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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I. 발화에 대한 단순 분석. 발화의 다양한 요소들과 환경 II. 음성들과 음성 법칙들 III. 음성과 음성 결합체의 역사 IV. 언어 법칙에 관한 지배적인 시각들에 대하여 V. 단어 VI. 단어의 형태적 요소들의 분리와 그것들의 특징 VII. 구조 해체적 특성의 요인들 VIII. 단어의 형태적 요소들의 역사 IX. 단어 내 형태적 요소들과 언어 내 단어들의 합성 X. 단어들의 역사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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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두앵 드 쿠르트네 교수의 지도 아래 수학하면서, 언어 현상도 다른 존재 영역들과 마찬가지로 일반 학술적인 의미에서의 ‘알려진 법칙들’을 따른다는 데 대한 굳은 신념과 언젠가는 그 법칙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 있는 언어를 연구했다. 그리고 나는 점차 언어에 대한 그 어떤 전체적인 시각, 겸손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말한다면, 그 어떤 언어 이론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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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야콥슨도 지적했던 것처럼, 크루솁스키는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 언어학계에서 충분히 평가되지 못하고 잊혔던 인물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유럽 언어학자들이 그의 연구 성과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당시 언어학자들은 소쉬르 이전 세대의 연구 성과를 검토하다가 보두앵 학파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소쉬르 언어 이론의 많은 부분이 저 유명한 『일반언어학 강의』가 세상에 나오기 30년 전에 이미 보두앵 학파가 발표한 언어 이론들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유럽의 학자들은 보두앵 드 쿠르트네를 중심으로 한 카잔 학파가 현대적인 구조주의 형성에 전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크루솁스키는 36세의 나이로 요절했기 때문에 적극적인 연구 활동을 수행한 것은 1879년 부터 1884년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이다. 이 시기는 독일의 소장문법학파가 형성되던 시기였기에, 크루솁스키는 그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파울의 1880년판 『언어사의 원리』를 박사학위 논문에 여러 차례 인용했다. 그러나 크루솁스키가 소장문법학파의 이론을 전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1881년의 석사학위 논문에서 그들의 이론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그들의 학문을 아리아유럽어족 언어들의 종적 상호관계를 밝히고, 아리아유럽어 조어뿐 아니라 다른 어족 언어들의 조어들도 밝혀내려는 노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이 학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입증할 필요도 없다.” 또한 박사학위 논문 서두에서도 라이프니츠를 인용해 그들의 시도를 비판했다. |