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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윤이 초능력 연습
서장원 포춘가든 이선진 60초 후의 세계 얽힘 코멘터리 기획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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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뭐냐고 물었지?” 초희가 말했다. “저 종이 뒷면에는 올해 연도가 적혀 있어.” 초희는 돌아서 아람의 눈을 응시했다. 쓰고 짠 맛이 계속하여 입안을 맴돌았다. 어떤 단어를 무슨 태도로 꺼내야 좋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초희는 지금이 그 이야기를 꺼내기에 적기임을 알았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저 날 나는 죽게 돼.”
--- p.13 「함윤이, 초능력 연습」 중에서 초희는 하얗게 질린 주먹을 쥐고 펴길 거듭했다. 그깟 우연보다는 차라리 내 기억력에 관해 말하면 어떨까. 아니면 평소 상상하는 일들에 대해서……. 적어도 초희는 주변에서 자신만큼 명확하게 옛일(비록 그것이 초등학교 3, 4학년 때의 일이라 해도)을 기억하거나,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심지어 그것이 영영 도래하지 않을 일이라고 해도)을 선명하게 상상하는 사람은 본 적 없었다. 초희는 그런 일에 능숙했고, 또 그런 일을 좋아했다. --- p.23 「함윤이, 초능력 연습」 중에서 재림은 몸을 휙 돌리더니 한글 파일을 켰다. 노련한 솜씨로 가로세로 여섯 개의 표를 만든 뒤 그중 하나를 클릭했다. 그다음 아주 큰 글씨로 적었다. 너도 초능력자야? 초희도 한글 파일을 켰다. 재림에 비하면 한참 버벅거리며 표를 만든 다음 그 한가운데에 적었다. 나는 아니야. 초희는 손끝이 아플 만큼 힘차게 다음 문장을 적었다. 그렇지만 초능력을 믿고, 굉장히 존중해!!! 재림이 흠, 하며 웃더니 자신이 쓴 글자를 지웠다. --- p.28 「함윤이, 초능력 연습」 중에서 나였으면 세상 모두에게 말했을 텐데. 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그러나 곧 다가올 일, 기어코 우리 손에 쥐어질 그 순간을 예언할 수 있어요. 말인즉슨, 나는 진짜예요. 인정해주세요.아주 가끔 재림이 거짓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피어올랐지만 금세 사라졌다. 초희는 여전히 아주 다양한 장면을, 본 적도 겪은 적도 없는 여러 상황을 구체적이고도 다채롭게 상상할 수 있었으나, 재림이 그를 속이는 순간만은 일절 그릴 수 없었다. --- p.40 「함윤이, 초능력 연습」 중에서 호정 언니는 앨라이였고, 동물권에 관심이 있었으며,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지지했다. 경기도의 아파트촌에서 이런 이웃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듯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살짝 조바심이 났다. 윗집에 사는 호정 언니란 사람이 내가 이 타이밍에 붙잡아야 하는 운명적인 인연처럼 느껴졌다. 나는 종종 그런 감정에 사로잡혔다. 코드가 맞을 것 같은 사람을 발견하고는 혼자서 내적 친밀감을 잔뜩 쌓아버리는 것이었다. --- p.74 「서장원, 포춘가든」 중에서 보호소 직원의 말처럼 개를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다만 뜻밖의 장점도 있었다. 홍시는 우리가 함께 돌봐야 할, 혼자서는 기를 수 없는 개였고, 이 사실은 영인과 나의 일상에 좀처럼 떼어낼 수 없는 점성을 가져다줬다. 그리고 나는 그 점이 못내 만족스러웠다. --- p.82 「서장원, 포춘가든」 중에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 친구 중에 게이인 친구가 있었어.” 영인은 이제 기억이 났다는 듯, 크게 손뼉을 쳤다. “나도 생각해보면 저도 맨 처음 본 건 그 사람이었어. 캐리 친구.” 곧 영인은 그 캐릭터가 보조적인 인물에만 머물렀다고,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사인방이 각자의 삶을 살아갔던 반면 그 대머리 친구는 캐리의 연애사를 들어주는 감정 쓰레기통에 불과했다고 투덜거렸다. 그게 당시의 미디어가 퀴어를 다루는 방식이었다고, 그런데 한국에선 아직 퀴어 캐릭터가 등장조차 하지 못하다니 원통하다고. 호정 언니는 그 이야기를 잠자코 들었다. 그리고 영인이 입을 다물 즘,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 p.86 「서장원, 포춘가든」 중에서 “나는 다시 태어나면 결혼은 진짜 안 할거야.” “진짜?” “진짜.” 나는 호정 언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예전에 우리가 나눴던 대화가 떠올라서 뜻밖에도 웃음이 났다. “우리가 살 만큼 살고 다시 태어나는 거면, 아마 화성 같은 데서 태어날 텐데?” 호정 언니는 킬킬 웃었다. “너는 화성에서 살아보고 싶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언니는?” “나는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 지아 키우면서, 너네랑 술 마시면서 살면, 살 만하겠지.” 나는 살 만하겠지, 하고 언니의 마지막 말을 따라했다. --- p.91 「서장원, 포춘가든」 중에서 눈은 내리는 게 아니라 재생되는 것 같아. 지난 금요일, 버스 창가 자리에 앉아 창밖의 흰 풍경을,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자신을 따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면서 비선은 생각했다. 새가 날고 싶은 방향으로 날아가고 버스가 달리고 싶은 방향으로 달려가듯 비선은 이동되어지고 싶은 방향으로 이동되어지는 중이었다. --- p.95 「이선진, 60초 후의 세계」 중에서 화면 하단에는 산불로 인한 한국인 실종자 중 한 명이 십여 년 전 방영된 국내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라는 자막이 빠르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고작 오디션 프로그램에 한 번 출연했던 이력 가지고 어디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게 진짜 웃겨 죽겠다 죽겠어. 비선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어디에서 출신하여 여기 이곳까지 다다르게 되었는지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 p.102 「이선진, 60초 후의 세계」 중에서 방송에서는 모두 편집되었지만 그때 비선의 딸꾹질이 멎지 않아서 촬영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계속 그러면 일정이 딜레이된다며 스태프들이 은근히 눈치를 주는 상황 속에서 희선은 잠깐 손 좀 줘볼래? 하고 비선에게 물었다. 곧이어 비선의 손을 그러쥔 희선은 이렇게 새끼손가락의 첫번째 마디를 60초 동안 꾹 누르고 있으면 딸꾹질이 멈출 거라고 했고, 딸꾹질이 멎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기도 전에 딸꾹질은 어느새 멎어 있었다. --- p.104 「이선진, 60초 후의 세계」 중에서 슬픈 생각이 들 때마다 비선은 슬픔을 밖으로 내몰아버리는 게 아니라 슬픔의 자리를 잠시 옮겨주었다. 어떤 때는 마음속의 가장 환한, 집으로 치면 볕이 가장 잘 드는 자리에 밝게 놔두었다면 어떤 때는 여기 이런 공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후미지고 그늘진 곳에 슬픔의 자리를 마련해두었다. 그러니까 비선이 버스를 타고 눈발처럼 사락사락 이동되어지는 동안 비선의 슬픔 또한 비선의 안쪽 노선을 따라 사붓사붓 어디론가 이동되어지는 중이었다. --- p.108 「이선진, 60초 후의 세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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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장면이 다시 눈앞에 펼쳐진다. 앤솔러지 ‘얽힘’ 세 번째 프로젝트. 서장원, 이선진, 함윤이가 함께 만들어 낸 과거를 재생하는 마음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 새로운 형식의 한국문학 앤솔러지 시리즈 ‘얽힘’의 세 번째 이야기 『재생 버튼』이 출간되었다. 얽힘(Entanglement) 시리즈는 우리의 삶이 개별적이면서도 우주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문학적으로 구현한다. 세 명의 작가가 독립적인 소설을 쓰면서도 서로의 세계관과 소재를 공유하며 하나의 책으로 엮어내는 프로젝트다. 작가들은 앤솔러지의 테마를 함께 정하고, 각자의 작품 속에 다른 작가의 장소나 키워드를 끌어오기도 한다. 결국 연결고리가 드러나기도 하고 또 숨어있기도 한, 얽혀있으면서도 독립적인 세 편의 단편소설이 완성된다.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며 예상치 못한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또 그렇게 연결된 이야기가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듯이 한 권의 책 속에서 확장된 세계관으로 나아간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얽힘’ 3기에는 한국 문학의 젊은 주역으로 주목받는 서장원, 이선진, 함윤이 작가가 참여했다. 모두 90년대생으로 같은 시대를 통과해온 이들은, 그 시절 누구나 함께 향유했던 TV 프로그램을 공통의 주제로 삼았다. 이번 책에 수록된 작품은 함윤이의 「초능력 연습」, 서장원의 「포춘가든」, 이선진의 「60초 후의 세계」다. 세 작품은 한 시절 그들을 통과했던 영상 매체가 어떻게 개인의 감수성과 삶의 궤적에 스며들었는지를 되짚으며, 과거를 소환하고 지금의 시선으로 그 시간을 다시 재생해보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재생 버튼』은 단순히 ‘추억 소환’에 머물지 않는다. ‘재생’이라는 행위에는 과거를 정면으로 극복하고 그때와는 달라진 마음으로 새로운 시간들을 살아가려는 마음이 담겨있다. 세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눌러본 재생 버튼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면들을 현재의 자리에서 새롭게 조명한다. 또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앞으로 어떤 시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번 앤솔로지는 한국 문학의 젊은 세대가 만들어낸 생생한 감각과 언어로, 한 세대의 문화적 경험을 다시 쓰는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공명을 전한다. 책의 마지막에는 작가들이 서로에게 던진 질문과 답을 담은 「얽힘 코멘터리」가 수록되어있다. 이를 통해 독자는 기획부터 집필까지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각 작품의 성취뿐만 아니라, 이들이 모여 함께 도달한 문학적 지점을 함께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얽힘 시리즈 소개 ‘얽힘’은 다람의 문학 앤솔러지입니다. 세 명의 작가가 쓴 세 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됩니다. 각 소설은 독립적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그 안에서 예상치 못한 연결고리를 찾아낼 것입니다. 그렇게 연결된 이야기는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듯 확장된 세계관을 향해 나아갑니다.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001 성혜령 이서수 전하영 『봄이 오면 녹는』 002 김이설 이주혜 정선임 『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 003 서장원 이선진 함윤이 『재생 버튼』 004 예소연 전지영 한정현 (출간 예정) 005 연여름 조우리 황모과 (출간 예정) 006 김성중 윤해서 정용준 (출간 예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