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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장 사회민주주의의 딜레마 2장 지식의 정치경제학 3장 옛 시대와 새 시대를 규정하기: 제3의 길의 기원 4장 자본주의? 5장 성장의 정치 6장 지식사회 7장 민중에게 투자하기 8장 지식 개인을 창조하기 9장 에필로그: 사회민주주의의 미래 해제| 지식정보 시대에 진보정치의 길 찾기 감사의 말 주 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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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국과 스웨덴에서 출현한 지식경제와 현대화 서사에 대한 사상이 아주 특수한 지식 관념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 지식관이란 지식을 일종의 자본으로, 즉 기술혁명의 구성 요소인 지력을 보유한 개인들 사이에 소재한 무형이지만 매매 가능한 상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학습과 교육을 통한 자기실현이라는 사고가 또 다른 유행거리인 지식경제에서 특별한 함의를 갖는다. 이 책은 이것이 자본화 과정?이전에는 근본적으로 경제적 재화good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공동선good의 여러 형태들이 경제적 자본의 형태들로 정의되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제3의 길의 성장 담론은 ‘잠재력을 추출하는’ 것에, 즉 호기심과 재능, 독창성, 창조성을 가치로 전환하는 방식에 관심을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잠재력의 개발이라는, 만인이 “각자의 현재 상태와 잠재적 발전 가능성 사이의 간극을 잇도록” 돕는다는 사회주의의 관념이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또한 해방과 착취의 구별은 근본적으로 모호해진다.
--- p.16 지식사회는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사회민주주의 정치에서 미래의 비유로서 중심적 역할을 했지만 좋은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담은 것은 결코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지식사회는 변화를 영원한 개량의 과정으로 묘사했다. 학습이라는 관념은 학습사회의 관념에서, 혹은 실제 평생학습의 차원에서 이러한 끝없는 변화 과정의 내용을 이룬다. 이런 한에서 제3의 길의 관리주의의 특징인 현대화 관념은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이 목적telos 없는 현대화라고 칭한바, 종착점 없는 현대화의 관념, 유토피아 없는 정치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제 정치의 초점은 변화 그 자체다. 바우만의 주장에 따르면, 진보 관념이 이렇게 목적에서 운동으로 이동하는 것과 병행해서 미래의 개인화, 즉 유토피아적 열망이 개인의 영역으로 재배치되는 과정이 나타난다. 바우만에게 이는 개인의 자기실현과 행복의 추구이며 이러한 자기표현의 상당 부분은 현대사회의 산물이다. --- p.41 제3의 길은 실용주의 정치의 무갈등 지대에 호소하면서 현대 유럽의 거의 모든 정치 조류들을 무상으로 차용했기 때문에 뭐라 정의 내리기 어렵다. 그러나 현대 사회민주주의에서 신자유주의의 요소를 찾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라는 말로 뜻하는 바가 자유시장과 자유로운 개인에 바탕을 둔 경제적?사회적 철학이라면, 이 두 전제 모두 현대 사회민주주의가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81 지식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며 새로운 지평을 열어줍니다. 지식은 인간에게 권능을 부여하며 민주주의를 심화합니다. 이성의 힘을 통해 우리는 미신으로부터 벗어납니다. (……) 이로써 사실, 진실, 경험적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사회가 개선되고 발전할지도 알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의 지식은 창조성과 역량을 고취합니다. 더불어 사랑과 연대가 발전합니다. 또한 연대와 협동의 여지가 생깁니다. 지식의 발전을 통해 우리는 민중의 무한한 잠재력을 어떻게 개척할지 알게 됩니다. --- p.113 창조성, 잠재력, 재능은 모두 제3의 길의 성장 담론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관념이다. 스웨덴과 영국에서 창조적 사고는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변화를 불러일으키며 문제들에 대해 새로운 해답을 찾고 독창적인 착상을 제시하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창조성은 위험 감수, 주도성이자 지식의 새로운 결합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창조성을 통해 학생들은 혁신적, 진취적인 태도를 지니고 지도력을 갖출 기회를 얻는데, 이 모든 자질은 결국 기업가의 주요한 특성이다. 창조성의 고양을 목표로 한 정책들은 청년들의 자존감 확보를 돕고 이들이 자신만의 관심과 재능을 찾도록 지원하는 것을, 즉 이들이 한 사람의 개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1990년대 스웨덴에서는 아동문화가 새삼 주목받으며 정부가 아동을 위한 예술과 문학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 p.152~153 오랜 세월 동안 복지국가와 상품화?탈상품화 과정 사이에는 복잡한 관계가 존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의 길은 복지국가와 사회적 시민권을 둘러싸고 사회민주주의 전통으로부터 크게 이탈한 모습을 보여준다. 셰리 버먼이 지적한 대로, 역사적으로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의 폐해에 맞서 사회를 수호한다는 점에서 사회민주주의에게 중요한 성취였다. 이때 개입의 대상은 개인의 권리 행사를 허용하거나 불허하는 경제적·사회적 구조였다. 이를 통해 사회의societal 핵심적 가치들과 개인을 보호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민주주의에게 복지국가적 개입의 대상은 이제 경제가 아니라 개인이다. --- p.232 제3의 길의 시대는 분명히 끝났지만, 그 시대가 결코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제3의 길의 근본 전제는 신자유주의 금융화에 대한 굴복이었고, 이 이념이 금융 위기 이후 급격히 폐기물 취급을 받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굴종으로만 환원될 수 없는 다른 중요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제3의 길이 한때나마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받았던 것이고(지금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지만, 18년 만에 보수당으로부터 권력을 탈환한 직후의 블레어는 대처에 대한 원한으로 사무친 수많은 영국인들에게 마치 구세주와도 같았다), 사망 선고를 받은 지금도 그 그림자가 짙게 남아 있는 것이다. 하필 지금 제3의 길을 돌아보는 책을 소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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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제3의 길 양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에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와 함께 보편적 복지가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어서 미국의 레이건 정부와 영국의 대처 수상은 이러한 보편적 복지에 대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면서 보편적 복지 축소와 함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 결과 실업과 빈곤, 부의 양극화 같은 부작용이 심화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제3의 길’을 들고 나오면서 새로운 정치사상으로서 사회민주주의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사회민주주의는 태생부터 자본주의와 현대성을 기반으로 탄생한 정치 체제다. 폭력혁명 대신 민주적 절차에 따라 사회주의의 급진적인 사상들을 이룩하고자 했다. 역사적으로 사회민주주의는 진보사상과 현대성을 중심에 놓고 강령을 수립했으며, 이렇게 수립된 강령이 자신들을 미래로 이끌어줄 추동력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 사이의 어딘가에서 처음 탄생했을 때부터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가 현대성을 이끌어낼 핵심이라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전복을 우선적으로 고민한 적이 없다. 당연히 폭력혁명과 같은 급진적인 대안에도 부정적이었다. 사회민주주의는 오히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자본주의의 점진적 개선 사이에 자리 잡은 사상이었다. 얼핏 충돌하는 듯 보이는 이 두 정치 전략이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에서는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사회민주주의는 여러 차례 노선을 수정하면서 유토피아적 이상을 실용적 태도로 화합시키려 한 노력의 역사다. 이후 사회민주주의는 자신을 정치적 대안으로 내세우면서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와 단절을 선언했다. 이런 배경을 지닌 사회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서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지식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도서관이냐 작업장이냐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산업자본주의가 저물고 전 세계는 점차 지식자본주의로 변화해갔다. 기존 물질적 형태의 생산물과 연결된 ‘일반적 노동’의 개념이 정보와 지식, 이를 활용하는 기능의 형태로 변모했다. 쉽게 말해, 빌 게이츠나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이의 창의적인 두뇌 활동을 기존의 노동 개념으로 설명이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다. 창의적인 두뇌 활동은 양적 계량이 불가능한, 전통적 숙련·비숙련 노동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유형의 ‘창조 활동’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 정신적 창조 활동은 때로는 1초의 영감으로 새로운 것을 발명해내고, 때로는 퀴리 부인의 경우처럼 수십 년의 허탕 끝에 갑자기 새로운 것을 발견해 세계를 뒤덮는 엄청난 가치를 창출하기도 한다. 오늘날 경제적 가치의 대부분은 창조적 두뇌 활동으로부터 나온다. 이와 같은 변화로 인해 마르크스의 노동 철학은 이중적 이유에서 가치론적 토대를 상실했다. 우선 오늘날의 ‘지식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지식 노동자들’의 ‘일반적 노동’과 비물질적 두뇌 생산 활동은 노동 시간을 기준으로 한 양적 계산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경제적 가치의 대부분이 ‘물질대사’가 아니라 정신적 ‘의미 대사’이다. 따라서 노동이 아닌 새로운 비물질적 두뇌 생산 활동으로부터 나오고 있기 때문에 노동 가치론이 안에서부터 무너져 내린다. 오래도록 신성시 되었던 ‘노동’의 자리를 ‘지식’이 대체하게 된 것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이러한 상황에 주목했다. 지식으로의 접근성을 확보해준다면 누구나 지식을 축적하고 이를 자본화하여 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정책적으로 지원해준다면 오래도록 꿈꿔온 사회주의의 유토피아를 현실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만인을 위한 번영’을 약속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영역이 펼쳐진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제3의 길은 지식 정보화에 맞게 사회민주주의를 개조하려 했던 진지한 시도다. 그러나 그 시도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발발하자 너무나 허망하게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저자 옌뉘 안데르손은 제3의 길이 실패한 원인을 자기 혁신의 방향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는데, ‘도서관’으로 상징되는 스웨덴의 사회민주당과 ‘작업장’으로 상징되는 영국의 노동당의 사례를 비교, 검토함으로써 이를 논증한다. 두 당이 지식정보화에 주목했다는 점은 비슷해도 강조점의 차이가 크다. 노동당의 담론에서 지식은 경쟁재다. 개인들이 서로 더 많이 획득하기 위해 경합해야 하는 대상이다. 더 풍부한 지식의 소유자가 시장의 승자가 된다. 국가는 승자가 되기 위해 열의를 불태우는 시민들을 도와야 한다. 반면 사회민주당의 담론에서 지식은 공공재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평등하게 이 공유 자산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지식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시민으로서의 덕을 함양한다는 것을 뜻한다. 국가는 이러한 지식 생산 및 유통의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제3의 길의 종말 이후 사회민주주의의 미래 영국에서 제3의 길을 종식시킨 정치세력은 젊은 세대였다. 제3의 길이 그토록 강조했던 지식정보화의 세례를 받아 역사상 어떠한 세대보다 풍부한 지식과 능력, 기능을 체득한 그들이었지만 2008년 경제 위기 이후의 경제 침체와 긴축정책으로 가장 고통받는 집단이기도 했다. 이들은 금융자본주의의 사다리를 통해 언젠가는 중산층에 진입하리라는 약속을 믿으며 학자금 대출을 받아 지식정보사회에 필요한 각종 능력을 힘들게 학습했다. 그런데 갑자기 계층 이동을 연결해줄 사다리는 더 이상 없다는 선고를 들었다. 사다리는 사라졌지만, 부채는 남아 있었다. 이후 몇 년간 이런 뼈저린 체험을 한 젊은 세대는 노동당 내 제3의 길 정치인들이 아니라 그에 맞서왔던 ‘구식’ 사회주의자에게서 대안을 찾았다. 제3의 길이 낳은 아이들이 제3의 길 정치에 사망 선고를 내린 셈이다. 이런 역설은 제3의 길이 역사에 남긴 흔적이 결코 간단치 않음을 보여준다. 제3의 길은 종식되었다. 그러나 앞서 영국에서의 실패 과정에도 불구하고 지식을 공공재로서 바라보고 접근했던 스웨덴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제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매서운 광풍 속에서도 스웨덴은 가장 피해를 덜 입었다. 그들의 도전은 새로운 시대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일정 부분 입증한 셈이다. 사회민주주의가 기회를 평등주의 의제로 밀어붙이거나 사회민주주의 프로젝트의 독창성을 지키는 데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혹독한 비판을 받아야 할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나 앞으로의 새로운 가능성과 유토피아적 지향을 생각하면 우리는 사회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주의 깊게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