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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롱으로 살아라!
조선의 아웃사이더, 연암 박지원
김용관
돋을새김 201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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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1부_ 18세기 조선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1. 우울한 아웃사이더, 연암
2. 그냥 아롱으로 살아라!
3.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린 민중들
4.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다
5. 대중문화 소비층들의 등장
부록 1 - 책비 살인사건
- 가장 인기 있는 공포소설, 『설공찬전』

2부_ 연암, 아웃사이더의 길을 걷다
1. 내면에는 다양한 인물군상이 있어
2. 연암의 아웃사이더 기질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3. 연암은 우울했다?!
부록 2 - 연암을 걱정한 이양천
4. 연암 사단, 불온한 시대를 함께 겪어낸 이들
부록 3 - 다산과 연암: 근대의 문을 연 두 아웃사이더
5. 암담한 서른 무렵
6. 갈림길에 선 연암
7. 연암골짜기에서의 생활
8. 열하에서의 행보
9. 영원한 아웃사이더 연암의 후반생

연암 연표
참고 문헌

저자 소개

저자 : 김용관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대학을 다녔으며, 「월간축구」와 국내 최초 실버잡지 「골든에이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탐욕의 자본주의」 「허균, 길에서 살며 사랑하다 죽다」 「생각의 진화」 등이 있다. 「월간중앙」에 조선 역사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한경리쿠르트」에 조선 군주의 리더십에 관한 글을 연재한 바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434g | 148*210*20mm
ISBN13
9788961670661

책 속으로

연암의 하루 일과를 보면 당시 그의 삶이 얼마나 괴팍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일단 잠에서 깨면 책을 보았고, 그러다 또 잠이 들었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깨우는 사람도 없으면 하루 종일 자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가 없어 밖에 나가 보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침인지 저녁인지를 도통 알 수가 없으니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지금이 아침이오, 저녁이오?”라고 묻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과 상관없는 생활을 하던 연암은 간혹 친구들이 보낸 술이라도 있으면 술 마시고 취해 노래를 흥얼거렸다. 또 누군가에게 우스갯소리를 들으면 혼자 누워 있다가 하루 내내 호탕하게 웃곤 했다. ---p.129, 연암 사단, 불온한 시대를 함께 겪어낸 이들 중에서

종각 아래 아무렇게나 앉아 어린 종이 사온 술로 목을 축이던 그들은 취기가 오르자 운종가 달빛 아래 넓은 거리를 걸었다. 때마침 북소리가 자정을 알렸다. 달빛은 더욱 밝아지고 그림자는 길어져 스스로 자기 그림자를 보아도 무서웠다. 거리에는 개들이 어지러이 짖고 있었다. 덩치가 사자만한 개 한 마리가 동쪽에서 나타났는데 흰빛에 삐쩍 마른 것이 안쓰러워 친구들은 개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녀석은 기분이 좋은지 꼬리를 흔들며 머리를 숙인 채 오래도록 서 있었다.
이덕무가 술에 취해 개의 이름을 ‘호백’이라 붙여주었다. 조금 지나 그 개가 어디론가 사라지자 이덕무는 마치 오래된 친구와 헤어진 듯 세 번이나 “호백아!”를 애타게 부르면서 서운해 했다.
늦은 밤까지 일행들은 거리에서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주량은 연암이 가장 셌고 이덕무가 그 다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대개 비슷했다. 그들이 크게 떠들고 호기롭게 웃어대자 종로의 개들이 모두 잠에서 깬 듯 더 크게 짖어댔다. ---p. 173, 갈림길에 선 연암 중에서

연암은 유난히 별장 이름이나 사람 호에 대나무 ‘죽(竹)’ 자를 붙이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은 줄곧 출세를 쫓으면서, 허세를 부리기 위해 대나무 이름을 갖는 이에 대해 불쾌한 심정이 있었던 것이다.
양호맹이 별장의 이름과 관련한 글을 한 편 부탁하자 연암은 “자네가 대나무라는 호를 다른 이름으로 고친다면 당장 글을 써주겠네”라고 했다. 그는 친구 양호맹에게 여러 가지 이름을 열거하며 대나무 외의 다른 호를 가질 것을 권했지만, 양호맹의 고집도 대단했다. 그 역시 연암만큼이나 고집이 센 사람이어서 때로는 술을 주면서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언성을 높이며 강요하기도 했다. 양호맹은 간혹 연암에게 발끈 화를 내다가 낯빛을 붉히며 손을 치켜들기까지 했다. 연암은 자신을 귀찮게 하는 양호맹을 묘사하면서 “낯빛을 붉히며 노려보는데, 눈썹을 ‘개(?)’ 자(대나무 줄기를 본뜬 글자) 모양으로 찡그렸다”느니, “손 마디마디가 굳세고 삐죽삐죽한 것이 문득 대나무 모양 같기도 하다”느니 하면서 농이 섞인 글을 남겼다. ---pp.182~183, 연암골짜기에서의 생활 중에서

“공자가 7일 동안 밥을 먹지 못하니 도(道)를 생각할 겨를이 없네. 무슨 낙으로 지내시는가 싶어 글을 보내네. 남 앞에 굽실거려 본 적이 하도 오래되고 보니, 사는 형편이 자네처럼 좋은 벼슬에 있는 사람과는 비교할 수가 없네. 내 서둘러 절하며 부탁하니 돈 좀 꾸어주시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네. 보내는 김에 빈 술병도 함께 보내니 술을 가득 담아 보내주면 참으로 고맙겠네.” …… 무척이나 궁색했던 연암은 초정(박제가)에게 돈을 빌리는 주제에 술병도 함께 보낸다. 그런데 연암의 편지에 대한 초정의 답장 역시 재미있다. …… “열흘 장맛비에 밥이라도 싸들고 직접 찾아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 돈 200냥을 편지를 전하는 하인 편에 보냅니다. 술은 보내드리지 못합니다. 세상에 한꺼번에 두 가지를 다 가질 수야 있겠습니까? 욕심도 과하시지요. 허허허.”

---pp.213~214, 열하에서의 행보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대의 빠른 변화에는 느림으로 맞서고
비참한 현실에는 유쾌한 해학으로 맞선
조선의 지식인 연암 박지원을 만나다!

세상의 중심에서 세상을 등지고 살았던 조선 최고의 문장가


연암 박지원에게는 늘 ‘조선 최고의 문장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진보적인 사상과 파격적인 문체, 시대를 꿰뚫는 통찰로 당시 사람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뛰어난 문장으로 평가되는 만큼 연암의 주요 작품을 중심으로 다룬 책들은 많다. 하지만 박지원이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그의 삶은 조명한 책은 드물다.
이 책은 연암의 삶, 특히 벼슬을 거부하고 철저하게 아웃사이더로 살았던 전반기의 생애를 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18세기 급변하던 조선의 시대 상황과, 연암의 내면이 담긴 다양한 작품들, 그리고 연암에게 영향을 미친 주변 인물들을 통해 연암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연암은 왜 우울했을까?
시장 주변에서 자란 예민한 소년의 우울증 극복기


저자는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내가 글을 쓰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연암은 왜 우울증을 앓았을까? 아니 연암만 그 시대에 우울증을 앓았던 것일까? 우울증은 사회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개인들의 환절기 감기와 같은 병이다. 그러니 연암과 함께 살던 18세기의 평범한 사람들 역시 상당수 우울증을 앓았을 것이다.” (서문 중에서)

연암은 글 곳곳에서 자신이 앓던 우울증에 대해 토로하고 있다. 십대 시절부터 우울증으로 인한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렸던 연암이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연암의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잠 못 드는 밤이면, 시장을 오가며 수집한 풍문들을 소재로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우울증에서 비롯된 불면의 밤을 글쓰기로 달랬던 것이다. 저자는 연암이 어린 시절부터 우울증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개인적인 상황과 18세기 조선의 사회상을 살펴보고, 당시 집필했던 글들을 통해 연암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연암은 왜 아웃사이더가 되었나?
부조리한 세상을 함께 겪어낸 불온한 아웃사이더들


어린 시절 연암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강직한 성품의 청렴하고 보수적인 그의 할아버지 박필균이었다. 그리고 청년 시절에는 조정의 부름을 거부하고 자연을 벗하며 학문에 몰두했던 원중거와 이윤영, 이인상 등 반골 처사인 노론 청류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이덕무, 박제가, 이희천, 홍대용 등의 절친한 벗들 또한 연암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연암에게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준 스승들을 비롯하여 밤 새워 시와 문장, 현실의 모순과 사회 개혁에 대해 논의했던 벗들에 얽힌 다양한 일화들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그리고 주변의 인물들이 연암에게 미친 영향과 함께 연암이 아웃사이더의 길을 걷게 된 과정을 세심하게 추적한다.

의로운 사람들을 버리고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
“그냥 아롱으로 살아라!”


1800년 조선의 개혁 군주 정조가 숨을 거둔 뒤 세도가가 기승을 부리던 무렵, 연암은 조카 박종선의 「능양시집」 서문을 쓰면서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당부한다.
“세상에는 총명한 선비는 적고 무식한 사람이 많으니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잠자코 있어라.”
의로운 사람들을 버리고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 차라리 말 못하는 벙어리처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처럼 살라고 충고한 것이다.
깊이 있는 사유로 시대를 통찰하며, 사리사욕과 이념에 매몰된 지배층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연암 박지원. 그는 급변하는 세계의 흐름을 외면하고 중세의 고루한 사고에 집착했던 18세기 조선의 여느 지식인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당쟁으로 얼룩져 있던 조정과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세도가들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연암은 고래의 전통을 답습하는 유교보다 백성들의 생활을 나아지게 할 수 있는 새로운 학문에 열중했으며, 입신양명에는 별다른 뜻을 품지 않았다.
뛰어난 문장가이기 이전에 만년 우울증 환자였으며, 서른이 되기도 전에 머리카락과 수염이 하얗게 세어버린 청년이었고, 가난 때문에 스스로 농사를 지어야만 했던 연암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연암과 그의 문학에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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