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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드렁크 픽션
작가의 말 서장원 작가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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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금 의아한 마음으로 면지를 펼쳐 조성 씨의 이름을 적었다. 조성 씨는 경상도 출신에 이개혈종으로 부풀어 오른 귀를 가진 전직 격투기 선수였고, 그 모든 것들은 내가 〈리틀 프라이드〉를 쓰는 동안 막연하게, 그리고 오만하게 상정했던 독자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p.15 그 말, 사람이 너무 심약하다는 간결한 비난이 내 소설들 속 거의 모든 주인공에게 적용된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내 소설 속 인물들이 일상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자잘한 갈등과 마찰에, 편견과 소외가 슬쩍 드러나는 순간들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에 비하면 조성 씨를 비롯한 격투기 선수들은 강인해 보였다. ---p.21 “이야, 기분 좋다!” 케이지를 둘러싼 남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나는 따라서 웃다가 잠시 뒤에 그 말의 맥락을 깨달았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직후에 한 연설을 따라 한 거였다. 그리고 나는 케이지 밖에 서 있던 조성 씨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알아챘다. ---p.25~26 “코치 님은 그럼 어떤 선수를 제일 좋아하세요?” “저는 좋아하는 선수가 딱히 없어요. 이쪽 남자들, 다 별로예요. 혐오자들 천지예요.” ---p.33~34 “그럼 작가님은, 소설에서 마음에 안 드는 캐릭터는 삭제시키나요?” 나는 뜻밖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지만 곧 그렇지 않다고, 내 소설에서 누가 죽거나 사라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렇게 안 하려고 해요. 제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쨌거나 다 제가 만든 건데요, 뭐.” ---p.36 “어떤 사람들을 나는 사람으로 보기 힘든 것 같아. 어떤 사람들은 그냥…… 악의적인 밈이 흘러다니는 통로처럼 느껴져. 그런 놈들한테도 자기 세계가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 그런 사람이 개나 고양이를 돌보고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게 상상이 안 돼.” ---p.39 조성 씨도 작은 키가 아니었지만 그 옆에 서자 머리 하나는 차이가 났다. 몸무게도 반칙왕이 한참 더 나가지 싶었다. 나는 이제라도 멈추는 게 좋겠다고 조성 씨에게 시선을 보냈지만 조성 씨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걱정 말아요. 저는 완벽하게 안전하니까. 정원 씨가 시작해주세요.” ---p.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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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들이 다 죽는, 그런 소설인가요?”
단 한 편의 단편소설로 세 번의 문학상을 수상한 화제작 〈리틀 프라이드〉 서장원, 5년 만의 신작 단행본 “어떤 종류의 남자들을 향한 참교육 일대기”(60쪽)가 되어 달려 나가는 소설들의 고삐를 움켜쥐고 화제의 중심에 우뚝 서는 작가 서장원의 『펀치 드렁크 픽션』이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으로 출간되었다. 탑 수술을 받은 트랜스남성과 작은 키를 극복하고자 사지연장술을 감행하는 남성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소설 〈리틀 프라이드〉가 2024년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2025년 이상문학상 우수상, 젊은작가상을 잇달아 수상했다. 『펀치 드렁크 픽션』은 한 편의 단편소설로 문단에 돌풍을 일으킨 작가 서장원이 2021년 출간된 첫 소설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이후 약 5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 단행본이다. 작가의 현실을 소설 속 화자 ‘정원’의 일상에 투영한 메타픽션으로, 과거의 서장원을 따라 읽으며 차기작을 기대해온 독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될 것이다. 진주의 한 공유 오피스를 빌려 일하고 있는 소설가 정원은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이 “너무 심약한 것 같다”(20쪽)는 생각에 사로잡혀 극심한 슬럼프를 겪는다. “소설 속 인물들이 일상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자잘한 갈등과 마찰에, 편견과 소외가 슬쩍 드러나는 순간들에 지나치게 집착”(21쪽)한다는 생각으로 번번이 가로막히던 정원은 우연히 자신의 ‘팬’을 자처하는 전 종합격투기 선수 조성을 만나게 된다. 조성은 정원의 공유 오피스가 입주한 삼영빌딩에 자리한 격투기 체육관 크라운짐의 코치였다. 정원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강인해 보이는 조성과 조성이 속한 세계가 자신의 소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해줄 거라는 기대를 품는다. 정원은 조성과 교류하며 종합격투기와 그 세계를 지배하는 스타 선수들에게 빠져들지만, 조성은 그들 중 누구도 동경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 “이쪽 남자들, 다 별로예요. 혐오자들 천지예요.”(33~34쪽) 오히려 조성은 그들을 미워하고 있었다. 체육관 시합에서 정원은 극우 커뮤니티에서 소비하는 유머를 거리낌없이 뽐내고, 비열한 반칙을 일삼으며 승리를 챙기는 ‘반칙왕’을 만나고 혐오와 폭력, 남성성의 과시가 공존하는 종합격투기 세계의 민낯을 목격한다. 반칙왕에게 뒷머리를 심하게 맞아 병원에 실려갔던 조성은 그와 못다 한 시합을 이어 갖게 되고 조성이 반칙왕을 껴안는 순간, 반칙왕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냥…… 악의적인 밈이 흘러다니는 통로처럼 느껴져.” 어떤 종류의 남자들을 미워하는 마음과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은 사라져 마땅하다는 증오와 그럼에도 그들 또한 사람이라는, 입체적인 딜레마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너무 미웠습니다. 소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소수자를 향한 혐오에서 즐거움과 소속감을 얻는 사람들이요. 저는 이들에게도 자아가 있고 고유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설마 이들이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고 누군가를 소중하게 여긴다고 해도, 그러한 관계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84쪽, 〈작가의 말〉) ‘여자 같다’ ‘게이 같다’는 말이 상대를 조롱하는 관용어로 쓰이는 종합격투기 세계에서 조성은 커밍아웃하지 않은 성소수자로 살아온 인물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혐오하고, 그 혐오감을 마음껏 과시하는 사람들 틈에서 오랜 시간 증오심을 쌓아왔다. 조성은 어느덧 “어떤 사람들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60쪽) 생각하게 된다. 정원은 ‘그런 식이라면 나와 그들이 뭐가 다르냐’고 반문한다. “양심이 작동하며, 자신이 가진 증오심이 얼마나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이었는지 깨닫게”(82쪽) 된 것이다. 하지만 정원에게도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이라기보다는 “악의적인 밈이 흘러다니는 통로”(39쪽)처럼 느껴지는 마음이 남아 있다. 그들 또한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이고 “개나 고양이를 돌보고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39쪽)할 것이라는 다면성을 곱씹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이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증오심을 멈추지 못한다. ‘나를 혐오하는’ 존재를 미워하는 마음을 거두고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미워하는 마음이 마땅한 것이라면 그 미움은 어디까지 정당할 수 있을까. 『펀치 드렁크 픽션』은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명제 앞에 독자를 멈춰 세우고,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남겨놓는다. ‘단 한 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 위픽 시리즈는 2023년 구병모의 『파쇄』를 시작으로, 박재연의 『히든 스텝』에 이르기까지 102명의 작가가 써낸 102편의 소설을 통해 지금 한국문학의 가장 다채롭고 새로운 풍경을 펼쳐 보였다. 위픽은 어떤 기준이나 장르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직 ‘단 한 편의 이야기’라는 완결성에 주목한다. 여러 편을 한데 묶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한 편의 단편만으로 책을 구성하는 이례적인 시도를 통해 독자에게 하나의 이야기에 깊이 몰입할 수 있는 특별한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콤팩트한 판형과 100페이지 내외의 부담 없는 분량으로 바쁜 일상 속에서도 어디서든 짧은 시간 안에 한 편의 이야기를 완독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소설가뿐만 아니 라 논픽션 작가, 시인, 청소년문학 작가 등 다양한 필자들을 적극적으로 초대하여 이야기의 경계를 계속해서 확장해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