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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글:: 지상에서 천국처럼
1부... 국수가 없는 국수집 날 왜 도와주는 거예요? 민들레 국수집, 벌써 8년째 나눔의 의미 누구는 노숙자가 되고 싶을까 하이라이스, 브로콜리, 돈가스의 공통점 도로시 데이의 ‘환대의 집’처럼 하는 일마다 잘된다면? 국수집은 부업, 본업은 교정사목 2부... 민들레 식구들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면 될까요? 이슬왕자님의 몸부림 희망의 봄 아낌없이 주는 어머니 마음 냉면과 동태탕 기적의 행렬 영진이네 가족의 새출발 하는 일마다 잘된다면? 교도소행 여름휴가 꼴베 형제와 연꽃 3부... 함께하는 기쁨 루오의 어여쁜 베로니카 예수님을 따라서 싹을 틔우려는 한 톨의 씨앗처럼 견뎠다 울고 웃는 국수집의 하루 ‘민들레 꿈 공부방’을 열기까지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기 함께 걸어가는 세상 가난한 하느님의 대사들 4부... 하늘 창고 무주상보시 민들레식 김장 축제 사랑으로 하는 일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 멋진 패자부활전 언제나 구원투수처럼 하느님이 사는 꽃섬고개 행복을 나누는 민들레 편지 - ‘밥이 되어주는 마음’으로 사랑하겠습니다_ 아내 베로니카 - 인생의 스승, 사랑의 스승께 배웁니다 _ 딸 모니카 추천의 말:: 하느님의 동업자 서영남_ 박기호(예수살이공동체 대표신부) 세상이 부끄럽다_ 이일훈(건축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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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소외된 우리 손님들은 어느새 자기 존재감을 잊으면서 홀로 설 용기를 잃고 자포자기하기 쉽다. 그래서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관심을 가져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중략) 새로운 손님들이 오시면 항상 이름부터 외웠다. 국수집 벽에 걸린 하얀 칠판에 손님들 이름을 쭉 적어놓고, 국수집에 오시면 한 번이라도 꼭 이름을 불러드렸다. 잊어버리면 다시 물어보고 또 외우고, 또 외우고……. 처음엔 그나마 손님들이 몇 분 안 되어서 이름 외우기가 별로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손님이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이름 외우는 것을 더욱 열심히 해야 했다. “저는 식당에서 말썽 부리는 몇 사람 이름만 기억하는데…… 어떻게 다 외우세요?” 한번은 안드레아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시험공부 하듯이 열심히 외우죠. 그래야지 나한테 말을 할 거 아니에요?” --- p.53 지난 수요일 허리가 아파서 조심조심 병원으로 걸어갔다. 보통 걸음으로도 걷기가 힘들어 쉬엄쉬엄 가다가 우연히 어느 음식점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잘 보이는 곳에 “번성케 하소서”를 나무판에 새겨 걸어놓았다. 하는 일마다 뜻대로 잘된다면 얼마나 끔찍한 세상이 될까! 그저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져야 지상의 천국이 지금 여기에서 시작될 수 있다. 암세포를 생각하면 쉽다. 암세포는 하는 일마다 잘된다. “번성케 하소서”라는 말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암세포가 하는 일마다 잘되어서 더는 번성할 수 없을 때, 사람은 죽음으로 치닫는다. --- p.64 기섭 씨가 감기에 걸렸는지 밥을 조금 드시더니, 머뭇거리다가 쓰레기봉투 몇 장을 내밀면서 좀 사달라고 했다. 찜질방에서 하룻밤만 자면 감기가 나을 것 같다며 돈이 필요하단다. 주고받는 장사를 하려면 민들레 국수집에서 밥값도 내라고 했더니 미안하다며 그냥 가려고 했다. “기섭 씨, 찜질방비를 그냥 드릴 테니까 쓰레기봉투도 민들레 국수집에 그냥 주세요.” 잠깐 망설이던 기섭 씨가 쓰레기봉투를 내밀기에 찜질방비를 그냥 드렸다. 거래가 아닌 나눔이 이루어졌다. ---- p.125 꼴베 형제의 영치금은 몇 년째 ‘0원’이다. 자기 몫의 영치금을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할아버지 재소자에게 넣어주기 때문이다. 꼴베 형제는 종이 쇼핑백 가방을 만드는 청송교도소 제8공장 반장이다. 보통은 2∼3만 원을 받지만 꼴베 형제는 반장이라서 작업수당이 많다. 월 7만 원 정도다. 하지만 19년이나 모아온 작업수당도 ‘0원’이다. 2003년부터 민들레 국수집의 후원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꼴베 형제는 ‘배가 고프면 다른 마음을 먹고 범죄에 빠지기 쉬우니, 얼마 안 되지만 국수집 손님들 대접하는 데 보태라’며 지금까지 200만 원도 넘는 돈을 보내왔다. --- p.144 어렸을 때부터 힘든 일에는 웬만큼 익숙해져 있던 나도 가끔은 정말 일이 고될 때가 있었다. 언젠가는 하도 힘들어서 꾀를 부렸다. 다른 수사님 방에 몰래 들어가 신발까지 숨긴 채 침대 밑에서 낮잠을 잤다. 그런데 몸은 편할지 몰라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음이 부대껴서 오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할 수는 없다는 것, 둘 중에 하나는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 후 몸이 편한 것보다는 마음이 편한 쪽을 택하게 되었다. --- p.162 얼마 전 식사를 끝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루에 몇 번 식사를 하시느냐”고 물었더니 “하루에 한 번, 여기서 식사하는 게 전부”라고 했다. “국수집이 쉬는 날은 어떻게 하시냐”고 했더니 돈이 있으면 컵라면을 사먹고, 없으면 그냥 굶는다고 한다. 적어도 하루 두 끼는 드셔야 한다고, 내일부터는 오전과 오후 두 번 오시라고 당부했더니 재화 씨가 수줍은 듯이 말했다. “나보다 더 배고픈 이들도 먹어야지요.” 무섭게 으름장을 놓았다. “한 번만 오시면 앞으로는 출입금지입니다. 적어도 두 끼는 드셔야 해요.” --- p.180 한번은 서울에서 오신 처음 보는 손님이 국수집에 오셔서 음식에 욕심을 내며 듬뿍듬뿍 담았다. 다 드실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닐 봉투에 먹던 밥을 담고 있었다.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음식을 남기면 혼나기 때문에 비닐에 싸서 밖에 나가 버리려고 했단다. 손님의 잘못을 지적하자 한바탕 난리가 났다. 결국 있는 욕 없는 욕 다하고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끝을 맺었다. 아마 그 손님은 한동안 식사하러 오시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 잊혀질 만하면 다시 나타날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씩 한 번 웃어주고 만다. 배고플 테니 어서 들어가 식사하시라고 하고,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시면 담배 한 대 권하면서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사람은 잘못을 하면 스스로 자기에게 벌을 내린다. 그 손님이 민들레 국수집으로 다시 오기까지 뚸음고생을 꽤 했을 테고, 그럼 스스로 받을 벌을 다 받은 셈이니 떡 하나 더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p.194 아침에 문규 씨가 대뜸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연히 아이들이 민들레 국수집 앞의 교회에 가는 것을 보았다면서, ‘민들레 꿈 공부방’은 엄연히 수녀님이 계시고 무상으로 아이들을 돌보면서 왜 아이들이 교회에 가는 것을 내버려 두냐고 했다. 교회가 아니라 당연히 성당으로 가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다. 참다운 사랑은 조건이 없는 법이라고 말해주었다. 민들레 국수집 손님들에게 신앙을 강요하거나 그 어떤 조건, 단서를 달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봉사에 조건을 달면 봉사가 아니다. 공부방 아이들이 모두 점점 밝게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국수집 손님들과 감옥에서 고생하는 형제들, 출소한 형제들이 시나브로 변하는 것에 비하면, 민들레 꿈 공부방 아이들은 기적에 가까운 속도로 변화한다. --- p.199 2003년 첫해 겨울엔 김장이 문제가 아니라 점점 늘어나는 손님들 때문에 진땀이 났다. 도저히 쌀을 감당할 길이 없었다. 알음알음으로 도움을 주실 만한 몇 분에게 부탁을 드렸는데 결과는 참담했다. 상당수 난색을 표하거나 냉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정말 큰 실수를 했구나 싶었다. 눈 딱 감고 민들레 국수집 문을 닫아버리면 그만이고, 책임질 일도 없었지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한 끼 밥도 얻어먹기 힘든 우리 손님들을 생각했다. 우리 손님들은 얼마나 막막할까?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서 만석동 ‘기찻길 옆 작은학교’의 단비 아빠에게 전화를 드렸다. 100만 원을 빌려달라고 겨우 이야기했다. 공동체와 상의한 후에 연락을 준다고 하더니 잠시 후 전화가 왔다. 단비 아빠가 말했다. “저희가 회의를 했는데요. 그게…… 돈을 빌려드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뿔싸, 하는 순간. 낙담할 틈도 없이 단비 아빠가“그냥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 pp.224-225 여러 사람들이 열심히 일한 끝에 드디어 김장이 끝났다. 이번에도 역시 이웃들과 인정이 넘치도록 푸짐하게 김치를 나눴다. 크고 작은 통에 나눠 담은 김치가 자그마치 70통이 넘었다. 처음에는 김장을 한 후 저장할 곳이 없어서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가장 좋은 김장김치 저장법을 알고 있다. 바로 민들레 국수집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것! 김장을 할 수 없는 분들께 김치를 나눠드리면, 하느님께서 잘 보관해두셨다가 다음 해에 또 모자라지 않게 주실 것이다. --- p.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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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 두 차례 방영!
노숙인을 위한 무료식당 ‘민들레 국수집’ 7년의 기적!! ‘하느님의 동업자’인 주인장과 선한 이웃들이 사랑으로 차려내는 밥 한 그릇 세상의 줄서기 경쟁에서 밀려난 ‘꼴찌’들의 구원투수 경기도 동인천역 근처에는 거짓말 같은 무료식당이 있다. 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문을 연 ‘민들레 국수집’이다. 배고픈 사람은 누구나 무료로 밥을 먹을 수 있다. 국수집이지만 국수는 없다. 손님들이 이제 밥은 지겨우니 국수를 달라고 할 때까지 국수집 간판은 그냥 둘 거라고 한다. 국수집 주인장은 2000년 예수님의 뜻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25년간의 수사생활을 마감하고 수도원 담장 밖으로 나왔다. 주위의 도움으로 단칸방을 마련해 출소자 형제들과 함께 지내던 중 우연히 동인천역에서 배고픈 사람들이 밥 한 그릇 먹기 위해 긴 시간 기다리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줄 세우는 사람들의 인정머리 없는 잔소리를 들으면서 묵묵히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배고픈 사람들을 앞에 세워놓은 채 설교를 하고 기나긴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 다 식어버린 밥을 먹는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다. 또, 밥을 먹은 후에 설교를 하면 전부 가버리니까 먹기 전에 해야 한다는 뜨거운 열정이 가슴 아팠다. 배고픈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한 그릇의 밥이 아니라 ‘사람대접’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가슴 아팠다.” 민들레 국수집에서는 식사 차례를 기다리면서도 손님들이 줄을 서지 않는다. 손님이 많을 때는 무조건 가장 오래 굶어서 제일 배고픈 분이 먼저 식사를 한다. “노숙인이나 배고픈 사람들은 모두 세상의 줄서기 경쟁에서 밀려난 꼴찌들이다. 그런데 민들레 국수집에서마저 줄을 서서 선착순으로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끔찍한 일”이라는 주인장의 신념 때문이다. 퍼줄수록 채워지는 ‘하늘 창고’의 기적 6인용 식탁 하나에 손님 6명이 앉으면 설거지할 틈도 없을 만큼 비좁았던 국수집은 이제 24명 손님이 한 번에 식사할 수 있을 만큼 넓어졌다. 요즘은 날마다 찾아오는 ‘VIP손님’이 400~500명에 이른다. 하루에 들어가는 쌀만 150킬로그램이다. 2010년 4월 1일에는 민들레 국수집 개업 7주년 기념으로 찾아오시는 모든 손님들에게 갈비탕과 잡채를 대접한다. 국수집 외에 그동안 ‘민들레 사업’도 몇 가지 확장했다. 물론 돈은 벌지 않고 쓰기만 하는 사업이다. 국수집 근처에 방을 얻어 지내는 느슨한 공동체 ‘민들레의 집’ 식구들만 수십 명에 이르고, 노숙인들이 문화생활을 즐기고 인간다운 삶을 꿈꿀 수 있는 ‘민들레 희망지원센터’에다, 소외된 아이들을 무상으로 돌보는 ‘민들레 꿈 공부방’, 최근에는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까지 문을 열었다. 또 한 달에 두 번은 전국의 교도소 형제들을 만나 영치금과 사랑을 나눠준다. 정부지원도 받지 않고 부자들의 생색내기식 기부금도 사양하고, 어떤 후원회도 갖추지 않은 채 어떻게 그 많은 사업체를 운영할까? 그가 하는 일에 물심양면으로 절대적인 응원을 보내는 아내와 딸, 그리고 아낌없이 퍼주면 항상 그만큼 채워지는 ‘하늘 창고’ 덕분이다. 월요일마다 점심을 거르며 모은 돈을 1년간 저축했다가 전달해주는 우체부 아저씨, 하루 15킬로그램 폐지를 모아서 번 돈 1000원을 반찬값에 보태라며 내주시는 할머니 손님, ‘국수집 손님들을 위해 쓰고 싶다’면서 영치금을 모아 보내오는 교도소 형제, 매달 연금 13만 원에서 만 원씩 떼서 건네시는 할머니, 무시로 찾아와 온몸으로 봉사해주는 봉사자들, 고춧가루 등을 매년 나눠주시는 화수시장 상인들…. 하느님이 보내주신 선한 가족과 이웃들이 주인장의 든든한 ‘빽’이다. 전국에서 모여드는 소리 없는 나눔으로 2009년에는 국수집에서 쓰고 남아서 이웃들에게 다시 나눠준 쌀만 1200포대에 이른다고 하니, 엄청난 빽이다. “사랑만이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안다” 얼굴에 항상 웃음이 가득한 주인장은 지난 8년간 날마다 착한 이웃들 덕분에 하느님 나라의 잔치를 벌여왔다고 말하지만,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때 결코 행복한 일만은 아니다. 술 취한 손님들에게 강아지, 송아지, 욕도 무시로 얻어먹는다. 밥이 설었네, 반찬 맛이 없네, 트집 잡는 손님들에게 멱살잡이를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민들레의 집’ 식구들이 방 보증금을 떼서 달아나고, 출소한 형제들이 손해를 입히고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는 일도 반복된다. 박기호 신부의 말대로 그를 ‘물봉’으로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정해진 수입원이 없기 때문에 쌀독이 비고 수도세가 밀려 쩔쩔맬 때도 많다. 그럼에도 지금껏 ‘민들레 사업’을 계속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랑’ 때문이다. 주인장이 힘들 때마다 벽에 적어놓고 가슴에 되새?다는 김남주 시인의 시구처럼, ‘사랑만이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감옥에 갇힌 형제들을 돌보고, 수년간 민들레 국수집에서 수많은 손님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도 오직 사랑, 부드럽고 따뜻한 사랑만이 사람을 변하게 하고 희망을 꿈꾸게 한다는 사실이다.” 떠났다가 돌아오길 반복하는 식구들과, ‘사람은 서서히 변하기에 천천히 기다려야 한다’며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는 주인장. 그의 쇠심줄 같은 사랑은 어떤 기다림에도 끄떡없을 듯하다. “상처 많은 우리 식구들이 자기 몫을 제대로 해내는 한 사람으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쉽게 짐작할 수 없지만, 민들레의 집은 식구들이 어느 날 홀연히 떠나가도 그들이 힘들고 외로울 때는 언제든 몇 번이든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고향집 같은 곳이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