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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초의 필리핀어 통역사 문순득
바다 귀신 막가외, 막가외 청나라로, 다시 제주로 동병상련의 눈물 2 동방의 마르코 폴로를 찾아서 영산강 물길 따라 삭혀진 흑산도 홍어 서남 해역의 중계지에서 유배의 섬으로 돌아오는 사람들, 다시 살아나는 섬 정약전과〈율정별〉 조선의 실학자, 홍어 장수를 만나다 3 최장 기간, 최장 거리의 표류가 시작되다 공포의 망망대해 항해와 표류 어떤 사람들이 표류했을까 표류는 많았다, 기록되지 않았을 뿐 노도의 바다 추자도 해역 4 살았다, 뭍이 보인다! 류큐―슬픔의 섬 오키나와 한반도의 외교를 방해한 왜구 대도, 그리고 친절한 류큐 사람들 조선―류큐 송환 체계 5 조선을 닮은 나라 류큐 류큐로 간 삼별초와 홍길동? 일본어와는 다른 류큐어 오키나와어 사전「표해시말」 류큐인들의 삶을 엿보다 류큐의 토산물―고구마와 뱀술 6 두 번째 표류―아무도 모르는 나라 류큐 조공선을 타고 푸젠 성으로 아무도 모르는 나라, 여송 정복자들이 지어준 이름, 필리핀 세상 어떤 곳과도 같지 않은 도시 작은아버지와 헤어지다 7 고달픈, 그러나 신기한 여송살이 노끈을 꼬아 여송인들에게 팔다 처음 보는 성당, 익숙한 닭싸움 여송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신기한 식사 풍경 필리핀 전통문화 백과사전 8 돌아갈 길이 열리다 아시아의 유럽, 마카오 바다의 여신 마조 마카오에서 찾은 문순득의 표류 기록 뱃사람의 눈을 사로잡은 조선술 마카오의 화폐 제도와『경세유표』 9 그리운 고향으로 하늘 아래 최초 세계 여행자, 천초 다산 선생이 지어준 아들 이름 손암과의 영원한 이별 강진에서 찾아온 귀한 손님 최초의 외국 선박 논문「운곡선설」 실학의 산실, 문순득의 우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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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순득은 표류민 신분이면서도 아마미오 섬과 나하 등지에서 여덟 달을 머무르는 동안 류큐 사람들의 삶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그것을 머릿속에 저장했다. 바람에 떠밀려 표류한 평범한 홍어 상인이 처음 만난 낯선 나라 사람들과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을까? (…) 표류민 신분으로 언제 고향에 돌아갈지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면서도 문순득은 남다른 적응력으로 류큐 주민들과 친구가 되었다. 왕명은 표류민을 따로 격리하라 하고 주민들과 접촉할 수 없게 감시하라 했지만, 이방인들과 낯가림 없이 지내온 것이 류큐인들의 오랜 습성이라 조선에서 온 표류민들에 대한 호기심을 멈출 수 없었나 보다. 류큐인들은 문순득 일행을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스스럼없이 보여주기도 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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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해양 역사상 가장 긴 거리, 긴 시간을 표류한 문순득 이야기
KBS 역사스페셜 특집으로 주목을 받았던 홍어 장수 문순득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제주도로, 일본 오키나와로, 마카오로 문순득의 표류여정을 따라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서미경 피디는 방송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정리해 책에 담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었던 일개 홍어 장수 문순득의 표류담이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새롭게 살아난 것이다. 동아시아사의 중요한 사료로 인정받는 문순득의 표류담을 역사의 양지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와 아울러 이 책의 출간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문순득은 남해의 작은 섬 그것도 죄인들의 유배지로 악명 높았던 우이도에서 홍어를 팔러 나갔다가 역사상 최장 거리, 최장 기간을 표류한 장본인이다. 그는 험난한 표류 여정 속에서도 외국의 언어와 문화를 빠르게 습득하고 3년 2개월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 그를 맞이한 이가 권력과의 불화로 우이도에 유배 와 있던 실학자 정약전이었다. 정약전은 한낱 홍어 장수의 표류담에 귀를 기울였고 그것을 손수 기록으로 남겼다. 그것이 바로「표해시말」이다. 이 기록은 아우 정약용의 제자 이강회를 통해『유암총서』에 실렸고 지금까지 전해진다.「표해시말」은 동아시아 문화교류 측면에서 지금까지도 굉장히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의 실학자들, 그들은 왜 문순득의 표류담에 귀를 기울였을까? 그렇다면 일개 홍어 장수의 표류담에 조선의 실학자들이 주목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문순득의 표류담이 폐쇄적인 관리의 눈이 아닌 일반 백성의 눈으로 동아시아 각국의 문물과 언어, 선박 제조 기술 등을 상세하게 바라본 최초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당시 개혁 세력을 억압하고 현실에 안주한 타락한 위정자들로 인해 망국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던 조선은 눈과 귀를 닫고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서양의 신진 문물과 문화를 기록한 문순득의 표류담은 조선 실학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개혁을 꿈꾸고자 하는 실학자들에게 표류담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돌파구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단순히 역사 사료로서의 ‘표류담’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저자는 그 행간의 숨어 있는 뜻, 즉 망국의 길을 걷고 있는 조선과 이를 안타까워하며 지켜보는 실학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의 변방으로 밀려났으면서도 끊임없이 개혁을 꿈꾸던 조선 실학자들의 모습, 그리고 3년 2개월 동안 표류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문순득의 모습 말이다.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왜 문순득의 표류담에 주목해야 할까? 그것은 똑같은 역사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번화하는 한반도 주변 정세에 맞춰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 도태하고 만다. 즉 이 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의 작은 경고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