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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책머리에 1. 위대한 평민 유방 2. 한은 변증법적 제국이다 3. 차선을 위한 집단적인 투쟁 제1장 한 알의 불씨가 광야를 사르다 1.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 2. 동상이몽-첫 배신자들 3. 희戱의 패배 제2장 비범한 자와 평범한 자 1. 유방의 기의-협객이 뱀을 자르다 2. 항우의 기의-역사力士가 관리를 베다 3. 북방의 군벌들 제3장 출관?關 대 도강渡江 1. 기우는 집의 맏형, 이사 2. 불씨, 스스로를 태우다-진승과 오광의 죽음 3. 강동의 호랑이가 강을 건너다 4. 유방이 군단을 얻다 제4장 사람을 얻는 자와 승리를 얻는 자 1. 장량과 이사-뜨는 별과 지는 별 2. 항우, 패배를 승리로 되갚다 제5장 진이 멸망하다 1. 거록의 대승-항우, 제후군을 거느리다 2. 사람을 거두며 관關을 향하다 3. 진秦 야전군의 최후-신안의 학살 4. 관을 넘고, 법을 넘다 5. 홍문鴻問의 연회-죽음의 춤판 6. 불타는 고도 제7장 초한쟁패 1-패배를 딛고 서다 1. 대장군 한신의 전략 2. 잠룡 출관 3. 팽성의 대패-교만의 대가 4. 영포, 열쇠를 쥔 자 제8장 초한쟁패 2-칠전팔기 1. 한신이 배수의 진을 치다 2. 형양의 굴욕, 성고의 수난 3. 역이기의 입과 한신의 칼 제9장 건설자의 풍모와 철학 1. 제국의 외관을 확립하다-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 2. ‘최선의 차선’, 유방 3. 한나라 초기의 정치-제가백가의 융합 제10장 법으로 본 진과 한-세상은 바뀌었는가? 1. 법을 연구하는 역사학자의 시선 2. 인민은 방관자가 아니다-억울한 자들의 투쟁 3. 한 고조의 법치 4. 유방의 부세와 요역 정책-범죄의 온상을 없애라 5. 야누스의 얼굴-혹법酷法 혹은 강법?法 6. 개혁으로 가는 길 전체 후기 부록: 전국시대 주요국 제후 재위 연표 전국시대 주요 사건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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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이 사람의 마음을 사는 방식은 특별하지 않다. 그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을 던져버린다. 그가 자신을 던질 때 주위의 몇 명 또한 부득이하게 혹은 감동해서 그와 운명 공동체가 되는데, 일단 함께하면 유방은 이 운명 공동체를 중핵으로 삼아 세를 불렸다. 훗날 대업을 이룬 후에도 그는 문지기조차 꼭 옛 친구처럼 대했다고 한다. 특이한 격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신분이 낮을 때나 고귀해진 후에나 상하좌우 누구든 술친구 대하듯 했을 뿐이지만 사람들은 여지없이 그에게 감복했다. --- p. 64
항우와 유방은 군대를 복양의 동에 두고 다시 진군과 싸워 대파했다. 연이어 패하자 진군은 작전을 바꿔 복양을 지키면서 해자를 둘렀다. 진이 맞붙지 않고 성을 지키며 나서자 항우와 유방은 복양을 내버려두고 남쪽으로 내려와 정도(定陶)를 공격했지만 함락시키지 못했다. (중략) 천군은 동방으로 나가 싸우는 진군과 관중의 조정을 연결하는 길의 중심에 있다. 이 길이 끊기면 동방에서 싸우는 진군은 유격병으로 전락한다. 이렇게 항씨가 불과 두 달 만에 전세를 뒤집자 위세가 천하를 뒤흔들었고 진군이 드디어 항씨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유방은 충실히 보조자의 임무를 수행했다. --- p.130 유방은 항우가 약조를 배반한 것을 원망하여 그를 공격하고자 했지만 승상 소하가 간하니 참았다. 진여는 장이가 상산왕이 되는 차에 자신은 조그마한 식읍 셋만 얻자 반발했다. 전영은 항우가 옛 제왕 전불을 교동으로 옮기고 전도를 제왕으로 삼자 대노했다. 또한 팽월은 열심히 싸웠지만 얻는 것이 없었다. 이렇게 불만을 품은 이들이 다수였다. (중략) 항우는 한왕 성이 공이 없다는 구실로 데려가서 얼마 후 죽여버렸다. 장량을 철천지원수로 만든 셈이었다. 장량은 이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유방에게 충성한다. --- p.168 한신은 창칼도 아닌 깃발 2천 개로 도저히 승산이 없는 싸움을 뒤집었다. 그러나 한신이 기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령관으로서 몸소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배수진을 치는 용기가 있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겠다는 정신, 오기 병법의 핵심을 한신이 실천했다. 이렇게 한신이 조를 평정하니 하북에서 항우의 등을 누르는 형세가 만들어졌다. (중략) 한신은 군대를 쉬게 하고, 항우에게 사신을 보내 장이를 조왕으로 삼아 조를 안정시키기를 요청했다. 유방은 이를 허락했다. 이리하여 항우는 후방이 불안하여 계속 별대를 보내 조를 견제하니 힘이 분산되었고 한신은 조를 지키면서 유방이 열세에 처할 때마다 형양으로 병력을 보탰다. --- p.202~203 유방은 한신을 잡고 바로 관중으로 도읍을 옮기고 후속 조치를 취한다. 한신의 땅을 둘로 나눠 전장에서 공을 세운 유씨 종파의 유가(劉賈)를 형왕(荊王)으로 삼아 회동(淮東)을 다스리도록 하고 동생 유교(劉交)를 초왕(楚王)으로 삼아 회서(淮西)를 다스리도록 했다. 이어 동쪽에서 가장 비옥하고 넓은 땅인 제에 아들 비(肥)를 봉했다. 이리하여 천하의 요지는 모두 유씨의 차지가 되었으니 아들과 형제가 배반하지 않는다면 한의 대업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게 되었다. 이렇듯 유방이 원한 것은 유씨 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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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사건과 인물 군상이 집약된 춘추전국시대,
거대한 ‘중국’의 기틀이 마련된 시대를 통찰하다! 춘추전국시대란 기원전 770년 주(周)나라가 융족에게 밀려 동쪽 낙양(낙읍)으로 옮겨온 시대부터 진(秦)이 전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 대략 550년의 기간을 말한다. 중국의 역사는 상(商)나라에서 시작되어 주나라와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했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황하를 비롯한 큰 물줄기들 주위에는 강력한 중앙집권제 국가들이 탄생했다. 또 노예를 대신하여 일반 백성들이 생산을 담당하는 농업국가의 기틀이 마련되고 국가 규모의 조세체계와 상비군이 탄생했다. 전국시대 말기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진(秦)이 경쟁자인 6국을 흡수하여 최초로 통일제국을 이루었고, 한(漢)이 이를 계승하여 오늘날 우리가 ‘중국’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몸체가 탄생했다. 춘추전국시대가 ‘중국’이라는 거대한 뼈대가 탄생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며, 그 뼈대 위에 이후 역사의 살이 덧붙여져 오늘날의 중국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춘추전국이야기』는 열국의 치열한 각축과 흥망성쇠를 거시적인 흐름에서 조망한다. 끊임없이 대립, 융합, 발전하는 춘추전국의 시대상이 치밀한 현장답사와 자료 고증을 통한 저자의 노력으로 오롯이 담겨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와 미래를 통찰하는 안목을 기르고, 또한 인생의 영욕과 애환,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내는 세상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유방과 항우, 천하를 두고 세 번 맞붙다! 진시황 2세(영호해?胡亥)의 실정이 계속되면서 진(秦)나라의 가혹한 정치체제에 지친 인민들은 혁명의 불씨를 하나씩 품게 되었다. 초(楚)나라 출신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먼저 진에 맞서 일어선 이후 각지에 퍼져 있던 6국의 후손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반격을 준비했다. 이 중 패현 출신의 평민 유방(劉邦)과 초나라 명문 출신 항우(項羽)는 농민반란의 대의를 조종할 능력과 군사적 재능을 갖춘 인재들이었다. 사람을 끌어모으는 매력을 지녔던 유방과 전장에서는 무서울 것이 없었던 항우는 세 번에 걸쳐 치열한 전투(초한쟁패)를 벌였고, 결국 유방이 승리해 새로운 통일 제국인 한(漢)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이 책은 진나라 말기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농민반란의 혼란 속에서 실세로 우뚝 선 유방과 항우의 대결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유방이 초한쟁패에서 승리하고 한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의리와 협의 정신으로 사람들을 대하면서도, 평민의 입장에서 평민의 마음을 읽고 평민의 윤리를 실천하고자 했던 ‘평범한 비범성’ 때문이었다. 한신(韓信)·팽월(彭越)·장량(張良)·소하(蕭何)·진평(陳平) 등 지략과 전략, 용기와 패기를 갖춘 인물들은 유방의 ‘평범한 비범성’을 알아채고 그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 적극 조력하며 큰 공을 세웠다. 이로써 마침내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느슨하고 유연한 법 집행과 감세정책으로 민의를 얻어 통일시대의 기틀을 다졌다. 사람을 얻을 것인가, 승리를 얻을 것인가 혈혈단신 평민에서 몸을 일으켜 천하의 우두머리가 된 유방은 때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사람을 모아 천하를 얻었다. 유방이 기존의 제왕과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그가 평민의 삶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열국의 전쟁이 고조된 전국시대와 진의 강압적인 통치, 농민반란을 거치며 지칠 대로 지친 인민들을 ‘덜’ 착취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고,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덜’ 귀찮게 하는 것이 그의 정치였다. 협객이 그러하듯 사람과 어울리며 술 마시기를 즐겨하고, 결단의 순간에 머뭇거리지 않았던 유방은 사람을 끌어 모아 세력을 점차 확장해 진군을 무너뜨리고, 팽성·형양·해하 등에서 항우와 세 번 대결한 끝에 승리해 천하를 재통일한다. 한편 초나라 항씨 세력을 기반으로 삼촌 항량을 도와 봉기한 항우는 지역적 기반과 명망을 가진 귀족 출신이었다. 그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로 승승장구하며 진군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관중의 함양을 도륙했다. 이 과정에서 항복한 진왕 자영을 살해하고 진의 궁실을 태우며 지나가는 곳마다 남기지 않고 잔멸시켜 진의 백성들은 그를 두려워했다. 사람을 구하는 것보다 승리는 구하는 것에 집중했던 항우는 결국 자신의 주변사람마저 잃고 해하의 대결에서 유방에게 패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관대함의 정치로 새로운 제국의 시대를 만들다 사람이 바뀐다고 체제가 필연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바뀌지 않고 체제가 바뀔 수는 없다. 유방은 새로운 제국의 역사를 연 인물로, 그의 행동은 하나하나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는 약속을 강조하면서도 자신이 필요하면 약속을 어겼고, 인의를 내세우면서도 궁지에 몰리면 희생양을 찾았다. 한 고조로 등극한 이후 끊임없이 터지는 제후들의 반란을 막기 위해 개국 무장들을 토사구팽하며 권위를 세우려 했던 점에서 그는 최선보다는 차선에 걸맞은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어떤 과오가 있든 관대함의 정치를 펴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았다.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면서 전국시대의 연장으로서 남북으로 대 이민족 전쟁을 벌였던 진의 정책은 종식되었고 법가 일변도의 통치철학도 막을 내렸다. 저자는 한나라와 진나라의 법 제도를 비교하면서 두 나라가 비슷하다는 기존의 주장에 반기를 든다. 한 고조 유방은 범죄자, 정치범 등에게도 관대하게 법을 적용했으며, 사면령의 범위를 넓혀 사회를 통제하지 않고 생산 인구를 늘렸다. 과거의 제도를 계승하되, 잘못된 점은 고쳐 개혁하고자 했던 그의 계획은 이후 400년 동안 한나라가 지속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