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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아내는 외모는 수수했지만 싹싹한 성격이 모두의 호감을 사는 여자였다. 섬세한 배려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런 아내가 왜 나를 좋아했는가? 나중에야 안 거지만 아내는 보기보다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사람마다 끌리는 유형이 있듯이 끄는 유형의 인간도 대개 정해져 있다. 아내는 주로 거친 남자들이 좋아했다. 그들은 늘 밝은 아내에게 무신경하게 상처를 내곤 했다. 하지만 내게 아내의 발랄함은 편안함이 아니라 동경이었다. 아내는 자신이 틈을 보였음에도 조심하고 예의를 갖추는 새하얀 얼굴의 내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난 선물공세도, 사랑고백도 않았는데. 무례한 놈들 덕분에 혼자 빛나서 아내를 거저 얻었다. 때론 아무것도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면 내 경우를 ‘무위의 프러포즈’라고 이름 붙여도 무방할 듯싶다.
내 직업? 없다……. 한때는 있었지만. _고통의 근원이 무엇일까요? 육체의 병으로 고통 받는 분들을 제외한다면, 그 발원지는 마음입니다. 인간의 정신입니다. 우리를 인간으로 살게 한 정신이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끝내라고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 정신은 자신이 발을 디딘 모순을 들여다보려 하지만 그 모순을 풀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그 위에 성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팔 힘이 강해도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라설 수 없는 이치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정신을 치료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정신을 깨끗이 치료하는 기술은 인류가 아직 갖고 있지 못합니다. 하지만 생명 없는 물건도 마찬가지 듯이, 치유는 어렵고 더디나 파괴는 쉽고 한순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신을 파괴해서 생을 치유하고자 합니다. 물을 빨아들이는 솜처럼, 삶에 무게를 더하고 더해 종내는 더 이상 짊어지고 가기 힘들게 만들어버리는 이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마음. 정립과 반정립을 수없이 거치지만 결국 종합에 이르지 못하고 다시금 대립으로 분열되고 마는 고장 난 정신. 그것을 우리는 파괴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체의 죽음은 두렵고 또 두렵습니다. 하지만 고통의 모든 원인, 인생고의 총사령관이자 지휘자인 정신만 없앤다면, 정신을 스스로 살해한다면 이 고통은 끝이 납니다. 정신의 자살입니다. 맑은 정신에 고통이 깃들 뿐이라면 차라리 이 정신을 망가뜨리고 싶다! 우리는 도와드릴 수 있고, 준비되어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담벼락 위에서 끝없이 고뇌를 연장할 것이냐, 아니면 정신을 파괴한 삶 안에서 미지의 새로운 세상을 만날 것이냐. 이제 당신이 선택할 차례입니다. _류경아는 눈을 반짝이며 잔을 들었다. “고변호사님은 강도들 차를 들이받을 때 왜 여자를 생각하지 않았죠?” “뭐?” 고진은 불의의 일격을 맞은 표정으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막 입으로 가져가던 스카치 잔이 그대로 허공에서 멈췄다. “차를 들이받으면 물론 강도들을 쓰러뜨릴 수 있겠죠. 하지만 조수석에 탔던 여자도 같이 다칠 수 있었어요. 다행히 아무 일은 없었지만. 그건 결과적으로 그랬죠. 고변호사님이 배려한 건 없었어요.” “으음.” 고진은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며 잔을 기울였다. “우리한테는 차에서 미리 내리라고 시켰죠? 뭐 보험회사가 더 돈이 많으니 하는 건 마음의 정을 들키기 싫어하는 고변호사님 식의 썰렁한 농담이고, 실은 우리가 다칠까봐 그러셨죠? 그런데 앞 차의 여자에 대해서는 그런 배려가 있었나요?” “그거야,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빠른 대처가 필요했으니까…….” “정말 그래서일까요? 고변호사님이라면 그 방법 말고도 다른 안전한 방법을 얼마든지 생각해내실 수 있었을 거예요. 그 짧은 순간에 시나리오를 짜서 귀찮은 정당방위보다는 교통사고로 만들어버린 고변호사님이에요. 그 여자를 배려하는 방법도 아마 분명 있었을 거예요. 뭐 보통은 앞 차를 천천히 쫒아 위치를 확인해가면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을까요? 그 다음에는 자기 길을 갔겠죠. 굳이 고변호사님이 즉석에서 차를 들이받은 건 여자를 구하기 위한 게 아니라…….” “아니라?” “고변호사님의 놀이였어요.”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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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출판사의 본격 추리&미스터리 시리즈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땅 * 미스티 아일랜드(Misty Island)」가 준비한 첫 번째 작품. 일본 추리문학에 가려진 국내 추리소설 작가들의 새로운 부활을 꿈꾸며 첫 작품을 국내 작가의 창작물로 런칭했다. 주인공은 바로『붉은 집 살인사건』,『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을 발표하여 평단과 독자의 관심을 모은 도진기의『정신자살』. 작가 도진기는 단편 '선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주관하는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며 추리소설 작가로 정식 데뷔했다. 살인사건의 발생과 수사, 트릭의 폭로라는 전형적인 안락의자형 추리소설에 가까웠던 전작과 달리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트릭을 십분 활용한다. ‘정신’만 죽인다는 흥미로운 소재, 실종, 불륜, 추격전, 그리고 ‘어둠의 변호사’란 닉네임을 가진 고진의 전사(前事) 등 다채로운 이야기와 그 무수한 이야기의 이면을 꿰뚫어버리는 고진의 사건 해결 능력을 즐길 수 있는 박진감 넘치는 소설이다. 한마디로 본격추리소설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 하는 결말, 오답률 100퍼센트에 도전하라! 삶의 이유이자 존재의 근거였던 아내 한다미의 가출로 생의 미련을 놓아버린 길영인. 그는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자살을 생각한다. 하지만 육체적인 고통이 두려워 망설이던 중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신자살연구소’ 홈페이지를 발견한다. 몸 대신 정신만을 죽여 향후 번뇌 없이 살게 해준다는 말레 혹한 그는 연구소를 방문해 소장 이탁오를 만난다. 이탁오 박사의 탁월한 언변과 이론에 마음이 흔들린 길영인은 시술을 받기로 결심, 3천만 원이라는 거액의 시술비를 지불한다. 그리고 한 달간 정신자살 시술을 받는다. 하지만 홍보문구와 달리 아내의 기억은 전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내의 실종에 더욱 집착하게 되어 급기야 아내의 이메일 비밀번호를 알아내고 그녀의 행적을 좇기 시작한다. 정신자살 시술을 받았는데도 길영인은 왜 아내의 기억을 지우지 못 할까? 1년 전에 종적을 감춘 길영인의 아내 한다미는 어떻게 된 것일까? ‘정신자살 연구소’ 소장인 이탁오 박사의 진짜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뛰어난 트릭과 완성도 높은 플롯으로 독자를 사로잡다 『정신자살』은 본격추리소설을 지향하는 작가의 포부에 걸맞은 작품이다. 길영인의 1인칭 수기와 고진의 수사 과정이 주가 되는 3인칭 서술 형식을 한 챕터씩 번갈아가며 서술함으로써 작가는 이번에도 작품에 대한 독자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전작이 추리소설의 전형성을 띠고 있다면 신작『정신자살』은 다양한 소설 기법과 서술 형식을 활용함으로써 소설의 완성도를 높임과 동시에 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을 속도감 있게 처리하여 흥미의 완급을 조절하는 데도 성공했다. 또한 간결하면서도 구체적인 문장, 드라이한 문체는 독자가 머릿속으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게 해주는 한편 작품과 일정한 거리감을 두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도진기 작가의 전작들은 두뇌를 쓰는 정통 추리소설이어서 영화화에 어려움이 따랐다. 이에 비해『정신자살』은 기발한 소재와 충격적인 결말이 독자의 흥미를 담보하는 만큼 영화화 가능성도 한층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정신자살』은 ‘잘 쓰인’ 소설이 응당 갖추어야 할 ‘내용과 형식’을 충분히 만족시키고, 그 결과물로서 소설이 추구하는 ‘재미와 감동’을 놓치지 않은 걸작 중의 걸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