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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전집
개정증보판/양장, 양장
백석
실천문학사 201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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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8·15 이전

시 『사슴』에 수록된 작품

얼룩소 새끼의 영각
가즈랑집
여우난골족(族)
고방
모닥불
고야(古夜)
오리 망아지 토끼

돌덜구의 물
초동일(初冬日)
하답(夏畓)
주막(酒幕)
적경(寂境)
미명계(未明界)
성외(城外)
추일산조(秋日山朝)
광원(曠原)
흰 밤

노루
청시(靑枾)
산(山)비
쓸쓸한 길
자류(?榴)
머루밤
여승(女僧)
수라(修羅)

노루

국수당 넘어
절간의 소 이야기
통영(統營)
오금덩이라는 곳
시기(枾崎)의 바다
정주성(定州城)
창의문외(彰義門外)
정문촌(旌門村)
여우난골
삼방(三防)


시 『사슴』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
통영(統營)
오리
연자간
탕약(湯藥)
이두국주가도(伊豆國湊街道)
창원도(昌原道)
통영(統營)
고성가도(固城街道)
삼천포(三千浦)
북관(北關)
노루
고사(古寺)
선우사(膳友辭)
산곡(山谷)
바다
추야 일경(秋夜一景)
산숙(山宿)
향악(饗樂)
야반(夜半)
백화(白樺)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석양
고향
절망
외갓집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삼호(三湖)
물계리(物界里)
대산동(大山洞)
남향(南鄕)
야우소회(夜雨小懷)
꼴두기
가무래기의 낙(樂)
멧새 소리
박각시 오는 저녁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
동뇨부(童尿賦)
안동(安東)
함남 도안(咸南道安)
구장로(球場路)
북신(北新)
팔원(八院)
월림(月林)장
목구(木具)
수박씨, 호박씨
북방(北方)에서
허준(許俊)
좬호박꽃 초롱좭 서시
귀농(歸農)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촌에서 온 아이
조당(藻塘)에서
두보(杜甫)나 이백(李白)같이
산(山)
적막강산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칠월백중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수필
마포(麻浦)
편지
가재미나귀
무지개 뻗치듯 만세교
동해(東海)
입춘(立春)
소월(素月)과 조선생(曺先生)


소설
그 모(母)와 아들
마을의 유화(遺話)
닭을 채인 이야기



제2부 8·15 이후

동화시 『집게네 네 형제』
집게네 네 형제
쫓기달래
오징어와 검복
개구리네 한솥 밥
귀머거리 너구리
산골총각
어리석은 메기
가재미와 넙치
나무 동무 일곱 동무
말똥굴이
배꾼과 새 세 마리
준치가시



제3인공위성
이른 봄
공무여인숙
갓나물
동식당
축복
하늘 아래 첫 종축 기지에서
돈사의 불

전별
탑이 서는 거리
손뼉을 침은
돌아온 사람


평문
동화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나의 항의, 나의 제의
큰 문제 작은 고찰
아동문학의 협소화를 반대하는 위치에서


정론
부흥하는 아세아 정신 속에서
아세아와 아프리카는 하나다
프로이드주의―쉬파리의 행장



제3부 보유 (1)


나와 지렝이
황일(黃日)


산문
해빈수첩(海濱手帖)
슬픔과 진실
조선인과 요설
이제 또다시 무엇을 말하랴
사회주의적 도덕에 대한 단상
이 지혜 앞에 이 힘 앞에
눈 깊은 혁명의 요람에서



제4부 보유 (2)


머리카락
당나귀
까치와 물까치
지게게네 네 형제
멧돼지
강가루
기린
산양
오리들이 운다
송아지들은 이렇게 잡니다
앞산 꿩, 뒷산 꿩
나루터
석탄이 하는 말
강철 장수
사회주의 바다


산문
막심 고리키
마르샤크의 생애와 문학
이솝과 그의 우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편지)

증보판을 내면서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해설 / 김재용
작가 연보
작품 연보

저자 소개 1

BAEK SEOK,白石,白奭,백기행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전 천재 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오산소학교, 오산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오산고보 졸업 후,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춘해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어사범학과에 입학하였다. 김소월을 동경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으며,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1934년에 귀국하여 8·15 광복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영어교사로, [여성사], [왕문사] 등에서 근무하며 시작 활동을 했다.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시작 활동 외에도 많은 외서들을 번역했다고 전해진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였으며 같은 해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1939년 [여성]지 편집 주간 일을 사직하고 고향인 평북 지역을 여행하였다. 1940년 만주의 신징(지금의 장춘)으로 가서 3월부터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창씨개명의 압박이 계속되자 6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1942년 만주의 안둥 세관에서 일하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고향인 정주로 돌아왔다.

1946년 북조선예술총동맹이 결성된 후 1947년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 번역에 매진했다. 1949년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아동문학]과 [조쏘문화] 편집위원을 맡으며 안정적인 창작활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간행하였으나 1958년 ‘붉은 편지 사건’ 이후 격렬한 비판을 받게 되면서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대부분의 문학적 활동을 중단했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의 국영협동조합 축산반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으면서 청소년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고 농촌 체험을 담은 시들을 발표했으나, 1962년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 활동을 접었다. 1996년까지 삼수군 관평리에서 농사를 짓다가 사망했다는 내용이 드러났지만 정확한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백석은 일제 강점기에도 모국어를 지키고자 하였다.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으며, 대표 작품으로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이 있다. 북한에서 나즘 히크메트의 시 외에도 푸슈킨, 레르몬토프, 이사콥스키, 니콜라이 티호노프, 드미트리 굴리아 등의 시를 옮겼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수록된 시 「통영」, 「적막강산」, 「북방」 등 백석의 대표작들은 실향 의식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삶을 토속적인 언어로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한국의 대표 모더니즘 시인으로 평가받는 백석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백석의 다른 상품

편자 : 김재용
1960년 경남 통영 출생으로 연세대 영문과 및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원광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민족문학운동의 역사와 이론』, 『북한문학의 역사적 이해』, 『백석 전집』, 『오장환 전집』 등의 책들을 펴냈다. 이메일_heemin@wonkwang.ac.kr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2월 18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640쪽 | 1046g | 164*230*35mm
ISBN13
9788939206496

출판사 리뷰

한국시문학사의 가장 빛나는 별자리 중 하나인 『백석전집』의 개정증보판이 출간되었다. 1997년 초판을 간행한 이후 2003년 1차 증보를 거쳐 새로 발굴된 시 15편, 산문 4편 등을 추가 수록한 개정증보판 『백석전집』은, 이미 알려진 작품을 포함하여 시 124편, 동화시 12편, 기타 산문 외 25편 등 총 161편의 작품을 수록, 명실 공히 백석 문학의 전모를 복원했다는 점에서 백석 문학의 완결판이자 정본이라 할 만하다.


“민속적 상상력을 통해 건져 올린 민중적 공동체의 세계!”
반공의식에 가려져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재북시인’
북한에서조차 절필할 수밖에 없었던 백석의 작품 총수록


정지용과 함께 한국서정시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시인 백석(白石, 1912-1996)의 작품 19편이 새로 발굴됐다. 문학평론가 김재용 씨는 1997년 초판 간행한 『백석전집』에 2003년 새로 34편의 작품을 발굴 수록한 증보판을 낸 데 이어 지난 8년간 발굴해낸 새 작품 19편을 추가 수록 개정증보판으로 펴냈다. “백석 문학의 진면목을 밝히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 자료를 찾아 해방 이후 북한에서의 발표작까지를 모두 담”(김재용)아내는 각고의 노력 끝에 초판 『백석전집』이 간행된 1997년 당시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던 백석 문학의 전모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꾸준한 관심과 연구 결과가 2003년에 이어 8년 만에 새롭게 결실을 맺게 되었다.
개정증보판 『백석전집』은 해방 전의 작품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해방 후의 작품들을 많이 싣고 있다. 특히 새로운 형식의 동화시나 해방 후 북한에서의 활동을 짐작케 하는 평론과 정론 등 백석이 거둔 문학적 성과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백석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민속적 세계이다. 그의 시 속에는 전근대 시대의 민중들의 삶 속에서 전해 내려오는 갖가지 습속들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백석 시의 민속적 세계는 근대인으로서의 절실한 내면의 목소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전근대적 삶의 세계 특히 민속을 향한 강렬한 관심으로 이어지는데 「여우난골족」이나 「고야」 등의 시에 나타난 공동체적 합일의 세계로 드러난다. 더불어 백석 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방언의 사용이다. 한국 근대시에서 백석처럼 의식적으로 방언을 사용한 경우를 우리는 찾기 어렵다. 그의 시에는 관서지방의 방언이 아주 조직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의 방언 사용은 일차적으로 표준어에 대한 저항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근대의 중앙집권화와 물신화에 대항하여 인간의 진정한 삶을 구하고자 하는 노력에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새로 발굴된 15편의 시와 4편의 산문 추가 수록!”

해방 직후의 복잡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백석은 매우 미묘한 위치에 서게 된다. 그는 해방 직후의 남북 현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새로운 공동체의 대안을 건설하고자 했던 백석에게 해방이라는 것은 매우 심대한 의미를 가져다주었으나 자신의 지향과 현실의 흐름이 엇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백석으로서는 우회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번역활동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백석은 동시나 동화시를 발표함으로써 문학활동을 재개하였다. 1957년 4월에 나온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는 산문이 아닌 시의 형식을 빌린 동화시집으로서 혁명이나 계급의식의 고양보다는 휴머니즘을 고취시키려는 경향의 글들이 주로 실려 있다. 이로 인해 아동문학 논쟁을 불러일으킨 데 이어 「조선문학」 에 게재한 「동화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나의 항의 나의 제의」등 평론을 통해 당시 북한 아동문학의 「도식주의 경향」을 비판했다.
전후의 해빙기 속에서 자신의 문학관을 강하게 주장하던 백석은 1958년 숙청되어 국영협동조합의 축산반 양치기로 쫓겨나지만 그의 진정한 문학세계는 오히려 이때 빛을 발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농촌에서 공동체적 삶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이를 시로 형상화한 것이다. 59년 발표된 시 「동식당」은 「여우난골족」등 초기작을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이들 명절날처럼 좋아한다/ 뜨락이 들썩 술래잡기, 숨박꼭질/ 퇴 위에 재깔대는 소리, 깨득거리는 소리/ 어른들 잔칫날처럼 흥성거린다/ 정주문, 큰방문 연송 여닫으며 들고 나고/ 정주에, 큰 방에 웃음이 터진다

공동체적 삶을 되찾은 농촌에서 새로운 유토피아를 발견하려던 그의 노력은 그러나 결국 국가 사회주의의 벽에 부딪혀 좌절된다. 62년 말 북한 전역에 불어닥친 복고주의 비판바람에 의해 된서리를 맞고 창작활동을 중단한 것. 이때부터 백석의 이름은 북한 문학계에서 사라져버린다.
개정증보판 『백석전집』에 수록된 새 발굴작은 제4부(보유 2)에 실린 작품들이다. 민속적·민중적 세계가 강하게 엿보이는 「머리카락」 「당나귀」, 동화시에 해당하는 「까치와 물까치」 「지게게네 네 형제」(기 수록작인 「집게네 네 형제」의 변주작), 동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멧돼지」 「강가루」 「기린」 「산양」, 재북 시기의 이념적 성향이 짙게 드러나는 시편인 「오리들이 운다」 「석탄이 하는 말」 외 5편 등 시 15편과 고리키와 마르샤크, 이솝의 작가론 격의 산문, 그리고 소설가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까지, 새 발굴작만으로도 백석 문학의 전모를 살피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1995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였던 연보는 유족의 확인을 거쳐 1996년 1월 사망으로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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