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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스텝
작가의 말 박재연 작가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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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의 문제적 현상. 세계와 단절된 현대인들. 땅과 접촉해야 전일성 회복. 해원은 회장에게 전일성이 뭐냐고 물었다. 회장은 하나가 되는 거라고했다. 비슷한 이름 때문인지 해원은 김일성이 떠올랐다.
---p.16~17 해원은 원조 순자와 네 명의 거짓 순자가 각자 불투명한 방에 들어가는 장면을 상상했다. 거짓 순자들은 해원이 기억하는 순자의 모습과 흡사하다. 어떻게 너마저 나를 두고 떠나니. (중략) 반면 원조 순자는 이렇게 말한다. 얘, 나는 회장님 만나고 병이 모두 나았다. 원조 순자를 고르라는 사회자의 지시에 해원은 생각한다. 순자가 사람을 만나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니 말도 안 된다고. 가족인 자신도 하지 못한 구원을 다른 사람이 했다니 믿을 수 없다고. 해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원조 순자는 서바이벌에서 탈락한다. 가장 순자 같지 않았던 순자가 불투명한 방에서 나와 정체를 드러내며 해원을 탓한다. ---p.21~22 설화는 곧 이곳에 호수가 생기게 된 배경이기도 했다. 쇠똥을 시주한 천석꾼의 집에 홍수가 난다. 가문에서 유일하게 성품이 고와 스님에게 쌀을 주었던 며느리는 다가올 재앙과 생존 방법을 스님의 귀띔으로 알게 된다. 그녀는 조언대로 앞만 보고 도망치다가 가족이 걱정되는 마음에 그만 뒤를 돌아보고 돌이 된다. 뒤돌아보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기어이 뒤를 돌아보는 마음은 여러 번 곱씹어도 해원에게 불가해한 것이었다. ---p.22~23 앞사람이 입은 감색 재킷의 등판에는 보풀 같은 먼지가 많이 붙어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자신이 대뜸 먼지를 떼주면 실례이니 해원은 그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지만 내내 신경이 쓰였다. 이 사람은 알까. 자기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꽤 자주 자신을 판단하고 평가한다는 사실을. ---p.37 “명가수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선 대중 앞에 나서지 않는대요.” 해원은 그래도 어른이 된 자신이 수치심을 억누르고 능청 한마디 정도는 떨게 된 것이 다행스러웠다. 해원의 말에 카페 회원들은 아이고 명가수에게 무리한 부탁을 했네요, 하고 깔깔 박장대소했다. 경사를 계속 올라서인지 해원의 얼굴이 붉어졌다. 스스로를 명가수라고 지칭한 꼴 아닌가 싶어 후회가 밀려왔다. 살면서 말을 많이 하지도 않는데 적게 내뱉은 말조차 실수처럼 느껴질 때면 해원은 아무도 찾지 않는 뒷산에 홀로 남고 싶었다. ---p.49~50 겨우내 얼어 있다가 녹은 산은 차가웠다. 축축한데 산뜻하기도 했다. 직접 걸어 보니 이 땅의 촉감이 생생했다. 선득한 느낌이 발끝에서 올라와 해원의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해원은 회장과 순자가 반복해 말하던 전일성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하나가 되었다는 감각. 내가 나인 채로, 느슨하게. ---p.52 순자가 이상한 모임에 빠져 있다는 것을 내내 직감하면서도 그곳에서 나오라고 무작정 강요할 수 없는 마음이 특히 그랬다. 언뜻 확신에 가득 차 보이는 순자에게도 이해하기 어려운, 때로는 이해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모순이 있을 것이었다. 모순과 모순을 끌어안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면 모순은 두 배로, 혹은 그 이상으로 늘어날 뿐이었다. ---p.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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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성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하나가 되었다는 감각. 내가 나인 채로, 느슨하게.” ‘생활이라는 중력’을 유쾌한 파동으로 그려내는 지금 여기, 주목해야 할 작가 박재연 202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가챠, 가챠〉가 당선되며 “단단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는 사유의 깊이를 보여준다고 평받은 박재연 작가의 첫 저작 『히든 스텝』이 위즈덤하우스 위픽 시리즈로 출간된다.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소위 ‘한물간’ 가수 지망생 해원은 모창 능력자를 가리는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히든 싱어〉 섭외 전화를 받는다. 때마침 소식이 끊긴 지 7년 만에 ‘비상’이라며 집으로 오라는 엄마의 연락을 받고 본가로 내려간 해원에게 엄마는 맨발로 산을 오르다 발목을 삐끗했다고 말한다. 루주를 짙게 바른 입으로 사주에 목(木)이 없으니 자수정 원석을 들여보라는 말을 진지하게도 하는, 엄마 옆에 앉은 한 아줌마를 바라보며 해원은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묻는다. “근대화의 문제적 현상, 세계와 단절된 현대인들이 땅과 접촉해야 전일성을 회복한다”는 명목으로 맨발 산행 즉 어싱(Earthing)을 하는 번개 모임의 회장이라는 여자는 해원에게 방송 출연 전 아차산에 올라 좋은 기운을 받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리고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맨발 산행에 동참한 해원은 그곳에서 아주 잠깐, ‘내가 나인 상태가 되는’ 감각, 전일성을 느낀다. “가장 엄마 같지 않았던 엄마가 불투명한 방에서 나와 정체를 드러내는 것을 보고 해원은 자각한다. 내가 안일했구나.” 이해한다는 느슨한 착각 속에서 가장 낯설고 혐오스러운 민낯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며, 또 무엇을 바라고 싶어질까. 그러던 어느 날, 해원은 한 블로그에 올라온 글 “맨발 걷기 모임, 단순 건강 동호회인가 사이비 다단계인가”를 읽게 되며 엄마가 끈질기게 얘기하던 ‘구원’을 떠올린다. 가족인 자신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버린 그 구원을. 끝내 엄마를 이해해보려던 해원은 한 남자에게 자신의 엄마가 피라미드 상위 1%에 속한 사람, 즉 ‘그라운더’라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는데……. 『히든 스텝』은 자수정 원석과 흙매트를 강매하는 엄마 앞에서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한걸음 뒤에서, 숨은 듯이, ‘관망’과 ‘이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해원을 통해 “이해는 일시적이고 영원히 종결되지 않는 상태”이기에 “누군가를 잘 알고 있다는 믿음은 얼마나 취약”(작가 인터뷰 중에서)한 욕망인지를 보여준다. 등단작 〈가챠, 가챠〉에서 ‘가챠’의 불투명한 알에 빗대어 “있는 것과 있다고 믿는 것의 차이”를 노련하게 그려낸 작가의 재치는 “빗물이 괸 자리에 발을 살짝 디디면 서늘하면서도 기분 좋은 해방감이 밀려들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책장을 넘길 때마다 양말을 한 쪽씩 벗어 던지듯 “이해하는 것과 이해한다고 믿는 것”에서 멀어지는 가뿐한 경험을 선사한다. ‘단 한 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 위픽 시리즈는 2023년 구병모의 『파쇄』를 시작으로, 백은별의 『나의 사탄』에 이르기까지 101명의 작가가 써낸 101편의 소설을 통해 지금 한국문학의 가장 다채롭고 새로운 풍경을 펼쳐 보였다.위픽은 어떤 기준이나 장르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직 ‘단 한 편의 이야기’라는 완결성에 주목한다. 여러 편을 한데 묶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한 편의 단편만으로 책을 구성하는 이례적인 시도를 통해 독자에게 하나의 이야기에 깊이 몰입할 수 있는 특별한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콤팩트한 판형과 100페이지 내외의 부담 없는 분량으로 바쁜 일상 속에서도 어디서든 짧은 시간 안에 한 편의 이야기를 완독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소설가뿐만 아니 라 논픽션 작가, 시인, 청소년문학 작가 등 다양한 필자들을 적극적으로 초대하여 이야기의 경계를 계속해서 확장해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