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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상권 차례
해제 일러두기 제1호 1. 서양 글자로 국어를 표기하자 (니시 아마네) 2. 개화의 정도에 따라 문자를 개량해야 한다 (니시무라 시게키) 제2호 1. 후쿠자와 선생의 논의에 답하다 (가토 히로유키) 2. 학자직분론에 대하여 (모리 아리노리) 3. 학자직분론에 대한 평 (쓰다 마미치) 4. 비학자직분론 (니시 아마네) 제3호 1. 개화 제1화 (모리 아리노리) 2. 진언일칙 (니시무라 시게키) 3. 민선의원설립건언서에 대한 평 (모리 아리노리) 4.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유훈 (스기 고지) 5. 개화를 진전시킬 방법에 대해 논하다 (쓰다 마미치) 6. 옛 상공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니시 아마네) 제4호 1. 인민의 자유와 토지의 기후는 서로 관련이 있다 ① (미쓰쿠리 린쇼) 2. 블룬칠리 씨 『국법범론』 발췌 번역 민선의원 불가립의 설 (가토 히로유키) 3. 프랑스인 ‘쉴리’ 씨의 국가가 쇠미하게 되는 징후를 든 조목은 다음과 같다 (스기 고지) 4. 종교론 ① (니시 아마네) 5. 벽돌 건물에 관한 설 (니시 아마네) 제5호 1. 보호세가 잘못이라는 주장 (쓰다 마미치) 2. 종교론 ② (니시 아마네) 3. ‘북아메리카합중국의 자립’ (스기 고지) 4. 인민의 자유와 토지의 기후는 서로 관련이 있다 ② (미쓰쿠리 린쇼) 5. 미국의 정치와 종교 ① (가토 히로유키) 제6호 1. 출판의 자유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쓰다 마미치) 2. 종교론 ③ (니시 아마네) 3. 미국의 정치와 종교 ② (가토 히로유키) 4. 종교 (모리 아리노리) 5. 필리모어 『만국공법』 중 종교를 논하는 장 (발췌 요약) (시바타 씨) 제7호 1. 독립국 권의 (모리 아리노리) 2. 무관의 공순 (가토 히로유키) 3. 개화를 앞당기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인민의 중론이다 (버클의 『영국개화사』에서 초역) (미쓰쿠리 린쇼) 4. 남북아메리카 연방론 (스기 고지) 5. 고문론 ① (쓰다 마미치) 6. 히라가나의 설 (시미즈 우사부로) 제8호 1. 복장론 (쓰다 마미치) 2. 처첩론 ① (모리 아리노리) 3. 교육담 (미쓰쿠리 슈헤이) 4. 공상에 관해서 기록하다 (스기 고지) 5. 종교론 ④ (니시 아마네) 6. 근본은 하나가 아니다 (쓰다 마미치) 제9호 1. 운송론 (쓰다 마미치) 2. 리버티설 (미쓰쿠리 린쇼) 3. 종교론 ⑤ (니시 아마네) 4. 정론 ① (쓰다 마미치) 제10호 1. 고문론 ② (쓰다 마미치) 2. 참된 위정자에 관한 설 (스기 고지) 3. 서학 일반 ① (나카무라 마사나오) 4. 질의일칙 ① (사카타니 시로시) 제11호 1. 정론 ② (쓰다 마미치) 2. 처첩론 ② (모리 아리노리) 3. 서학 일반 ② (나카무라 마사나오) 4. 질의일칙 ② (사카타니 시로시) 제12호 1. 종교론 ⑥ (니시 아마네) 2. 정론 ③ (쓰다 마미치) 3. 서학 일반 ③ (나카무라 마사나오) 제13호 1. 미국의 정치와 종교 ③ (가토 히로유키) 2. 상상론 (쓰다 마미치) 3. 민선의원을 세우는 데 먼저 정체를 정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의문 (사카타니 시로시) 『메이로쿠잡지』의 기고자들 역자 후기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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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 학술, 문예 모임을 결성하는 것은 오늘을 그 시작으로 한다. 그리고 모임을 함께하는 현자 여러분들은 모두 천하의 명사들이다. 모두 탁월하고 훌륭한 논의, 오랫동안 회자될 만한 이야기가 반드시 이 모임에서 나올 것이라고들 말한다. 부디 여러 선생의 탁식과 고견으로 몽매함의 잠을 깨우고 천하의 모범을 세워서 식자의 바람이 헛되지 않게 되기를 기원한다.
--- p.59~60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의 상황은 어떠한가. 인민 가운데 스스로 무언가 하려는 기개가 있는 자는 매우 부족하고, 아니 부족할 뿐만 아니라 거의 전무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심히 우려할 만하다. 이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제군주(無限君主)의 전통으로 인해 정부의 명령이면 설령 무리한 것이라 해도 따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있는 힘껏 인민 자유 자주의 설을 주장하여, 가령 정부의 명령일지라도 무리한 것이라면 거부할 권리가 있음을 알게 하고, 우리 인민으로 하여금 자주 자유의 기상을 기르게 하는 것은 우리가 실로 바라는 바이다. --- p.73 야만의 정치는 사람을 속박하고, 문명의 인민은 속박을 벗어난다. 문명과 야만의 구별은 오직 인민의 언행이 자유로울 수 있는지 없는지에서 찾을 수 있을 뿐이다. 무릇 사람의 정신이란 원래 자유로운 것이다. 군자는 세상일을 벗어나 한가로이 살아가며 하늘을 공경하고 올바름을 생각한다. 대악마왕이라도 절대 그 자유를 방해할 수 없다. 다만 그 언행에서 벗어나게 되면 권위를 행사하여 금지하거나, 혹은 법례를 정해서 억제할 뿐이다. --- p.157 유독 우리 나라만 다른 나라의 문장과 글자를 취하자는 것은 어째서인가. 생각하건대, 오랫동안 굳어진 관습은 스스로 고칠 수 없다는, 애국심이 가장 부족한 마음에서 나온 발상일 것이다. 무릇 읽기 쉽고 알기 쉽게 말과 같은 문장을 써서 천하에 퍼뜨리고 인민의 지식이 진전하도록 하는 것은 학자와 교사의 임무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버리고 자기가 배운 데에 기대어 기이한 글자와 신조어를 섞어 쓰는 것을 뻐기는 자는 대개 자기 직무를 게을리하는 자라 하겠다. 마땅히 스스로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204 요사이 민선의원의 설을 보면, 신문지상에서 여러 논자가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자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자는 없다. 우리와 같은 하급관리가 알 수 있는 바는 아니겠지만, 정부는 역시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인 듯하다. 그렇지만 시기상조라는 것은 훗날에는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일 것이다. … 만일 시기상조이지 틀린 것은 아니라고 한다면, 마땅히 그 적당한 정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치료법과 병증에 대해 상세히 논하지 않으면서 쓰러지기를 기다리는 이치는 없을 것이다. --- p.297 상상(想像)은 눈을 감고 생각할 때 우리가 만나는 형상이나 사물의 내력으로, 신기루와 매우 유사하다. 신기루는 공중에 실제로 누각이 있지 않지만 뚜렷이 그 형상을 드러내는, 공기를 거울 삼아 비치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우리 마음속은 결코 천지만물이나 인간만사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의 흔적들이 아니지만, 눈을 감고 생각하면 만나지 못할 것이 없으니, 이는 모두 마음속의 투영, 즉 상영(想影)이라는 뜻으로, 오모카게(おもかげ)라고 발음한다. 사람들이 상상을 오모이야리(おもいやり)라고 새겨서 읽지만 이는 잘못이다. 오모이야리는 고어(古語)에서는 번민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일반적으로는 용서한다는 뜻이다. --- p.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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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로쿠잡지(明六雜誌)』는 1874년(메이지 7) 4월 2일 창간호를 시작으로 1875년(메이지 8) 11월 14일 정간 시까지 모두 43호가 발행된 잡지다. 이 잡지는 1873년(메이지 6) 7월에 미국에서 귀국한 주미대리공사 모리 아리노리가 유럽과 미국에서의 체험을 기초로, 일본의 교육개혁을 목표로 하여 같은 해 8월에 동지들과 함께 설립한 학술결사 메이로쿠샤가 만들어지면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국가 건설을 위해 국민 전체의 지적 수준 향상과 그것을 위한 교육개선의 필요를 통감한 모리는 해외의 학회에서 학자 및 지식인들과 교류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지식인들의 고립성과 폐쇄성을 타파하고, 지식인 간의 학문적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학술결사를 설립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 결성된 모임은 매월 1-2차례 정도의 정기집회를 가졌고, 이 모임이 1873년에 발족했기 때문에 메이지 6년(메이지 로쿠넨)에서 따 메이로쿠샤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학습한 내용을 널리 세상에 알리고 지식을 보급하는 것으로 세상의 진보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낙관론자들이었다. 이 시대 서양에는 자연과학적 지식을 확대하고 그것을 사회에 적용하여 ‘문명’을 ‘진보’시킬 수 있다고 믿는 낙관주의적 목적론이 유행하였고, 그것이 서양의 문명을 표준으로 하는 것이었던 만큼, 그것을 일본에서 가능케 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방법은 무엇인지가 이들 지식인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것은 흔히 ‘문명개화’라는 단어로 표현되었으며, 이 단어 자체가 메이로쿠샤의 지식인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추진하는 목표가 되어 있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메이로쿠샤 지식인들이 그 ‘교육의 진보’를 위해 지식을 보급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추진했던 것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그중 하나는 ‘연설회 개최’였고, 다른 하나는 ‘잡지의 발행’이었다. 『메이로쿠잡지』는 이런 동일한 목적을 공유한 성원들이 스스로 획득한 지식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보급함으로써 이른바 ‘문명개화’를 촉진하는 수단으로 삼고자 했던 것인데, 그러나 목적과 수단은 공유되었을지언정, 그 ‘문명개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견이 제시될 수밖에 없었고, 이런 논의의 다양성과 논쟁이 분출되었던 것이 이 잡지의 특징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잡지는 어떤 단일한 논의나 의도를 가진 것으로 읽어 내기보다는, 그 안에 어떤 종류의, 얼마나 다양한 ‘문명’의 궁리들이 존재했는지를 읽어 내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보다 유효한 독해법이 될 것이다. 또 이 잡지에는 당대 일본뿐 아니라 서양에서 유행하던 지식이나 사상들이 다채롭게 소개되고 있어서, 우리에게 현재 ‘상식’이나 ‘교양’으로 정착해 있는 지식의 기원과 전파의 양상을 살펴보는 데 흥미로운 단서들을 제공해 준다. 이 잡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지적 배경으로 보자면 서양학자부터 한학자까지, 연령대로 보아도 당시 27세의 모리 아리노리부터 52세의 사카타니 시로시까지, ‘남성’이라는 공통점 이외에는 모두 다른 환경과 입장에 처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지식’에 대한 왕성한 욕구를 지니고 있었고, 당면한 과제로서 ‘문명개화’라는 목표를 공유했다. 메이로쿠샤라는 모임과 그 결과물로서의 잡지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지만, 그 경험과 시행착오가 이후 근대 일본의 지식계, 학술계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지식인들의 활동에 대해 이후 철학자 오니시 하지메는 “우리 나라 유신 이후로 십수 년간은 오직 계몽적 사조의 정신으로 돌진”하였다고 평가했다. 이것이 일본에서 ‘계몽’이라는 단어의 첫 사용 사례이자 번역 사례임을 생각하면, 앞에서 살펴본 일련의 움직임들이 근대 일본에서 전개되었던 초기 ‘계몽’의 양상들이며, 『메이로쿠잡지』는 이런 양상들을 생생하게 담아 전해 주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