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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와 백제
서탑 사리봉안기 출현의 의의
신종원
일지사 201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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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 머리에

彌勒寺 舍利奉安記를 통해 본 武王ㆍ義玆王代의 政治的 動向 ……… 정재윤
I. 머리말
II. 미륵사 사리봉안기의 재검토
III. 무왕ㆍ의자왕과 沙宅王后
IV. 의자왕 집권 초기 정변과 沙宅氏
V. 맺음말

사리봉안기를 통해 본 『삼국유사』 무왕조의 이해 ……… 신종원
I. 머리말
II. 문헌사료
III. 사리기
IV. 무왕설화의 이해
V. 武王條와 사리기에 대한 여러 학설
VI. 무왕조의 사료가치
VII. 맺음말

사리봉안기의 출현과 「서동요」 해석의 시각 ……… 김영수
I. 서언
II. 사리봉안기의 출현과 쟁점
III. 사리봉안기의 내용 검토
IV. 무왕시대의 역사ㆍ불교적 배경
V. 설화와 역사의 상관관계
VI. 서동요 연구사 점검
VII. 결언

미륵사지 서탑 출토 金鋌의 성격과 동아시아 교류상의 의의 ……… 박남수
I. 머리말
II. 미륵사지 출토 金鋌의 화폐적 성격
III. 미륵사지 출토 金鋌의 量詞와 백제의 文字
IV. 백제의 衡制와 미륵사지 출토 金鋌의 의의
V. 백제의 동아시아 교역과 金鋌의 유통
VI. 백제의 熊津江 유역 대외교역항 개설과 益山 경영
VII. 맺음말

익산지역의 백제 사지 ……… 김선기
I. 머리말
II. 가람 개요
III. 伽藍配置와 堂塔構造
IV. 出土 수막새의 編年
V. 가람 조영의 전개
VI. 맺는말

익산지역 무덤축조세력과 쌍릉(武王陵) ……… 최완규
I. 서론
II. 益山地域의 분묘
III. 雙陵의 檢討
IV.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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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

辛鍾遠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문학박사) 강원대학교 교수 역임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저서 『신라초기 불교사 연구』, 『한국 대왕신앙의 역사와 현장』, 『삼국유사 새로 읽기, 1·2』, 『신라불교의 개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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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01쪽 | 148*210*30mm
ISBN13
9788931206043

책 속으로

위의 사료에서 가장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역시 사택왕후의 존재였다. 이제까지 미륵사에 관한 문제를 살필 때에는 [삼국유사] 무왕조의 선화공주가 단연 화두였다. 이 설화에 등장하는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니면 허구에 불과한 것인가의 여부가 관심의 초점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위의 사료 A에 보이는 것처럼 미륵사 건립의 주체가 선화공주가 아닌 사택왕후이며, 그 완공은 기해년(639)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일견 그간의 혼란을 마무리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이에 근거하여 당시 백제 왕후는 사택왕후이며, 선화공주는 설화상에 존재하는 것으로 단정하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하지만 왕과 빈어가 큰 연못에서 배를 뛰우고 놀았다는 기사에서 여러 비가 존재할 가능성도 제기되어 그 불시를 다시 살려 놓았다.
이러한 지적은 무왕의 재위 기간이 길고, 통상적으로 왕에게는 여러 비가 존재하였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 더욱이 미륵사는 대규모 사찰로, 단기간에 완공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름대로 설득력도 갖는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익산의 미륵사터의 서탑을 해체하던 중 사리공에서 사리병과 사리봉안기 등이 발견되었다. 특히 삼국유사 무왕조의 기록에 미륵사를 건립한 것이 서동요로 유명한 선화공주라고 되어 있는 데 반해, 당시의 생생한 기록인 사리봉안기에는 사택왕후가 등장하고 있다. 이로써 서동설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연구자들 사이에 구구한 해석들이 나오면서 문제는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져가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모든 논의들을 보여 주면서 사리봉안기로 인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 함께 출토된 금정의 성격, 익산지역의 백제 사지, 익산지역 무덤 축조세력과 쌍릉(무왕릉) 등에 대한 6편의 논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미륵사 건립 당시의 백제 무왕 ? 의자왕 대의 정치적 동향’에서는 사택왕후의 존재가 드러남으로써 무왕 말년의 정치적 변동과 의자왕 초기 정변에 대한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사리봉안기를 통해 삼국유사 무왕조 기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또 서동요 해석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두 편의 글이 이어진다. ‘미륵사지 서탑 출토 금정의 성격과 동아시아 교류상의 의의’에서는 사리봉안기와 함께 출토된 금정에 쓰인 백제 고유의 숫자, 한자, 무게걊 등을 분석해 백제 고유의 형제를 찾아내고 백제의 중국 강남도 일원에서의 교역이 융성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다음으로 백제시대 무왕의 별도설, 천도설, 이궁설 등의 논란이 있는 익산지역의 백제사지 5곳에 대해 가람 배치, 출토유물 등을 살폈다. 마지막으로 ‘익산지역 무덤축조세력과 쌍릉’에서는 익산지역에서 조사된 마한과 백제의 분묘를 유형별로 그 축조세력을 파악하고 쌍릉이 부여 능산리 왕릉들보다 대형으로 왕릉이 틀림없음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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