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
소득공제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
근대 한국을 거닐다 양장
노형석이종학 사진
생각의나무 2004.01.17.
베스트
한국사/한국문화 top100 1주
가격
29,500
10 26,550
YES포인트?
1,48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 이 책은 『한국 근대사의 풍경』으로 개정출간되었습니다.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책소개

지금 우리 눈으로 오롯이 돌아보는 우리 근대의 숨은 풍경

목차

서문
일러두기

1부 뒤틀린 근대성의 상징들

1장 철도
경부 경의선 / 경원선 국제 철교 / 서울역

2장 전기·통신
전기 / 우편 / 전신·전화

3장 도로
신작로 / 도시가로

4장 상가
서민 시장 / 일본 상점 / 조선 상점 / 경성상가지도 / 쌀과 증권시장

5장 탈것
전차 / 자동차

2부 변화의 소용돌이 조선팔도

1장 함경도
새 도시들 / 두만강 / 공업화 기지

2장 평안 황해도
압록강과 도시들 / 평양1 / 평양2 / 서북 지역 / 수탈의 가나안

3장 경성
외세의 군사기지 / 빼앗긴 서울

4장 경기 강원도
신음하는 반도의 허리

5장 충청 전라도
철도가 옮긴 도청 / 식량수탈항구

6장 경상도
수탈 교두보 부산항 / 무너진 대구읍성

사운 이종학 선생 연보
사진 출처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소개 2

『한겨레』신문의 기자. 1968년 부산에서 출생하였고, 1992년 『국민일보』기자로 언론계에 들어와 1996년 『한겨레』로 옮겼다. 사회부, 여론매체부를 거쳐 지금은 문화부에서 미술과 문화재 분야를 맡고 있다.

노형석의 다른 상품

사진이종학

관심작가 알림신청
 

호:사운(史芸)

1972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마친 뒤 서울에서 고서점을 운영하며 자수성가했다. 1960년대 『난중일기』를 비롯한 충무공 이순신 사료 수집에 나선 것을 계기로 독도 영유권 근거자료 확보와 일제 조선침략사료 연구에 몰두했다. 1996년 사운연구소를 설립해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1910년 한국강점자료집』등을 냈으며 1997년 설립된 울릉도 독도박물관의 초대관장을 지냈다. 2002년 11월 23일 작고했다. 선생은 사라져가는 우리 역사의 소중한 자료를 사재를 털어 발굴하고 수집해서 알리는 데 온 생애를 바쳤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01월 17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83쪽 | 1506g | 225*249*30mm
ISBN13
9788984983021

책 속으로

우리에게 근대란 정말 무엇인가. 근대는 아무리 두레박을 내려도 담기지 않는, 끝 간 데 없이 깊은, 어쩌면 완전히 말라버린 듯한, 이상한 우물 같기도 하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조선인들은 남의 손에 끌어올려져 근대라는 우물물을 끌어올리도록 강요받았지만 두레박의 물을 제대로 퍼올렸는지는 해방 뒤 6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근대문명이 몰고 온 시공간의 변화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인들에게도 어쩔 수 없는 극복과 추종의 대상이었다. 동아시아 연구자 앤디미언 윌킨슨은 일본인들이 근대 문명에 대해 느낀 절망적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서구 좇기에 혈안이 되었다가 서양적 관념과 일본주의적 감정 사이에서 분열되었다고 저서 『현대일본의 허상과 실상』(삼연사, 1981)에 쓰고 있다. 상당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 중국, 일본 인민들은 ‘유럽이 2~3세기에 걸쳐 이룩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불과 2~3세대 사이에 달성하려 했고’, 분열된 의식의 틈바구니 속에서 근대적 변화를 일방적으로 추종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19세기 말부터 ‘화풍(和風)’이란 이름 아래 국가적 정체성을 다시 추스르기 시작했던 이웃 일본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근대를 배웠다. 그 이웃나라가 군홧발로 우리 스스로 근대를 갈무리할 기본적 계기조차 봉쇄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메이지유신 이래 일본인은 수시로 유럽을 반면교사 삼으며 제국주의 근대의 이상과 현실의 틈을 메워갔지만 우리는 근대와 전통을 통합할 수 없었고, 식민지 체험이 끝난 40여 년 뒤에야 이 땅의 지식인들은 우리의 근대성을 다각도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20세기 초 조선 사람들이 다기한 면모의 근대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며 생존했는지를 담은 체험의 기록들은 풍족하게 남아 있지 않다. 개화기부터 일제 시대, 해방공간, 심지어 1950년대까지의 일상사 사료와 사진 등은 상당수가 전쟁과 1950~1960년대 혼란기에 사라지거나 일본 등으로 흘러나갔다. 학계는 왜 근대기 생활사료 찾기에 열심이지 않았을까. 지난 날 우리의 일상사가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짓눌린 패배자의 역사로 비친 탓은 아니었을까. 당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땀내 묻은 일상을 민족해방투쟁사의 이면에 묻어놓았던 데는 근대 콤플렉스도 적잖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라는 잃었지만 민족정신은 살아 있었다는 ‘자존사관’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 사회제도의 폭압성과 소비문화의 매혹이 뒤얽힌 근대 생활의 파노라마가 바로 당대의 시공간 속에서 표출되었다는 것은 식민지 근대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기본 전제다. 근대성 또한 시공간을 통해 생생한 역사적 실체로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후대 한국인들은 20세기 초 식민지 시대를 일부 독립투사나 선각자들의 항쟁사, 정치, 경제적 모순 등의 개념 중심으로 사고해 왔다. 농촌 공동체를 뒤흔든 전기와 전화, 신작로, 철도 등과 도시공간을 주름잡은 전차, 버스, 카페촌 같은 근대문물들 앞에서 뒤바뀐 감수성과 인간관계, 일상 생활양식들의 다기한 양상들이야말로 근대의 참모습이 아닐까. 현기증 나는 속도전으로 치달아온 근대사의 뒤안길 속에서 놓쳐버린 식민지 일상의 하찮은 기억을 끄집어내고, 근대가 일상 시공간에 남긴 미세한 흔적들을 새삼 더듬는 것은 지겨운 근대의 미몽을 직시하기 위해 필요한 통과의례일 것이다. 이종학 선생이 수집한 희귀 사진들과 기록들을 바탕으로 근대사의 뒤안길을 재구성하려는 기획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 저자 서문 중에서

줄거리

1부 뒤틀린 근대성의 상징들

대중을 상대로 소구력 있는 주제들, 예컨대 우리가 실생에서 직접 보고 다루고 있는 전기, 철도, 도로, 통신, 상가 등의 연원을 샅샅이 캐고 오늘날의 우리 모습과 대조하면서 근대를 상징하는 이 물질들이 어떻게 우리의 몸에 체화되고 변용되었는지를 검토한다.

- 1장 「철도」
철도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민중의 생활터전을 박살내고 수탈과 학살을 이끌어낸 수단이었음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보인다.

- 2장 「전기, 통신」
민중들이 실질적으로 근대를 체감할 수 있던 대표적인 문물인 전등과 전보 등의 통신수단들이 당시 어떻게 인식되었고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다룬다.

- 3장 「도로」
구불구불하고 좁은 옛길을 헐고 새로 깐 신작로는 피땀 어린 생산물을 수탈한 수단이면서 우리의 시공간에 대한 개념에 일대 혁신을 일으킨 파격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 4장 「상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주도권을 잃었으면서도 꿋꿋하게 우리의 시장을 지켜낸 민중들의 노력과 당시 상권의 형성으로 만연한 근대 부르주아들의 소비유흥문화도 적실하게 짚어낸다.

- 5장 「탈 것」
치부의 상징이었던 탈것에 대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사건들을 언급하면서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민중들의 애증을 솔직하게 그린다.

2부 변화의 소용돌이 조선팔도

당시 정치 경제 문화적 변동이 당시 조선의 공간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를 리얼한 사진자료들을 바탕으로 당시의 통계수치와 같은 객관적인 자료, 민중의 감성을 반영한 문학작품을 적절하게 인용하면서 조선 팔도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 1장 「함경도」
1910~1930년대 이미 조선의 최북단이자 만주와의 접경인 함북 해안 지역에서는 활발한 신도시 건설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다.국토의 오지였던 이들 최북단 지역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가 드러난다.

- 2장 「평안, 황해도」
고구려, 낙랑 등 고대 문화의 발상지이자 고려 개국의 터전이었으며, 경기-서북지방을 잇는 교통의 연결고리로서도 모자람이 없는 지역이다. 하지만 그런 지리적 이점 때문에 식민지 시대의 황해도는 전라도와 함께 가장 혹심한 수탈을 당하게 된다.

- 3장 「경성」
조선 왕조의 500년 도읍지 경성은 일제 강점 뒤 가장 근대화한 식민 도시 건설을 모토로 내세운 일본 당국자들에 의해 도시 성격과 구조 자체가 통째로 뒤바뀌는 수난을 겪는다.

- 4장 「경기, 강원도」
인물과 물자의 유동속도가 빠르고 교역이 번창했던 만큼 근대화 시기 경기도는 어느 곳보다 역동적인 변화상을 보여주었으나 이는 일제의 교묘한 공간적 왜곡과 통제 전략이 집중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도 했다. 한편 강원도는 오늘날과 달리 일제 시대 강원도는 일본인들이 유달리 선호한 철도 교통의 요충지였으나 이후 쇠락의 길을 걷는다.

- 5장 「충청, 전라도」
일본인들에게 근대의 충청도 지역은 조선과 일본은 한뿌리라는 내선일체의 역사관을 반추하는 공간으로서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전라도는 조선 시대부터 농지와 수리 시설이 개발되어 있어서 치부의 이상향으로 인식했는데 이 때문에 가장 극심한 약탈을 당했다.

관련 자료

1. 한국 최고의 근대 자료수집가 이종학 선생이 평생 발굴 수집한 391장의 희귀 사진과 도판

이 책은 《한겨레》신문에서 「한국 근대사 숨은 풍경들」이란 제목으로 2001년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연재되었던 시리즈 연재물을 대폭 수정 보완한 것으로 이종학 선생이 평생을 다바쳐 발굴 수집한 진귀한 사진자료 수만 점 중에서도 추리고 추린 391장의 사진과 도판을 넣고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담았다.

2. 故 이종학 선생의 유서와도 같은 책

이종학(1927-2002)선생은 호는 사운. 선생은 정부에서도 하지 않는 우리 역사자료 발굴 수집에 평생을 바쳤다. 그가 사료를 발굴하고 이를 알리는데 전 재산을 쏟아부었다. 이러한 선생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이 책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선생이 관심을 기울였던 부분은 일제 침략시기의 사료, 독도문제와 관련한 사료,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것 등 우리의 역사와 관련된 것이면 가리는 것이 없었다. 거듭 선생의 명복을 빈다.

3. 특별부록 -1920년대 경성 시대의 판도를 한눈에

1924년 교통실업사에서 당시 경성 시내 상가에서 활용하기 위해 제작했던 것으로 당시 경성상가의 판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희귀 지도를 특별부록으로 대형 판형으로 제작해서 서울시내 구획의 변천사에 관심 있는 연구자와 일반인들이 참조할 수 있도록 했다.

4. 조선총독부 자료부터 당시 시대상을 여실하게 반영하는 문학작품까지

저자가 당시의 객관적인 통계자료는 물론이고 당시 발행되어 민중의 정서를 잘 감지할 수 있는 신문과 잡지, 훌륭한 문학작품까지를 골고루 섭렵하고 이를 충분히 소화한 뒤에 정제된 언어로 대중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다.

5. 일부 지역이 아닌 조선 전 지역을 대상으로

근대화의 영향을 받던 대도시 경성이나 부산 등 일부 지역만 아니라 최북단 오지로부터 최남단까지 전체 지역의 역동적인 변화상을 다루고 있어서 생생한 자료를 통해 맛볼 수 있다.
사운 이종학 선생 연보

1927. 10. 1.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주곡리 244번지에서 출생했다.

1955. 종로 5가에 ‘권독서당’ 책방 문을 열었다.

1957. 연세대학교 앞에서 고서점 ‘연세서림’을 운영했다.

1981. 2. 〈조선동해안도〉발굴하고 공개했다.
11.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11월 26일 일본 육지측량부가 발행한 〈지도구역일람도〉를 입수했다. (이후 50여 차례 방문), 독도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1983. 4. 거북선 머리 구조 등을 밝힌 『해장집(海臧集)』(규장각 소장본) 발굴하고 공개했다.

1985. 4. 거북선이 전함과 화물선 겸용임을 밝혔다.
8. 일제의 『실록대조표』 8책을 발굴하고 공개했다. 태백산본과 정족산본의 대조에서 8만여 자의 오자가 있음을 확인했다.

1986. 7. 「한일병합 유공자 명단」을 발굴하고 공개했다.

1987. 4. 『신헌문집(申櫶文集)』발굴을 통해 〈대동여지도〉가 김정호 혼자 만든 것이 아님을 밝혔다.
6. 동남아 지역에서 독도 관련자료를 조사하고 싱가포르에서 자료를 입수했다.

1988. 11. 독립기념관 자료수집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이후 11월 25일부터 12월 26일까지 북경대학, 연변대학, 여순감옥 등 10여개 자료수집차 방문했다.

1990. 12. 전봉준 법정 최후 진술 담긴 일본 《산음신문(山陰新聞)》발굴하고 공개했다.

1993. 8. 일제의 한국강점 극비문서인 「조선총독부 보고 한국병합시말」을 공개했다.

1994. 6. 독립기념관 위촉으로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등의 자료를 조사했다.
12. 일본국립공문서관의 외부유출 금지문서인 한국강점 극비문서 「한국병합에 관한 서류-발전(發電)?착전(着電)」을 발견하고 비밀리에 입수했다.

1995. 4. 국제해양법 관련 세미나에서 ‘일본해’표기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9. 프랑스에서 ‘조선해표기’ 지도를 입수하고 공개했다.

1996. 5. 사운연구소를 개소했다.
『화성성역의궤』 2백 질을 원형 복간했다.

1997. 1. 일제의 의해 왜곡된 ‘수원성’의 명칭을 ‘화성(華城)’으로 바로 잡았다.
30년간 수집한 독도 관계 자료를 토대로 독도박물관을 건립했다.

1999. 3. 극비문서 「추밀원회의 필기-한국병합에 관한 조약 외」를 국내에 소개했다. 도쿄 고등재판소에서 열린 ‘대일민간법류구조회’가 일본정부를 상대로 낸 ‘한일합방 무효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일명 민족소송)’에 극비문서 3건을 포함한 10건의 문서를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8월 20일 재판소의 기각 판결 뒤 현지 기자회견에서 일본 언론을 상대로 한국강점의 불법성과 일본정부와 사법부의 횡포에 대해 따졌다.

2000. 5. 일제의 한국강점 극비문서 3건을 완역, 전문과 함께 10여 년간 일본 현지에서 조사수집한 자료를 첨부하여 『1910년 한국강점자료집』을 발간, 전 세계 300여 개 대학, 기관, 연구자에게 배포했다.
8. 국내 최초로 일본 의회와 시마네현 의회 속기록(1993~2000년)을 조사하여 『일본의 독도정책자료집』을 발간했다.

2001. 3. 북일수교를 앞두고 불법 강점을 인정받고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와 정당한 배상을 위해서 평양에서 ‘일제의 조선강점 불법성에 대한 남북 공동 자료전시회’를 개최, 2천여 점의 자료를 북한 사회과학원에 기증했다.

2002. 『잊혀진 ‘조선해’와 ‘조선해협’』을 발간했다. 자료를 제공하고 해제를 작성해서 동해의 고유 명칭이 조선해였음을 다시 한 번 밝혔다.

2002. 11. 23. 수원시 아주대학교 부속병원에서 7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003. 5.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출판사 리뷰

다시 근대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지금 우리 눈으로 오롯이 돌아보는 우리 근대의 숨은 풍경

- 한국 근대사료 수집의 일인자 故 이종학 선생이 우리에게 남긴 일급사료로 되짚는 한국 근대사

“독립운동사만 탐구하는 학계의 편식증을 우려한다”라고 말씀하시던 선생은 평생에 걸쳐 수많은 사료를 발굴 수집 정리하여 철저한 사실에 근거한 역사인식을 주장했다. 이 책은 이런 선생이 사재를 아끼지 않고 모은 소중한 사진과 도판자료 수만 점 중에서 추리고 추린 390여 장의 희귀사진과 도판을 바탕으로 《한겨레》 문화부 노형석 기자가 당시의 귀중한 사료와 문학작품까지를 섭렵해서 정제되고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낸 성과물이다.

- 근대와 우리의 관계를 되짚으며

근래 들어 근대 관련서들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이는 지금 우리 생활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모든 문물과 제도가 비롯한 근대에 대한 독자들의 높은 관심을 반증한다.

이전에 나온 근대서는 본격적인 연구서와 사료집의 성격을 띤 책들이 많이 주류를 이루었다. 2000년 초반에 김진송의 『현대성의 형성: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가 독자적인 시각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접근하기 위한 신호탄을 쏘아올렸다면, 최근에 등장한 박천홍의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권보드래의 『연애의 시대』, 천장환의 『근대의 책읽기』등은 보다 디테일로 들어가서 하나의 코드를 잡고 코드를 둘러싼 주변의 환경들을 분석하면서 나름의 시각을 펼쳐보임으로써 보다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현실로 천착하는 성과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은 우리 근대 시공간과 물질의 역사와 사회적 변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보다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자료로 보여줌으로써 우리 역사를 다면적이고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근대에 대한 미시사적 접근과 구분된다.

무엇보다 이 책은 근대 한국인의 삶의 물질적 하부구조인 전 국토의 시공간과 물질적 기반의 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우리의 피부에 와닿는 철도와 같은 교통수단, 전기와 통신, 도로, 상가 등의 근대 물질문명들이 어떻게 다가왔고, 우리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변화와 질곡을 겪었는가를 핍진하게 짚고 있다.

저자가 확인하는 것은 패배와 굴욕으로 얼룩진 침탈의 근대만은 아니다. 수탈의 와중에서도 외래의 문물과 제도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시도가 지속되었다는 것, 일제 자본의 극심한 수탈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면면히 이어졌던 우리 근대인들의 근기를 다시 자리매김한다. 수많은 신문과 잡지, 총독부에서 발간된 귀중한 통계자료, 당시의 생활상을 여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일급문학가들의 작품을 잘 소화하고 주제에 맞추어 정치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리뷰/한줄평2

리뷰

8.0 리뷰 총점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