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무신. 서울에서 출생하여 22세 때 처음으로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32세 때 식년무과에 급제하였고 45세 때 고사리첨사에 이어 만포첨사, 진도군수 등을 지내고 47세 때 전라좌수사가 되었다. 48세때 임진왜란을 맞아 여러 해전에서 왜선 320여척을 격파했다. 49세 때 한산도로 진을 옮겨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었으나 53세 때 원균 일파의 모함과 상소로 서울로 압송되어 투옥되던 중 우의정 정탁의 변호로 출옥하였다.
정유재란이 발발하여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대패하자 삼도 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남은 12척의 배와 120명의 군사로 130여척의 왜선과 맞서 싸웠고(명량대첩), 54세 때 명의 수군과 연합해 왜선 500여척과 싸우다 노량해전에서 11월 19일 새벽에 전사하였다. 6년 후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덕풍부원군에 추봉됨에 이어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15년 뒤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1643년(인조21년) 3월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