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글머리에
나사렛 예수의 출현과 교회의 성립 사도 바울과 이방 선교 영지주의 박해와 기독교 공인 삼위일체론의 확립 정경(Canon)의 확정 수도원의 탄생 라틴(서방) 신학의 패러다임 등장 교황의 등장 이슬람의 발흥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열 십자군 전쟁 스콜라 신학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 마르틴 루터와 종교개혁 스위스 종교개혁과 개혁교회의 탄생 재세례파 운동 영국 성공회와 청교도의 등장 로욜라의 이그나티우스와 예수회 기독교 종파주의와 종교 전쟁 근대과학과 이신론의 등장 경건주의 운동 존 웨슬리와 메소디스트 운동 대각성 운동 자유주의 신학의 등장 칼 바르트와 신정통주의 바르멘 선언과 교회의 투쟁 에큐메니칼 운동 제차 바티칸 공의회 해방신학의 등장 새로운 종교 지형도와 기독교의 미래 참고문헌 |
이성덕의 다른 상품
|
역사의식의 빈곤은 한국 교회가 많은 시행착오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교회는 어리석은 행위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한국 기독교가 오랜 기독교 역사의 맥락에서 예외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만한 일이다. 대부분의 한국 기독교인들은 성서와 현재의 내가 있을 뿐이지, 성경과 오늘의 나를 연결하는 역사는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기독교의 역사를 성서 해석과 적용의 역사라고 할 때, 역사에 무관심한 것은 신앙 선배들이 이룩한 거대한 보화를 그냥 땅에 묻어 두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서의 기독교 역사는 흐르는 강처럼 때로는 멈추기도 하고 때로는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종국에는 스스로 자신을 채워 장애물을 딛고 앞으로 나아간다. 지상의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이며, 하나님 나라의 전위대다. 지상의 교회는 완전하지 않다. 빛과 어두움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재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인간의 모든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의 신앙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역사는 우리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기독교회의 미래를 가늠하는 나침반이 된다. --- p.6
자신의 욕망과 한계를 넘어 온전하고 거룩한 삶을 이루고자 하는 것은, 자기 초월을 지향하는 인간의 포기할 수 없는 꿈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한 대답을 ‘떠남’과 ‘버림’에서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떠남’은 자신을 둘러싼 번잡한 속세와 가정으로부터 떠나는 것이고, ‘버림’은 자신의 부와 명예를 버리는 자발적인 가난과 육체적인 욕망을 제어하는 금욕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에 더하여 이들은 기도와 명상, 수련과 노동으로 이 지상에서 온전한 삶과 구원 혹은 해탈을 이루고자 한다. 이것은 거의 모든 종교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한다. 초기 기독교 수도자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그 온전한 삶의 모델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를 본받음’(Imitatio Christi)이야말로 기독교 수도자들이 추구하는 이상이었다. 기독교 수도원 운동은 이러한 기독교적인 삶의 이상이 제도적인 교회 안에서 충족될 수 없을 때 나타난 대안적 삶의 형식이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지녔던 종말론적이며 카리스마적인 성격이 퇴색하면서 제도로서의 교회는 권력화되고 세속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박해 시대가 지나고 로마 제국의 공인된 종교로 부상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제 제도 교회는 갈릴리를 거닐던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모습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 pp.64-65 기독교에서는 거룩한 혹은 의로운 전쟁으로, 이슬람에서는 지하드(아랍어로 ‘투쟁’ 또는 ‘전투’라는 뜻)로 모두가 신앙에 의한 신앙을 위한 성전임을 주장했지만, 시작이 어떠했든 이 과정 속에서 드러난 것은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지배욕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순수한 종교적인 성전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거의 모든 종교 전쟁은 종교적으로 타자에 대한 지배와 영토에 대한 약탈을 정당화하지만, 결국 자신의 종교적 이상에 대한 반역으로 귀결된다. 십자군 전쟁 역시 기독교와 이슬람이 각각 그들의 전장에서 나부낀 십자가와 초승달(및 샛별)에 대한 반역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한 양상은 오늘날 석유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마치 성전인양 선전하며 벌였던 부시의 이라크 전쟁에서도 반복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p.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