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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독보적인 연구 분야로 떠오른 서사적이며 표현적인 역사화
1 계유정난 역사화, 서용선의 역사 그리기 …… 정영목 2 단종복위 김시습과 ‘자규사’ …… 심경호 3 유배의 길 서용선의 역사화: 역사적 사색, 이해의 조건 …… 최윤정 서용선의 생생한 생각들: 단종 역사 드로잉 …… 강주연 4 역사의 창 우리는 왜 500년 전 죽은 어린 왕을 이렇게 오래 기억하고 되살리는가?…… 김효원 단종과 계유정난 그림_ ‘계유정난의 역사화 제작’에 관하여 …… 서용선 서용선의 단종 그림 전시 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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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선의 역사화는 서사적이며 표현적이다. 때문에, 읽어야 할 작품이지 보고 느끼기만 할 작품은 아니다. 작가의 역사화에서 우리는 ‘비극’의 진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문학보다도 ‘사건’과 ‘상황’의 실체를 보다 적극적이며 직접적으로 느끼며 알리고자 하는 화가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작가는 기존의 ‘상징적인 표현’과 함께 회화가 언어보다 관람자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는 사실과 기록으로서의 시지각적 용이함을 작품에 담아내는 것에 오랜 시간 몰두해왔다. 시기에 따른 약간의 형식적인 변화가 있기는 하나 ‘서술’과 ‘재현’ 그리고 ‘압축’과 ‘표현’이라는 기능을 발휘함으로써 역사적 실체에 다가가려는 작가의 노력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p.3 주제의 측면에서 비극의 역사적 서술성이 사라져버린 현대미술의 황폐함 속에 단종의 사실(史實)을 통해 인간의 원천적인 슬픔의 문제를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란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일부 선배, 동료 화가들이 참여 제작한 역사기록화들의 문제점을 익히 파악하고 있었던 바 그들과 주제와 형식이 다른 본격적인 역사화를 그리고 싶었다. 서용선은 줄기차게 영월을 들락거렸다. 그는 기록적인 차원에서의 역사 공간이 아닌 단종의 체취가 묻어나올 법한 역사적 슬픔이 현재의 서사적 슬픔으로서 자신의 가슴에 와닿기를 원했다. 작가는 영월 땅의 흔적들에서 상상으로 느끼는 당시의 정황과 지금까지의 단종에 관한 선조들의 역사적 자취를 수집·종합해 그것이 가닥으로 잡혀 자신의 조형언어로 표출하기를 원했다. 역사적 자취를 수집하고 작품을 구상하는 작가의 태도는 ‘인문학적’이다. 그가 영월을 벗어나 전국 방방곡곡 단종과 사육신, 생육신 등의 주변 인물들뿐만 아니라 세조의 행적까지도 찾아 나서는 진정성의 태도는 인문학적이라 할 만하다. ---p.99 단종은 처음에 청령포에 거처했으나 홍수가 나면 물에 잠길 우려가 있다고 해서 객사의 동헌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때 단종은 영월 객관 북쪽의 매죽루에 올라 사람을 시켜 피리를 불게 하고 슬픈 심경을 위로했다. 매죽루를 지금은 자규루라고 부른다. 단종이 그곳에서, 촉나라 임금 두우杜宇가 신하에게 쫓겨나 죽은 뒤 자규로 환생하여 밤마다 피나게 운다고 하는 고사를 떠올리며 다음 시를 읊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세간에는 불과 열두 글자뿐인 다음 시구가 널리 알려져 있다. 月白夜 蜀魂啾 含愁情 依樓頭 (달 밝은 밤, 촉왕 혼령(자규)이 울 때 수심 가득 머금고 누대 머리에 기대선다.) 단종의 자규사子規詞는 실제로는 조금 더 길고, 하나가 아니라 여러 수가 전한다. ---p.203 과거는 지나간 사실의 집적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서용선의 작품을 통해 현재의 질문을 통과하며 새롭게 읽히는 대상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전환은 관람자로 하여금 자신의 역사 인식과 윤리적 감수성을 동원해 작품과 관계 맺도록 이끈다. 단종의 죽음과 계유정난이라는 역사 서사는 회화적 구성 속에서 정치적·존재론적 구조로 재편되고, 그 과정을 통해 역사는 현재적 의미를 획득한다. 그의 작업은 회화를 매개로 역사 텍스트와 오늘의 관람자가 마주하는 장을 형성하며, 역사 이해가 삶 속에서 수행되는 사유의 과정임을 드러낸다. 관람자는 그 관계망을 따라 사건의 의미를 탐색하고, 그 탐색은 다시 자신의 현재적 위치를 성찰하게 한다. 이처럼 과거는 현재의 문제의식과 얽히며 지속적으로 재구성되고, 자기이해를 향한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유의 운동으로 전개되는 측면을 보여주기에, 그의 작업은 삶의 조건과 의미구조를 시각적으로 탐구하는 회화적 사유이자 인간 존재 접근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교차하는 이해의 장이 된다. ---p.294 작가가 역사 시리즈 중 특히 단종(노산군) 주제의 작업에 가장 긴 시간 폭넓은 조사와 애착을 쏟은 만큼, 현재까지 단종 드로잉 작업은 무려 390여 점에 이른다. 이는 40여 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의 흐름을 내재하며, 처음 단종 그림이 나오기까지 바탕이 되어 준 1984년의 드로잉 습작들로부터 사건의 중심인 계유정난의 〈계유년〉 드로잉, 최근에 제작한 〈오세암〉 등의 신작에 이른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그의 작품들은 강렬한 색채의 표현성이 짙은 회화였다. 그에 관련되었지만 잘 볼 수 없었던 드로잉을 함께 놓고 본다면, 상호 간 조형요소의 변화 혹은 직접적으로 포착된 생각으로부터의 의식적 흐름과 같은 간극이 드러나 보일 것이다. 지금까지 작가의 작업에 대한 수많은 고찰이 있어왔음에도, 단종 드로잉에 관한 고찰은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드로잉이라는 방식과 서용선 예술 화두의 정점인 역사 주제의 특성상, 그 근원에서 깊이 소통하는 일임은 분명해 보인다. 낯선 단종 역사와 서용선의 생생한 생각들은 어떻게 그림의 공간에서 만날 수 있으며, 지금도 어떤 예술적 화두로서 새로운지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p.298 유배 끝에 생을 마감한 단종의 비극적 삶은 민간의 연민과 애도를 불러일으켰다. 그 감정은 세월이 흐르며 설화와 신앙의 형식으로 재구성되었고, 마침내 단종은 태백산의 산신(山神)으로 부활했다. 이는 영월과 태백 일대에서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민간 신앙으로, 역사적 인물에 대한 기억이 신격화 과정을 거쳐 지역의 수호신으로 자리잡은 사례라 할 수 있다. 결국 단종의 산신 전승은 단종의 죽음을 애도한 민중의 마음이 세월 속에서 신화로 변모한 결과이며, 태백산이라는 공간을 통해 구체적 장소성을 얻었다. 그는 태백산의 수호신이 되어 오늘도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지켜주고 있다. ---p.358 세조 측은 왕권을 안정시켜 조선왕조를 지속시켰으나 언론 통제와 폭력에 의한 정적 제거 등 반인륜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사례를 만들어 냈다. 또한 정통성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 명나라로부터 왕위 계승을 인정받고자 한국 고유의 세계관보다는 중국 중심의 성리학적 세계관으로 역사 기록을 좁혀놓았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세종 때부터 시작된 ‘고려사’ 기술에 있어서도 세조 측은 김종서·황보인 등의 세력과 의견 대립이 있었다. 이들의 축출, 숙청은 조선시대의 세계관이 신화와 고조선 시대 같은 고대에 대한 시야를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세조의 왕권 찬탈은 신화의 세계와 기억의 담론들을 현저하게 축소시켰다. 이는 이후 한국인의 신화에 관한 상상력이 빈약해진 이유가 되기도 했다. 따라서 무력에 의한 세조의 왕위 계승은 인륜 문제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일반 백성의 세계관을 좁혔다는 문제 역시 가지고 있었다. ---p.3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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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어가는 계유정난, 그리고 단종애사
1)계유정난 이 책에서는 서용선의 ‘단종 그림’을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문을 여는 그림은 1453년의 비극적 사건을 붓으로 반추하는 화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계유년 그리기〉다(10쪽). ‘조형’으로 역사에 개입하며 해석하는 작가의 ‘서사적 자화상’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역사적 사건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기억과 기록, 상상 속에서 작동되기에 단지 작가에게만 적용되는 일이 아니다. 기억을 갖고 있는 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도 역사에 개입하며 각자의 ‘서사적 자화상’을 만들 수 있다. 1장의 제목은 비극의 서막인 ‘계유정난’이지만, 화가는 그 이전의 배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다양한 인물을 호출한다. 이를테면 윗세대를 그린 〈세종과 양녕〉(12쪽)은 어떤 배경으로 연결될까. 양녕은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며 권력에 초탈한 인물로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한편으로 수양을 부추켜 조카를 죽이게끔 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나의 결로 단순하게 해석될 수 없는 복잡한 인간사, 그 이율배반성을 바라보는 화가의 의식이 드러난다. 문종이 승하하며 세자의 앞날을 부탁하는 〈고명〉(16쪽), 정난을 모의하는 수양대군 일파의 긴장된 모습, 살해되는 김종서와 고명대신들, 그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단종의 불안정한 심리가 드러나기도 한다. 2)단종복위 2장 ‘단종복위’에서는 왕이었던 자와 왕이 된 자,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신하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성삼문, 이개 등 사육신의 처절한 고통이 서용선 특유의 강렬한 원색과 거친 붓질로 아프게 되살아난다. 이어서 ‘역모의 땅’으로 불리게 된 순흥에서 있었던 금성대군과 이보흠의 복위 운동의 실패, 생육신의 대표격인 매월당 김시습의 고절한 모습도 주제로 담겼다. 서용선의 인물들은 때로는 각각의 마음 속 풍경을 드러내며 독립적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벌어진 사건의 흐름이 재구성되어 종합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3)유배의 길 작품집의 클라이맥스라고도 할 수 있는 3장은 영화 〈왕이 사는 남자〉에도 등장했던 시공간과 인물들이 주를 이룬다. 화가는 영월 청령포로 떠나는 단종 일행과 그를 바라보는 백성들의 모습과 표정에서 그들의 생각을 읽어내게 만든다.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을 달래면서 두견새를 노래했다던 매죽루(자규루)에서의 단종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246, 248쪽),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 청령포의 풍경도 흥미롭다. 폐위된 왕을 가두었던 공간은 때로는 단순하고 명확한 색면의 산과 물 속에 덩그렇게 남은 집 한 채로 그려지고, 때로는 현재를 살아가는 화가가 그곳의 소슬한 바람결까지 느껴지게끔 그린 생생한 현실 속 풍경화로 나타난다.(252~267쪽). 이 장에서는 무엇보다 40년째 이어지고 있는 단종 연작의 출발점인 작품이 등장한다. 서용선은 1986년 청령포 물가에 앉아서 단종 이야기를 들으며 강물에 시신이 떠내려가는 환영을 보는 듯한 강렬한 체험을 했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역사와 비극을 그려야겠다는 실마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 첫 작품이 서강의 푸른 물살 속에 붉은 알몸의 시신이 되어 일렁이듯 떠도는 〈청령포, 노산군〉이다.(269쪽) ‘절망’이라는 부제가 붙은 작품 〈노산군〉에는 세상에 작별을 고하듯, 혹은 하고 싶은 말이 아직 남았으니 잡아 달라는 듯, 왼손 하나만 푸른 강물 위로 솟아 나왔다.(281쪽) 4)역사의 창 마지막 장 〈역사의 창〉은 단종 사후와 복권, 그리고 남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처음 등장하는 인물은 소년 왕의 마지막을 지켰다고 전해지는 엄흥도다. 3장에서 가로놓인 물길을 두고 마주보는 모습으로 나타난 엄흥도는(274쪽), 단종의 시신을 거두면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에도 어느 달밤, 결의하듯 웃통을 벗고 청령포 앞 강물 속으로 뛰어들려고 한다(310쪽). 거침없이 물살을 헤치며 떠내려가는 단종을 붙잡는 모습(312쪽), 축 늘어진 소년의 시신을 들쳐 메고 나무를 헤치며 산을 오르는 엄흥도의 모습이 시공간을 넘어 우리에게 전해진다.(314쪽) 그밖에도 단종을 모시던 궁녀와 시종이 봉래산 자락 바위에서 몸을 던진 모습을 그린 〈낙화〉(317쪽)도 등장한다. 단종이 죽은 후 태백산의 산신령이 되었다는 전설, 그의 묘지인 장릉의 풍경, 그리고 세조의 이야기가 담긴 상원사를 지나 책을 닫는 마지막 그림은 〈역사의 창, 중앙청〉(347쪽)이다. 1990년대 초반 경복궁이 보이는 중앙청(구 조선총독부 건물) 창을 그리면서 작가는 조선 시대와 현대를 이어주는 역사의 창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단종애사 역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남겨진 기억과 흔적의 이야기다. 5)서용선의 역사화와 단종애사를 조명하는 여섯 편의 글 이 책에는 서용선의 단종 그림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여러 분야의 필자가 쓴 여섯 꼭지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 글은 서용선의 단종 연작 및 역사화를 초기부터 주목했던 미술사학자 정영목의 「역사화, 서용선의 역사 그리기」이다. 이 책의 기획자이자 엮은이기도 한 정영목의 글은 역사화라는 미술사의 장르를 개관하며 ‘현대 역사화’로서 서용선의 작품을 자리매김한다. 또한 언문 가사 형태로 전해져 오던 〈한양가〉의 필사본(필자 정영목의 모친이 필사) 『한국 28대 왕세계』 속 단종 관련 기사 전문을 따라가면서 사건과 그림을 해설하며 책 전체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김시습 평전』에서 ‘고독한 자유인’ 김시습의 삶을 불러낸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명예교수 심경호는 「김시습과 자규사」에서 생육신 김시습에 초점을 맞춰 ‘단종애사’를 재구성한다. 특히 단종이 불렀다는 자규사가 이름 없는 선비나 민중이 널리 부르게 된 노래로 바뀌는 과정에서 김시습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흥미롭게 전해 준다. 미술비평가이자 큐레이터 최윤정의 글 「서용선의 역사화: 역사적 사색, 이해의 조건」은 서용선의 작품이 역사적 사건을 매개로 인간을 이해하는 조건을 회화적으로 재구성한다고 밝힌다. 사건의 재현을 넘어 “삶의 조건과 의미구조를 시각적으로 탐구하는 회화적 사유이자 인간 존재 접근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교차하는 이해의 장“으로 단종 그림을 새롭게 정의 내렸다. 아트디렉터 강주연은 「서용선의 생생한 생각: 단종 드로잉」에서 완결된 조형적 요소가 많은 페인팅보다 드로잉이 가진 선의 감각성에 주목하면서 특히 마음속의 불분명한 구상을 선명하게 하는 정신성을 강조한다. 즉 서용선의 단종 드로잉은 인문학적 연구와 현장을 누빈 체험으로 엮어낸 “생각과 감각의 뭉치”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언론인이자 영월 출신의 작가 김효원은 「우리는 왜 500년 전 죽은 어린 왕을 이렇게 오래 기억하고 되살리는가」에서 “비록 어린 나이에 친족의 손에 무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그 비극성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영원히 잊혀지지 않고 되살아나는 불멸의 왕이 된” 신격화 과정을 살펴봤다. 마지막으로 작가 서용선이 단종과 계유정난 그림의 제작 동기와 역사, 역사화에 대한 관점을 서술한 「단종과 계유정난 그림 ‘계유정난의 역사화 제작’에 관하여」를 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