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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WORKS
2008 2009 2010 2011 에세이 ESSAY 그림 숲의 야수(백민석) 색인 INDEX 약력 ARTIST BIOGRAPH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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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은 실제로 그리는 순간 실패하는 그림이에요. 선을 긋는 순간부터 안 닮아요.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의 모습은 절대 안 나와요. 그래서 화가로서 가장 비극적인 그림 중의 하나가 자화상인 거죠. 그런 점에서는 시지프스 신화와 같은 점이 있어요. 실패를 반복하면서 어떻게든 계속 그려나가는 거죠. 그래도 먼저 그린 그림과 다음에 그린 그림은 차이가 있어요. 그것 때문에 하는 거예요. 그리고 부분적으로 조금씩 뭔가가 담겨 나가는 느낌이 있어요.”
---「서용선(이영희와의 인터뷰)」중에서 “지하철은 현대인에게 공간 체험을 새롭게 하였다. 각기 다른 목적과 장소를 마음에 품고 이동하지만 한 공간에 있어야 하는 승객으로 일시 변형된 인간 존재는 서로의 인간관계 같은 것은 일시 보류할 수밖에 없다. 각자의 가치체계조차도 거기서는 보류함이 권장된다. 모르는 사람과 마주 보고 있어야 하는 우리들은 무언극의 연극배우들이다. 누구나 자기 대본을 준비해야 한다. 신문을 읽거나 광고를 보는 척하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혹은 옆 승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애쓰며 대화를 한다. 밀폐된 공간 속에서의 행동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매우 조심스런 심리 반응을 동반한다. 그것은 워커 에반스의 사진에서 보이는 서로의 시선을 애써 피한 채 허공을 바라보는, 자신을 잠시나마 잊어보려는 행위다.” ---「서용선(작가 노트 2010·10·31)」중에서 “전시회를 보는 날에 여주역에 아침 일찍 도착했다. 역에서 일행을 만나 미술관까지 함께 차를 타고 가기로 했었다. 일행과 역 밖으로 나가는데 반백의 머리에 고동색 티셔츠와 면바지를 입은 수수한 차림의 노년의 신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용선 작가였다. 마중 나올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기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그가 나를 알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이번 화집 출간에 글을 쓰는 여러 작가 중 하나이고, 오늘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다는 정도만 들어서 알고 있으리라 짐작했다. 언젠가 그에 대해 글을 쓰긴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얼마나 많은 작가론과 작품론이 쓰였는지 생각하면 나는 거의 아무것도 쓰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 뜨거운 여름날 그가 역까지 나왔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백민석, 「그림 숲의 야수」」중에서 “나는 서용선의 작품 세계를 간단히 설명할 용어를 아직 모른다. 누군가에게 어울리는 적절한 미학 용어가 없다는 의미는 그만큼 그의 작업이 독창적이라는 말도 된다. 과거와 현재의 어느 흐름에도 딱히 욱여넣을 수 없는 독창적인 작가들은 어디에나 꼭 있다. 서용선 역시 기존의 알려진 유파의 화풍이나 스타일로 설명되지 않는다. 내가 인터뷰에서 “백색 모노크롬이 한국의 화단만이 아니라 미술대학에서 미적 판단 기준을 넘어 하나의 명령같이 지배하던 시절”에, 그러니까 1970년대 후반 추상회화가 화단의 주류이던 시절에 선생님은 상당히 다른 길을 가시지 않았나, 그러려면 용기가 상당히 필요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가 짓던 미소가 떠오른다. 그는 빙 둘러 대답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저를 지도하신 선생님들조차 너무 서사적이다, 너무 이야기가 많다, 고 하셨으니까. 그림에 너무 형상이 있으면, 미술 쪽에서는 문학적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이 그림에 무슨 이야기가 필요하냐,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설명적이다, 라고. 왜냐하면 형상이 있으면 설명적인 게 되는 거죠.” ---「백민석, 「그림 숲의 야수」」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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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행형 작가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전망할 수 있는 전작 도록
“그의 선은 직설적이고 색은 단호하다. 때론 선도 단호하고 색도 직설적이다.” (백민석) ‘거칠지만 밀도 있게 구축된 선 위로 강렬하게 육박해오는 색채’로 평가되어 온 서용선의 조형 언어를 소설가 백민석은 위와 같이 표현했다. “단호하고 직설적인 선과 색”을 통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서용선이 다뤄왔던 인물, 역사, 도시, 풍경 350여 점을 고스란히 담아낸 화집이 출간되었다. 흔히 도록은 전시를 계기로 특정한 주제에 맞는 작품을 선별하여 소개·수록한다. 이에 비해 ‘전작 도록(전작집)’이라고 번역되는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e)는 작품의 출품 이력과 정보까지 검토하여 수록함으로써 진위 판별이나 작가 연구를 위한 자료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 작가의 작품 활동을 총결산하고 종합하는 의미로 사후에 제작되는 경우가 많기에 현역으로 한창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와는 낯선 조합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 화집은 방대한 작품 제작과 꾸준한 아카이빙을 해 온 서용선의 작업 과정 속에서 현재 진행형 카탈로그 레조네의 성격을 띠고 있다. 전작집 기획은 2008년을 기점으로 삼았다. 작가가 미술교육자로서도 활동하던 장인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교수직에서 스스로 떠나 작업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한 해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1975년~2007년의 회화 작품집은 Gallery A story에서 세 권으로 구성하여 한정판/비매품으로 출간한 바 있다). 서용선의 세상 그리기 “우리가 역사와 신화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우리와 상관없는 아주 특별한 것으로 여기는 데 비극이 있다. 망각은 인간에게 치유와 동시에 불행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서용선 서용선의 그림은 “이 땅에 거주하는 인간 군상들과 삶의 세계를 향한 질문들로 함께 모인다.(...) 서용선의 예술은 단지 형식의 문제나 기호적 사태에 관심을 지닌 뭇 작가들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이인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용선에게 있어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비극적 죽음을 맞은 노산군(단종)의 이야기나, 민족상잔의 비극이었던 한국전쟁과 같은 격랑 속에 휩쓸린 인간의 실존적 고통은 그저 먼 역사 속 이야기가 아니다. 1986년 서용선은 개인적으로 복잡한 일이 생겨 강원도 영월을 찾았다. 그곳에 살고 있던 어린 시절의 친구와 함께 강변 백사장에 앉아 마음을 식히고 있을 때였다. 친구가 이곳이 바로 단종을 죽이고 나서 시신을 던진 청령포, 라고 알려줬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만치 한여름의 투명한 강물 위에서 사람이 둥실 떠올랐다. 열일곱 살의 나이로 죽임을 당하고 시신조차 갈 곳 없이 떠도는 단종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너무 생생해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 모습을 스케치로 남겼다. 서용선은 그때까지 ‘소나무 화가’라는 호칭이 익숙한 작가였다. 슈퍼리얼리즘, 포토리얼리즘이라고도 불리는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나무껍질이나 솔잎 하나까지도 세밀하게 살려내어 묘사했다. 재직 중이던 학교 근처에서 근접 촬영한 소나무를 그려온 그가 수백 년 전에 세상을 떠난 과거의 인물을, 환각과도 같은 순간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청령포에서 단종을 만난 순간 그는 직감적으로 이 주제를 10년 정도는 다루게 되리라고 느꼈지만, 예상을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서용선은 노산군(단종)을 비롯하여 동학농민운동, 한국전쟁과 같이 역사라는 격랑 속에 휘말린 개인의 실존과 비극을 되살려냈고, 도시라는 공간의 압박감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한 내면을 비춰내기도 했다. 돈암동에서 오래 살았던 서용선은 관악구로 출퇴근을 하면서 하루에 꼬박 서너 시간씩 버스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는 거리 표지판의 화살표나 가위표와 같은 기호들이 보행자와 운전자에게 끊임없이 행동을 지시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동시에 만원 지하철의 불쾌함과 경적이 울리는 도시의 소음을 견디며 일터로 향하는 사람에게 시선이 머물렀다. 그는 생계와 사회의 규제로 인해 행동과 자유가 제한되고 있는 왜소한 현대인을 꾸준히 화폭에 담았다. 서용선X백민석 소설가 백민석의 서용선론 [그림 숲의 야수] 수록 백민석 소설가는 1995년 청담동의 한 갤러리에서 서용선의 그림을 처음 마주한 후, 소설과 에세이에서 서용선의 작업을 언급하며 주목해 왔다. 소설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의 첫머리에서 청담미술제의 수십 개 화랑을 한나절 내내 도보 순례하던 주인공 ‘나’의 입을 빌려 백민석은 이렇게 말한다. “지하철 안의 승객들을 2차원적으로 펼쳐 놓은 서용선의 작품은 나중에 베끼려고 남겨뒀다.”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음악인 협동조합 1·2·3·4』(문학과지성사, 1997), 12쪽 그리고 마음 속에 베껴놓은 그림에 대해 훗날 미술 에세이를 통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1995년, 서미 갤러리에서 열린 서용선의 전시. [도시에서]의 배경도 앞선 공포영화의 장면처럼 도심의 거리다. 노란색 차선이 한편에 보이고 사각형의 그리드는 보도블록이다. 횡단보도는 아니지만 행인들은 일제히 한 방향을 향해 걷고 있다.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느낌은 리플릿을 통해 봐도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를 바가 없다. [도시에서]가 자아내는 공포영화와도 같은 감정은 우선 원근감과 부피감이 파괴된 2차원의 평면으로 구현된 세계에서 비롯된다. 보도블록이나 노면에 표시된 차선처럼 행인들 역시 평면이라는 정체성을 갖는다. 행인들은 개개의 개성은 무시되고 정형화된 캐리커처로 남는다. 이 왜곡된 세계에서 주체는 평면화됨으로써 물질화되고, 정형화됨으로써 획일화된다. 이때 주체는 몰개성의 평면적 존재라는 점에서, 그림자나 다름없게 된다.” (중략) 서용선의 [도시에서]가 주는 두려운 낯섦은 왜곡된 양식에만 그치지 않는다. 색채도 그러한데, “빨강, 파랑, 노랑의 강렬하고 과감한 색감의 터치(는) (…) 색조 자체만으로도 심리적, 상징적 효과를 발휘한다.” 그림자나 다름없이 비인간화된 주체에서, 이상하리만치 강렬한 생명력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색채 때문이다. 그림자에는 입이 없지만 관람자들은 색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두렵고도 낯선 느낌을 받는다. 색을 통해 주체들이 비명을, 고함을, 비언어적인 존재증명을 하는 것 같다. 「공허라는 두렵고 낯선 그림자」 『리플릿; 바깥을 향해 읽어라』(한겨레출판, 2017) 106~108쪽 오랜 세월을 지나 성사된 화가와 소설가의 만남이 이 화집을 통해 이루어졌고 본격적이고 구체적인 작품 이야기가 에세이 「그림 숲의 야수」를 통해 펼쳐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