시리즈는 우리의 삶이 개별적이면서도 우주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문학적으로 구현한다. 세 명의 작가가 독립적인 소설을 쓰면서도 서로의 세계관과 소재를 공유하며 하나의 책으로 엮어내는 프로젝트다. 작가들은 앤솔러지의 테마를 함께 정하고, 각자의 작품 속에 다른 작가의 장소나 키워드를 끌어오기도 한다. 결국 연결고리가 드러나기도 하고 또 숨어있기도 한, 얽혀 있으면서도 독립적인 세 편의 단편소설이 완성된다.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며 예상치 못한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또 그렇게 연결된 이야기가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듯이 한 권의 책 속에서 확장된 세계관으로 나아간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얽힘’ 5기에는 SF문학의 상상력으로 동시대의 감각을 포착해온 연여름, 황모과 작가와 한국문학에서 주목받는 조우리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실직, 질병, 고립 등으로 자신이 속한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 청년들의 삶을 세 가지 결로 펼쳐 보여준다. 『다른 세계의 나에게』에는 조우리의 「피가 도는 이야기」, 황모과의 「몽유인들」, 연여름의 「바람의 말」이 수록되어 있다. 세 작품은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삶의 균형을 모색하는 인물들의 여정을 그린다. 여기서 환상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보다 온전히 건너기 위한 또 하나의 경로로 제시된다. 세 편의 주인공들은 현실의 균열 앞에서 웹소설 속 이야기, 꿈, 다른 세계의 또 다른 나와 접속하며 삶의 의지를 찾아간다. 각자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의 고통은 다른 세계의 이야기와 맞닿고, 그곳에서 건져 올린 희망이 다시 현실을 버티는 힘이 된다. 이 소설집은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어딘가의 ‘나’와 이어져 있다는 감각으로 오늘을 건너가는 인물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책의 마지막에는 작가들이 서로에게 던진 질문과 답을 담은 「얽힘 코멘터리」가 수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독자는 기획부터 집필까지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각 작품의 성취뿐만 아니라, 이들이 모여 함께 도달한 문학적 지점을 함께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얽힘 시리즈 소개 ‘얽힘’은 다람의 문학 앤솔러지입니다. 세 명의 작가가 쓴 세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됩니다. 각 소설은 독립적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그 안에서 예상치 못한 연결고리를 찾아낼 것입니다. 그렇게 연결된 이야기는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듯 확장된 세계관을 향해 나아갑니다.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001 성혜령 이서수 전하영 『봄이 오면 녹는』 002 김이설 이주혜 정선임 『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 003 서장원 이선진 함윤이 『재생 버튼』 004 예소연 전지영 한정현 『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 005 연여름 조우리 황모과 『다른 세계의 나에게』 006 김성중 윤해서 정용준 (출간 예정) 007 강태식 서유미 최민우 (출간 예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