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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사회운동이란 무엇인가
집단행동의 차원/사회운동의 정치적 구성 요소/비제도화된 전장인가/집단행동 만들기 -레퍼토리와 조직/사회운동들의 영역 2장 분석의 난관들 사회운동을 관계적으로 생각하기/사회학적 문제와 정치적 목적 3장 불만과 계산 ‘집단행동’ 이론/호모 에코노미쿠스가 행동에 돌입할 때 4장 자원동원론 올슨의 계보/이론 틀을 사회학적으로 만들기/역사사회학이 한 공헌 5장 ‘새로운’ 사회운동? ‘새로운’의 출처/후기 산업사회의 투쟁/대비되는 결과/새로운 사회운동 안에 존재하는 새로움에 관해 6장 활동가주의와 정체성의 구성 활동가주의 -사회학적 접근/ 활동가주의의 이동?/활동가의 정체성/실천의 경제를 향해 7장 동원과 정치 체계 정치적 기회 구조/갈등의 역동성/사회운동과 공공 정책/인식의 비중/어떤 정치적 준거 공간인가 8장 사회운동의 상징적 구성 ‘정치적 연구’의 재발견/문제 제기하고, 이야기하고, 감동시키기/동원에서 미디어는 어디에 있을까/사회운동 분석의 경계 허물기 맺음말 여론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운동을 향해 옮긴이 글 참고 자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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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이래로 사회운동은 노동운동, 페미니즘, 생태주의, 독재 또는 전체주의 체제 속에서 다양한 민주화 과정이 나타나고, 종교가 주요 정치 행위자로 다시 등장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사회운동이란 일반적으로 이익, 감정, 희망을 공유한 사람들의 행위다. 동시에 지구는 돌고 있느냐고 묻는 문제 제기처럼 사회적 세계에 문제를 제기하고, 정의와 부정의를 이야기하는 특별한 계기다. 때에 따라서는 사회와 정치를 움직이는 지렛대 구실을 하며, 하나의 기억 또는 한 세대의 선호를 불러일으키는 공통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 p.7~8쪽 ‘거리’를 무질서에 동일시하는 태도, 또는 민주주의를 대의적이거나 격식을 갖춘 것으로 한정한 뒤 사회운동을 민주주의의 병리 현상으로 여기는 미심쩍은 반응들이 이제는 그 빛을 잃었다고 해도, 가끔 ‘추리소설’식 비합리적 견해에 사로잡힐 가능성은 여전하다. 좀처럼 예견하기 힘든 운동에 관한 합당한 설명 없이 축제, 전염, 분출 같은 은유로 분석을 대체하기도 한다. 또한 지난날에는 ‘모스크바의 손’, 오늘날에는 ‘이슬람주의자의 수염’ 같은 배후 조종자를 찾기도 한다. 학문적 게으름은 사건을 그냥 익숙한 범주로 분류하라고 강요한다. 이를테면 기업 안에서 갈등이 발생하면 ‘노사 담합’으로, 근대화의 파도에서 버려진 사람들의 항의는 ‘포퓰리즘’으로 매도한다. --- p.8 법적 의미에서 홍보가 더욱 결정적인 분리 지점일 수 있다. 사회운동은 홍보를 해야 한다. 홍보는 미디어나 공개 논쟁을 이용하고, 심지어는 논란을 활용하기도 한다. 압력단체도 문제가 발생할 때 의약 산업이 보여주는 소통 행위처럼 비슷한 홍보 방식을 종종 사용한다. 그렇지만 압력단체는 행정 기관의 협상 상대로 지위를 보장받고 있고, 결정 과정에서 수임 기구로서 대체로 은밀히 기능하거나 조용한 교섭을 진행한다. --- p.35 활동가의 행동은 분석을 구호로 바꾸고 대중화를 위해 단순해진다. 그래서 효율성을 겨냥하고, 인식의 정복 이전에 권력의 정복을 중심에 두며, 결국 이런저런 맹점들을 불러온다. 마르크스주의는 이 문제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회운동을 생산방식에 따라 규정된 계급 관계의 강요된 표현으로 규정한다면, 민족주의나 여성운동 같은 다른 동일성의 기준에 따라 구조화된 동원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지닌다. 역사적 환경에 따라 제약되던 방침이 레닌의 활동가 조직 정당 모델처럼 결과적으로 심각한 이론적 교리가 돼버린다. --- p.69 올슨은 사회학적 분석에 유용한 도전을 한다. 간결함을 추구하는 분석을 위해 불편한 진실을 논의의 중심에 놓는다. 바로 집단적 동원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런 진단 때문에 한 세대의 연구자들이 사회운동이 펼쳐지는 조건을 찾아 나섰다. 이렇듯 올슨의 이론이 우리의 존경을 받을 만한 가치는 있지만, 그렇다고 올슨의 논지를 적용할 때 부딪치는 한계에 의문을 품거나 올슨이 행위 중심에 놓은 ‘합리성’이나 존재 조건을 좀더 상세히 설명해달라고 요구하는 일까지 금지되지는 않는다. --- p.90~91 1950년대에는 미디어를 상대로 관계를 맺는 노하우가 노조 지도부에게 부차적인 일이었지만, 2000년대에는 전략적인 요소가 됐다. 자원이란 조직이나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전략적 행위의 시각에서 (활동가적 의미에 따라) 동원과 활성화를 가져다주는 잠재력일 뿐이다. 오버셜은 조직이나 지도자들이 얼마나 자주 자기가 속한 계층에서, 특히 교육의 수준에 관련해 비전형적인 사회적 속성을 보이는지를 강조한다. 동원의 역동성은 권력이 주는 만족감에 현혹돼 또는 전문화를 거쳐 지도자라는 직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 p.107 산업사회의 운동은 계급 정체성을 내세워 노동운동, 인민전선, 농민조합을 이야기했다. 새로운 동원은 더는 그 사회의 직업 범주나 계급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자기를 규정하지 않는다. 무슬림, 히스패닉, 동성애자, 카리브 해 출신으로 규정되거나 ‘지구의 친구들’에 가입하는 행위 등은 모두 다른 정체성 원리로 여겨진다. …… 신사회운동 안에서 높은 학위를 갖고 일정한 급여를 받는 중간 계급이 일정한 무게를 갖는다는 점이나 새로운 동원 형태하고 함께 전통적인 사회 분열이 지속되는 점도 또한 변함없는 사실이다. --- p.121 활동가 사이의 대화는 선택된 집단을 향한 소속감을 일상적으로 드높인다. 이런 수다에는 반드시 따라오는 내용이 있는데, 지난날 투쟁가들이 겪은 무용담, 자기를 변혁의 대열로 이끈 커다란 충격을 떠올리기(베트남 전쟁을 찍은 텔레비전 영상을 축구 경기 해설하듯 전하는 아버지를 혐오하며 결국 적당한 단체를 찾아낸 만남을 떠올리는 활동가처럼),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라는 흐름에 근거한 어법에 맞게 일상의 경험을 끊임없이 전환하는 작업, 자기에 관한 규정과 운동에서 등장한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핵심적인 연결 과정 같은 것들이다. --- p.151~153 더욱 많은 등장인물들(재단, 반운동, 전문화된 행정 기관)이 나타나고 다양하게 제도화된 행정 창구들이 복잡하게 얽히며 인식의 대상으로 사고되기에 이른 뒤, 정치적 기회 구조는 적절하게 지적되던 스펀지 같은 측면을 모두 잃고 나서야 일차적인 유용성을 보존할 수 있게 된다. 그 경계에 관한 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p.187 ‘교감의 동원’은 다양한 선전 활동에 기초한다. 이런 활동은 활동가가 수행하는 작업(벽보, 모임, 전단)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들의 견해를 확산하고, 동원의 목표를 겨냥하며, 운동을 벌여 지키려는 명분에 우호적인 대중을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작업을 거쳐야만 공감이라는 자본을 구체적 참여로, 여기에서는 시위 참여로 전화시키는 ‘행위의 동원’이 펼쳐질 수 있다. --- p.194 미디어의 중요성은 자기들의 중계자를 획득하는 행동이 필수적이라는 동원된 집단의 내면화에서도 되풀이된다. 파리에 자리한 터키 기업의 본사를 점거한 시위대를 상대로 정부 쪽 협상가는 더 늦어지면 당신들이 하는 주장은 저녁 8시 뉴스에 영상이 나가거나 보도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해 항복을 받아낼 줄 알았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비영어권 국가의 시위자들이 CNN이나 국제 언론 앞에 서서 영어로 쓴 현수막을 흔드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 가끔 홍보 부서의 지원을 받으며 조직되고 심혈을 기울인 연출을 즐겨 이용하는 이런 시위들은 미디어의 의도에 따라 특정 집단과 그 집단의 요구가 가치 부여된 이미지를 생산하려 한다. 그리하여 시위의 목적은 다음 날 신문에 그 집단이 대서특필돼 동감을 불러일으키고 장관들과 고위 공직자들이 읽을 신문 스크랩을 두툼하게 할, ‘지면 시위’를 조직하는 일이다. --- p.208~209 억압적인 방식으로 다뤄지는 불평분자의 지위에 갇힐 수 있는 위험한 전략인 동원의 기록만을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의 문제를 지속시키기 위해 또 다른 방식의 기록들을 자기 일정에 추가하고, 결국 길들이기 시나리오에 진입할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이런 딜레마는 문제가 이미 최소한의 제도화를 거쳐 수용됐거나, 또는 운동이 집중할 수 있는 창구에서 ‘집행자들의 연결망’이 있는 경우에만 실제로 존재한다. 이 딜레마는 반대로 환경운동이 담당 부처도, 전문 기자도, 이 문제에 중심을 둔 단체들의 긴밀한 연계도 없던 오랜 기간 동안 특정 기록밖에 사용할 수 없는 강요된 선택에 몰린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 p.216~217 이 과정은 여론 조사의 실행, 미디어의 기여, 여론 청취 같은 몇몇 분석가들이 규정한 요인들이 인민들의 소리를 ‘지속적으로’ 반영하고 두 선거 사이 사회적 기대에 관한 실시간 고려를 가능하게 한다는, ‘여론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여론 민주주의 방식이 민주적 모델의 진화를 인정하고 풍부한 성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더라도, 동시에 여론 민주주의는 여론을 상대로 복화술을 펼치는 일이 직업인 자들(기자, 여론 조사자)이 만든 직업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여론 민주주의에 관한 논의는 ‘여론’과 여론의 의미를 둘러싼 진정한 성찰을 요구한다. --- p.222~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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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제기하고, 이야기하고, 감동시켜라!
카이로, 파리, 서울, 도쿄에서 마주치는 ‘사회운동’은 어떻게 같고 다를까 거리를 메우는 분노한 대중들의 사회운동은 왜 무시 또는 몰입의 대상이 될까 참여와 동원은 어떻게 정체성을 만들고, 담론의 틀을 짜고, 감정을 북돋울까 사회운동에 관한 이론은 지금 여기의 사회운동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 불타는 거리의 연대기 ― 점쟁이 지식인들과 성난 대중들의 시대 사회운동의 시대는 끝났을까? 세월호 대책위원회와 무지개 농성단, 어버이연합과 메갈리아는 똑같이 사회운동일까? ‘시민 없는 시민운동’은 ‘대중 없는 사회운동’의 전조일까? 화염병과 최루탄이 오가는 거리의 정치는 기자 회견과 퍼포먼스로 대체되고, 조직된 대중 시위는 광장을 메운 촛불 시민에 자리를 내줬다. 기자나 여론 조사자, 전문가 등 복화술의 달인들은 마리오네트 다루듯 여론을 주무르고, 분노한 대중을 조직해야 할 활동가들은 미디어를 무대로 ‘지면 시위’에 몰두한다. 몫 없는 대중들이 거리를 또다시 불태우기 시작하면, 낯선 이론 끌어대 광장을 예찬하고 미래를 전망하던 점쟁이 지식인들은 당황스럽다. 성난 대중들의 사회운동은 어디에서 오고, 무엇이며, 어디로 갈까. 《사회운동》은 프랑스 렌느 정치대학교 교수 에릭 느뵈(Erik Neveu)가 쓴 《사회운동의 사회학(Sociologie des mouvements sociaux)》(2011년, 5판)을 번역한 책이다. 1996년 초판이 나온 뒤 2011년에 5판이 출간될 만큼 ‘사회운동의 나라’ 프랑스에서 사회운동 연구의 필독서 구실을 하고 있다. 사회 불만과 문화 변화를 표현하고 집단적 연대의 탄생 또는 응집력 높은 집단의 해체를 낳는 사회운동은, 오늘날 사회적 삶의 일반적 경향이자 끊임없이 탈바꿈하는 어떤 현상이라고 느뵈는 말한다. 사회운동 사례가 풍부한 프랑스를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사회운동》은 영미권 사회운동 이론을 꼼꼼히 살핀다. 사회운동의 정의를 알아본 뒤, 집단행동론, 자원동원론, 신사회운동론, 활동가주의, 상징적 상호작용론, 정치적 기회구조론 등 사회운동 이론의 역사적 흐름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노동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등 사회운동의 사례도 여럿 보여주는 미덕이 돋보인다. 몫 없는 대중과 변화하는 사회운동 ― 사회운동을 불태울 새로운 연 료를 찾아 사회운동은 언제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일까? 감성과 즉흥성도 중요한 구실을 한다.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성난 군중이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제도화 수준과 사회운동의 필요성이 반비례한다거나, 사회운동은 일상적 정치 활동이 아니라 병리적 예외 현상 또는 사회 문제일 뿐이라거나, 사회운동에서는 이성과 합리성만 중요할 뿐 감성과 공감은 부차적이라는 생각 말이다. 꺼져가는 사회운동의 불씨를 되살릴 새로운 연료는 뭘까? 에릭 느뵈는 줄곧 이 물음하고 씨름한다. 먼저 1장과 2장에서는 사회운동이 무엇인지 묻는다. 사회운동이란 이익, 감정, 희망을 공유한 사람들의 행위다. 사회적 세계에 문제를 제기하고 정의와 부정의를 이야기하는 특별한 계기이자 사회와 정치를 움직이는 지렛대 구실을 하며, 사회적 대의나 명분, 공통 기억 또는 한 세대의 선호를 불러일으키는 자극이 된다. 따라서 사회운동에 뒤따르는 동원은 카이로, 파리, 서울, 도쿄에서 다른 모습을 띨 수밖에 없다. ‘거리’와 무질서를 똑같이 보거나 대의 민주주의의 틀을 벗어난 동원을 민주주의의 병리 현상으로 여기는 통념 탓에 사회운동은 축제, 전염, 분출 같은 단어로 묘사되기도 하고, ‘모스크바의 손’, ‘이슬람주의자의 수염’, ‘종북 좌파’ 같은 배후 밝히기가 사회운동 분석을 대체하기도 한다. 3장부터 5장은 사회운동 이론을 살펴본다. 집단행동론, 자원동원론, 신사회운동론 등 동원과 참여의 동학을 비롯해 활동가 충원 구조 등을 해명하기 위해 사회과학이 끌어들인 다양한 이론 도구들을 역사의 흐름에 따라 개괄한다. 앨버트 허시먼, 프랜시스 폭스 피번과 리처드 클라워드, 한스페터 크리시, 제임스 스콧, 카를 마르크스, 테드 거, 맨슈어 올슨, 알랭 투렌, 앤서니 기든스, 찰스 틸리, 테다 스카치폴, 토드 기틀린 등 여러 분과 학문에 속하는 학자들을 인용하고 참조하고 지지하고 비판하면서 사회운동 이론의 흐름을 정리한다. 마지막 세 장은 집단행동론의 시대를 지나 자원동원론을 재구성하는 시도를 돌아본다. 1980년대 초에 등장한 자원동원론이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공백을 메우면서 변화를 거듭한 흐름은 그대로 사회운동 이론의 발전 과정인 셈이다. 먼저 활동가주의와 정체성 문제는 행위자의 체험에 관련된다.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경험이 활동가의 정체성을 만들고, 나아가 활동가 개인의 감정을 생산하고 북돋는 방식에 관련되는 양상을 살펴본다. 또한 사회운동의 대상이 되는 정치 체계에 관련해 정치적 기회구조론은 동원을 정치적 게임이나 공공 정책에 접목하는 방식에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마지막으로 이데올로기, 담론, ‘틀 짜기’가 사회운동이 펼쳐지는 과정에서 하는 구실과 미디어가 발휘하는 효과를 상징적 상호작용론에 기대어 분석한다. 그래도 희망은 사회운동 ― 미디어 권력과 여론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사회 변화를 향해 ‘사회운동의 시대는 끝’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성공도 실패도 모두 미디어 탓이다. 여론을 주무르는 복화술사들은 최신 과학 기법을 죄다 끌어들여 ‘민의’를 정책에 민주적으로 반영하고 불편부당한 법만 만들면 사회운동 없이도 사회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디어의 중요성을 깨달은 활동가들은 분노한 대중을 조직하는 일보다 기자 회견과 퍼포먼스와 시위를 벌여 신문과 텔레비전과 인터넷 뉴스의 한 꼭지를 차지하는 ‘지면 시위’에 몰두한다. 동원에 집중해 억압 대상이 되는 불평분자 자리에 갇히느냐, 전문화와 제도화와 미디어 활용의 덫에 걸려 여론 민주주의의 문법에 길들여지고 마느냐. 사회운동에 앞에 놓인 갈림길이다. 진화된 민주주의 모델을 자처하는 미디어 권력과 정치적 배제를 숙주 삼은 여론 민주주의가 강요하는 양자택일을 넘어서는 사회 변화를 향해, 사회운동은 권력에 문제 제기하고, 몫 없는 자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교감을 동원하고,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을 감동시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