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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발견
너라는 유배지
박후기
gasse(가쎄) 2017.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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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자서 8

1부
사랑이라는 유배


너에게 유배당하고 싶다 17
정유재란丁酉再亂 19
너라는 유배지 22
병자호란丙子胡亂 24
도강渡江 시편
- 유배일지 1 26
회진하는 태양
- 유배일지 2 28
사랑이라는 유배 1 30
사랑이라는 유배 2 32
사랑이라는 유배 3 33
사랑이라는 유배 4 34
사랑이라는 유배 5 36
사랑이라는 유배 6 37
사랑이라는 유배 7 38
사랑이라는 유배 8 39

2부
옛날 그리움은 배를 타고 왔다


사랑 지출결의서 43
사랑마저 끝난 후에 사랑은 시작되는 거예요 46
절반의 꽃 48
간결한 그리움 49
옛날 그리움은 배를 타고 왔다 50
사랑의 발견 52
섬의 슬픔 54
지독한 사랑 56
섬 소년 58
사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60
이 순간 62

3부
그대는 어찌하여 먼 곳으로 가시나요?


이어도를 이어 그리다
- 원교 이광사를 생각함 67
말년末年 동백
- 면앙정 송순을 생각함 70
귤중옥橘中屋* 서신
- 추사가 아내를 생각함 72
그대는 어찌하여 그 먼 곳으로 가시나요?
- 정약용 정약전 형제를 생각함 75
흑산 약전*
- 손암 정약전을 생각함 78

4부
죄를 싣고 떠나는 배


바다도 한 번쯤은 산꼭대기에 오르고 싶다 83
동백처럼 지다 84
죄를 싣고 떠나는 배 86
돌담이 무너진 까닭 88
질풍, 노도에 잠들다 90
미조항 멸치잡이 92
섬 속의 섬 94
갈화리 느티나무 96
관음포 당부 98
유자 약전藥箋 100
그늘과 그물 102

5부
남해도 전별시첩餞別詩帖


소재 이이명을 생각함 107
서포 김만중을 생각함 110
자암 김구를 생각함 112
약천 남구만을 생각함 114
후송 유의양을 생각함 116

작품 등장 유배 인물 118

저자 소개 1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 200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내 가슴의 무늬」 외 6편의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가 있으며, 산문사진집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나에게서 내리고 싶은 날』, 그림산문집 『그림약국』, 장편소설 『토끼가 죽던 날』이 있다. 2006년 제24회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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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7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184g | 130*200*20mm
ISBN13
9788993489682

책 속으로

너라는 유배지

갈 곳 없는 별빛이
밤하늘 구석에서
혼자 반짝인다
네 눈 속에
내가 살러 간다
온 생이 흔들리면서
너에게 귀양 간다

사랑도 죄인 양하여
내 마음 함거?車*에 실어
너에게 보내느니,
빠져나갈 길 없는
섬 같은 사람아
부디
네 마음속에 나를
기약 없이 가두어다오

* 예전에, 죄인을 실어 나르던 수레.


사랑이라는 유배 1

사랑은
너에게
복무하는 일도 아니고
너에게
복종하는 일도 아니다

사랑은
이별 없이 살아가는 일이다
이별하고 살아지는 일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진해서
너라는 감옥에
갇히는 것이다
세상은 온통
너라는
감옥살이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사랑이라는 유배 2

꽃이 피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마세요
봉오리 안에 갇힌 세계가
내 생의 절반이라는 것을
당신은 아셔야 해요
서두르지 마세요
꽃은 분명
당신 눈앞에서 피지만
그 느린 열림을
당신은 볼 수 없습니다
기다릴 수 없다면, 가세요
세상에
때늦은 사랑이란 없습니다


사랑 지출결의서

어제는
사랑을 진행하며
커피를 두 잔
마셨습니다

가난보다 향기가 진한
가난한 나라 에티오피아산
원두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습니다

생의 계정과목 중에서
사랑은 무조건적인
지출항목입니다
당신에게 먼저
마음 한 조각 지불하고
당신 결정을 기다리며
잠 못 이룰 때,
비로소 나는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혼 사용 내역을
증빙하라는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아무에게나 영혼을
지불하지 않겠습니다

적요란에는 아직
사용 중인 침묵을
빈칸으로 기재하겠습니다
적요寂寥하더라도
감내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 지출 내역을 정히 청구하오니
내 마음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옛날 그리움은 배를 타고 왔다

옛날 그리움은
배를 타고 왔다

죽기 전에
닿기 위해
죽기 전에
만나기 위해
조금씩 흔들리면서
구멍 난 배를 타고
당신에게 건너간다

어느덧 세월도 낡아서
아득한 기억 속으로
노 저어 갈 때마다
시린 마음 한쪽
삐거덕거리며 기운다

저 혼자 흔들리면서
구멍 난 배에
물처럼 차오르면서
옛날 그리움은
배를 타고 온다


귤중옥橘中屋* 서신
- 추사가 아내를 생각함

바람 타는 섬에는
없는 것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어쩌다
뭍에는 없는 것들이 섬에 있어
나인 양 여기며
그나마 위안을 얻고 지냅니다
귤이 그중 하나입니다
속은 희며 푸른 문채를 가진
귤이 나와 같기로서니,
어느덧
뭍에서 가슴에 품고 지냈던
매화, 대나무, 연꽃, 국화가
시들해진 것을 느낍니다
세상에 절개는 흔한데
살림은 어둡기만 합니다
흔한 절개에 쫓겨 내려와
굴원屈原**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리며 자책하고 있습니다
‘세상 흐린데 나 홀로 맑고,
모든 사람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네
그래서 쫓겨난 것이라오’***
육백 리 제주 그 어디에도
당신을 대신할 것은 없습니다
망극한 성은과 당신,
소중한 것은 여전히
먼 육지에 있습니다
사랑은 발견입니다
돌과 파도와 비바람 속에서
문득문득
당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것은
탱자나무 가시 울타리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 추사가 유배당했던 제주 적소(謫所)의 당호.
** 중국 초나라의 정치가이자 시인. 전국시대 혼란기에 개혁을 추구했으나 모함과 배척으로 유배를 반복하다 돌을 안고 강물에 투신.
*** 擧世皆濁 我獨淸 衆人 皆醉 我獨醒 是以見放. 굴원의 시 어부사(漁父辭)에서 인용.


흑산 약전*
- 손암 정약전을 생각함

사람이 사랑에 갇히면
사람 생각만 하게 됩니다
그러나
생각이 너무 깊으면
병을 부르고 그로 인해
사랑을 잃기도 합니다

뜰 앞의 나무는
볼 때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만
열매 다는 일을 잊은
경우는 없습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
갇힌 몸과 함께 마음도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처럼
고난의 연속입니다

먼 바다에
배 한 척이 지나갑니다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닌 게 분명하지만
자꾸 나를
눈물짓게 만듭니다

* 정약전.


바다도 한 번쯤은 산꼭대기에 오르고 싶다

포구가 없는
가천 다랭이마을*에서는
사람이 바다로 나갈 수 없어서
바다가 백팔 계단**을 밟고 마을로 올라옵니다

바다라고
왜 번뇌가 없겠습니까?

바다도
한 번쯤은 산꼭대기에
오르고 싶을 때가 있는 겁니다

* 남해군 남면에 있는 마을.
** 계단식 논이 108 층층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죄를 싣고 떠나는 배

비 내리고,
종일토록 방 안에서
별고 없습니다
비 오는 유배지에서는
모든 게 묶인 몸,
작은 배들도
밧줄에 몸이 묶인 채
오는 비 죄다 맞으며
포구에 누워 뒤척입니다
비가 와서
배는 죄를 싣고
떠날 수 없습니다
죄인도 죄도 잠시
쉬어가는 벽련포구,
비 그치기 전
이물* 돌려 서둘러
노도에 간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비는 바다에 떨어져도
죽지 않습니다
죄인이 바다에 빠지면
죄는 죽지 않고
죄인만 죽습니다

* 뱃머리.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사랑은 발견하는 것”
유배를 테마로 한 독특한 시집 출간한 박후기 시인


박후기 시집 『사랑의 발견』은 보기 드물게 유배라는 하나의 테마가 시집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시인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정유재란과 병자호란을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거나, 추사 김정희, 서포 김만중, 다산 정약용 정약전 형제 등 조선시대 유배 인물의 심정이 되어 절절한 그리움을 시로 드러내기도 한다.

내가 죽을 때까지/벗어날 수 없는 것은/탱자나무 가시 울타리가 아니라/당신이라는 것을/이제야 알겠습니다
- 「귤중옥橘中屋 서신」 중에서
제주도에 유배 간 추사 김정희의 심정이 되어 육지에 있는 아내를 생각하며 쓴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시인이 추사가 된 듯,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다.

귀양을 살다 만나 다시/서로 다른 유배지로 떠나기 전/나주 율정(栗亭)삼거리 주막에서/보내는 하룻밤은/어미 뱃속인 듯 따뜻하고/아비 무덤 속인 듯 차갑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그 먼 곳으로 가시나요?」중에서
‘정약용 정약전 형제를 생각함’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시는 유배지를 옮기던 길에 우연히 만난 정약전 정약용 형제가 서로 다른 유배지로 떠나기 전 주막에서 하룻밤 같이 묵는 장면을 시로 옮긴 것이다.

시집에 실린 시들은 유배자의 심정이 되어 써 내려간 시편들처럼 과거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너라는 유배지’라고 시집 부제를 단 것처럼 현대적 사랑의 특징들을 유배와 결부시킨다.

사랑하기 때문에/우리는 자진해서/너라는 감옥에/갇히는 것이다
세상은 온통/너라는/감옥살이를 하는/사람들로 북적거린다
- 「사랑이라는 유배1」 중에서

생의 계정과목 중에서/사랑은 무조건적인/지출항목입니다/당신에게 먼저
마음 한 조각 지불하고/당신 결정을 기다리며/잠 못 이룰 때,/비로소 나는/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 「사랑 지출결의서」 중에서

그뿐만 아니라, 유배와 관련된 장소를 시로 불러내 불현듯 깨우침을 얻기도 한다.

포구가 없는/가천 다랭이마을에서는/사람이 바다로 나갈 수 없어서/바다가 백팔 계단을 밟고 마을로 올라옵니다
바다라고/왜 번뇌가 없겠습니까?
바다도/한 번쯤은 산꼭대기에/오르고 싶을 때가 있는 겁니다
- 「바다도 한 번쯤은 산꼭대기에 오르고 싶다」 전문

박후기 시인은 『사랑의 발견』에서 역사적 사건에 맞물린 개인적인 상실을 현재에 불러들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랑을 발견해 한 편의 시로 완성해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

“평론가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뒤늦게 의미를 갖게 되는 시집 말고, 처음부터 유배라는 하나의 테마를 정하고 다른 글과 감정이 섞이지 않도록 유념하면서 유배당한 심정으로 준비했습니다.”
- 박후기 시인의 말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시의 함량을 획득한 시집이다. 천편일률적인 시집들 속에서 역사적인 테마와 스토리를 가진 색다른 시집의 출현은 분명 의미가 있어 보인다.

꽃이 피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마세요
봉오리 안에 갇힌 세계가
내 생의 절반이라는 것을
당신은 아셔야 해요
서두르지 마세요
꽃은 분명
당신 눈앞에서 피지만
그 느린 열림을
당신은 볼 수 없습니다
기다릴 수 없다면, 가세요
세상에
때늦은 사랑이란 없습니다
- 「사랑이라는 유배 2」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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