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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지리’하지 않은 공감의 지리학
1장 / 떠남 ― 세 도시 이야기 “나라를 잘못 만나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조선족, 중국 조선족|런던, 칭다오, 서울|눈 굴리기, 눈 돌리기 2장 / 삶을 떠나다 ― 살 만한 곳 찾아 어쩌다 보니 “왜 엄마는 아직 여기 있어?” ― 내모는 힘과 당기는 힘|왜 굳이 런던, 칭다오, 서울|“이제 살았구나” ― 런던 뉴몰든에서 보낸 첫날|“영국 가면 호미로 금을 긁는다” ― 리경옥 씨 이야기|은인, 얌체, 사기꾼 3장 / 건너온 사람들― 합법과 불법 사이에 머물다 합법, 불법, 초법|“목숨 걸고 왔다” ― 스무 나라 찍고 영국으로 데려오는 브로커의 힘|신분 없는 사람들 ― 불법과 합법 사이 그 조그만 비자|“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 ― 법과 문화를 뛰어넘는 삶의 지혜|“큰일나는 것도 없어요” ― 북한 난민 신청의 유혹|“내가 불법이니까 나한테 말해요” ― 없는 듯 꽤 있는 서울의 불법 체류자|“이게 다 브로커 때문이다” ― 더 많은 돈을 쓰는 불법 체류자들 4장 / 모여 살기 ― 떠나온 이들의 방, 집, 동네 뉴몰든 함지박 식당 ― 지혜와 요령 사이 조선족의 런던살이|알고도 모르는 척 ― 조선족과 집 맡기의 경제학|같은 집 사는 사람, 같은 말 하는 친구|대림동 ― 서울 하늘 아래 조선족 동네|“요즘 이 동네 다 춘장 냄새예요” ― 장밋빛 인생에 끼어든 차이나 블루 5장 /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는 ― 적응, 동화, 비교, 분석 스카이프, 카카오톡, 페이스북 ― 다중 정체성과 미래의 다문화 사회|“한국 사람들도 힘들었을 거예요” ― 착취와 공생 사이에서|“우리는 조선족이라서 한 민족이니까” ― 칭다오로 간 조선족 구일 씨|“뿌 하우 이스” ― 칭다오로 간 한국인 사장들|여기가 한국도 아니고 우리 땅인데|“한족은 한국말 한국 사람은 중국말” ― 칭다오에서 사라지는 조선족 중간 관리자|도왔는데 오히려 설 자리가 없어졌다 6장 / 브리티시 차이니즈 코리언 ―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 조선족 아이들 월드컵과 조선족 ― 어느 나라를 응원하는지 묻는 다문화 사회|“둘 다 내 나라예요” ― 낳아준 어머니 한국, 길러준 어머니 중국|브리티시 차이니즈 코리언 ― 도대체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일까|“조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 나라 없는 사람들이 모인 런던 조선족협회|“삶의 운명을 개변하는 거지!” ― 조선족 여성이 얘기하는 조선족 7장 / 사람이 제도다 ― 조선족들하고 가까이 지내는 한국 사람들 당연한 다문화 혜택 대 다문화 쇼핑|조선족을 대표할 구 의원? ― 국적 취득한 조선족과 정치인이 하는 속계산|법은 멀고 사람은 가깝고 ― 조선족 돌보는 한국인 최성길 씨|우리 경찰 형님 ― 대림동 동포들하고 축구 하는 한범식 씨 8장 / 조선족의 조선족 ― 차별받는 다른 쪽 조선인, 탈북자 3등 국민 ― 조선족보다 차별받는 탈북자들|진짜 탈북자와 가짜 탈북자 ― 조선족과 탈북자 사이의 거리감 또는 존재감|난민들의 나라 영국의 끼리끼리 네트워크 9장 / 먼 거리 가족 ― 삶 속에 들어온 경쟁의 지리학 떨어져 사는 우리, 아직 가족일까|“잘 받았어. 고생했어” ― 가족의 곳간이 되다|우리는 아직 가족인가 ―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변하고 가족도 변한다|“떨어져 살 때보다 걱정이 두 배” ― 다시 합쳐도 걱정|가족의 재탄생 또는 시대병 10장 / “십자가를 찾아가라” ― 떠나온 이가 잡은 ‘하나님’ 뿌리 없는 이민자, 뿌리 깊은 종교|“한국 사람도 북한 사람도 아니었다” ― 뉴몰든 조선족 교회 박동욱 씨|‘조선족교회’에서 ‘한민족교회’로, 그러나 계속 있는 금|“교회 밥은 공짜 밥이었어요” ― 기독교 안에서 위안받는 리경옥 씨 이야기|김일성과 김정일 대신 ‘하나님’ ― 런던의 북한 교회|“이제는 익숙해져서 우리나라 같다” ― 쉼터와 교회, 서울 조선족의 안식처 11장 / 중국으로 돌아갈까? ― 돌아가려고 떠난 이들의 떠나오기 떠나기와 돌아가기|금의환향 ― 미루어진 마감과 실패한 꿈 사이에서|“가도 문제예요” ― 영국살이에 익숙해진 떠나온 이들|“여기는 자유가 있다” ― ‘왔다갔다’가 몸에 밴 서울 조선족 12장 / 남의 땅 나의 삶 ― 나그네는 한 나라에 머물지 않는다 역마살 ― 나그네 삶의 정체성|지정학적 나그네 ― 강하고 독하고 실용적인 조선족|“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 이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중간자들 13장 / 떠남 ― 이동과 흐름과 불안의 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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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데 갈 것도 없이 나하고 내 주변은 다 조선족 같았다. 나는 1998년 가을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떠났고, 2004년 겨울에 미국에서 영국으로 떠났으며, 2013년 여름에 영국에서 한국으로 떠나왔다. 조선족 연구를 할수록 그 사람들의 모습에, 내가 15년 동안 본 한국과 다른 나라 이민자들의 모습이, 작게는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 p.17 조선족 이동의 특징은 그곳이 어느 나라건 결국 한인 타운으로 이주한다는 점이다. 영국의 조선족들도 영국으로 이주했다기보다는 영국 안의 한인 사회로 이주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조선족들은 세계 여러 나라, 한인들이 모여 사는 도시라면 어디든 진출했다. 뉴몰든에 있는 한국 식당에 조선족들이 속속 들어갔다. 청소, 아기 돌보기, 집수리, 이삿짐센터, 술집, 마사지 숍 등 몸 쓰는 모든 직업군에 진출했다. 한국어를 할 수 있고 인건비가 싸니 한국인들도 조선족을 환영하고, 외국어가 자유롭지 않은데 일자리는 절실한 조선족도 한인 사회가 좋은 터전인 셈이다. --- p.43~44 “한국 사장님이 콜라를 식초라고 하면 식초라고 해야지 콜라라고 하면 안 돼요.” 틀린 말이라도 무조건 복종해야 자기에게 이롭다는 말이었다. 옳지는 않지만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그러려니 하는 일들, 이를테면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위계질서 때문에 조선족들은 힘들어했다. 중국에서는 다 평등하다고 배웠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다들 눈물을 많이 쏟았다. 빨리 하라고 몰아치기, 소리 지르기, 월급을 처음 말한 대로 주지 않기 같은 경험 때문이었다. --- p.121 조선족이라면 치를 떨거나 조선족을 품어주는 한국 사람들, 한국 사람들에게 고마워하거나 다시는 보고 싶어하지 않는 조선족들. 칭다오에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열심히 관찰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지난 20년 동안 2000명에서 20만 명으로 100배 늘어난 칭다오의 조선족, 70개에서 6000개가 넘게 늘어난 칭다오의 한국 기업인이 만났다. 런던처럼 둘 다 외국인인 상황은 아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허둥대는 모습은 비슷했다. 그리고 서로 원망했다. 그 원망은 결국 자기를 향해 있었지만. --- p.160 제 딸들로 가면 헷갈려 해요. (한숨) “너 어느 나라 사람이냐?” 이렇게 물으면 혼란스러워 해요. 영국 사람은 분명히 아닌데, 중국 사람이라고 하려니까 자기는 중국말을 하나도 못하고, 한국 사람이라고 하자니 한국에 가본 적도 없고 한국에 가족도 없기 때문이에요. 저한테 물어요. “엄마 난 어느 나라 사람이야?” 그럼 저는 그래요. “엄마는 ‘차이니즈 코리언’인데, 넌 ‘브리티시 차이니즈 코리언(British Chinese Korean)’이야.” 더 커서 민족성을 이해할 때가 되면 그러죠. “넌 코리언 맞아. 증조할아버지 때 함경북도에서 중국에 왔다가 이렇게 됐어.” --- p.169 런던에 사는 한국 사람, 조선족, 북한 사람이 한자리에서 만날 때가 있다. 이를테면 한국 사람이 이사할 때다. 이사할 한국 사람이 인터넷 재영 한인 사이트나 교민 신문에서 한국 이삿짐 회사를 찾는다. 영국 이삿짐 회사보다 훨씬 싸고 말이 통하기 때문에 한국 회사에 맡긴다. 이사하는 날 보면 이삿짐 나르는 직원들은 북한 사람이다. 자기들에게 낯선 단어를 들리는 대로 ‘넷타이’나 ‘콤푸타’ 등으로 상자에 적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북한 억양을 안 드러내려고 조심하는 그 사람들보다 더 북한 억양으로 말하며 청소하는 아주머니는 조선족이다. …… 이삿짐 회사에 조선족은 없느냐고 물어보니 시큰둥한 대답이 돌아왔다. “조선족들이 이런 일 하나요? 북한 사람들이나 하지.” 북한 사람은 조선족의 조선족이라는 말 같았다. -- p.207 북한 사람들에게 신앙생활은 낯설고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던 나는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북한에서 하는 많은 일이 기독교식이라는 말이었다. 수요 예배, 일요일 예배, 금요일 기도 같은 방식이 북한에서 하는 생활 총화하고 똑같다. 북한에서 김일성 우상화의 틀을 만들 때 기독교를 베꼈다는 설명이었다. 북한을 떠난 북한 사람들이 기독교의 십계명을 보면 자기네 십계명하고 거의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김일성이나 김정일 대신에 하나님을 넣으면 딱 맞는다. …… 한번 신앙이 생기면 더 잘한다고는 한다. 북한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살아와서 집단을 떠나지 않는다. --- p.274쪽 그 결정의 토대가 ‘지정학적 눈치’다. …… 조선족들 사이에는 ‘어디는 요즘 어떻다’고 하는 전세계적 ‘카더라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일단 이민자들은 내가 결행한 떠나기가 맞는 판단인지 불안하기 때문에 두 나라의 형편을 늘 비교하게 된다. 조선족은 두 나라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가능성을 열어두는 만큼 범위가 훨씬 넓어진다. 거기에서 도는 얘기는 다름 아니라 조선족이 가서 할 만한 일들이 지닌 전망이다. 국가별 발전 현황과 전망에 기대어 가늠한다. 탈북자들도 이 지정학적 촉을 세우고 정보를 공유한다. 조선족보다 더 빨리 공유하는 듯했다. 런던 뉴몰든에서 민박집을 하던 한국인은 한 탈북자를 친절하게 도와준 뒤 곧바로 많은 탈북자들이 몰려와서 깜짝 놀랐다. 런던에 있는 탈북자들 사이에는 또 다른 정보가 돌고 있다. “요즘은 스웨덴이 좋다더라. 그래서 그리로 많이들 간대.” --- p.2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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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티시 차이니즈 코리언 ― 돈, 비자, 집, 환율, 외로움, 외국어, 불안, 망설임
‘이동의 시대를 살아내는 사람들’을 표상하는 조선족은 경쟁의 지리학을 구성하는 주인공이다. 중국 동북 3성에 모여 살던 조선족은 이민자 밀집 지역이 있는 ‘초국적 도시’ 런던, 서울, 칭다오로 옮겨가고, 살아남느라 고생하며, 구차한 편법을 쓰고, 정체성을 고민한다. 저자는 조선족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살아가는 이민자들을 각각 다른 장소에서 만났고, 시간이 흐르며 일어난 변화를 담아내려 5년에 걸친 종단 연구(longitudinal study)를 했다. 한 번 인터뷰한 뒤 아는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해서 다음 인터뷰를 잡는 ‘눈 굴리기 방법(snowball method)’도 많이 썼다. 두터운 인터뷰에 담긴 솔직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조선족들이 이동하는 이유, 과정, 결과, 전망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이민자들처럼 조선족도 삶과 직업의 새로운 기회, 더 나은 교육, 가족이나 친척의 이주 같은 여러 이유 때문에 이주를 결정한다. 이주의 동기, 과정, 결과를 해석하는 틀은 이민자들이 주류 사회에 동화되면서 사라진다는 동화 이론(assimilation theory)과 이민자 ‘밀집 지역’이 발전하는 현실을 설명하는 초국가주의(transnationalism), 곧 다중 정체성 이론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20개국 ‘찍어야’ 끝나는 불법 이주의 쳇바퀴 위에 선 조선족들을 ‘내모는 요인(pushing factor)’과 ‘끌어당기는 요인(pulling factor)’까지 입체적으로 살핀다. 가명으로 등장하는 조선족들은 합법 신분이 있든 없든 ‘나라를 잘못 만나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라고 항변하지만, 이동과 떠남이 몸에 밴 일상은 ‘돈, 비자, 집, 환율, 외로움, 외국어, 불안, 망설임’ 같은 단어들로 가득하다. ‘영국 가면 호미로 금을 긁는다’는 말에 이주를 택하고 브로커에게 큰돈을 건넨다. ‘본전’을 뽑느라 불법과 탈법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나쁜 노동 조건과 불안을 견딘다. 도움과 정보를 주는 은인, 받기만 하는 얌체, 돈 떼먹는 사기꾼이 뒤섞인 낯선 곳에서 조선족은 적응, 동화, 비교, 분석의 전략을 알맞게 뒤섞는다. 조선족 이동의 가장 큰 특징은 한인 타운으로 이주한다는 점이다. 살던 곳을 떠난 한국인, 조선족, 탈북자가 뉴몰든에서 만난다. 칭다오에서는 한국인 사장과 조선족 중간 관리자가 부딪친다. 서로 말이 통하니 문제가 없을 듯하지만, 살아온 세월이 다르고 품은 생각이 멀어 갈등이 생기고 오해도 깊다. 한국인 사장은 무능한 조선족이 싫고 조선족 직원은 복종만 강요하고 차별이 일상인 한국인이 싫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탈북자는 ‘3등 국민’이 된다. 중국에서는 소수 민족이고, 영국에서는 불법 이민자고, 한국에서는 ‘외노자’에 중국인 취급을 받으니, 나는 누구냐고 묻는 딸에게 조선족 엄마는 ‘브리티시 차이니즈 코리언’이라고 답한다. 장소도 늘 문제다. 런던의 주거 빈곤층이 돼 집주인 대신 집을 관리하면서 ‘집 맡기의 경제학’을 실천하고, 여공들이 떠나간 서울의 빈 벌집을 채운다. 저자는 현장 사진과 장소 스케치를 통해 밀집 지역의 구체적인 일상에 가깝게 다가간다. 이민자 밀집 지역은 그 안에 있고 싶으면서 벗어나고 싶은 곳, 안정감과 답답함이 뒤섞인 장소다. 자주 쉽게 움직이는 조선족의 활발한 이동성은 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시장’으로 바뀌면서 또다시 변화를 겪는 중이다. 경제적 동기로 시작되고 첨단 통신 수단에 기대어 유지되던 먼 거리 가족은 떠날까 남을까, 가족의 재구성이냐 자유의 시대병이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이런 이민자들에게 종교는 삶의 질서와 활력과 목표를 주는 ‘복음’이다. 조선족 교회와 탈북자 교회가 공존하는 밀집 지역은 그래서 조선족과 탈북자가 뒤섞인 교회의 확장판이 된다. 조선족은 우리의 미래다 ― 정처 모를 정체성들과 불안의 지정학 조선족은 일찌감치 불안한 이들이다. 식민과 해방과 분단을 거치며 불안한 이동을 먼저 시작하고, 삶의 역동성을 미리 겪었다. 이제 조선족은 멕시코인들이 건너던 국경을 넘어 불법 이주를 하고, 런던에서는 탈북자가 조선족의 뒤를 따른다. 삶의 역동성이 정체성이 된 시대에 이동은 자본의 역마살, 물건의 역마살, 사람의 역마살, 정책의 역마살로 이어진다. 한번 떠나온 사람은 돌아갈 때를 늦추고,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 어느 곳으로 이동할지 ‘지정학적 눈치’를 본다. ‘왔다갔다’가 몸에 밴 이민자에게 떠나온 곳은 낯설고 머무는 곳은 익숙하다. 이동의 시대를 앞서 살아낸 지정학적 나그네 조선족은 ‘중간자’의 정체성에 기대어 불안의 시대를 건너고 있다. 조선족은 삶의 역동성에 이미 중독된 우리의 미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