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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독자적 억지력
제2장 냉각 필터 제3장 데스폿 제4장 주사 제5장 헐벗은 불꽃 제6장 엑조세 갑판 제7장 유럽의 빛 제8장 아군 오발 제9장 성장 제10장 스펠 저지대 제11장 석판 제12장 바스라 로 제13장 죽어서야 잠들리 옮긴이의 말_사회 도처의 부조리와 폭력에 대한 뱅크스의 신랄한 비판 |
Iain B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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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하려는데 전화기가 울린다. 외선 전화다.
프랭크는 미소를 지으며 볼펜을 흔들어 전화기를 가리킨다. 「우리의 아처 씨 전화인지도 몰라.」 나는 자리에 앉아 수화기를 든다. 전화 감이 엉망이다. 「콜리 씨?」 기계적인 목소리, 마치 합성음 같다. 아처 씨가 분명하지만 스티븐 호킹과 통화하고 있다고 믿어도 좋을 정도다. 나는 녹음기를 틀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후 마이크 장치를 수화기에 붙인다. 「네, 콜리입니다. 아처 씨?」 「그래요. 내 말 잘 들어요. 새로 알려 줄 정보가 있어요.」 「그래야죠, 아처 씨.」 내가 말한다. 「저도 갈수록 ─」 「오래는 통화 못 해요, 이 전화로는.」 기계적인 목소리가 말을 잇는다. 「장소부터 받아 적어요.」 나는 연필과 메모지를 낚아챈다. 「아처 씨, 설마 이번에도 한바탕 ─」 「랭홈, 브런트실 로. 공중전화. 같은 시간.」 「아처 씨, 그건 ─」 「랭홈, 브런트실 로. 공중전화. 같은 시간.」 목소리가 반복해 말한다. 「아처 씨 ─」 「그때 이름 하나를 알려 드리죠, 콜리 씨.」 목소리가 말한다. 「무슨 ─」 신호가 죽었다. 나는 수화기를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마이크 장치를 떼기 시작한다. ---pp.29~30 「그날 저녁엔 아무도 안 만났습니까?」 맥던이 묻는다. 「이봐요, 전 여기 에든버러에 있었다고요. 웨일스 「근처에도」 안 갔어요. 여기서 웨일스까지 어떻게 갔다 왔다 한단 말입니까?」 「콜리 씨에게 혐의가 있다는 건 아닙니다.」 맥던 반장이 기분 상한 말투로 얘기한다. 「그날 저녁 「아무도」 안 만났어요?」 「네. 집에 있었어요.」 「혼자 사시나요?」 「네. 일 좀 하고는 밤새 데스폿이란 게임을 했어요.」 「찾아온 사람도, 콜리 씨를 봤을 법한 사람도 없어요?」 「네, 없어요.」 나는 그날 저녁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려 애쓴다. 「전화가 오긴 했어요.」 「그게 몇 시경이었죠?」 「자정요.」 「누구 전화였는데요?」 나는 주저한다. 「저기 말이에요.」 내가 말한다. 「날 기소하려는 겁니까? 만약 그런 거라면 정말 어이없기는 하지만 변호사부터 부르는 게 ─」 「아무 혐의도 없고 콜리 씨를 기소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맥던 반장이 합리적이되 조금 불쾌한 목소리로 말한다. ---pp.138~139 욕조에 앉은 젊은 남자 혹은 여자는 고개를 젖히고 다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여자 같다. 목선이 매끄럽고 후골도 보이지 않는다. 너는 라디오 전선으로 다시 눈길을 던진다. 입이 탄다. 어찌한다? 힘 하나 안 들이고 단방에 처치할 수도 있다. 그럼 모든 게 수월해질 테지. 마치 운명이 네 귀에 대고 「이것 봐, 내가 널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뒀다고」 하고 속삭이는 것 같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후딱 처리해 버려. 이 남자 혹은 여자의 정체가 뭐건, 아래층의 남자와 연관된 이상 저놈의 실체를 알아야 마땅하잖아. 그래도 결단이 서지 않는다. 이건 네 원칙을 거스르는 행위, 애초에 정한 작전 범위를 위반하는 일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원칙을 따라야 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전시에도 법을 따라야 하지 않나. 이거야말로 운명의 시험일지 모른다. 일종의 리트머스 실험으로서, 장애물을 간단히 비껴갈 방법을 제시하는 척 굴며 실제론 네가 본색을 드러낼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는 걸지도. 만일 여기서 쉬운 길을 택한다면 그 순간 너는 시험에서 낙방할 테고, 한번 실패한 이상은 어떤 수로도, 제아무리 뛰어난 수완을 발휘해 결연하고 정당하게 행동한다 한들 구원받지 못할 것이며, 스스로 행운을 저버린 셈이라 더 이상의 요행을 바랄 수도 없을 터이다. ---p.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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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마약, 섹스에 중독된 속도광 캐머런 콜리.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는 돈과 권력으로 부패한 사회 도처의 비리를 고발하는, 상당한 정의감을 지닌 신문 기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느 날 역겨우리만치 잔혹한 사건들이 잇따라 일어나고, 경찰들은 타락한 언론인, 강간범들에게 솜방망이 판결을 내린 판사, 이란-이라크전을 지지한 국회의원, 안전보다 이윤을 챙긴 사업가 등 희생자들이 모두 캐머런이 쓴 기사에서 언급된 인물들이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조사를 받으면서, 캐머런은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씩 풀어 범인의 실체에 접근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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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규정되지 않는 독창적인 작품들로 지난 25년 동안 독자들과 평단의 주목을 동시에 받으며 현대 영국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소설가 이언 뱅크스의 작품 『공범』이 번역가 이예원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1993년 영국의 문예지 『그란타』에서 「영국 최고의 젊은 작가」로, 2008년 「타임스」에서 「전후 최고의 작가 50인」으로 선정된 뱅크스는 흔히 말하는 주류 소설과, SF 양쪽 모두에서 성공을 거둔 보기 드문 작가이기도 하다.
『공범』은 잇따라 벌어지는 잔혹한 사건들과, 그 범인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진실에 다가가는 한 기자의 이야기로, 스릴러의 외양을 띠면서도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날카롭게 고발하는 진지한 주제 의식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1인칭과 2인칭이 교차하는 독특한 형식, 현대인의 병폐적 측면을 단편적으로 보여 주는 개성 있는 인물, 그러면서도 스릴러 본연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속도감 있는 전개는 독자들을 열광케 하기에 충분했다. 출간 당시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으며, 2000년 가빈 밀러 감독, 조니 리 밀러 주연으로 영화화될 만큼 뱅크스의 작품 중에서도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공범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너」란 인물이 잔인하기 그지없는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곧이어 등장하는 주인공 캐머런 콜리는 상당한 사명감을 지닌 일간지 기자이지만, 한편으로는 술과 마약, 섹스, 컴퓨터 게임에 중독된 냉소적 인물이다. 그가 특종을 좇기 위해 스코틀랜드를 누비는 사이사이, 연쇄 살인범의 잔혹하고도 기괴한 범행은 계속된다. 난간 꼬챙이에 꽂힌 채 자택 앞에서 발견된 타락한 언론인, 강간범들 처벌에 너무 관대했다는 이유로 바이브레이터로 폭행당한 판사, 혈관에 정액을 주입당한 포르노상, 이란과 무기 협상을 하고 이란-이라크전의 참사를 보고도 자국에 이익이 된다고 여겼다는 이유로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간 국회의원, 안전보다 이윤을 먼저 챙기다가 수천 명의 목숨을 잃게 만들고도 생존자와 유족들에게 보상금조차 지급하지 않으려다가 가스 폭발로 폭사한 사업가. 이들은 하나같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 외에도, 모두 캐머런이 쓴 텔레비전 칼럼에서 언급된 적이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 점을 알아차린 경찰은 그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캐머런은 혐의를 벗기 위해 범인의 정체를 밝히려 애쓴다. 그러나 범인과 캐머런의 장면 외에도 캐머런의 어린 시절이 교차되면서, 또 범인의 실체에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면서 독자는 살인 사건의 진상보다는, 또 범인이 누구인가보다는 그 뒤에 숨은 동기와 인물들의 자각이 이야기의 핵심임을 깨닫게 된다. 결국 범인은 사회의 부조리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고 희망을 상실한 인물이었음이 밝혀지는데, 이러한 인물이 또다시 타인에게 극단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뱅크스는 제도적 폭력이 개인의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속도감 있는 전개와 익살스러운 인물 묘사, 잔혹한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드러내는 능란한 작가의 솜씨가 매력인 작품이다. 특히 1인칭과 2인칭이 교차하는 서술 방식은 「나」와 「너」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독자마저 「공범」의 처지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렇게 독특한 형식과 진지한 주제의 결합이 뱅크스의 작품을 심심풀이로 읽는 평범한 작품의 수준에서 벗어나 한 차원 높은 작품성을 지닌 작품으로 거듭나게 만들며, 독자로 하여금 또다시 그의 작품을 읽게 만드는 요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