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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 리치 전서 서문
마테오 리치 『중국선교사』의 원고와 판본 역자 서문 제1권 서론_중국과 중국인 1_이 책을 쓰게 된 동기와 서술 방식 2_중국의 명칭과 위치, 면적 3_중국의 생산 물자 4_중국의 공예 5_학술 및 시험 제도 6_중국의 정치 7_중국의 예법 8_중국의 습속 9_미신과 그 밖의 폐단 10_종교 파벌 제2권 처음 중국에 들어가다 1_성 프란시스코 사비에르가 중국에 들어가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 2_중국행, 두 번째 시도 3_1582년 세 번째로 중국에 들어갔으나 정착하지는 못하다 4_선교사가 초청을 받아 조경으로 가서 집을 짓고 교회를 열다 5_교리를 강론하기 시작하다 6_루지에리가 마카오로 돌아오고 마테오 리치가 포로가 되어 풍채와 도량을 배우다 7_중국 주재 스페인 대사관 8_신부들이 재차 중국에 들어가고 루지에리가 절강浙江을 여행하다 9_절강 여행을 마치고 루지에리가 광서廣西를 여행하다 10_산드가 마카오로 돌아오고 루지에리는 무고를 당하다 11_루지에리가 마카오로 돌아오고 산드는 조경으로 돌아와 다시 한차례 풍파를 겪다 12_루지에리가 로마에서 대사관 설립 준비를 하고 알메이다는 조경으로 오는 길에 어려가지 어려움을 당하다 13_땅에 묻힌 씨앗 14_조경의 마지막 몸부림과 선교사의 추방 제3권 16세기의 중국_마테오 리치의 일기(1583~1610) 1_전도소를 회복하고 새로운 거처를 소주韶州에 마련하다 2_발리냐노가 전도소를 건립하다 3_구태소 4_소주의 초창기 선교 사업 5_알메이다의 죽음 6_남웅南雄의 개교開敎 7_밤에 도둑이 출몰하다 8_프란체스코 데 페트리스 신부의 죽음 9_마테오 리치의 남경 도착 10_마테오 리치가 남경에서 쫓겨나다 11_남창의 개교 12_남창의 황족 13_남창에서 기초를 세우다 14_소주에서 다시 소요를 겪다 제4권 남경에서 북경까지 1_남경으로 돌아가다 2_최초의 북상 3_공물을 바칠 방법을 찾지 못하다 4_다시 남경으로 5_남경에서의 공개강의 6_남경의 인사들 7_승려와 도를 논하다 8_남경에 거처를 정하다 9_남경 개교 10_다시 북상하다 11_임청에서 어려움을 만나다 12_북경으로 들어가 공물을 바치다 13_사이관四夷館에 들어가다 14_북경에서의 교류 15_두 명의 절친한 친구 16_요서妖書 사건 17_소주韶州의 지난 일 18_여러 가지 어려움 19_남경의 선교 업무 20_북경의 선교 업무 제5권 중국교회의 독립과 발전 1_마테오 리치의 지도 아래 독립적인 선교구가 되다 2_마테오 리치의 중국어 저작 3_문인 교우와 그들의 저작 4_남창의 교회 5_소주의 선교 상황 6_구태소가 마침내 입교하다 7_제1판 유클리드의 『기하원본』 중국어 번역본 제1판 8_중국 선교구 창시자 발리냐노 신부의 죽음 9_황명사 수사의 억울한 옥살이와 희생 10_상상의 반란이 스스로 생겨났다 없어지다 선교사들이 누명을 벗다 11_카타이와 중국 12_카타이와 중국이 같은 곳임을 입증하다 13_고이스 수사가 중국에서 잠들다 14_소에이루 신부의 죽음과 남창의 고난 15_박해로 인해 남창 교우들의 믿음이 공고해지다 16_중국의 첫 번째 성모회 17_남경 교회의 성장 18_상해의 카타네오 신부와 서광계 교우 19_소주韶州에서 마카오까지의 어려운 여정 20_마테오 리치의 죽음 21_황제가 마테오 리치에게 묘원墓園을 하사하다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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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대만의 광계(光啓)출판사와 보인(輔仁)대학출판사가 공동으로 출판한 『마테오리치 중국선교사(利瑪竇中國傳敎史)』 상하권을 완역한 책이다. 1582년 중국 선교를 목표로 마카오에 첫발을 내딛고 갖은 고난을 무릅쓴 노력 끝에 북경에 입성한 뒤, 선교 활동을 비롯한 관계 인사들과의 교류, 지도 제작, 각종 저술 등의 활동을 펼치다가 1610년에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이탈리아 선교사 리치의 생생한 기록들이 이 책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로마를 떠나 외지 선교에 나선 것은 1578년이었고, 처음 도착한 곳은 인도의 고아(Goa)였다. 고아에서 리치는 4년간 머물다가 중국 포교의 명을 받고 1582년에 중국 마카오에 첫발을 딛게 된다. 이후 조경(肇慶), 소주(韶州), 남창(南昌) 및 남경 등을 거쳐 1601년에 북경 입성에 성공한다. 이후 상하 계층을 막론하고 선교와 문화 교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던 리치는 1610년 북경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본서는 리치가 30년에 가까운 중국에서의 선교활동 기록을 남기도록 한 발리냐노 신부의 명을 받아 이루어진 기록을 번역한 것이다. 그 기록의 중심이 선교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리치의 선교는 일반적인 여타 선교사와는 차이점이 있었다. 즉, 무력과 자문화 중심적인 교만함으로 제국주의의 첨병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여타 선교사들과는 달리 리치는 자신의 과학적 재능을 바탕으로 하여 수많은 천문기기, 자명종, 항해 기구 및 세계지도 등으로 당대 최고의 중국 과학자들을 놀라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식 복식을 갖춰 입으며 중국식 예절을 지키려 애쓰는 등 중국을 타자화하지 않고 그 사상과 문화를 가급적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본서에는 선교에 관련된 내용뿐만 아니라 당시 리치가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던 중국의 역사, 문화, 및 사회생활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내용 중에는 물론 중국 문화와 현상에 대한 서구인이 가지는 한계로 인한 오해나 착각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기록의 사실성과 함께 인간미를 배가시켜 주기도 한다. 이는 본 역서의 제목을 ‘마테오 리치의 중국견문록’이라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여타 신부들의 활동을 포함하여 자신의 활동상을 직접 소개하고 있는 이 기록은 트리고의 라틴어본을 저본으로 영어본, 중국어본, 일본어본 등을 비롯한 세계의 각국 언어로 소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본은 소개가 되지 않은 현실에서, 자연스럽게 본서는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마테오 리치의 ‘육성’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