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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Part 1 포스터 디자인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 쥘 셰레 프랑스 아르누보의 거장 알폰스 무하 환원주의의 선구자 베가스타프 브라더스 독일 중산층의 영웅 루트비히 홀바인 제품 포스터의 왕 루시안 베른하르트 라이노타이프와 모노타이프 순수 미술가 에드워드 맥나이트 코퍼 이상주의자 구스타프 클루치스 정치와 프로파간다 구성주의자 스텐베르크 형제 프랑스 포스터의 거장 A.M. 카상드르 스위스 양식의 선구자 요제프 뮐러 브로크만 스위스 양식Swiss Style 팝 아티스트 타다노리 요쿠 히피 문화의 대표자 빅터 모스코소 Part 2 책과 잡지 디자인 구성주의자 알렉산드르 로트첸코 구성주의Constructivism 정치적 포토몽타주의 대부 존 하트필드 여백의 대가 알렉세이 브로도비치 사진 작업의 거장 허버트 매터 미래주의자 브루노 무나리 미래주의Futurism 토털디자인의 선구자 빔 크라우얼 포스트모더니스트 푸시 핀 스튜디오 ‘더티’ 타이포그래피의 선구자 데이비드 카슨 뉴웨이브 다다이스트 네빌 브로디 Part 3 광고, 브랜딩, 사인, 심벌 최초의 모더니즘 디자이너 페터 베렌스 형식 엔지니어 피트 즈바르트 콜라주의 대가 쿠르트 슈비터스 실험적 사진작가 안톤 슈탄코프스키 포토몽타주Photomontage CI 디자인의 대부 폴 랜드 일본 그래픽디자인의 아버지 유사쿠 카메쿠라 영화 타이틀의 혁명 솔 배스 시각 커뮤니케이션의 거장 오틀 아이허 광고의 거장 카를 게르스트너 종합해결사 펜터그램 토털디자이너 마시모 비넬리 로고 디자인의 거장 체르마예프와 지스마 코퍼레이트 아이덴티티 혁신의 거장 헤르트 둠바르뒴 컴퓨터 그래픽의 선구자 에이프릴 그레이먼 Part 4 서체와 타이포그래피 조립의 기술자 필리포 톰마소 마리네티 모더니스트 파울 레너 타이포그래피의 거장 에릭 길 혁명가 엘 리시츠키 사색가 라즐로 모홀리 나기 바우하우스 소문자의 수호자 헤르베르트 바이어 산세리프의 대변자 얀 치히올트 뉴 타이포그래피New Typography 디지털 작업의 대표주자 헤르만 자프 커뮤니케이터 허브 루발린 스위스 학파의 대부 아르민 호프만 서체 디자인의 거장 아드리안 프루티거 뛰어난 솜씨의 장인 매튜 카터 이단자 에드 펠라 뉴웨이브의 대표주자 볼프강 바인가르트 뉴웨이브 무정부주의자 제이미 리드 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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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 요코오는 인도를 여행하고 돌아온 뒤, 생기로 넘치는 자신의 작품 스타일에 화려한 인도풍의 색상을 가미했다. 팽배한 일본의 모더니즘 디자인 스타일에 대한 도전이었던 그녀의 작업은 고국에서는 이단적이라고 낙인 찍혔다. 그 낙인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에 그녀는 해외의 명망 있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의뢰받았다. 그중에는 비틀스의 앨범 《더 비틀스The Beatles》(1972) 커버와 산타나의 앨범 《로터스Lotus》(1974) 커버, 마일스 데이비스의 앨범 《아가르타Agharta》(1975) 커버 등이 있다. 요코오의 반제도적 스타일에 매력을 느낀 비틀스는 1968년 자신들의 앨범 《옐로 서브머린Yellow Submarine》을 위한 애니메이션과 미술 작업을 맡겼다. 생동감 넘치고 사이키델릭한 요코오의 전형적인 디자인과 포스터들은 국제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같은 해에 뉴욕 현대미술관의 〈언어와 이미지Word & Imeage〉전에 초대되기도 했다. 4년후 뉴욕 현대미술관은 그녀가 만든 작품들을 모아 회고전을 열었다. --- p.59-61
바우하우스의 다양한 출판물들은 모두 그래픽디자인에 영향을 미쳤다. 가장 중요한 예로 1923년에 열린 전시회 〈국립 바우하우스, 바이마르 1919-1923〉의 카탈로그를 들 수 있다. 모호이나지가 디자인하고 헤르베르트 바이어가 제본을 맡았는데, 포맷과 본문 모두 정사각형 그리드 안에서 처리되었다. 이 카탈로그는 바우하우스의 시각적 언어 발전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1929년까지 모호이나지는 타이포그래피와 사진을 하나의 스타일로 구현하는, ‘타이포-포토’라는 방법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기록해나갔다. 《회화, 사진, 영화Painting, Photography, Film》에서 그는 “타이포그래피는 글자로 행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사진은 광학적으로 수집 가능한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타이포-포토는 시각적으로 가장 정확하게 묘사되는 커뮤니케이션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기계의 사용자가 된다는 것은 이 시대의 정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에서 물려받은 관념론을 대신한다.”라고 말하며 기능주의적 정서를 고취시켰다. 1933년 나치는 바우하우스의 교수와 학생들을 ‘문화적 볼셰비키주의자’로 비난하며 학교를 강제로 폐쇄했다. --- p.192-193 1980년대 초, 펠라는 디트로이트 창작연구센터에서 학사 과정을 다녔고, 47세인 1985년에 필요한 학력을 취득하고 자신의 타이포그래피 실험에 대한 검증을 받기 위해 크랜브룩 미술아카데미의 디자인 대학원 과정에 등록했다. 이와 같이 그는 ‘예술로서의 그래픽디자인’에 대한 신념을 화려하면서도 단단하게 다졌다. 당시 그의 스케치북과 노트, 낙서장은 모두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예전의 디트로이트 동료이자 크랜브룩의 동창인 로레인 와일드는 1987년에 과정을 졸업한 펠라에게 캘리포니아 아트 인스티튜트의 강의를 부탁했다. 펠라는 일체의 상업적인 작업을 그만두고 학교와 개인 작업에만 전념했다. 2000년에 프린스턴 아키텍처럴 프레스Princeton Architectural Press에서 펠라의 책 《미국의 글자들Letters on America》이 출간되었다. 펠라의 개인 작업 중에서 최고의 것이라 여겨지는 이 책은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에 미국 곳곳을 다니며 찍은 타이포그래피들의 폴라로이드 이미지를 모은 것이다. 그 안에는 직접 손으로 쓴 글자들도 들어 있다. 재미있고 왁자지껄하며 아름답게 구성된 이 책에는 완벽을 거부하는 펠라의 감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 p.224-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