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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부 경성, 모던보이와 기차 내가 살던 서울, 개울과 억새가 있던 곳-짝사랑 식민지시대의 종로, 엿장수와 한청빌딩 냉면 배달부-자라메라, 낙화유수 호텔 모던보이, 전화로 연애질을-청춘삘딩, 전화일기, 미소의 코스, 다방의 푸른 꿈 서울 사람들의 유원지, 한강-꽃서울, 노들강변 서울역, 거대한 쇳덩어리가 폼 나게 움직이는 곳-유쾌한 시골 영감, 경부철도가, 눈물의 경부선 서울의 바깥, 신도시와 시골들-울산 큰애기, 목포의 눈물 제2부 50~60년대, 럭키 서울을 욕망하다 해방과 전쟁 속의 서울-울어라 은방울, 역마차, 단장의 미아리고개, 전우야 잘 자라 서울에서 대한민국 아닌 곳을 꿈꾸다-럭키 서울, 서울야곡, 슈사인보이, 미사의 종,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페르샤 왕자, 워싱턴 블루스 서울의 아가씨는 뉴요커만큼 즐겁다-서울의 아가씨, 꽃집 아가씨, 내 사랑 쥬리안 전차와 마차의 마지막 기억들-마포 종점, 대머리 총각, 돌아가는 삼각지 김포국제공항과 오팔팔의 그 엄청난 거리-앵두나무 처녀, 울산 큰애기, 섬마을 선생님, 물레방아 도는데, 먼 데서 오신 손님, 공항의 이별 제3부 70년대, 장발이 헤매는 종로 거리 도시는 나의 터전-우리들의 이야기, 길가에 앉아서, 파란 많은 세상, 영화를 만나 종로와 광화문, 분식센터와 단과반 학원-그건 너, 광화문 연가 먹고 대학생? 고민하는 대학생!-아침이슬, 두리번거린다, 쐬주 도시인의 꿈, 전원과 전원주택-욕심 없는 마음, 가난한 마음, 비둘기집, 화니의 하얀 집, 약속 제4부 70~80년대, 서울의 그늘 불빛 찬란한 서울나라, 그것의 그늘-고향 역, 서울로 가는 길, 식구 생각, 님과 함께 강변에서 바라보는 공장의 불빛-공장의 불빛, 귀례 이야기, 노동자의 생활, 강변에서 서울은 한강을 넘고-제3한강교, 신사동 그 사람, 사랑의 거리 우리에게 아파트란 무엇인가?-아파트 제2의 고향에서 기를 쓰고 살아가기-제2의 고향, 한여름 밤, 그의 노래는, 못생긴 얼굴, 서울에서 살 거야 강원도의 힘-춘천 가는 기차, 북한강에서, GNP, 한계령 제5부 강남과 강북, 밀레니엄 서울 압구정동, 적대감을 넘어-칵테일 사랑, Rock’n Roll + 압구정동, 공주병, 구리뱅뱅, 비 오는 압구정, 강남 김세 이야기, 강북에 산다, 메리 크리스마스, 압구정은 어디 고향, 강북-내 고향 삼선교, 혜화동, 우리가 세상에 길들기 시작한 후부터 문명의 끝, 그곳을 향해-1999, 타락도시, 더러운 도시, 건너간다 짧은 뒷말 사진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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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 같은 서울내기에게 서울 강북이 내 고향이라는 말은 그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고향에 대한 나름의 추억과 절실함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나처럼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이 그 옛날 서울 이야기만 나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이야기하는 것만 보아도 확실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내 고향에 대한 책일 수 있다. 고향치고는 참 묘한 고향이지만 말이다.
대중가요를 통해 서울의 이모저모를 생각해보는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노래라는 대상은 서울을 그 시대의 느낌으로 되새기게 해준 반면, 레코드판을 통해 나오는 지직거리는 옛날 소리는 그 이상스럽고 징글징글한 서울이라는 대상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머리말 중에서 1930년대 종로는 그랬던 것 같다. 화려하면서도 명동처럼 이국적이지 않고, 엿장수, 냉면집 등 조선인들이 먹고사는 풍경들이 복닥거리며 펼쳐지는 곳 말이다. 화려한 곳이라고 먹고살기 쉬운 곳이겠는가. 김용환의 「낙화유수 호텔」은 이 시대의 온갖 직업군이 묵고 있는 여관의 풍경을 노래한 곡으로, 화려한 서울의 서민들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 유행가책 노점상, 무성영화 변사, 젊은 엿장수의 모습을 눈에 선하게 그려내고 있는 이 노래를 김용환은 노점상 흉내부터 변사 흉내에 노래까지 자유자재로 들려주면서 사람들을 휘어잡았다. 당시 종로 거리 유행가책의 가판들이 주로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책값이 십 전이라는 것은 유치진의 방송극 「룸펜 인텔리」의 장면과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여관이 종로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도시 한복판에서 장사로 먹고사는 조선인들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 이런 모습이 아니었으랴.---p.36~38 서울의 안산인 남산은, 강북이 서울의 전부이던 시절에 서울시민들의 가장 중요한 휴식처였다. 내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아도 휴일에 가족 나들이로 남산에 올라갔던 경험은 셀 수 없이 많다. 남산의 어린이 놀이터에서 놀고, 팔각정에 올라가 서울 전체를 한눈에 바라보고 유리로 만든 커다란 식물원에서 이국적인 식물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엄마가 따라오면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요기를 하지만, 아버지와 나들이할 때면 내려오는 길에 뉴욕제과에 들러 반달 모양의 슈크림빵이나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단팥빵, 그리고 사탕 안에 술맛 나는 시럽이 든 술사탕을 사먹기도 했다. 동네에서 핫도그가 유행하기 훨씬 전에 핫도그라는 신기한 음식을 맛본 것도 뉴욕제과에서였다.(소시지 위에 얇은 빵 반죽을 입혀 튀긴 것이었고 케첩은 바르지 않았다.) 이런 황홀한 맛에 그 높디높은 남산의 계단도 마다하지 않고 오르내렸다. 우리 집만 그랬겠는가. 1950년대 후반 「자유부인」에서부터 1960년대 영화들을 보면 청춘남녀가 데이트를 하는 곳은 거의가 남산이다. 정말 ‘서울의 아가씨’라는 노래에서처럼 ‘남산에 꽃이 피면 라라라라’ 하고 놀러 다녔던 것이다. ---p.115 내 기억 속의 전차는 이렇게 한가롭지 않았다. 이미 버스에 승객을 많이 빼앗겨 버스만큼은 아니었지만 출근길에는 상당히 붐비는 만원 상태였고, 일곱 살배기 나는 늘 어른들의 허리나 엉덩이께에 코를 묻고 숨 막혀 했다. 하긴 「대머리 총각」도 선율로는 트로트 분위기가 꽤 나지만, 김상희라는 명문대 출신 학사 가수가 팝 스타일로 부른 노래이니, ‘즐거운 서울’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관행에 따라 서울의 모습을 비교적 낭만적이고 즐겁게 그리고 있다. 그러나 서양식 도시의 즐거움 쪽으로 초점을 맞추기는 했지만, 머리 벗겨진 총각에게 반해서 오피스걸이 전차를 따라 타고 급기야 사랑에도 성공하는 이 커플의 모습은, 그래도 잘난 인간들만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온통 얼짱·몸짱들로 넘쳐나는 요즘 드라마보다는 훨씬 낫다. 이 노래는 서민적 소박함과 낙관성이 넘치는 전형적인 1960년대 대중가요이다.---p.135~137 1960년대의 대중가요에서, 남산에 놀러다니는 ‘서울의 아가씨’나 ‘여덟시 통근길의 대머리 총각’과 그를 따라 전차에 타는 ‘오피스걸’이 도시의 주인공들이라면, 1970년대 포크송의 주인공들은 대학생들이다. 이 시대 대학가의 모습을 가장 잘 그려낸 노래로는 단연 「우리들의 이야기」를 꼽아야 한다. 가사를 짓고 노래를 부른 윤형주는 그 시절 젊은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소박하고도 참신한 감각의 가사로 매우 잘 포착했다. 대학 교정은 라일락 피는 4, 5월이 가장 아름답다. 신입생들도 어리버리한 티를 조금 벗을 때고, 남학생들은 농구장에서 웃통을 벗은 채로 농구를 하기 시작하고, 얇은 블라우스 바람으로 긴 머리를 나풀거리는 여대생들에게는 라일락 꽃보다 더 좋은 향기가 날린다. 비 오는 날에는 우산 없이 폼 잡고 돌아다니는 것들이 한둘은 꼭 눈에 띈다. 왜 그 나이 때는 우산 없이 비 맞고 돌아다니는 짓을 하고 싶을까. 다방에 앉아 팔각 성냥통 속의 성냥을 꺼내 별별 장난을 치며 레지 아가씨들의 눈총을 받던 기억을, 이 시절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p.155~157 1980년대 후반부터 종로와 광화문은, 여기에서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을 보냈던 사람들의 추억의 공간이 되었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는 그래서 아직도 리메이크를 거듭하며 사랑을 받는가 보다. 이미 지나가버린 종로와 광화문의 전성시대를 되돌아보는 듯한 어조의 노래, 그저 가사만 보아도 이화여고와 배재고등학교 사이에 있는 100년 역사의 예쁜 교회당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덕수궁 돌담길에는 헤어진 연인들의 추억만 깃든 것이 아니라, 그 담 안쪽 덕수궁에서 국전國展을 단체 관람하러 왔다가 유난히 노란 은행잎만 주우며 깔깔거렸던 중고생 시절의 추억도 깃들어 있다. 정동 문화방송 옛 사옥을 지나 광화문으로 길을 틀어, 새문안교회를 지나 육교 옆 덕수제과에서 우유에 소금 넣어 먹던 그 고소한 맛이 아직도 입에 맴돈다. ---p.179~181 지금 서울시민 중 서울 토박이를 만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서울내기들은 고향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지방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동향끼리 같은 추억을 지니고 있고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은 서울 출신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50~60년대의 서울 거리와 그 시절 사람들의 얼굴들을 기억하고, 서울 사람만 가능했던 독특한 체험들을 끄집어내어 함께 수다를 떨면서 매우 즐거워한다. “왜 있잖아, 을지로 6가에 아카데미과학사 있었던 거 기억해?”, “그럼, 거기 조립 키트 사러 무지하게 드나들었는데. 삼선교에도 있었지, 아마?”, “나도 기억 나. 서울운동장에서 대각선으로 맞은편 쪽에 있었지?”, “그 맞은편 계림극장 엄청나게 다녔다.”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누며, 어느 동네가 장난감과 과자 유행이 빨랐네 늦었네 하면서 어린 시절 기억에 깔깔거린다. ---p.253~254 강남의 아파트에서만 산 아이들은 골목길의 경험이 없다. 골목길에서 놀다 “공 좀 꺼내주세요”라고 외쳐본 경험을 한번도 갖지 못한 세대들이다. 이제 골목길이 그저 추억인 것처럼, 강북도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의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강북은 그저 잃어버린, 혹은 훼손될 수밖에 없는 순수의 추억일 뿐일까. 돈과 욕망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북촌이나 동숭동뿐 아니라 신촌과 홍대 앞까지 퍼져가는 것으로 보아, 앞으로 강남에도 그런 흐름이 생기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몸과 물질이 옮겨가는 것처럼, 가치와 역사 같은 정신적인 것들은 쉽게 옮겨가지지 않는 모양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 강북의 어느 곳엔가 달라붙어, 강남의 시각으로 보자면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일들을 가치 있다고 믿으며 계속 벌이고 있다. 이들이 믿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 오랜 역사를 통해 거름기를 축적해놓은 강북의 땅 힘을 믿는 것은 아닐까. ---p.299 이제 나에게 서울은, 까맣게 쌓인 스모그 속의 도시이다. 이천도 여기저기 파헤쳐지고 건물이 올라간다. 퍝돌의 음반 제목 말마따나 ‘내 나라는 공사 중’의 상황에서 예외는 아니지만, 그래도 다행히 아직은 밤중에 별빛이 찬란한 곳이다. 미세 먼지를 뿜는 디젤 자동차를 타고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쭉 뻗은 고속도로의 저 끝에 까맣게 쌓인 스모그가 보인다. 그곳이 서울이다. 그 까만 스모그 위로는 푸른 하늘이다. 서울 하늘이 왜 그렇게 뿌연지, 아니 하늘이 뿌옇다는 사실조차, 어리석게도 이곳에 이사를 와서야 겨우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의 그 뿌연 하늘 그 위쪽에 또 다른 파란 하늘이 있다는 것도 내 눈으로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저 내 작은 바람은, 내 고향 서울이 더 이상 괴로운 곳이 되지 않았으면, 더 망가지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북촌 한복판을 가로막은 아파트 하나를 보는 것도 괴로운데, 청계천변에 높은 건물이 줄지어 서면 그 민망한 노릇을 어찌하나 하는 생각에 벌써 가슴이 답답하다. 그래도 어떡하겠는가. 내 고향은 서울이고, 그래서 나는 망가진 서울 거리나마 골목골목을 걸어다닐 것이다. 길마다 공사 중이고 탁한 공기가 자주 내 걸음을 멈추게 하겠지만, 그래도 내 고향 서울이므로. ---짧은 뒷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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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우리 문화와 우리 자신에 대한 고고학적 접근이 이루어진 글이라면 이 책은 우리 문화와 우리 자신에 대한 고현학적 접근이 이루어진 ‘근현대문화답사기’라 할 수 있다.
대중가요로 살펴보는 서울문화답사기 -1930년대 경성에서부터 2000년 밀레니엄 서울까지 영화, 연극, 드라마, 도서 등 여러 장르의 문화콘텐츠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인 대중가요를 그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행가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대중가요는 그 시대의 문화와 생활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대중가요사」, 「흥남부두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등의 저서를 펴낸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가 신간 「광화문 연가」를 통해 193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서울의 변천사를 대중가요를 매개로 되짚어보고 있다. 서울은 대한민국 수도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모습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세계열강들에 의한 해방, 그리고 그들의 이해관계로 벌어진 동족상잔의 비극 6 25전쟁, 그후의 정치적 혼란과 과도한 경제개발로 인한 노동문제와 학생운동,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 벌어지는 빈부간의 격차 등 대한민국의 문제와 고민을 수도 서울은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그러한 서울의 변천사를 살펴보는 일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대중가요’라는 매개는 서울의 역사에 내포되어 있는 그러한 암울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상쇄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무거운 주제를 경쾌한 리듬으로 풀어내는 대중가요는 어둡고 암울한 서울의 과거를 좀더 쿨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광화문 연가」는 서울의 시대상뿐만 아니라 서울의 대표적인 지역을 답사하며 그곳에 얽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살아가는 일상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우리 문화와 우리 자신에 대한 고고학적 접근이 이루어진 글이라면 「광화문 연가」는 우리 문화와 우리 자신에 대한 고현학考現學적 접근이 이루어진 ‘근현대문화답사기’라 할 수 있다. 그때 그 시절 서울의 추억 서울의 풍경들 -모던보이, 모던걸에서 강남과 압구정을 활보하는 신세대까지 1930년대 식민지시대의 경성에는 일제에 대항하는 독립투사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일본어, 영어, 한국어 3개 국어를 섞어가며 전화통 붙들고 연애하는 모던보이와 모던걸, 서민들에게 엿과 수박을 파는 엿장수와 수박장수, 요즘의 자장면 배달부 부럽지 않는 냉면 배달부 등 30년대 경성의 모습은 지금의 도시민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해방을 맞이하고 전쟁을 거치며 피폐해졌지만 ‘SEOUL'이라는 국제적 공식 명칭을 얻은 50~60년대 서울은 서양 지향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고급 예술인이라 자부하며 ’카니발‘ 같은 서양 문화를 추종하는 ’명동백작‘과 단역 하나 따내기 위해 ’스카라 계곡‘에 모여드는 대중 예술인 지망생들의 스타일은 지금의 강남파와 강북파만큼 차이가 난다. 또한 요즘의 몸짱, 얼짱만큼은 아니지만 그 시대 엘리트 전형인 대머리 총각과 잘 나가는 오피스걸은 출근길 전차에서 첫눈에 반해 연애에 성공하기도 한다. 대학생이라고 하면 ‘데모’를 떠올릴 만큼 학생운동이 치열했던 70~80년대에도 데모하는 대학생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스케이트장에서 넘어지고 잡아주는 등 가벼운 스킨십을 하며 연애하는 젊은이들도 있었고, 헤어짐을 각오하고 덕수궁 돌담길을 거니는 연인들도 있었다. 서울을 바라보는 거시적인 시각을 거두고 보면 이처럼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되어온 사람살이의 여러 가지 풍속도를 만나볼 수 있다. 서울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수많은 변화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통해 시대를 조망함은 물론, 그 안에서 울고 웃던 우리네 삶들과 추억과 향수까지도 맛볼 수 있다. 서울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간직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서울 연가’ 저자 이영미는 이 책을 ‘문門안’이라는 의미를 아는 사람, 여름 휴가때면 동해안 대신 모래사장이었던 한강에서 해수욕을 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 남산을 가족 나들이 필수코스로 여겼던 사람, 한옥 골목골목을 뛰어다니며 남의 집 마당으로 넘어간 공을 찾아 “공 좀 찾아주세요”라며 외쳐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바친다고 한다. 지방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 올라온 사람들은 동향 사람들끼리 만나면 고향이야기에 날 저물 줄 모르며,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고향에 대한 추억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서울 사람들 또한 그들 못지않게 술자리에 모여 앉아 서울의 구석구석을 기억하며 웃고 떠들 수 있는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이 책은 서울을 고향이라 말하는 사람들, 다른 곳에서 보낸 시간보다 서울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아 서울이 ‘제2의 고향’이 되어버린 많은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며 아련한 향수로 기억되는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타임머신 역할을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