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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리스너 Ⅰ 송재림, 송재현 Ⅱ 웰컴 투 더 리스너 월드 Ⅲ 당신의 리스너 독자의 말 부록 | 송재림에게 배우는 경청의 기술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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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가 죽었다.
소식이 끊긴 지 두 달 만이었다. 그녀의 부고는 사회 2면 박스 기사로 처리되어 있었다. “동정란에 한 줄로 안 나온 게 다행인 건가?” 그녀가 서늘한 농담을 던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사망 경위는 새벽 운전 중 가드레일을 받아서 일어난 사고였다고 비교적 짤막하게 쓰여 있었다. 텔레비전을 켜자 언론은 그녀의 사망을 둘러싸고 타살이냐 자살이냐 설왕설래했다. “시끄러운 건 질색이야”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환청처럼 들렸다. 그녀는 마지막까지도 사람들에게 말할 거리를 주려고 했던 것일까. --- p.10 “형, 아이큐가 좋다는 건 어떤 거야?” 내 아이큐는 평범했다, 115. 형은 아이큐 수치가 키보다 높았다. 168. “글쎄, 손이 하나 더 있는 것하고 비슷하지 않을까. 살기가 좀 더 편하겠지.” 형은 남 이야기 하듯 자기 이야기를 하다가 뚱딴지같이 덧붙였다. “요즘은 아이큐는 별로 안 친대. 아이큐는 말 그대로 지능 지수일 뿐이고, 요즘은 사회 지수, 감성 지수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더라고. 하긴 손이 하나 더 달린 것보다 마음이 하나 더 있는 게 살기는 더 편하겠다. 재림이 네가 혹시 그런 천재가 아닐까. 한 달 만에 세리 씨의 마음을 저렇게 바꿔놓았잖아.” --- p.62 밤은 내 안의 두 자아, 즉 응대하는 리스너와 말하고 싶은 내가 충돌하는 시간이었다. 리스너의 힘이 너무 세서였을까. 혼자 있으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종종 멍해졌다. 심우들의 말을 듣는 것은 지치는 일이었다. 언제까지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사과가 사무실 한켠에 쌓이는 만큼 나는 고독해졌다. 내가 심우들을 이해하는 것의 10분의 1도 이해받지 못하는 리스너의 운명. --- p.125 “그렇죠. 그래도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고객의 무의식까지 들어야 할 임무가 제게 있으니까요. 그런 날은 그렇게 생각하죠. 하지만 10분 늦은 대가로 1만 원을 받았을 때는 혼란스러웠어요. 수치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했나 싶기도 하고. 꼭 선생님한테 벌 받는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었어요. 벌을 받다 보면 처음에는 선생님이 원망스럽지만 나중에는 내가 정말 잘못한 것 같은 생각도 들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김 회장에게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죠. 제게는 그분의 마음을 이해할 의무가 있고, 한편으로는 지지적으로 면담해줘야 하는 책임도 있으니까요.” --- p.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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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혀가 당신을 귀먹게 할 것이다.”
체로키 인디언 격언 기자에서 정신과 의사, 다음은 소설가! 정신과 의사 류미는 왜 소설 『리스너』를 썼을까? 휠체어 탄 정신과 의사. 지금까지 류미 작가를 소개할 때 주로 쓴 표현이다. 그는 현재 국내 유일한 치료감호소인 국립법무병원에서 일한다. 주로 만나는 사람이 정신질환자이자 범법자라는 이중의 굴레를 쓴 사람들이다. “그들의 사연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고 말할 때 그의 눈이 반짝 빛난다. 지금까지 두 권의 책을 출간했고 『리스너』는 첫 소설이다. 이제 ‘소설 쓰는 정신과 의사’로 불러야겠다. 이 소설을 처음 구상한 것은 10년 전쯤이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을 앞두고 중앙일보 입사 시험에 지원했다. 최종 면접은 1박 2일 간의 등산. 고등학교 3학년 때 양쪽 발목을 다친 뒤로 10분 이상 서 있을 수 없고 30분 이상 걷지 못하는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경향신문에 입사해 편집기자로 일했다. “기자로 일하던 20대의 어느 날. 열 명쯤 모인 회식 자리에서 아무도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마이크를 쥔 부장만 빼고. 그때 깨달았다. 세상에는 말하고 싶은 사람이 듣는 사람보다 백배쯤 많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사람은 넘치는데 들어주는 사람은 없다. 수요와 공급의 엄청난 간극. 시장 용어로는 블루오션. 내가 다음 가야 할 길이 정해졌다.”(「작가의 말」 중에서) ‘내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으니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게 해야 한다’는 고민 끝에 정신과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가톨릭대학교 의학과로 편입했다. 100번쯤 시험을 보고 나니 정신과 레지던트가 됐다. 국립부곡병원에서 일하던 어느 날, “아들이 말을 하지 않는다며 부모가 상담을 신청해왔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직업을 가진 부모의 외아들이었다. 상담실 밖으로 부모를 내보내고 아들에게 말을 걸었다. 상담은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그때 진실을 또 하나 알게 되었다. 세상에 과묵한 사람은 없다. 다만 내 말을 들어줄 대상, 상황, 타이밍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작가의 말」 중에서) 스피커와 리스너에 관한 진실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해 잘 들어주고, 정확하게 질문하는 경청의 기술 소통의 시작은 경청이다. 그럼에도 대개 말 잘하는 사람의 스피치 능력은 높게 평가하면서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의 경청 능력은 과소평가한다. 경청 능력을 판단할 기준이 뚜렷이 없어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잘 듣는 사람이 없다면 말하는 사람도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또한 상대의 말을 듣지 않으면서 원만한 대화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소통이 안 된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자주 듣는다. 불통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자기 말만 하고 타인의 말은 듣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모모』로 잘 알려진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는 “경청이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반만이라도 할 수 있나 시험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류미 작가는 “정신과 의사란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죽했으면 “정신과 의사는 치매가 걸리면 환자를 더 잘 본다”는 말까지 있을’(133쪽) 정도로 경청은 프로 리스너인 정신과 의사들에게도 힘든 일이다. “잘 듣는다는 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체력이 소진되는 일이다. 듣는 일은 뇌를 쓰는 일이고, 뇌의 에너지원인 포도당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피곤한 상태로는 상대의 말을 들어줄 여력이 생기지 않는다. 우리는 이기적인 존재이므로.”(「부록」 중에서) 과연 ‘잘 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이비 힐러들은 입으로만 말한다, “내가 너의 인생을 바꿔주겠다”고. 소설의 주인공 송재림은 입을 뺀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해 경청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머리로 느낀다. 그는 먼저 말하지 않는다. 그가 입을 열 때는 당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질문할 때뿐이다.’(「작가의 말」 중에서) 재벌 회장, 유명 연예인들의 주치의인 정신과 의사 유지니가 리스너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녀가 죽었다 외모, 학벌, 집안 모두 평범하지만 경청 능력만큼은 천재적인 리스너, 송재림. 진주의 중소 건축회사에서 과장으로 일하는 아버지와 어려서 원인 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후 말을 못 하게 된 어머니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자랑인 아이큐 168의 형은 성적표로 부모님께 효도했고, 아이큐 115의 송재림은 어머니의 눈과 입이 되는 것으로 효도했다. 학창 시절부터 말수가 적지만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라 주위에 친구가 많았다. 별다른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며 지내던 중 자신의 경청 능력을 차츰 깨달으면서 ‘이야기 들어주는 사람’ 리스너로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성북구의 한 오피스텔에 ‘리스너’ 사무실을 연다. 이 오피스텔에는 비슷한 고객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업종인 교회가 9층에, 신점집이 6층에 있다. 정글이다. 리스너를 방문하는 사람이 느는 만큼 교회와 신점집의 견제가 비례하고, 파킨슨병을 앓는 남편을 지켜봐야 하는 빵집 사장과 80대 부인의 바람을 의심하는 70대의 전직 은행장 등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다양한 사람들, 다채로운 사연들을 만날수록 송재림의 경청 능력은 나날이 발전한다. 그럴수록 말의 무게에 짓눌리는데…. 그러던 어느 날, 미모의 정신과 의사 유지니가 상담을 신청해온다. 재벌 회장, 유명 연예인들의 주치의기도 한 유지니는 지금까지 송재림이 만난 사람들과는 접근 방식도, 고민의 성격도, 비밀의 무게도 다르다. 그녀의 진짜 이야기를 다 듣지 못했는데, 그녀가 죽었다. 세상에 말 없는 사람은 없다. 말할 타이밍, 상황, 대상을 만나지 못했을 뿐 경청 천재가 말하는 경청의 기술 리스너를 만나면 사람들은 차마 말하지 못하고 속에 담아둔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심지어 남의 말을 듣는 것이 직업인 정신과 의사 유지니조차 리스너 앞에서는 말이 많아졌다. “제가 말이 많은 편이 아닌데 선생님께는 이렇게 말이 많아져요. 어때요, 선생님. 승리하신 기분이 드나요? 하지만 섣부른 승전보는 금물이에요. 선생님도 잘 아시잖아요. 세상에 말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요. 다만 말할 타이밍, 상황, 대상 같은 것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만 있을 뿐이죠.”(178쪽) 듣는 대상이 되어 말할 타이밍,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 리스너의 강점이다. 이 자질은 상대방의 말을 독해하는 능력과 상황 판단력까지 포함한다. 류미 작가는 “독자들이 『리스너』를 재미있게 읽기를 바란다. 못지않게 읽고 난 뒤 남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며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익힌 경청의 기술을 짧게 정리해 소설 마지막에 「부록」으로 덧붙였다. 요약하면, 잘 듣기 위해서는 감각기관을 총동원해야 한다. 눈으로 관찰하고 귀로 듣고 머리로 느끼고 정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을 열어 ‘질문’을 한다. 화자가 사로잡혀 있는 생각에서 거리를 두고 판단할 수 있는, 치우친 생각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적절할 질문을 해야 한다. 질문을 잘하려면? 잘 들어야 한다! 선순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