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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뉴스가 있을 때, 우리는 손석희를 바라봤다 1987년의 손석희 2017년의 손석희 1장 손석희 저널리즘의 출발 일등병의 참혹했던 여름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신군부 부역방송 아나운서의 ‘각오’ 수의를 입은 그는 웃었다 2장 손석희 저널리즘의 등장 “손석희 기자는 취재를 안 하고 취조를 하더라...” 손석희의 가장 강력한 무기 폴리널리스트에 맞선 ‘롤모델’ 저널리스트 손석희 지옥 “중립을 잘 지켰다는 말은 중립임을 잘 가장했다는 말” 참여정부, 『조선일보』, 그리고 카타르시스 커뮤니케이션 월터 크롱카이트, 그리고 리영희 3장 손석희 저널리즘의 도전 “청취자 여러분은 저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텐데, 던져보고 싶었어요” 홍석현의 삼고초려, 의도는 무엇이었나 MBC의 비극이 JTBC에게 기회로 생방송 100분이 익숙했던 남자 “내가 궁금한 게 많다. 준비하고 있으라” MBC맨에서 JTBC맨으로 삼성 비판하고 국정원 대선 개입 ‘올인’ 포털 뉴스 생중계를 택한 올드보이 박근혜로 하나 된 『중앙일보』와 JTBC JTBC 뉴스의 변곡점, 세월호 참사 세월호 어젠다 키퍼가 되다 JTBC 메인뉴스에 출연한 KBS 노조위원장 『중앙일보』와의 충돌, 문창극 보도 송건호언론상을 받다 〈뉴스룸〉 팩트체크, 손석희 뉴스의 상징이 되다 성완종 녹취 보도 ‘피의자’로 포토라인에 서다 한 걸음 더, 맥락 저널리즘 4년 만의 필리버스터에 대한 뉴스의 자세 JTBC의 ‘팩트 폭력’, 종편도 공정할 수 있다 손석희 3년, ‘조중동 종편 프레임’을 무너뜨리다 강준만 “손석희는 언론계 지각변동을 몰고 왔다” 전국언론노조 JTBC지부를 만들자 4장 손석희 저널리즘의 절정 국정농단 스모킹건, 최순실의 태블릿PC 보도 태블릿PC 건넨 더블루K 건물 관리인 “손석희 믿고 협조했다” “겸손하고 또 겸손하자” 기록적 시청률, 〈뉴스룸〉 위상이 달라지다 삼성 이재용을 비판하며 시청률 10%를 넘기다 탄핵의 그날, ‘앵커브리핑’으로 시청자를 위로하다 인터폴 적색수배자 정유라를 잡다 변희재로 손석희를 공격한 박근혜 “손석희를 죽이러 왔다” ‘손석희 30억 호화저택’ 팩트체크 “이번 겨울은 모두에게 힘든 계절” 손석희가 밝힌 10·24 이후 프레임전쟁 『중앙일보』와 JTBC로 날던 홍석현의 수상한 ‘착륙’ “저희는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홍석현이 중앙미디어그룹을 떠난 진짜 이유 다급했던 박근혜, 이재용에게 “손석희 갈아치우라” 19대 촛불대선, 손석희의 압박면접 손석희가 JTBC를 떠난다면, 종착점은 MBC다 폐허가 된 손석희의 고향 에필로그 양호선생님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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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는 박근혜-이재용으로 상징되는 대한민국 정치-자본 권력의 민낯을 드러낸 언론계의 상징적 인물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박영수 특검, 100만 촛불과 이재용 구속, 박근혜 탄핵과 파면, 조기 정권 교체를 이끌어내는 데 언론의 역할은 적지 않았고, 그중 JTBC의 존재감은 돋보였다.
--- p.5 사실 사회 초년생 시절 손석희는 신군부에 부역했던 방송사의 아나운서였다. 하지만 1987년 이후 방송민주화를 거치며 그는 ‘공정방송’ 리본을 달고 양심을 지켜내며 공정보도를 요구했고 감옥살이를 했다. 21세기 들어서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아침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과 시사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사이 그는 한국의 저널리즘을 상징하는 인물이자 영향력 1위 언론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어느새 뉴스가 있을 때면, 우리는 손석희를 바라보게 되었다. --- p.7 손석희는 2004년부터 『시사저널』 이 선정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에 12년 연속 1위로 꼽혔다. 2016년 지목률은 75.8%로 압도적이었다. 진행자에서 학자로, 다시 책임자로 변신한 그는 뉴스에 맥락 저널리즘을 정착시키고 뉴스 수용자에게 ‘팩트체크’라는 개념을 각인시켰다. 참사가 벌어진 현장에 수개월간 기자를 배치하며 어젠다 키핑의 중요성을 일깨웠으며, 앵커브리핑을 통해 뉴스에 감성과 품격을 더했다. 바야흐로 우리는 ‘손석희 저널리즘’의 시대에 살고 있다. --- p.8 손석희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인터뷰였다. 그리고 그 무기가 강력할 수 있었던 건 ‘이 인터뷰로 출세나 이득을 바라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어서였다. 그가 대중이 원하는 진실을 공급할 수 있었던 힘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양심’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얻으려 하지 않음으로써 언론인으로서 가져야 할 모든 것을 얻었다. 이것이 저널리스트로서 손석희가 가진 카리스마의 원천이다. --- p.56 사실과 가치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가치중립을 가장하고 국민을 속이는 대신 차라리 그것이 과연 사실인지, 그것이 왜 올바른 의견인지 기사에 근거를 제시하고 해명하고 설명하는 것이 합리적인 언론의 자세다. 우리에겐 사회적으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진실에 주목하는 ‘구성주의적 진실 보도’가 필요했다. 그리고 손석희는 진실 보도가 가능한 ‘뉴스룸’을 구축하고자 했다. --- p.78 딸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그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떨리며 잠기던 그의 목소리와 화면을 쳐다보지 못하고 아래 원고를 응시하며 안경을 만지던 그의 모습은, 일부러 흉내 내거나 지어낼 수 없는, 세월호 참사를 그대로 드러낸 장면이었다. 늘 감정을 숨겨왔던 앵커의 슬픔은 시청자와 유가족에게 전해졌다. 뉴스 수용자가 뉴스로부터 공감을 느끼고 위로를 받았던 순간이었다.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300만 조회 수를 넘겼다. 어쩌면 이 당시 우리가 저널리즘에 원했던 건 팩트보다 ‘공감’이었을지도 모른다. --- p.132 손석희의 〈뉴스룸〉은 지금 시점에서 이 뉴스가 왜 등장했는지, 그래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누가 가장 이득을 보는지 ‘한 걸음 더’ 들어간다. 한 걸음 더 들어가기 위해 뉴스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이슈의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고 스토리텔링이 활용된다. 맥락 저널리즘은 기자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중립적 형식의 객관 저널리즘과 달리 언론인의 주관이 듬뿍 담기게 되는데, 이때 중요한 전제가 기자와 언론사에 대한 ‘신뢰’다. 신뢰가 없는 맥락 저널리즘은 편파방송으로 귀결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뉴스룸〉은 포맷상 그 어떤 뉴스보다 ‘신뢰받는 언론인’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최적의 퍼즐은 손석희였다. --- p.162 오늘날 저널리즘 원칙에서 새롭게 등장한 관점은 ‘교감’이다. 이슈의 이면과 맥락을 파악하면서 공감하는 ‘교감자 동기’가 뉴스 소비에 더 큰 영향을 주고 더 높은 수준의 저널리즘을 달성할 수 있게 만든다는 지적도 있다. 공정성과 객관성은 중요한 가치지만 개념이 모호해서, 적극적으로 뉴스의 색깔을 드러내는 가운데 공감과 같은 감성 개념을 저널리즘 원칙으로 수용하자는 논의도 나오는 상황이다. --- p.164 설령 홍석현이 정치적 야망을 위해 손석희에게 JTBC 보도 전권을 줬다고 하더라도, 그가 사주로서 논조에 개입하지 않고 보도 책임자의 방패막이가 되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JTBC가 사주와 특수 관계에 있는 삼성을 방송사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강도 높게 비판했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 이 같은 지점은 공영방송이 민영방송보다 공정하다는 오래된 명제에도 의문을 던졌다. 공영방송은 대통령 선거 때마다 후견자(정권)가 바뀌고, 후견자에 따라 보도국이 분열되고 ‘인적 물갈이’를 일상화해왔으며, 지금껏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로 기능해왔을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 p.172 지상파 3사가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었던 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건전한 내부 비판 덕분이었다. 종편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종편의 체질을 내부에서부터 바꿔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언론 정상화다. 내부 구성원들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주가 있어서 불가능하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언론노동자들은 15년전에도 사주가 있는 SBS에 민주노조를 세웠다. MBN에도 언론노조 MBN지부가 있다. 언론노조는 2011년 MBN 경영진이 보도채널에서 종편채널로 업종을 변경했다는 이유로 지부 소속 MBN 노동자들을 일순간에 적으로 돌렸다. 포섭이 필요한 순간에 배제를 택한 것이다.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다. --- p.1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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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적 균형을 넘어
사실을 추적하는 ‘맥락 저널리즘’ 저자는 사실과 가치를 분리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합리적 언론의 자세를 말한다. 가치중립을 가장하고 국민을 속이는 대신 차라리 그것이 사실인지, 왜 올바른 의견인지 기사에 근거를 제시하고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진실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것이라면 언론은 단순한 사실을 나열하는 기계적 균형을 넘어 사실을 추적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저자는 손석희의 ‘세월호 어젠다 키퍼’ 역할에 주목했다. JTBC는 200일 넘게 메인뉴스에서 세월호 참사를 다루었고, 3년이 지나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옮겨진 이후에도 취재팀을 60일 이상 상주시켰다. 그사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국면에서 [JTBC 뉴스룸]이 시청자들에게 깊은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 보인 손석희의 진실 보도를 향한 의지 때문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대부분의 뉴스가 낮에 소비되는 상황에서 뉴스 소비자들은 단편적인 뉴스보다는 관점이 있고 연결된 콘텍스트를 원한다. 손석희 저널리즘은 이런 요구를 파악하고 뉴스에 구현했다. 뉴스가 있을 때면 우리가 손석희를 바라보는 이유다. 진영논리를 벗어난 언론인 한국 언론의 지형을 바꾸다 저자에 따르면 진보언론운동 진영이 지금까지 운동의 실패를 야기한 하나의 원인은 그들의 ‘도그마’다. 진보언론운동 진영은 그동안 ‘기울어진 운동장’을 근거로 투쟁을 정당화해오며 특정 보수신문을 악마로 설정해왔다. 이 관점에 따르면 ‘필연적으로 불공정한 종편’ 방송사는 재벌과 보수 정권에 편파적이어야 했다. 그리고 손석희는 저자에 의하면 진보언론운동 진영에게 ‘종편 퇴출’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가까웠다. 그러나 공영방송이 권력과 야합해 시민의 눈과 귀를 가릴 때, 정작 광장의 목소리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아낸 방송사는 종편인 JTBC였다. 대선 기간에도 진영을 가리지 않고 ‘상대편에서 궁금해 할’ 날카로운 질문으로 스튜디오를 찾아온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럴수록 시청자들은 손석희를 신뢰했다.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이 선정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에 12년 연속 1위로 꼽힌 손석희를 영입한 JTBC는 뉴스 신뢰도, 시청자 뉴스 선호도, 동시간대 메인뉴스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손석희가 진영논리로부터 벗어나 정의로운 저널리즘을 구현하려 노력했음을 밝히려 노력했다. 또한 그로 인해 한국의 저널리즘을 논하는 우리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졌다고 말한다. ‘조중동 종편’이라는 프레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현실에서 불공정 보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종편 폐지’보다는 구성원들의 건전한 내부 비판을 가능케 하는 다른 논의와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을 담은 뉴스 우리는 ‘손석희 저널리즘’ 시대에 살고 있다 저자는 손석희가 과잉 대표된다고 느낄 정도로 한국 사회에 유능하고 진정성 있는 기자들이 많다고 강조한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국면에서 언론의 활약도 1975년 동아자유언론투쟁위원회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동료 선후배들의 의지를 계승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초라해질 만큼 많은 언론인들이 반동의 시대에 투항하거나 눈을 감았다고 지적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안락한 출입처 기자실과 보도자료에서 벗어난 현장의 경험, 그리고 약자의 입장에 대한 공감을 강조한다. 이는 생방송 중심으로 이뤄지는 뉴스 포맷과 어젠다 세팅만큼 강조되는 어젠다 키핑, 사설과 칼럼의 중간쯤에 있는 ‘앵커브리핑’ 등으로 구현되는 손석희 뉴스의 차별점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이 뉴스에서, 또는 뉴스의 행간에서 차가운 분노와 위로를 느낄 수 있는 이유다.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 만큼, 우리는 정말 믿을 수 있는 언론을 고대한다. 그리고 손석희는 과거의 부끄러움에 대한 부채의식을 잊지 않고 늘 진화하려 노력해왔다. 1987년 방송민주화를 거치며 ‘공정방송’ 리본을 달고 감옥살이를 했고,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100분 토론]을 진행하며 한국의 저널리즘을 상징하는 언론인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지위와 명예가 보장된 교수직을 떠나 저널리즘의 이론과 현실을 조합해 오늘에 이르렀다. 저자는 손석희 저널리즘을 통해 한국 언론에 여전히 희망과 기대를 걸 수 있다는 전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고, 시민들이 언론을 포기하지 않게끔 자리를 지켰다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