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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재미있어야 하고 비평은 명료해야만 한다 !" - 위대한 작가들의 초상화와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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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를 통한 위대한 작가들과의 만남/이인웅
얼굴을 그렸으되, 얼굴만을 그린 것이 아닌/강형구 저자 서문 윌리엄 셰익스피어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모제스 멘델스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프리드리히 폰 쉴러 프리드리히 횔덜린 프리드리히 슐레겔 E. T. A. 호프만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루드비히 뵈르네 하인리히 하이네 리하르트 바그너 테오도르 폰타네 에두아르트 폰 카이저링 안톤 체호프 구스타프 말러 아르투어 슈니츨러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리카르다 후흐 알프레드 케르 하인리히 만 하인리히 만과 토마스 만 알프레드 폴가 토마스 만 알프레드 되블린 프란츠 카프카 리온 포이히트방거 아르놀드 츠바이크 프란츠 베르펠 클라분트 요제프 로트 베르톨트 브레히트 볼프강 쾨펜 막스 프리쉬 솔 벨로우 페터 바이스 하인리히 뵐 에리히 프리트 지크프리트 렌츠 귄터 그라스 토마스 베른하르트 인명해설 역자후기 편집후기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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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러시아인 체호프. 그는 질풍노도의 혈기 방장한 작가가 아니었고, 이단자도 폭도도 아니었으며, 혁명가는 더더욱 아니었다. 톨스토이 백작 같은 설교자도 아니었고,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집념도 없었다. 그는 결투를 해 본적도 없고, 무슨 모반에 가담한 적도 없었으며, 해외로 도피하지도 않았고, 체포되거나 시베리아 추방을 당한 적도 없으며, 하다못해 그럴 듯한 러브스토리 하나 알려진 바 없다.이와 같은 부정형 진술에 최종적으로 쐐기를 박는 압권이라면, 체호프가 -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처럼 - 이 땅에 살았던 위대한 작가들 축에는 들지 못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누가 알랴. 어쩌면 그 대신에 가장 사랑받는, 너무나 따뜻하고 호감가는 작가 축에 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 나는 체호프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내가 아주 오래 전부터 그에 대한 흠모의 정으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지 않겠다. --- p. 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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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문단의 불독”이 소개하는 “위대한 작가들의 모습”
『내가 읽은 책과 그림』은 저자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연재한 「내 그림들」이란 제목의 문학 칼럼을 엮은 것입니다. 저자는 이 속에서 셰익스피어, 레싱, 괴테, 실러, 하이네, 폰타네, 토마스 만, 카프카, 브레히트, 막스 프리쉬, 귄터 그라스 등등 한 시대를 풍미한 독일 작가들의 모습을 담은 재미있는 초상화와 함께, “독일 문단의 불독”이란 평가에 어울릴 만한 거침없고 박력 넘치는 문체로 이들 작가들의 작품과 생애에 얽힌 일화를 하나하나씩 설명합니다.
독일 문학요? 세상에, 요즘 누가 그런 걸 읽겠습니까? 초중고 시절 헤세의 『데미안』이나 괴테의 『베르테르』처럼 “독후감을 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읽어치웠던 책들을 제외한다면, 솔직히 지금처럼 대학에서도 영미권을 제외한 ‘외국문학’이 홀대받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생소하기 그지없는 “위대한 독일 작가들의 초상화”를 다룬 책을 출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솔직히 이 책을 준비하면서 계속 제 머릿속을 혼잡스럽게 만든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다름 아닌 “책을 읽는 즐거움,” 혹은 “문학의 가치”를 새삼스럽게나마 일깨워 준다고 말입니다. 독자를 매료시키는 여든다섯 노인네의 ‘화려한’ 입담.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라는 이 할아버지, 1920년생으로 2차대전 중의 유태인 대학살에서도 살아남았고, 잡초처럼 또는 불독처럼 끈질기고 집요하게 문학의 의미를 탐색하며 살아온 여든 다섯 노인의 ‘화려한’ 입담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출간 의의는 분명히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독일 ZDF 방송의 최장수 서평 프로그램《문학 사중주》를 통해 이른바 “독일 문단의 황제”니 “불독”이니 하는 온갖 구설수를 다 겪고, 심지어 그 불같은 성격을 이기지 못해 방송 중에 귄터 그라스의 책을 발기발기 찢어버리는 해프닝을 연출하면서까지 그가 지키려고 했던 나름대로의 ‘주장’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문학은 재미있어야 하고, 평론은 명료해야만 한다.” 토마스 만 (미하엘 마티아스 프레히틀 作) 문학평론도 이렇게 재미있는 글이 될 수 있다! 『내가 읽은 책과 그림』은 이러한 주장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책입니다. 흔히 생각하기에 ‘문학평론’이라고 하면 뭔가 매우 관념적인 전문 용어만이 난무할 뿐, 실제로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글이 아닙니까? 흔히 ‘평론’을 읽는다고 할 때에는, 단순한 ‘독자’의 입장이라기보다는, 평론가들의 휘황찬란한 언어유희를 구경하는 ‘관객’의 입장에 서게 되니 말입니다. 하지만 라니츠키의 글은 분명히 다릅니다. 문학평론가도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구나, 그리고 평론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호오가 뚜렷하고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만의 기준을 지키며 독설조차 서슴지 않는 그의 글을 읽다보면, 정말 “왜 우리 문단에는 이런 평론가가 한 사람 없는가?” 하는 의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나머지 열댓 권을 잡지 않을 수 없다! 라니츠키가 15년 가까이 진행한 TV 서평 프로그램 《문학 사중주》가 “문학을 지나치게 상업화한다”는 등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시청자들의 열렬한 성원을 받으며 진지한 독자들의 발걸음을 TV 앞에서 서점으로 돌려놓았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계시겠지요? 《문학 사중주》에서 소개한 책들이 삽시간에 ‘베스트셀러’가 된 까닭은 사실상 프로그램의 ‘영향력’ 때문이 아니라, 진지한 독자라면 누구나 흥미를 느낄 만한 우수한 작품을 소개하려는 그의 우직함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저는 이번에 소개할 『내가 읽은 책과 그림』 또한 저자의 이러한 생각을 적극 반영하고 있는 책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거꾸로 읽는 세계사』라는 책 “한 권”이 또 다른 “열댓 권”의 책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듯이, 이 책 또한 우리들이 지금껏 몰랐던 위대한 작가들의 책을 읽는 ‘즐거움’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리라 확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