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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1막 1장 │2장 2막 1장 │2장 │3장 3막 1장 │2장 │3장 │ 4장 │5장 옮긴이 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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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러밴 앞으로 나를 부를 때 캘러밴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면 내 대답을 안 하겠소이다.
프러스퍼로 도대체 그따위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된 건가? 캘러밴 글쎄, 간단하오. 캘러밴이 내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오. 프러스퍼로 그건 내가 네놈에게 준 이름 아니냐? 캘러밴 당신의 증오가 내게 준 이름이지.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수치감이 드는지 아시오? …… 캘러밴 날 X라고 불러 주시오. 그게 가장 어울릴 것 같소. 이름이 없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말이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름을 도둑맞은 인간이라는 뜻으로 말이오. 당신, 말끝마다 역사, 역사하는데, 이게 바로 역사요. 누구나 다 아는 역사 말이오. 당신이 내게 일장 설교를 늘어놓을 때마다 난 항상 한 가지 사실,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생각하오. 당신이 나의 모든 것, 심지어는 나의 정체성마저도 훔쳐 갔다는 사실 말이오. 우후루! (퇴장한다) ---pp.26~27 곤잘로 내 희망대로 이 섬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칩시다. 우린 이 섬을 정복하게 될 것이외다. 그게 내 바라는 바이기는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는 게지요. 지난 세월 우리가 급하게 이룬 것들, 다시 말해 우리가 지금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들을 좀 조심스럽게 이 섬으로 가져올 필요가 있다는 뜻이오. 이곳의 원주민들은 그냥 그렇게 고상하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얘기오. 자유롭고 열등감이 없는 순진무구한 원주민으로 말이오. 영원한 젊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우물처럼 말이오. 쭈글쭈글 늙어 가고 도시화되어 가고 있는 우리의 가련한 영혼들을 회춘시켜 줄 수 있는 그런 우물처럼 말이오. ---p.42 프러스퍼로 무슨 일을 저지르려 했는데? 캘러밴 내 섬을 되찾고 내 자유를 회복하려 했소이다. 프러스퍼로 마귀가 들끓고, 태풍이 시도 때도 없이 불어 대는 이 섬에 혼자 남아 도대체 뭘 어쩌려고? 캘러밴 제일 먼저, 당신을 없앨 것이외다. 당신의 흔적을 내 몸속에서 완전히 뽑아내 버릴 것이외다. 당신이 행한 모든 일과 위선들 역시도! 당신의 그 ‘새하얀’ 요술마저도! 프러스퍼로 매우 부정적인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구먼! 캘러밴 당신은 모를 것이외다……. 당신의 흔적을 내 몸속에서 완전히 뽑아내 버리는 일이 왜 내게 희망이 되는지를……. ---pp.91~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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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탈식민의 역사를 여는
네그리튀드의 문학과 사상!! 아프리카 탈식민주의의 고전, 에메 세제르 선집!! 20세기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사상과 문학운동을 이끌었던 거장 에메 세제르(Aim? C?saire)의 대표작 '식민주의에 대한 담론'(Discours sur le colonialisme, 1955), '어떤 태풍'(Une temp?te, 1969), '귀향 수첩'(Cahier d’un retour au pays natal, 1939)이 저작권사와의 정식 저작권 계약을 통해 ‘에메 세제르 선집’으로 묶여 동시 출간되었다. 아프리카 문학?문화연구를 국내에 적극적으로 소개해 온 이석호에 의해 번역된 이 선집은 20세기 아프리카 문학과 사상의 지평을 확장시킨, 현대 탈식민주의의 절대적 고전이라 할 수 있다.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의 스승이자 동료로서,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사상에 수많은 쟁점과 화제를 낳은 에메 세제르. 그는 식민주의로부터의 해방을 말하기 위해 식민지배자들의 언어로는 표현될 수 없었던 아프리카 흑인들의 고유한 삶을 조명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백인들과는 구별되는 흑인들만의 고유한 정신과 주체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검둥이’라는 뜻의 ‘n?gre’와 상태 혹은 성질을 뜻하는 접두어 ‘-itude’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용어 ‘네그리튀드’(N?gritude). 20세기 초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담론의 주요 개념으로 등장한 이 용어를 통해 세제르는 서구의 식민주의적 담론에 가려져 있던 아프리카 흑인들의 고통과 희망의 언어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 세 작품들에서 세제르가 시도한 것은 네그리튀드를 어떻게 식민주의 담론의 장막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기존 식민주의 담론의 서구중심성을 비판하며 탈식민적 사상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이론서인 '식민주의에 대한 담론'(1권), 셰익스피어의 '태풍'(The Tempest, 1611)을 재구성하여 야만인으로 분류되어 온 아프리카 흑인들의 전복적 주체성을 드러내는 희곡 '어떤 태풍'(2권), 아프리카 흑인들의 경험과 고통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서사시 '귀향 수첩'(3권). 프란츠 파농으로부터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에 이르는 현대 탈식민주의 담론에 사상적?문학적 주춧돌을 놓은 세제르의 이 세 작품들에는 다음과 같은 하나의 물음이 관통하고 있다. “흑인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이 질문을 통해 에메 세제르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역사를 창조해 나갈 아프리카 흑인들의 고유한 주체성이었다. 세제르의 이러한 사상은 1990년대 후반 프랑스 포스트구조주의의 유입과 함께 한국에 급속도로 소개되기 시작한 탈식민주의 담론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포스트구조주의의 빠른 유입 속도만큼 초기 탈식민주의 문학과 사상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우리에게 부족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이 선집의 출간은 그동안 프란츠 파농으로 대표되어 온 아프리카 탈식민주의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 줄 뿐만 아니라, 현대 포스트구조주의 담론 이전에 전개된 탈식민주의 사상의 원류를 만나게 해주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에메 세제르 선집 2권 '어떤 태풍' : ‘야만’의 대륙 아프리카에서 다시 쓰는 셰익스피어의 '태풍'!! “캘러밴 제일 먼저, 당신을 없앨 것이외다. 당신의 흔적을 내 몸속에서 완전히 뽑아내 버릴 것이외다. 당신이 행한 모든 일과 위선들 역시도! 당신의 그 ‘새하얀’ 요술마저도!”(91쪽) ‘에메 세제르 선집’의 2권은 셰익스피어의 '태풍'(The Tempest, 1611)을 아프리카 탈식민주의의 맥락에서 재구성한 '어떤 태풍'이다.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문학의 선구자 에메 세제르가 '어떤 태풍'을 통해 시도한 것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타난 서구 백인들의 식민주의적 타자 인식을 전복하는 것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셰익스피어의 '태풍'은 주인공 ‘프러스퍼로’(Prospero)를 통해 신대륙을 정복한 서구인들의 이상과 자의식을 보여 준다. 문명의 번영(prosperous)을 암시하는 그의 이름은 서구문명의 이식이 곧 세계사의 번영을 뜻한다는 것을 가정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세제르가 개작에서 가장 큰 주안점을 둔 부분은 셰익스피어에게서 ‘야만’의 상징으로 묘사되었던 ‘캘러밴’(Caliban)의 주체성을 재규정하는 것이었다. ‘금지’, ‘추방’, ‘저주’를 의미하는 ‘밴’(-ban). 그의 이름은 ‘외딴섬’(아프리카)으로 유배된 백인 프러스퍼로에 의해 부여된 것이었다. 세제르의 문제의식은 바로 다음과 같은 역설적 물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문명의 번영과 화해를 상징하는 프러스퍼로 아래서 그는 왜 역설적이게도 금지되고 추방되어야 할 존재가 되어야 했던 것일까? 그 금지의 폭력은 무엇보다 아프리카 민중들의 이름(ban=추방) 속에 각인되며 그들의 정체성 자체를 규정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힘을 발휘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에게서는 굴종적인 모습을 보였던 캘러밴이 세제르에게서는 자기 목소리와 이름을 되찾고자 하는 자의식의 소유자로 등장한다. “날 X라고 불러 주시오. 그게 가장 어울릴 것 같소. 이름이 없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말이오.”(27쪽) 캘러밴은 자신의 이름에 부여된 금지와 저주의 함의를 버리고 오히려 “X”라는 이름을 택한다. 백인들이 부여한 식민주의적 언어의 장막을 찢겨 내기 위해 그가 택한 것은 이름 그 자체의 부정, 즉 백인 식민주의 언어 그 자체의 근본적 부정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캘러밴은 근대문명의 전파자를 자임하는 프러스퍼로에 저항하며 자기존재의 존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인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먼저 백인 식민지배자들의 언어를 통해 각인된 “흔적”을 자신의 “몸속에서” 뽑아내고자 한다. 이처럼 세제르의 가장 큰 문제의식은 아프리카인들에게 원죄처럼 씌워진 자기부정의 굴레를 벗겨 내는 것이었다.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희곡의 문제작 '어떤 태풍'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서구 백인 식민주의의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바로 이러한 아프리카 흑인들의 주체적인 몸부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