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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민들레 소녀 21세기 중고차 매장에서 프라이팬 조종사 팝콘 튀기는 TV 별들이 부른다 시인과 사랑에 빠진 큐레이터 당신의 영혼이 머물 자리 과거와 미래의 술 파란 모래의 지구 하늘에 새겨진 글자 약속의 별 춤의 언어 붉은 학교 시간을 되돌린 소녀 화강암의 여인 옮긴이의 말 |
Robert Franklin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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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서 시집을 고른 그는 〈언덕 위에서의 오후〉라는 시를 찾았다.
그 시를 읽을 때마다 그는 햇볕 아래에 서 있던 그녀를, 바람에 나부끼던 그녀의 머리카락을, 곧고 사랑스러운 다리를 감싸고 눈처럼 펄럭이던 그녀의 드레스를 떠올렸다. 무언가가 울컥하고 치밀었지만 그는 차마 삼킬 수 없었다. --- p.18, 〈민들레 소녀〉 중에서 같은 이야기지만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해도 당신의 다리가 아주 뚱뚱하다면 그 누구도 당신을 원하지 않을 테고, 결국 당신은 프라이팬 공장의 판에 박힌 일상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당신은 매일 아침 일터로 나가 똑같은 일을 하고, 매일 밤 집으로 돌아가고, 매일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컨베이어로 물건을 보내는 무자비한 시간 내내 최후의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결국 당신에게 마지막 통보가 전해지는 것이다. --- p.60, 〈프라이팬 조종사〉 중에서 에밀리는 처음 시인의 회랑을 담당하기로 결정되었을 때 큰 기대에 부풀었다. 처음 아이디어를 냈던 미술관 관장처럼 그녀도 시는 죽지 않았다고 굳게 믿었다. 이젠 먼지 쌓인 책을 읽지 않아도, 마법의 언어를 귀로 들을 수 있는 거야! 시인들과 똑같은 크기의 모형에서 시가 흘러나온다니! --- p.106, 〈시인과 사랑에 빠진 큐레이터〉 중에서 다음 날 아침, 밖으로 나온 선장은 24개의 맥주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맥주나무를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고,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앞에는 수확하기 직전의 과일처럼 맥주병들이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 p.162, 〈파란 모래의 지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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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의 거장 로버트 F. 영의 독특한 세계가 그려진 소설집(集)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친숙하지는 않지만 SF소설로 이미 이름을 알린 미국작가 로버트 F. 영. 1956년에 출간된 그의 작품집을 국내 최초로 번역한 책이 바로 『민들레 소녀』이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지에서는 출간되자마자 SF소설의 기준이 될 만큼 찬사를 받았던 이 작품집은 국내에는 늦게 출간되었지만 한국 독자들에게 독특하면서도 신선한 재미를 제공할 것이다. 로버트 F. 영의 작품집을 읽다 보면 우리가 상상한 세계 저편에 작가가 서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력이 결핍된 시대에 사는 우리로서는 좀처럼 도달할 수 없는 세계에서 작가를 만날 수 있다. SF소설은 원래 과학을 기초로 하여 우리의 상상력이 도달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픽션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소설들은 현실과 결별하지 못하는 인간의 삶을 우주 밖에서 그리고 있기에 일반적인 SF소설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소설가가 상상력을 동원해서 미래를 예측하고 과학의 세계를 재구성하는 게 아니라 현실 속에 노출된 인간의 불안과 불협화음을 미래로 이전시키면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1956년에 출간된 이 책은 미국의 산업화와 전쟁, 그리고 인간성 상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셀비 주니어가 쓴 책인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가 당시 미국의 엄습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면 로버트 F. 영의 작품집은 시적인 감수성과 현실을 꿰뚫어보는 시선으로 독자들을 미래의 어느 들판으로 안내한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극에 달하면 이 지구의 운명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장 사이사이에 인간에 대한 작가의 애틋한 사랑 또한 엿보인다. 화성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폴란드인들을 통해 인간의 상처를 인간을 통해 회복하고, 민들레 빛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와의 풋풋한 사랑을 기억의 조합을 통해 현실로 끌어내린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로버트 F. 영의 소설은 카렐 차페크의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너무나 현실적인 미래 소설, 『민들레 소녀』 로버트 F. 영의 작품집은 원래 ‘The world of Robert F. Young’이라는 제목으로 16개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출간한 작품집은 15개의 단편만 실려 있고 제목을 『민들레 소녀』로 수정했다. 제목을 이렇게 바꾼 것은 출간 전부터 인터넷에서 로버트 F. 영의 작품집에 실린 〈민들레 소녀〉가 번역이 되면서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다. 이렇듯 〈민들레 소녀〉가 출간되기도 전부터 인기를 끈 이유는 일본 애니메이션 〈클라나드〉의 영향 때문이다. 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코토미가 토모야에게 로버트 F. 영의 소설집을 건네주고 가슴을 아리게 하는 유명한 대사가 반복해서 나온다. “그제는 토끼를 보았어요. 어제는 사슴, 오늘은 당신을.” 이 대사는 240년 후의 미래에서 온 민들레 소녀가 언덕 위에서 어느 중년 남자에게 한 말이다. 당신을 기다렸다, 라는 말을 시적으로 표현한 아름다운 대사이다. 우리는 『민들레 소녀』를 통해 극에 치달은 물질주의에 대한 경고를 읽을 수 있다. 〈시인과 사랑에 빠진 큐레이터〉에서는 ‘시’와 ‘자동차’가 대조를 이루면서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잃어버릴 수 있는 인간성과 진정한 예술성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팝콘 튀기는 TV〉에서는 인간의 삶이 송두리째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실에 울분을 토하기도 한다. 또 〈21세기 중고차 매장에서〉는 물질이 곧 인격이 되고 그것이 얼마나 정치적인가 하는 문제를 미래를 통해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프라이팬 조종사〉는 20세기의 노동문제가 21세기에도 그리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렇듯 로버트 F. 영의 작품들은 50년이 넘는 시간의 격차를 뛰어넘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오히려 지금 우리의 현실과 너무 가깝게 맞닿아 있어서 신선한 느낌이 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