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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사회를 병들게 하는 마약 같은 과잉보호
1. 과잉보호 논쟁의 신호탄, 『차이트』(Die Zeit)지 수록글 2. 과잉보호에 대한 찬성 Vs. 반대 3. 과잉보호가 초래하는 위험과 부작용 2장 교육, 왜 필요한가? 1. 교육의 이유 ― 온실 바깥에서 살아가는 방법 전수 2. 교육이란, 삶을 배워 나가는 것 3. 교육은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인간 만들기’ 과정 4. 어른들이 갖춰야 할 몇 가지 조건들 5. 아이의 미래가 달려 있는 교육에 대한 결정들 6. 내일의 세상을 위한 인간 3장 대중적 현상으로서의 과잉보호 1. 과잉보호란 무엇인가? 2. 미래의 성공적인 삶을 방해하는 과잉보호 3. 아이를 망치는 과잉보호의 몇 가지 예 4. 과잉보호의 핑계를 제공하는 상황들에 관해 4장 치유가능한 불치병, 과잉보호 1. 과잉보호로 인해 아이의 미래는 보호받지 못한다 2. 불행을 향해 가는 편안한 엘리베이터, 과잉보호 3. 부모의 욕심이 과잉보호를 불러온다 4. 전 사회적으로 확산된 ‘과잉보호 중독’ 현상 5. 행복에서 점점 멀어지는 ‘스스로 과잉보호하기’ 6. 현대사회의 ‘타락’을 초래한 과잉보호 5장 사회 공동체의 균열을 가져온 과잉보호 1. 텔레비전에 방치되는 현상으로서의 과잉보호 2. ‘미성숙함’을 유지시키는 방식으로서의 과잉보호 3. 사회 전체를 옭아매는 과잉보호 4. 과잉보호의 결과물, 비사회적 인간 6장 이제, 아이에게 NO라고 말하라 1. 생각을 바꾸라, 희망이 찾아온다 2. 과잉보호 소용돌이로부터 탈출하기 3.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한 시도 4. 미래에 대한 예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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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보호는 삶을 제한한다. 그 반대로 스스로 성취한 성공은 내적인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이를 위해 어른들은 아이들 각자에 알맞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 아동교육을 책임진 사람들은 모두 아이들이 자립적이고 만족스러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의무가 있다. 아이들은 강해지기 위한 튼튼한 뿌리와 자유로워지기 위한 안정된 날개, 그리고 항상 자신을 지지해주는 부모가 필요하다.
--- p.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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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자신의 다양한 요구사항에 직접 부딪혀야만 경험을 쌓고 강해질 수 있다. 삶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편안하고 따뜻한 이부자리에서 뒹굴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한곳에 가만히 머물러 빈둥거리는 것은 삶이 지겹다는 뜻이다.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용기를 가지고 삶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서는, 모범의 될 만한 스승과 매순간 성취할 수 있는지 도전을 받는 상황이 필요하다. 첫돌부터 혼자―주변을 크게 더럽히지 않고―수저로 밥을 먹고 컵으로 물을 마시거나, 넘어지지 않고 보행기에 올라앉을 수 있는 아이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연습과정을 거친 결과인 것이다. (……) 아이의 앞에 놓인 걸림돌을 늘상 치워주는 것은 아이를 어른이 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가장 몹쓸 악이다.
--- p.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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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해법은 있는가?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흔한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어린이는 미래의 희망’이란 진부한 표현을 굳이 쓰지 않더라도, 교육이 중요함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는 사실 또한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알고 있다. 오죽하면 ‘교육, 이대로 좋은가’, ‘사교육 문제, 해법은 없나’, ‘공교육에 희망을’ 등의 카피가 신문 지면을 떠날 날이 없겠는가. 그런 외침에 답하듯 교육부는 요즘 한창 교육 ‘개혁’ 중이다. 사교육비를 경감하고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키겠다는 기치 아래 ‘내신으로 대학 보내기’와 ‘밤 10시까지 수업시키기’란 카드를 내놓은 것이다. 아직 초안만 잡혀 있는 ‘개혁안’에 왈가왈부하기 전에 우리가 모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무슨 일이든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 일을 ‘왜’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동기부여가 확실해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자들은―학부모?교사?교육부 관계자들을 통틀어―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왜’를 놓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왜 교육을 해야 하는지, 왜 교육이 필요한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주 혼란에 빠지고 자꾸만 틀린 길로 가는 것이다. 교육, 왜 해야 하는가? 『차이트』(Die Zeit)지에 발표되었을 당시 각종 언론매체와 많은 부모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알베르트 분슈의 『아이에게 NO라고 말하라』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 제시를 시작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이 자연적 삶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독일의 교육학자인 저자가 ‘아직 자연적 삶에서 멀어지지 않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또한 독일사회 아동교육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온 이 책이 마치 2004년 대한민국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쓰여졌음을 참고로 밝히는 바이다. 이미 자연적 삶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에 인간에겐 교육이 필요하다. 이유를 찾았다면 해답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다. 따라서 교육의 목표는 ‘아스팔트 대지 위에 시멘트로 집을 짓고 초고속 인터넷으로 정보를 수집하면서도 최대한 자연적 삶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자연은 인간을 탄생시키고 너그럽게 품어주지만,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열매를 달아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을 통해 ‘자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과잉보호, 무엇이 문제인가? “끝도 없는 선물, 간식, 용돈 공세, 원하는 게 있으면 바로바로 들어주고, 끊임없이 응석을 받아주고, 말로는 안 된다고 하지만 행동은 다르며, 아이가 조금만 투덜거려도 쩔쩔매며 비위를 맞추고, 숙제나 과제를 대신 해주고…….”(본문 15쪽) 요즘 엄마들처럼 ‘내 아이만은 특별하게 키우기 위해’, ‘내 아이의 기를 살리기 위해’,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설혹 그것이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게 될지라도―불사할 각오가 되어 있기에’, 그리고 특히 ‘공부만 잘하면 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치마폭에만 싸고 돌다 보면, 어른이 되어서도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도 없이 남에게 의존만 하는, 무기력하거나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 십상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그것은 교육의 목표를 위배하는 행동임과 동시에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내 아이가 너무 소중해 아무리 과한 요구라도 다 들어주고, 아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혹시나 잘못될까 두려워’, ‘혹시나 다칠까 두려워’, 혹은 ‘어차피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대신 해주다 보면, 아이는 점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떼쟁이’가 되어갈 것이다. 또한 단순한 떼쟁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무능력자’로 전락해 사회 공동체에 균열을 가져오고 만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듯이,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란 사람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전혀 들이지 않고 하나에서 열까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려 든다. 그래서 학교나 직장에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피해만 주며, 친구관계나 결혼생활 등 인생 전반에서 ‘불필요한 인간’으로 낙인찍혀 살아가게 된다. 우리가 교육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이런 사람들은 점점 늘어갈 테고, 결국 과잉보호는 ‘현대사회의 타락’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말 것이다. 해답은 무엇인가? 동기를 부여하고 목표를 설정했다면 이제 행동으로 옮기는 일만 남았다. 언제나 교육이 표류 중인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자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해답을 지구 반대편에서 쓰여진 독일 책에서 발견할 수 있겠는가? 다행히도 해답은 발견되었다. 저자의 주장대로 아이를 끼고 돌며 금이야 옥이야 위하기만 하는 것이 좋은 부모라는 콤플렉스―과잉보호를 유발시키는 가장 결정적인―에서 벗어나, 아이의 무리한 요구와 잘못된 행동에 과감하게 ‘NO’라고 말해야 한다. 물론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싶고, 실패나 좌절 같은 단어는 아예 모르게 하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지만, 눈 한번 질끈 감고 “그렇게 하면 안 돼!”, “네 스스로 해야지, 언제까지 내가 해줄 순 없어!”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비록 아이의 성장이 더딜지라도, 아이의 아슬아슬한 행동들에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싶을지라도, 아이를 믿고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가장 훌륭한 교육이자 넘치는 사랑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이제, 아이에게 NO라고 말하라 토마스 고르돈의 말처럼 “아이에게서 문젯거리를 훔치는 사람은 아이 미래의 행복을 도둑질하는 것과 같다.” 원하는 것을 모두 그 즉시에 들어주고, 아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나 문젯거리를 대신 해결해주는 과잉보호는 ‘좋은 부모 콤플렉스’의 다른 얼굴이다. 그러나 아이를 위한답시고 아이가 느끼는 아주 사소한 불편함까지 나서서 처리해주는 것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독립심’, ‘책임감’, ‘문제해결능력’,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 등을 갖추게 될 기회를 빼앗는 것과 같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열혈 엄마’들은 아이의 학원?과외 스케줄을 챙기는 것을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가 ‘성적을 올리는 것’과 ‘올바르게 자라나는 것’은―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듯이―분명히 다르다. 물론 이 책의 저자가 아이를 적게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시키지 말라는 것 또한 아니다. 넘치게 사랑하되 부족하게 주는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응석을 부리며 지나친 요구를 해올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현명한 부모만이 아이를 자립심 강한 ‘올바른 사회인’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자신의 삶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란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를 우리의 부모들이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