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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 선정을 베푼 제왕들 - 부모형제라도 공정하게 법을 시행한 제왕 - 간언을 잘 받아들인 제왕 - 근검절약을 실천한 제왕 - 탐관오리를 엄히 처벌한 제왕 - 사람을 잘 알아보고 쓰는 제왕 2. 놀기에 바쁜 제왕 - 술을 목숨처럼 여기는 제왕 - 천성이 잔인한 제왕 - 사치가 끝이 없는 제왕 - 궁녀가 많았던 제왕 - 방탕한 생활에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제왕 - 장례가 호화스러운 제왕 - 놀기에 정신 팔려 본업을 잊어버린 제왕 3. 제왕의 운명 - 가장 오래 재임한 제왕 - 재임이 짧았던 제왕 - 노년에 즉위한 제왕 - 어릴 때 즉위한 제왕 - 폐위되어 권좌에서 축출된 제왕 - 선황제를 폐위시키고 제위에 오른 제왕 - 포로가 된 제왕 - 나라가 망하여 투항하는 제왕 - 행방을 알 수 없는 제왕 4. 엉뚱하게 죽은 제왕들 - 후비에게 죽은 제왕 - 친척과 환관에 의해 죽은 제왕 - 정변에 놀라 죽은 제왕 - 독살로 죽은 제왕 - 강요에 못 이겨 자살한 제왕 - 선약으로 죽음에 이른 제왕 후기 역대 중국황제 연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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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서晋書112권》에 따르면, 전진(前秦)의 역왕(歷王) 부생(符生)은 어린 시절부터 무뢰한으로 유명한 불량배로 성격이 매우 악랄하고 흉악했다. 그의 할아버지 혜무제(惠武帝) 부홍은 이런 부생을 매우 업신여겼다. 부생은 어렸을 때 한쪽 눈이 멀었는데, 한번은 부홍이 일부러 시종에게 “내가 듣기로 애꾸눈(부생을 가리켜)은 한쪽 눈에서만 눈물이 흐른다던데 정말 그러하냐?”하고 물었다. 부생은 할아버지가 자신을 조롱하는 것을 보고 화를 내며 칼로 스스로를 찔러 피가 나게 하며 말하기를“이것 또한 눈물입니다”라고 소리치자, 부홍이 크게 놀라 그에게 채찍질을 하였다. 부홍은 이 불량소년을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부생은 간신히 살아남았다.
성년이 된 부생은 힘도 세고, 도검으로 찌르고 말 타고 활 쏘는 것에 아주 능했다. 적이 쳐들어왔을 때 혼자 말을 몰아 적진에 들어가 깃발을 빼앗고 장수의 목을 베어 온 적이 십수 번이었다. 이러한 용맹함을 높이 평가한 부생의 아버지 고조 부건(?建)은 할아버지 부홍이 죽자 그를 태자로 책봉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부생은 서기 355년(수광壽光원년) 제위에 오른다. (…중략…) 제위에 오른 부생은 곧 음주에 빠졌다. “부생이 술을 마시는 데는 밤낮이 없었고, 그에게는 해조차도 뜨지 않았다. 그는 태만하여 정사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온종일 술이 거나하게 취해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나라 일을 돌보지 않고 항상 곯아떨어져 있었다. 또한 취중에 대사를 결정하고는 나중에 이를 시비 삼았으며, 한밤중에 술에 취해 시찰을 나가 많은 살육을 저질렀다. 《자치통감100권》” 부생은 혼자 술을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정 대신들에게도 광음하도록 강요하였다. 한번은 부생이 태극전 앞에서 군신들과 연회를 베풀고 있을 때였다. 술을 마시며 즐거워하던 부생은 상서령 신로가 권한 술을 마시지 않았다며 그를 활로 쏴 죽였다. 이에 문무백관들은 두려움에 떨며 술을 따라 연거푸 마셔댔다. 대신들의 옷과 관모가 더러워지고 흐트러졌고, 나중에는 비틀거리며 넘어지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부생은 이것을 보며 즐거워했다. 그는 애꾸였기 때문에 모자란 것, 불구, 적은 것, 없는 것, 결핍, 상처, 불완전, 훼손, 편견 등의 말은 모두 말해서는 안 되는 금기어였다. 이러한 금기를 몰랐던 몇몇 사람들은 창졸간에 목숨을 잃었다. “왕의 명령을 거역하여 다리가 잘리고 목이 잘린 자가 부지기수였다. 《자치통감 100권》” ---p.109 술을 목숨처럼 여기는 제왕 中 전진(前秦)의 역왕(歷王) 부생(符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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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매혹적인 제왕의 권좌는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며 잔인한 암투 속으로 그들을 끌어들였다. 황제의 권력이 컸던 만큼 그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벌어지는 세력다툼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했다. 권신들이나 무장 세력들은 제위를 찬탈하기 위해 수많은 간계를 획책했으며 권력을 탐한 무리 중에는 황후나 귀빈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중국의 역사는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고, 나라에는 두 명의 주인이 있을 수 없다’는 엄격한 정치사상이 전 시대를 관통하였다. 따라서 왕권은 오직 한 사람만을 필요로 했다. 그는 천하에 우뚝 솟은 한줄기 빛으로, 스스로를 신격화하기 위해 용(龍)을 이용했다. 중국 역사상 제왕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583명이라 한다. 수많은 이 제왕들은 그들이 총명하든 아둔하든, 왕조의 수명이 길든 짧든, 또 어느 민족의 혈통에서 나왔는가에 관계없이 제왕 개인의 정신적 구조의 틀은 기본적으로 일치하였다. 처음 왕조가 세워지면 개국 초기에는 나라의 안정을 이루기 위해 이로운 것을 일으키고 해로운 것을 없애며 대체로 좋은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몇 대의 황제를 거치면서 그 자손들은 점점 주색에 빠져 정치를 게을리 하고 조정의 기강은 문란해지기 시작한다. 이로써 왕조는 빠른 속도로 쇠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제왕의 거처는 높은 벽과 두터운 문, 그리고 삼엄한 경계를 하는 금지(禁地)로 잘 알려져 있다. 그 내부는 특수하고 치밀하고, 기괴하기에 지금까지 밖으로 폭로된 게 매우 적었다. 간혹 밖으로 누설되는 것조차 훼손되거나 결여되어 완전하지 못하고, 참과 거짓이 뒤섞여 있어 진실의 흔적조차 찾아내기 쉽지 않다. 어떠한 제왕이라도 정권을 장악하고 있을 때에는 천하는 일제히 입을 다물었고, 비난도 매우 적었다. 황제가 죽음에 이른 후에야 그 공적과 과실은 오랜 세월동안 물방울이 떨어져 돌을 깎아내듯 아주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500여 명의 제왕은 후세의 눈으로 보기에 그 명과 암이 가지런하지 못하다. 보통사람으로서는 그 전체 형상의 본성을 엿보기 어렵다. 이것은 구름과 안개에 가려져 어찌할 도리가 없는 역사이다. 샹관핑(上官平)은 역사서의 명확한 사료에 기초하여 ‘성스러운’ 제왕의 껍데기를 걷어 냈다. 교묘하게 자신을 ‘하늘의 아들’이라 부르던 그들의 높은 콧대를 일소하고 그들의 ‘사람’으로서의 본성을 들추어냈다. 공을 과실로, 과실을 공으로 가리지도 않았다. 추악하게 묘사하지도, 과분하게 칭찬하지도 않았다. 요동치는 역사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제왕의 정체를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동시에 샹관핑은 각 왕조의 성쇠, 흥망의 원인도 깊이 성찰하여 종합적인 분석을 내린다. 샹관핑은 이미 진상이 밝혀진 제왕들의 삶을 비추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봉건왕조에 대한 근본적인 분석을 통해 독자들에게 역사를 심사하고 주시하는 안목을 갖게 한다. 이 광망(光芒)에 상관평의 심혈이 응결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