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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_“백화점에서 ‘사람’을 본 적 있나요?”
1부 백화점 노동의 이면 아름다운 백화점, 그 안의 위태로운 노동 서비스 판매직, 여성의 노동? 쉴 틈 없이 돌아가는 백화점, 그 안의 노동자들 성할 날 없는 몸과 마음 오래 일하고, 적게 벌고 아름다움도 노동의 일부 백화점에는 첫째, 둘째, 막내가 있다?!! 2부 백화점 서비스의 이면 친절이 몸에 밸 때까지 교육, 또 교육 감정노동 이야기 떴다! 미스터리 쇼퍼 백화점의 법도, ‘매출’ 3부 백화점 공간의 이면 하나의 공간, 두 개의 세계 하루에 세 번 이상 가기 어려운 그곳 ‘직원들은 탈 수 없는’ 엘리베이터 나가며_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될 권리 후주 |
안미선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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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의 금빛 외양과 풍경 속에, 진열된 상품처럼 반듯하고 묵묵한 노동자들의 모습. 그녀들은 이처럼 화려한 공간에서 일하면서도, 사람답게 일하고 쉬고 싶다는 바람이 묵살된 데에 모멸감을 느낀다. 지금도 백화점에는 고객들이 무리 지어 들어오고 있고, 물건은 어김없이 진열되어 있으며, 노동자들은 언제나 웃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늦은 시간까지 환한 백화점의 활기찬 영업은 결국 이러한 고된 노동과 무수한 모멸감 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 pp.69~70
먹다 남은 음료수 컵을 버려 달라거나, 고객의 실수로 판매용 옷에 화장품이 묻어 정중하게 세탁비를 요구해도 도리어 항의 전화를 받게 되는 등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유추해 보건대, 고객들에게 노동자는 ‘버선발로 뛰어나와야 하는’ 하인이고, 손에 묻은 화장품을 닦아도 되는 존재이며, 정해진 업무는 아니어도 물을 떠오는 시중을 해야 하며, 온갖 화들을 분출해도 되는 존재이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기본적인 규칙들, 인권 의식 등이 백화점 안에만 들어오면 다 무화되어 버린다. 이곳을 지배하는 법도는 오로지 ‘매출’, 그리고 그 매출을 실현해 주는 고객의 만족이다. 이 둘은 무한하고, 온전히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 p.124 이 같은 고객들의 갑질과 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은 하루아침에 우연히 벌어진 일은 아니다. 독과점 형태의 대형 유통기업인 백화점이 중소기업, 입점협력업체를 구조적으로 착취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구조적인 착취의 종착역은 백화점에서 판매를 담당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어떤 체계적인 매뉴얼도, 대처 방안도 없다. 무조건 “네”, 무조건 “죄송합니다”가 전부다. 고객을 대우해 주면 상품이 더 팔릴 것이고 그 이익을 백화점이 가져가면 된다. 손해는 입점협력업체의 몫이지 백화점의 명성에 흠집날 것은 없다. 고객을 극진히 대우하기 위한 노동과 그로 인한 상처는 백화점 노동자가 알아서 해결하도록 두면 된다. 백화점은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관하는 것이다. --- p.132 1996년에 유통산업이 개방되고 국내 재벌 유통기업 중심으로 백화점이 재편된 이래, 재벌의 시장 점유율이 80%에 이르렀다. IMF 구제금융 이후 재벌과 대기업 위주의 유통업 구조조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로부터 10여 년 사이에 백화점 시장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는데, 백화점은 포화로 인한 매출난을 타개하기 위해 ‘서비스 향상’을 주된 전략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의 전략은 자연스럽게 소비문화에 스며들게 되었다. 고객들은 직원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도 다 수용되는 경험들을 통해 ‘그렇게 해도 된다’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 p.136 미스터리 쇼퍼는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의 서비스를 평가하고 점수화하는 ‘가짜 고객’이다. 미스터리 쇼퍼는 까다로운 질문을 하고 직원의 반응을 보려고 일부러 자극적인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서비스를 꼬치꼬치 체크한다. 미스터리 쇼퍼 제도는 백화점뿐 아니라 면세점, 호텔, 레스토랑, 은행 등 다른 서비스 업종에서도 실시된다.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에도 몹시 바쁜 와중에 자신들의 노동 수행 면면이 모니터를 당한다는 사실에 노동자들은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미스터리 쇼퍼는 자신들의 정체가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매장을 은밀히 다닌다. 직원이 그들을 분간하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노동 강도는 일상적으로 강화된다. --- p.146 쇼핑객을 위한 광활한 공간에 비하면 노동자들에게 허락된 공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협소하고 어두컴컴한 곳이다. 백화점이라는 한 공간 안에서 고객과 직원은 다른 길로 다녀야 하며, 엘리베이터에서 서로 마주치지 않아야 하며, 같은 화장실을 사용해서도 안 된다. 직원들은 매장 안에서 고객을 기다리고 응대하는 모습 이외에 어떤 것도 공식적으로 드러낼 수 없다. 한 백화점 여성노동자의 말처럼, “직원은 사람이 아니다”. --- p.184 우리는 일터에서의 경험들을 말하는 대신 숨기면서 견뎌내고, 일터에서 나오면 소비의 공간으로 들어가 마음껏 웃고 떠들며 잊고 싶어 한다. 그러나 소비의 공간, 백화점은 또 다른 사람의 일터였다. 10시간 넘게 노동하고 매출 압박에 죽음의 언저리까지 내몰리는 노동자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지갑을 열고 닫으며 경쾌한 표정을 짓는 것은 참 이상한 풍경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갈라져 있었다. --- p.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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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 사회’, 그리고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백화점
최근 몇 년 사이, ‘백화점 갑질’이라는 제목의 영상과 증언들이 SNS를 타고 전해졌다. 이 영상들에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백화점 노동자의 뺨을 때리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무릎 꿇고 사과하기를 강요하는 이른바 ‘진상’ 고객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고객들은 구매한 지 몇 개월, 심지어는 몇 년이 지난 상품을 가져와 환불·반품해 달라고 하는 등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하며 폭언을 퍼부었지만, 이러한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요구를 어느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그저 가장 힘없는 매장의 노동자들만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연신 반복해야 했다. 한편, 이러한 감정노동과 날이 갈수록 더해 가는 매출 압박은 백화점 노동자들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겉보기에 번듯하고 화려한 공간, 그리고 최상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백화점은 어째서 이러한 모욕과 죽음의 공간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인가? 사회 전반적으로 노동 시간이 길어지면서, 늦은 시각까지 영업하는 곳들이 늘어 가고 있다. 식당, 편의점, 마트 등 여기저기 그야말로 ‘불야성’이다. 백화점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은 노동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노동의 공간’인 곳들로 찾아 들어간다. 여가를 즐길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은 ‘소비’를 통해 여가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고된 노동의 스트레스를 푼다. 하지만 이러한 고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백화점의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을 백화점에 머물러야만 한다. 백화점의 불이 꺼져도, 그날그날의 매출 정보를 입력하고 마감하는 노동자들의 손은 늦게까지 분주하다. 길어진 노동 시간만큼 대가는 주어지지 않고, 고객을 만족시킨다는 명목하에 강도 높은 감정노동을 수행해야 한다. 백화점에서 말하는 ‘고객만족’이란, ‘고객을 충분히 만족시켜 지갑을 더 많이 열게 하는 것’이다. 대다수 백화점 노동자들의 휴무는 일정치 않고, 백화점의 정기휴무는 월 1회에 불과하다. ‘여가와 저녁이 있는 삶’은 포기한 지 오래이며, 주로 여성인 노동자들은 일과 가사노동이라는 이중의 부담 속에서, “서너 시간만 겨우 자고” 일터로 나서는 일상을 보내기도 한다. 그야말로 금전적, 시간적, 삶의 질적인 면에서 모두 빈곤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고객의 말과 매출이 곧 ‘법도’인 곳 백화점은 대중 광고와 홍보물을 통해 ‘쾌적한 쇼핑 공간과 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러한 백화점의 이미지는 노동자들의 “피눈물을 모아” 쌓이는 것이다. 고객을 만족시키고, 매출을 증진시키기 위한 서비스 교육은 거의 매일같이 반복된다.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고양시키도록 롤플레이(role play) 식의 교육을 진행하기도 하고, ‘가짜 고객’이 불시에 방문하기도 한다. 이러한 평가는 노동자들이 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 직원들의 인사 고과에 영향을 미치고, 해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백화점이 이렇게 ‘서비스’를 강조하는 것은, 인터넷 쇼핑 등의 활성화로 인한 매출의 하락을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실제 서비스 교육 현장에서, “승부할 건 서비스밖에 없다”는 말이 오가기도 한다. 백화점은 매출의 책임을 노동자 개개인에게 지우고, 수시로 점검하며, 재촉한다. 모든 매뉴얼은 ‘판매’ 증진을 위한 것으로, 비합리적이고 무리한 요구를 해오는 고객들을 적절히 응대할 만한 내용의 매뉴얼은 없다. 매뉴얼에 따르면,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들은 고객에게 ‘안 된다’는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 고객의 모든 요구를 들어 주고, 만족시키라는 백화점의 지시는 ‘진상 고객’들의 횡포를 일상적으로 감내하게끔 만든다. 백화점 노동자들이 받는 감정적 상처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월초에 백화점은 각 매장의 목표 매출액을 정해 준다. 기준은 언제나 ‘지난해의 매출보다 높게’이다. 전년도의 성과가, 올해에는 노동자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격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매출은 늘 갱신되며, 백화점 본사는 ‘무한 이윤’의 꿈을 향해 나아간다. 높은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때로는 노동자들의 카드를 이용해 ‘가매출’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마치 판매가 이루어진 것처럼 카드를 긁고, 목표한 매출액이 채워지면 해당 달이나 다음 달에 이를 취소하는 것이다. 이는 겉보기에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행위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백화점 관리자들에 의해 공공연하게 종용되고 있는 관행이다. 한 달에 150만 원 전후의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가매출을 올리기 위한 명목의 카드값은 때때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빚이 되기도 한다.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가매출 관행은, 생계를 위해 일터에 나선 노동자들을 도리어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고객과 상품을 위한 공간은 있어도, 일하는 사람을 위한 공간은 없는 곳 백화점의 노동 환경을 살펴보기 위해 백화점을 찾았던 시민액션단(‘우다다 액션단’)은 노동자들의 휴게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다른 공간들에 비해, 너무나 허름하고 열악했기 때문이다. 10시간 넘게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마련된 휴게 시설은 딱딱한 나무의자이거나, 찢어진 소파이거나, 그마저도 없을 때 찾게 되는 비상통로의 ‘계단’이었다. 노동자들은 창고나 다름없는 휴게실과 비상통로의 계단에서 겨우 한 숨 돌리고 나와 다시 일해야 했다. 한 노동자는 “백화점에서 2년 이상 일하면 하지정맥류는 당연히 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고객 전용 공간과 대조적인 공간은 휴게실만이 아니다. 직원용 화장실, 이동수단 역시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매장을 쉽게 비울 수 없는 상황인 데다가, ‘직원은 고객용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는 백화점의 방침 때문에, 노동자들은 먼 길을 돌아 직원용 화장실을 가야만 한다. 옮겨야 하는 물건의 양은 많은데, 직원용 이동수단은 턱없이 부족하기에,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도 계단을 이용해 짐을 옮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백화점 노동자들은 건강 악화를 호소했다. ‘여성’, ‘비정규직’이라는 자리 대부분의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들은 여성들이다. 이는 여성이 서비스 업무를 수행하는 데 적합하다는 성별 고정관념, 성별 분업에 따른 결과였다. 백화점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많은 고충들은 한국 사회 내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차별과 맞닿아 있다. 이를테면, 이들은 일상적인 ‘감정노동’에 더해, ‘미적 노동’을 강제받기도 한다. 헤어 망으로 단정히 정리한 머리, 브랜드 이미지에 부합한 메이크업, 높은 구두, 안경이 아닌 렌즈 착용 등, 충족시켜야 하는 규정의 가짓수는 어마어마하다. 남성 직원에게는 ‘머리 기르지 않고 담배 냄새 풍기지 않기’ 정도의 규정이 부과된다고 하니, 사뭇 대조적이다. 이처럼 여성노동자들의 규격화된 외모는 브랜드 이미지를 재현하고, 상품화된다. 한편, 여성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백화점에는 노동 조건이 열악한 저임금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불안정한 고용 상황은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기 어렵게 하고, 각기 다양한 조건에 놓여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만들어 한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 백화점은 이 같은 상황을 이용해, 고용에 대한 책임과 부담 없이 노동자들을 무한 착취하고 있다. ‘존중이 오가는 백화점’, ‘존중이 오가는 일터’는 가능할 것인가? 이 책의 후반부는 ‘존중이 오가는 백화점’을 만들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였던 시민들의 인식 변화, 그리고 구체적인 액션의 내용들을 담고 있다. 백화점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공간을 방문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된 시민액션단 일원은 “처음엔 심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백화점 노동자들에게 “무례하지 않았을 뿐, 존중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한 이도 있었다. 직접 보고, 듣고, 고민하면서, 그간 ‘소비 공간’으로서만 바라보았던 백화점을 ‘노동 공간’으로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노동자의 노동 환경을 이루고 있는 한 축이 물건을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라는 점을 힘주어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히 ‘좋은 고객’이 되는 것을 넘어, 노동 조건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나아가기를 요청한다. 우리에겐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될 권리”가 있다고 말이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 불안정한 고용, 감정의 소외 등 많은 일터의 노동은 ‘백화점’의 그것과 닮아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백화점 노동자들의 노동이 자신의 노동과 닮아 있다는 것, 어느 한곳의 노동 조건이 나빠지면, 또 다른 곳의 노동 조건 역시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렇기에 다른 노동자의 행복이 나의 행복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존중이 오가는 백화점’의 가능성은 바로 ‘존중이 오가는 일터’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지난 2014년, 감정노동 종사자의 노동권 문제 해결을 위해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가 결성되었고,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감정노동자의 건강권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 제정 추진은 계속될 예정이다. 많은 시민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