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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마지막 담배 가게 달려라 자전거 최후의 한 발 삼류가 간다 카페 다고타하우스 연안부두 떠나는 배 고물 냉장고 개코 막걸리네 황홀한 밤을 아는가 해설│강경석 _ 트로트 풍의 코믹 판타지 액션 러브로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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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은 바로 내가 소설가로서 기자로서 그리고 불합리한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절망과 상실감이라는 심해에서 표류하며 고뇌했던 짧은 기록이다. 과거에 습작처럼 발표해 놓았던 글들을 모아 가필하고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삼류인생들의 쓰라린 경험들을 떠올리며 새로이 썼다. 때문에 소설 속 등장인물에는 내 자신의 비겁한 모습이 가감 없이 투영되어 있다.
나는 소설에는 인생의 희비극이 공존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고단한 삶에서 웃음이 없다면 그것 자체가 지나친 비극이며, 고단한 삶을 망각한 채 등신처럼 늘 희룽거리는 것은 한심한 코미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소설이 과연 인생의 희비극을 현실감 있게 공유하고 있는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고 여전히 불만족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설이란 내 자신을 지탱하는 버팀목일 뿐만 아니라 적어도 각박한 세상 속에서 억눌리고 소외된 사람들의 헐벗은 영혼을 보듬어줄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라고 믿기 때문에 새로이 다짐한다. --- 「작가의 말」 중에서 그녀는 고개를 돌려 흘끔 한을 보더니 도사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까지 당신들을 따라온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녀는 허탈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야. 삶엔 이유가 없는 법이지.” “불쌍해요……. 당신들이나 저 개나…….” --- p.145, 「삼류가 간다」 중에서 나는 요코에게 존 레논의 음악을 신청해 들으며 키핑해놓은 발렌타인을 온더록으로 녹여 홀짝이며 입속에 고여 드는 달콤한 스카치위스키 향기로 지방지 말단 기자의 고달픔과 삼십대 나이의 사내만이 지니고 있는 낯익은 체념과 회한을 혼자 달래곤 했다. 그렇게 술을 홀짝이다가 술에 취해 혼자 감정에 북받쳐 쓸모없이 폐기 처분된 내 인생의 절망들을 곱씹으며 자유를 갈망하곤 했다. 자유란 것이 뭐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지방 신문사 기자의 궁핍한 생활과 ‘까라면 까’ 하는 식의 터무니없는 봉건적 회사 분위기, 그것으로부터 줄줄이 엮이며 혼연일체가 된 불만족과 반발심을 달랠 수 있는 수단들을 찾았던 것이다. 또한 나는 커피 메이커에서 방금 뽑아낸 원두커피를 마시고 주말이면 방에 틀어박혀 종일 존 레논이나 밥 딜런의 프로테스트 송을 들으며 말보로 담배를 맛나게 피우며 자유를 꿈꿨던 것이다. --- p.163, 「카페 다고타하우스」 중에서 김간난 여사의 뜻대로 노다지 군은 부친의 땀이 배어 있는 연장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막일을 나갔다. 막일 말고 다른 일을 찾아보느라 노동청 고용지원센터에 구직 등록도 해보고 이곳저곳 이력서도 들이밀어 보았지만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공사판 막일이라도 감지덕지해야 했고 4대강 사업이다 뉴타운 사업이다 뭐다 하면서 전국 곳곳을 공사판으로 벌여놓은 건설회사 사장 출신의 권력자에게 고개가 부러지도록 감사해야 했다. 어쨌든 또한 다행스럽게도 막일은 처음 해보는 것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노다지 군에게 막일은 이골이 난 것처럼 익숙했다는 것이다. --- p.229, 「고물 냉장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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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과 풍자로 현실을 날카롭게 묘파해내는 소설가 조혁신의 두 번째 소설집 『삼류가 간다』가 출간되었다. 이번 소설 『삼류가 간다』는 한마디로 코미디와 판타지, 느와르와 로맨스를 뒤죽박죽 넘나들며 억눌린 타자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헌사라고 할 수 있다. 장르를 넘나들며 잡종교배하는 그의 글쓰기 방식은 ‘찌질이’들의 당파성, 비주류 근성으로 가득 충전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소설은 ‘세상 밖’의 조종을 받는 ‘무법’ 소설이자 정치적 펄프픽션(pulp fiction)이다.
잔혹한 세상을 뒤엎는 트로트 풍 코믹 판타지 액션 러브로망 전작 『뒤집기 한판』이 산동네 서민들의 진솔한 삶과 희로애락을 형상화하며 강박증에 들려 있는 세태를 향한 ‘뒤집기 한판’이었다면, 『삼류가 간다』는 불안과 희망 사이를 갈팡질팡하는 우리 시대 B급 마이너리티들의 자화상이다. 말하자면 이 소설집은 강한 일탈 충동에 휩싸여 있는 ‘트랙 밖의 인물’들이 잔혹한 세상을 뒤엎는 ‘트로트풍 코믹 판타지 액션 러브로망’이다. 소설집의 인물들은 중앙에서 소외된 인천 구도심의 변두리를 떠도는 인생들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잔혹한 세상 속에서 억울하게, 혹은 ‘찌질’하게 억눌려 사는 삼류들이다. 우연히 철거 현장의 담배 가게에 갇혀 원치 않는 투쟁을 하게 되는「마지막 담배 가게」의 지방 신문 조 기자, 신문구독 경품으로 돌린 자전거를 다시 훔쳐 달아나다가 〈E.T.〉처럼 날아가는 「달려라 자전거」의 양 국장, 일상잡사를 팽개치고 존 레논의 추억이 서린 뉴욕으로 떠나는 「카페 다고타하우스」의 ‘나’, 제법 끔찍한 살인모의라도 하는 양 개 한 마리 잡아먹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삼류가 간다」의 삼류 인생들……. 이들이 펼쳐내는 이야기는 자못 진지하지만 결국 슬랩스틱 코미디가 되기도 하고, 온갖 폼을 다 잡지만 트로트 뽕짝풍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멋진 액션 활극을 펼치지만 종국에는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고 깨지고 만다. 그러니까 이들의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모퉁이 혹은 모서리에 쓰레기처럼 날아들거나 날카롭게 찢긴 사연들인 셈이다. 그래서 이 소설집은 깔깔대며 웃다가 찔끔 눈물 한 방울이 고이고, 직핍하게 다가오는 현실의 참혹함으로 비애감에 젖다가도 다시 엉뚱하게 웃음이 고이게 만든다. 이도 저도 잘 안 풀리는 삼류들 이들이 펼치는 소심한 A형 테러 그저 똑같은 쇠틀에서 찍어낸 붕어빵을 씹어 먹듯 하루를 흘려보내며 이 세 명의 사내들은 무언가 새로운 삶을 강렬하게 희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략) 그런 와중에 때마침 김이 이번 여행을 제안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맛보았던 여행이 아닌, 잔인하고 일탈적인 여행을 하자는 것이 제안의 요지였다. “너희들 사람을 죽여본 적 있어?” -「삼류가 간다」 중에서 (132쪽) 표제작 「삼류가 간다」의 한 대목이다.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의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1992) 같은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패륜아들이 모여 실로 끔찍한 살인모의를 한다. 도사견 한 마리를 린치의 희생물로 삼으려는 웃지 못할 계획이다. 자동차 세일즈맨인 ‘김’과 부동산 중개업자 ‘추’, 그리고 살인누명을 썼다가 진범의 자백으로 풀려난 ‘한’은 술과 약물, 섹스에만 탐닉하는 그야말로 ‘삼류’들이다. 현실에 대한 비관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야만적 무질서를 기도하는 이러한 설정은 느와르(noir)적 의장이 인상적인 「최후의 한발」에서도 반복된다. 마약중개상인 러시아 선원을 때려눕히고 마약을 탈취해 한몫 잡으려던 세 친구의 계획은 「삼류가 간다」의 주인공들이 도사견의 역습에 무참히 패배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처구니없이 참혹한 실패를 맞는다. 말하자면 그들은 ‘문명적’으로도 실패한 인생들이고 ‘야만적’으로도 패배한 잉여인간들이다. 흔히 하는 말로 공부도 못하고 싸움도 못하는 ‘찌질이’들인 셈이다. 혹은 밀항선을 얻어 타고 아랍 테러리스트들이 들끓고 있는 사막의 땅으로 도망쳐 마이클과 같은 영원한 국제 미아로 전락하여 내 스스로를 회복할 수 없는 몰락에 빠뜨리고 싶었다. 아니면, 현지에서 마적단 일원이 되어 노략질을 일삼으며 주윤발이 출연한 〈영웅본색〉의 주인공들처럼 비참히 생을 마치는 것도 멋진 일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최후의 한 발」 중에서 (106쪽) 〈영웅본색〉의 주윤발이 이도 저도 잘 안 풀리는 억눌린 청춘들에게 벅찬 해방감을 선사한 카타르시스의 전도사였듯 조혁신의 소설들이 지향하는 바도 일탈충동의 상상적 대리해소다. 이 작품들이 불편하거나 낯설 수밖에 없는 것은, 소설이라는 숙주에 ‘위협’적으로 둥지를 튼 B급 필름느와르의 포자들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삼류인생들 그러니까 공부도 못하고 캽움도 못하는 ‘찌질이’들의 당파성(partiality)은 글자 그대로 정치적이다. 이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한 작품은 「마지막 담배 가게」와 「개코 막걸리네」이다. 지방일간지 노조간부 출신의 한 기자가 재개발지역 철거현장을 둘러싼 대치국면에 얽혀들어 낭패를 겪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전자에 비해 풋내기 운동권 학생 ‘나’를 일인칭 주인공으로 내세운 후자에서 그것은 좀 더 의미심장하게 드러난다. 그야말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방황하던 ‘나’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쭙잖은 테러리스트가 되어 거리에 나선다. 계획된 테러란 건 고작해야 “H그룹 계열회사인 H자동차 동인천 영업점을 불바다로 만드는 것”이었다. “누가 들어도 허점투성이의 무모한 계획”에 몸을 실은 ‘나’들의 테러행각은 회고적 거리 속에 실소를 금치 못할 슬랩스틱 코미디가 되고 만다. 다섯 명의 청년들은 화염병을 꺼내들고 심지에 불을 붙이려 했는데, 아무도 라이터를 가져오지 않았던 겁니다. 우리는 코미디언처럼 허둥댔고 차도로 뛰어든 우리들에게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리며 욕을 해댔습니다. 다행히 우리들 중에 한 명이 행인으로부터 라이터를 뺐다시피 구해왔고 우리들은 화염병에 불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개코 막걸리네」 중에서 (259쪽) 이 이상주의적 돈키호테들, 그들의 암담하고 흔해빠진 인생행로를 과장된 행위의 소동극 안에 묻어둠으로써 작가는 독자의 판단에 이들에 대한 평가를 맡긴다. 신문배달원에서 지국장이 되기까지 산전수전 다 겪은 주인공 양상국과 불법 경품 제공 신고포상금을 노린 괴단체 사이의 실랑이를 그린 「달려라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대형 신문사의 경품 마케팅 행태를 풍자하면서도 거기에 기대어 생활을 구하는 평범한 속물들에 대한 연민을 잊지 않는 이 작품의 페이소스는 일품이다. 더욱이 결말의 판타지적 요소는 그 페이소스를 한층 추동하는데, 경품으로 돌렸던 자전거들을 다시 훔쳐 도주하는 과정에서 과속방지턱에 부딪혀 날아오르는 마지막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허공으로 솟구친 순간 상국은 밀려오는 잠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의 입가에는 비시시 웃음이 서려 있었으나 그것이 잠에 취한 평온한 웃음이었는지 아니면 허탈과 절망이 어린 쓴 웃음이었는지를 대답해줘야 할 상국 자신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잠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달려라 자전거」 중에서 (76쪽) 그것은 영화 〈E.T.〉(1982)에서 자전거를 탄 외계인이 사람들의 시달림을 벗어나 드디어 밤하늘을 날아올랐던 장면에 비견될 만하다. “그는 영화 〈E.T.〉의 주인공처럼 자전거에 몸을 실은 채 허공으로 높이 치솟았다.” 세상 밖으로 혹은 현실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는 낭만적 충동은 그의 소설을 관통하는 열쇠말이다. 회장님의 내연녀를 데리고 도주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은 「연안부두 떠나는 배」도 그러려니와 일상잡사를 팽개치고 존 레논의 추억이 서린 뉴욕으로 발길을 향하는 「카페 다고타하우스」 또한 좋은 예다. 물론 조혁신의 주인공들이 맛본 ‘세상 밖’의 환희는 일시적 신기루에 불과하다. 「달려라 자전거」에서도 그 환희는 단 몇 초간에 불과했다. “자전거 바퀴의 헛된 회전이 멈추자 그의 입가의 웃음도 침묵처럼 굳어져버렸다.” 그러나 그는 그 신기루를 붙잡기 위해 자신이 가진 전부를 아낌없이 거는 돈키호테들에게 누구보다 깊은 애정을 보인다. 이는 ‘삼류’들의 정처 없는 꼭두각시 삶을 은유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신기루, 곧 환각이 고양되면 될수록 현실의 참혹함이 배가되면서 작품이 주는 비애감은 절정에 달한다. 억눌린 ‘찌질이’들의 절묘한 아리랑치기가 시작된다 코미디와 판타지, 느와르와 로맨스를 뒤죽박죽 넘나드는 『삼류가 간다』는 당대 한국문학의 타자들에 대한 일종의 헌사라고 할 수 있다. 자! 이제 〈저수지의 개들〉처럼 도시를 어슬렁거리고, 〈영웅본색〉의 주윤발처럼 이빨이나 쑤셔대며, 〈E.T.〉처럼 세상 밖으로 튕겨나가는 억눌린 ‘찌질이’들의 절묘한 아리랑치기가 시작된다. 한국문학의 새로운 세계가 여기서 개봉 박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