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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장 5·16과 군정기 박정희 정권의 담론 2장 5·16 군사 정부의 사회 개혁 정책 3장 유신 체제의 등장과 김대중 납치 사건 4장 유신 체제의 구조와 작동 기제 5장 긴급조치 9호의 지배 구조와 이데올로기 6장 유신 체제와 부마항쟁 7장 박정희 정권의 ‘호국 영웅 만들기’와 전통문화유산 정책 8장 박정희 체제의 민족주의 논문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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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박정희가 한국인들을 굶주림에서 구해준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한강의 기적 이면에 자리한 부정적 행위들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외면한다. 일부 학자들은 저개발국의 초기 경제발전 과정에서 인권이나 민주주의는 사치이고 우선순위에서 뒤처지는 가치라고 말한다. 그러나 경제성장을 위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무시한 박정희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한국 현대사에 많은 부정적 유산을 남겼다. 정보기관을 통한 공작 정치,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무조건적 복종을 강요하는 군사주의 문화, 위수령과 계엄령을 통한 민주주의 탄압, 국민 기본권의 일상적 억압, 삼권 분립을 파괴한 유신 체제의 ‘제왕적’ 대통령, 검열, 광고 탄압, 언론사 회유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 언론 통제와 탄압 등 너무나 많다. 더 큰 문제는 21세기인 현재도 그런 상태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정치인과 박정희를 지지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의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박정희와 박정희의 시대를 연구해야 한다.
--- p.8 군정은 재건국민운동의 이름 아래 실시한 여러 사업을 통해 국정 운영에 도움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우선 행정 단위의 중앙부터 말단까지 연결시키는 전국 조직을 건설하고 운용한 경험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 같은 전국민적 운동을 조직한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또 향토 개발 사업과 학생, 교육자, 노동자의 총궐기대회 등을 통한 국민 동원 방식도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향토예비군, 학도호국단, 민방위 등 다양한 국민 동원 정책과 매우 유사하다. 국민표준의례와 신생활복 제정, 시간관념 고취 운동, 건전가요 촉진 사업 등 국민들의 사고와 신체를 정형화하려 한 경험도 역시 그 뒤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이나 금지곡 선정 같은 정책과 유사하다. 결국 군정은 농어촌 고리채 정리 사업과 재건국민운동 등 사회 개혁 정책을 통해 하향식 정책을 진행함으로써 한계에 부딪쳤지만, 전국적 조직을 건설하고 운영한 경험과 국민을 동원하고 통제하는 경험을 통해 이후 국정 운영의 토대를 마련했다 --- p.61 박정희 정권이 이렇게 갑자기 반상회를 재정비해 전국적으로 개최한 이유는 단순히 주민들의 친목을 돈독히 하고 공동 관심사를 함께 토론함으로써 지역 발전을 꾀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물론 반상회를 통해 주민들이 주기적으로 한자리에 모여 마을의 개발 사업을 논의하고 결정해 실천함으로써 새마을 사업을 실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한 주민들의 애로 사항과 숙원 사업을 청취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 내용을 행정에 반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반상회의 내용은 반공 교육, 국정 홍보, 국민의 행동 지침이 주였고, 특히 비상시 행동 요령, 간첩과 수상한 사람 신고 요령, 유언비어 신고 의무화, 불순한 언동 금지 등이었다. …… 반상회는 …… 정부 정책의 홍보나 공지 사항의 전달뿐 아니라 주민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여론을 청취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 p.128 역사의 이용은 박 정권이 자신들의 담론을 전달하는 데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국민들은 민족 영웅의 초상화와 유품, 영웅을 기리는 사당과 그곳에 걸린 초상화나 역사 속 전투를 묘사한 그림을 보면서 그 영웅의 ‘역사적 실존’을 직접 확인할 뿐 아니라 국사 교과서를 통해 ‘절절한’ 사연이 담긴 이야기를 배우거나 《난중일기》 같은 서적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일체감을 갖게 됐다. 따라서 호국 위인과 유적을 이용한 전통문화유산 정책은 폭력이나 강제와는 차원이 다른 효과적 수단이었다. 물론 모든 국민이 그런 담론을 내면화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최소한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해서 박 정권이 만든 해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한국인들은 국정 교과서를 통해 한국사를 배웠고, 그런 사실을 진실로 생각하고 수용했다. 더욱이 일반 국민들은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상이한 해석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 p.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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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신화 ― ‘적폐 원조’ 독재자와 ‘조국 근대화’ 영웅 사이
박정희 시대를 입체적으로 다룬 『박정희 대 박정희』는 군정기 연구(1장, 2장), 유신 시대 연구(3장~6장), 박정희 시기 민족주의 연구(7장, 8장) 등 크게 셋으로 나뉜다. 먼저 군정의 담론과 정책에 주목한다. 그동안 박정희 시기의 군정기 연구는 쿠데타의 원인이나 주도 세력에 집중한 반면 이 책은 군정의 담론과 정책에 초점을 맞췄다. 1장 〈5·16과 군정기 박정희 정권의 담론〉은 군정기를 세 시기로 나눈 뒤 쿠데타 주도 세력이 만들어낸 담론, 곧 반공, 국민도의, 경제발전, 민주주의 등이 지닌 정치적 의미를 분석했다. 2장 〈5·16 군사 정부의 사회 개혁 정책〉은 군정이 야심 차게 추진한 사회 개혁 정책인 농어촌 고리대 정리 사업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한 이유를 살핀 뒤 재건국민운동이 진행되는 과정과 한국 사회에 남긴 유산을 고찰했다. 둘째, 박정희 신화의 주무대인 유신 시대를 다뤘다. 유신 시대 연구의 공백을 메우려 유신 체제의 구조와 기제 같은 구체적 현실에 주목했는데, 이런 시도를 통해 박근혜 체제의 권위주의 통치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다. 3장 〈유신 체제의 등장과 김대중 납치 사건〉에서는 유신 체제의 등장 원인과 김대중 납치 사건, 긴급조치를 다뤘다. 박정희 정권이 유신 체제를 선포하면서 강조한 국내외 조건, 유신 선포를 정당화하는 논리, 김대중 납치 사건의 구체적 실상, 긴급조치의 등장 원인과 내용을 고찰했다. 4장 〈유신 체제의 구조와 작동 기제〉에서는 정치(대통령 일인 지배의 제도화), 경제(국가의 포괄적 경제 개입), 사회(노동 부문의 배제) 영역으로 나눠 유신 체제의 반민주적 성격을 분석했다. 또한 유신 체제의 작동 기제를 ‘한국적 민주주의’, ‘총화단결’과 ‘국력배양’, ‘총력안보’로 구분해 통일주체국민회의, 유정회, 긴급조치, 중앙정보부와 내무부(경찰), 군사 교육, 민방위, 새마을운동, 반상회를 분석했다. 5장 〈긴급조치 9호의 지배 구조와 이데올로기〉에서는 긴급조치 9호 시기에 초점을 맞춰 지배 구조와 이데올로기 기제를 분석했다. 지배 구조는 학원 부문에서 학도호국단 부활, 교수 재임용 제도, 사회 부문에서 민방위대와 민방위 훈련, 주민등록 제도, 반상회, 사회안전법과 보호감호소,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등을, 이데올로기 기제는 새마을운동과 새마을 교육, 충효 교육을 살폈다. 6장 〈유신 체제와 부마항쟁〉은 1979년 10월에 터진 부마항쟁을 다뤘다. 항쟁의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배경으로 군사 문화 확산과 유신 체제를 분석했고, 정치적 배경으로 1970년대 선거 결과에 나타난 부산의 야당 성향이 김영삼의 의원직 박탈을 계기로 폭발한 점을, 경제적 배경으로 중화학공업화에서 소외된 결과 나타난 경제 침체를 살폈다. 또한 부마항쟁이 가져온 박정희의 몰락과 신군부의 집권에 관련해 하나회의 등장과 권력 내부의 갈등을 고찰했다. 마지막 주제는 박정희 시기의 민족주의다. 7장 〈박정희 정권의 ‘호국 영웅 만들기’와 전통문화유산 정책〉은 역사를 이용해 정권 유지에 필요한 담론을 퍼트린 과정을 살핀다. 이순신을 ‘호국 영웅’으로 만든 과정, 1970년대에 발굴한 ‘호국 위인’과 ‘민족사상의 선현’을 비롯한 유적들, 그 유적들이 지닌 정치적 의미와 그것들을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하려 한 담론들을 고찰했다. 8장 〈박정희 체제의 민족주의〉는 박정희 정권 시기를 ‘국가재건’기(1961~1963년), ‘조국근대화’기(1964~1971년), ‘국민총화’기(1972~1979년)의 세 시기로 구분한 뒤 주요한 민족주의 담론을 분석하고, 시기별 담론 변화의 요인을 외적 요인(미국의 대한 정책), 남북 관계적 요인, 국내적 요인으로 구분해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